에너지가 바꾼 세상
후루타치 고스케 지음 | 에이지21
에너지가 바꾼 세상
후루타치 고스케 지음
에이지21 / 2022년 8월 / 367쪽 / 18,000원
양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사
불 에너지
불의 정체가 생물이라고?: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상적으로 불이 존재하는 환경은 비교적 최근에야 가능해진 일이다. 불을 붙이려면 조건이 있다. 연료, 산소, 열인데, 보통 연소의 3요소라고 불리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탄생한 지구에 처음부터 풍부하게 존재했던 것은 의아하지만 열뿐이었다. 땅에는 연료가 될 만한 재료가 거의 없었고 하늘에도 대기에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불이 탄생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변화는 아직도 그 과정이 학문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40억 년 전 심해 밑바닥에 있는 열수 분출공 부근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바로 우리의 조상, 생명의 탄생이다. 생물은 탄소를 주된 구성 요소로 하는 유기 화합물로 잘 타는 성질이 있다. 오늘날 지구에서 불을 피우는 연료를 따져 보면 장작이나 숯은 말할 것도 없고,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도 전부 생물로부터 만들어진 유기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생물은 모두 동등하게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원시 지구에 최초로 존재했던 열과 더불어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으로 연소의 3요소 중 두 가지, 열과 연료가 갖춰졌다.
남은 한 가지 요소인 산소 역시 생물에 의해 공급되었다. 생명의 요람인 바닷속에서 진화를 위해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탄생한 것이다. 36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박테리아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체내에 흡수해 탄소를 고정하는 한편 불필요한 산소를 배출했다. 결과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이 서서히 줄어들고 산소량이 늘어났다. 이렇게 지구 탄생으로부터 10억 년이 흘러 드디어 연소의 3요소가 얼추 갖춰졌다. 하지만 지구에서 일상적으로 불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끝없이 연소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산소와 잘 타는 연료의 확보, 다시 말해 바닷속에 사는 유기 화합물인 생물을 좀 더 건조한 육지로 유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는 데는 대기 중 산소 공급량의 비약적인 증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소는 발생 초기 물속에 대량으로 부유하던 철 이온과 결합해 대부분 산화철이 되었으나 25억 년 전부터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대량 생성되면서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산소량이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5억 년 전부터는 대기 중에 충분히 공급된 산소가 성층권까지 다다라서 오존층을 형성했고 지상으로 내리쬐는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해 주었다. 이렇게 마침내 생물이 육지로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윽고 육지에 진출한 식물이 지표면을 뒤덮으면서 연료, 산소, 열이라는 제대로 된 연소의 3요소가 갖춰졌고 지구 곳곳에 불이 생겨났다. 지구 탄생으로부터 42억 년 후 지금으로부터 불과 4억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지구에 불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탄소로 이루어진 일종의 생물인 우리 인류와 생물의 연소로 발생하는 불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뇌가 커진 데는 불의 역할이 컸다: 우리의 조상은 소화 기관이 해야 할 일의 일부를, 불을 활용해서 음식을 ‘요리’함으로써 외주했고, 이렇게 얻은 잉여 에너지를 뇌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것이 우리 조상의 진화 방향을 결정지었다. 현생 인류가 고도화된 지능을 갖게 된 데는 인류의 조상이 불을 사용한 것과 연관이 깊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사 최초의 에너지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류 번영의 시작은 바로 이 순간부터였다. 이는 또한 백만여 년이 지나 전례 없는 문명사회를 건설한 인류가 에너지의 대량 소비로 전 지구적 난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떠안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농경 에너지
인류는 농경으로 태양 에너지를 점유했다/인류에게 주어진 형벌이 가져온 혁명/농경이 초래한 어둠: 1만 년 전 무렵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농경은 생태계에 한층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경, 즉 땅을 개간해 밭을 정비하고 농작물을 기르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땅에 자생하는 식물을 전부 내쫓고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인간이 점유한다는 뜻이다. 농경을 통한 태양 에너지의 점유 효과는 확실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활동으로 소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보존 가능한 수확물의 형태로 얻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잉여 에너지를 계획적으로 비축할 수 있었다. 농경 생활로의 이행은 불의 이용을 잇는 인류사에 두 번째로 찾아온 에너지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농경은 인류에게 문명이라는 빛을 비춰 주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농경 생활이 초래한 어둠, 그 첫 번째는 전쟁의 발발과 노예 제도의 시작이다.
