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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

리베카 벅스턴, 리사 화이팅 외 지음 | 탐나는책


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

리베카 벅스턴, 리사 화이팅 외 지음

탐나는책 / 2022년 7월 / 314쪽 / 18,500원





디오티마 | 조이 알리오지




서양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로서 한 여성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말한다면 누군가는 놀라워할 것이다. 플라톤의 작품 『향연』에는 소크라테스가 만티네이아 출신의 디오티마와 함께 사랑과 아름다움의 본질에 관해 토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디오티마는 실존하지 않았던 가상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렇다 보니 디오티마가 철학사에 남긴 공헌 중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고, 제대로 인정받거나 이해되지도 않았다. 디오티마의 사상과 가르침이, 정말 그녀의 것이 맞다면, 2,000년 이상 지난 현재까지도 그 가치는 유효하다. 또한 디오티마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디오티마 외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은 밀레투스 출신의 아스파시아로 『메넥세노스』에서 소크라테스가 그녀의 주장을 거론한다.

물론 디오티마도 아스파시아도 대화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직접 펼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인 남성들에게 두 여성의 주장을 인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플라톤은 여성을 제자로 두기도 했는데, 필레우스 출신의 악시오테아와 만티네이아 출신의 라스테네이아가 특히 유명하다.

철학계의 핵심 인물에게 미친 잠재적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디오티마가 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화적 인물로 여겨졌는지 그리고 학계에서 무시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훌륭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해 플라톤이 문학적 장치로 디오티마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향연』에서 대화 상대인 아가톤에게 적용한 논쟁을 이끄는 방식의 하나로 간주된다.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말의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대화 상대의 영혼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대화 상대의 영혼을 알아야 한다.

『여성 철학사』를 쓴 메리 엘런 웨이스 같은 학자들은 디오티마를 역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디오티마라는 그리스 철학자가 아테네를 방문해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그에게 철학을 가르쳤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디오티마가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소크라테스가 『메논』에서 ‘지혜로운 남자들과 여자들의 조언을 수용했다.’는 내용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가 다른 여성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와 같은 여성에게 사랑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그렇게 낮지는 않다. 어쩌면 고대 그리스에서 이처럼 지적인 여성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디오티마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플라톤이 상상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디오티마는 철학사에서 여전히 중요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허구든 아니든 그녀의 주장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철학사에도 그만큼 파급력을 가진다. 따라서 여기서는 디오티마의 존재 여부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우리의 첫 번째 ‘철인 여왕’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당분간 염두에 두자.

디오티마는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향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향연』은 우리가 플라톤의 철학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향연’은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토론하는 남성들의 모임으로, 대개 연회와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플라톤의 『향연』은 근본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었다. 남성 철학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여성이 참석했던 것이다.

『향연』의 주인공들은 주최자인 아가톤으로부터 사랑의 의미에 관한 연설을 부탁받는다.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의 주장을 들은 뒤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에게서 사랑의 철학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디오티마를 지혜로운 여성이자 철학자이며 예언자라고 묘사했다. 또한 디오티마를 소개하면서 그녀가 아테네의 역병을 예언하고 시민들에게 희생제를 행하도록 지시해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디오티마라는 인물은 예언이나 선견지명과 연결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점을 그녀의 지적 우월성을 보여 주는 증거로 활용했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의 지식이 다른 대화자들의 지식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디오티마는 『향연』에서 직접 말을 하지는 않지만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디오티마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가 더 미숙한 자신에게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즉 어떤 관점이나 정의에 대해 일련의 질문을 던지고 대안적인 입장을 이끌어 내는 논쟁적인 문답법을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의 가장 큰 철학적 공헌인 방법론을 가르쳐 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린 제자인 디오티마와의 만남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디오티마가 가르쳐 준 미의 이론을 개괄하고, 그 유명한 ‘