삼림 에너지
문명의 기술적 발전을 지탱한 것은 숲이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사회는 대규모의 삼림 벌채가 필요했다. 건물이나 배를 만드는 재료, 도자기와 벽돌을 굽고 금속을 용출하는 가마의 연료 등으로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 숲을 키우는 것은 태양 에너지다. 따라서 에너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삼림 자원의 이용 또한 농경에 이어 토지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인류가 점유하려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림 자원이 까다로운 이유는 곡식과 달리 나무는 성장하려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명사회는 이렇듯 귀한 에너지원인 삼림 자원을 물 쓰듯 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베어 낸 삼림 자원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지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왜 삼림 자원을 파괴하는가: 이처럼 태양 에너지를 빨아들인 두 개의 에너지원이 문명의 발달을 견인했다. 한편 재생 속도를 넘어선 수준으로 삼림 자원을 소비한 탓에 삼림 자원의 공급은 에너지 수지가 늘 마이너스를 그리는 지속 불가능한 활동이었다. 인간의 활동이 초래한 삼림 자원의 상실은 지구 환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민둥산이 되어 버린 레바논 산맥의 봉우리들, 지중해 연안을 수놓은 올리브나무 숲과 교토 미야마에 펼쳐진 소나무 숲.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삼림 자원이라는 귀중한 태양 에너지 저장고를 닥치는 대로 수탈한 탓에 반영구적으로 변해 버린 풍경이다.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문명이 탄생한 이래 인류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은 어떤 면에서는 혁명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산업 혁명과 에너지
에너지 형태를 바꾸는 기술의 탄생: 증기 기관의 발명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친 영국의 산업 혁명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증기 기관을 볼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 발명을 통해 석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는 사실 아닐까. 물론 이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증기 기관의 발명이 진정 혁명적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에너지의 형태를 바꿨다는 점이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기 전 인류 사회가 활용해 온 에너지는 늘 처음에 얻은 에너지와 똑같은 형태였다. 불로 조리를 하고 가마에서 구리광을 가열해 구리를 분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장작이나 숯을 태워서 생긴 열에너지로 식재료와 구리광을 가열한다. 즉 장작이나 숯에서 얻어진 열에너지를 다시 똑같이 열에너지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에너지의 형태 변화가 없다. 반면 증기 기관은 석탄을 태워서 물을 가열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수증기의 열에너지로 피스톤을 움직여 운동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에너지 변환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야말로 지금껏 인류가 발명한 물레방아나 풍차와 같은 동력 기계에는 없는, 증기 기관만이 가진 참신성과 혁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증기 기관의 발명은 열원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동력으로 바꿀 수 있음을 의미했다. 장작과 숯은 물론 석탄, 석유, 천연가스부터 원자력까지도 열원이라는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점이 연료 선택지를 늘려 주었고, 그 결과 유례없는 규모의 에너지 소비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제3차 에너지 혁명을 이끈 주역은 석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가능케 한 실용적인 증기 기관의 발명이었다.
증기 기관의 발명이 가져다준 깨달음: 증기 기관이라는 에너지 변환 장치의 발명은 인류에게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 깨달음은 열에너지만 넉넉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면 어디서건 운동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으므로 동력이 필요한 공장의 부지 선택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투입한 열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또 에너지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큰 운동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깨달음은 에너지 형태를 변환하는 증기 기관의 작동 원리를 관찰하는 일이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증기 기관을 둘러싼 세 가지 깨달음을 기반으로 여러 활동이 이뤄졌고, 그 성과가 제3차 에너지 혁명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류 사회를 안내했다.
전기의 이용
에너지의 이동과 변환을 자유롭게 한 것: 제4차 에너지 혁명의 막이 오른 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하던 시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1873년에 개최된 만국 박람회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화려한 박람회장의 한구석에 자신이 개발한 발전기를 전시하려고 준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벨기에 출신의 제노브 테오필 그람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발전기는 전에 없이 강력하고 안정적인 출력을 보여 주는 그의 야심작이었다. 증기 기관을 동력원으로 삼아 전기자라 불리는 회전축을 돌리면 안정적으로 직류 전류가 출력되는 설계 방식의 발전기였다.
그가 발전기를 증기 기관 옆에 놓아두고 500m 떨어진 곳에서 구리선을 배선하고 있는데, 직원이 실수로 구리선을 다른 발전기와 연결해 버렸다. 이를 모르고 증기 기관을 돌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구리선으로 연결된 발전기의 전기자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천재 기술자 그람은 이 현상을 보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른 모터 대신에 회전하는 전기자를 펌프에 연결하고 물을 끌어올려 박람회장에 작은 폭포를 만들어 보였다.
그람이 단숨에 깨달은 사실은 전기를 이용하면 에너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기 기관은 제3차 에너지 혁명을 낳은 대발명이었으나 열에너지를 얻는 곳과 열에너지를 변환해 운동 에너지로 소비하는 곳이 같아야 했다. 하지만 전기의 이용은 에너지 변환의 자유뿐 아니라 장소의 제약까지 없애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람의 깨달음은 전기 시대를 여는 결정타가 된다. 제4차 에너지 혁명의 막이 오른 순간이다.
전류 전쟁의 끝에: 빈 만국 박람회의 우연한 발견 이후 불과 20여 년 만에 전기는 이동과 변환이 쉽고 취급이 용이한 에너지로써 부동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고 현재 전기는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발전소에서 시작되는 송배전망이 매일 우리가 사는 곳까지 전기 에너지를 운반해 준다. 운반된 전기 에너지는 모터를 통해 운동 에너지로, TV를 통해 빛 에너지로, 또 전기 포트로 물을 끓이는 열에너지로 변환되기도 한다.
전기 제품은 생활 전반에 이용되고 있어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 전기를 확보하는 일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전원을 찾아 화석 연료를 태우고, 구로베 협곡을 헤치고 들어가고, 결국은 원자력에까지 손을 뻗었다. 이 모든 것은 그람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해 에디슨의 사업화를 거쳐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전력 시스템 개발로 이어지는 제4차 에너지 혁명의 산물이다.
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 과학이 밝혀낸 에너지의 본질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의 어원: 에너지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일’을 뜻하는 ergon(에르곤)에서 유래했다. ergon에 접두어 en을 붙여 ‘활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energos(에네르고스)라는 말이 생겨났고, 나아가 ‘활동’을 의미하는 energeia(에네르게이아)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과학 용어로 영어 energy(에너지)라는 말이 탄생했다. 일본의 경우 energy는 과학 기술과 함께 과학 용어의 하나로 메이지 시대 때 독일에서 들어왔다. 독일식 발음인 ‘에네르기’가 일본에 정착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디나미스와 에네르게이아: 고대 그리스에는 디나미스(dynamis)라는 말이 있었다. 잠재력, 기량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 주목한 사람이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의 사상적 뿌리에는 자연의 모든 운동과 변화의 체계적인 정리가 자리해 있었다. 먼저 그는 운동이나 변화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특히 끝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끝이란 사물이 운동이나 변화를 통해 목적을 달성한 상태라고 해석했다. 예를 들면 식물의 종자가 발아해 꽃을 피우는 변화를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종자가 내재한 힘을 발현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듯 종자가 가진 잠재력을 디나미스, 또 목적을 달성해서 꽃이 된 모습을, 일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에네르고스(energos)에서 따 에네르게이아(energeia)라고 불렀다.
에네르게이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에네르고스에서 따 만든 철학 용어였지만 시대가 흘러 ‘활동’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 정착했다. 그것이 나중에 만들어진 과학 용어인 에너지의 어원이 되면서 현재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사실 과학적 사고에서 확립된 표현인 에너지보다도 철학적인 사고에서 탄생한 에네르게이아가 일반인에게는 훨씬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는 자칫 과학계의 문제로 해결책을 논의해 버리기 쉬운 에너지 관련 논의를 보다 폭넓은 사회 문제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여행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물리학에서는 여행자가 사용한 에너지를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이동했으므로 운동 에너지(물리학에서 말하는 일의 양)라고 본다. 그런데 이는 무미건조한 세계관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식 사고에 따르면 여행하는 목적이나 여행하게 되는 과정까지가 여행자가 쓴 에너지의 일부다. 즉 당사자가 가진 여행의 열정이나 의미까지도 에너지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는 것이다.
에너지의 특징
요절한 거성 사디 카르노: 19세기 초반 프랑스에 당시 산업 혁명을 바탕으로 빠르게 국력을 기른 영국을 분석하고 프랑스와의 차이를 느낀 인물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사디 카르노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한 카르노는 국력의 차이가 증기 기관의 효율적인 활용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더 효율적인 증기 기관을 개발하면 산업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과학자의 안목을 발휘해 효율적인 증기 기관 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증기 기관의 구조 분석에 돌입한다. 그리고 1824년 카르노는 「불의 동력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 연구 내용을 정리했는데, 그의 고찰은 당시 잘못된 지식이었던 열소설에 근거하긴 했지만, 증기 기관과 같은 열기관의 구동 원리와 그 한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 열역학의 완성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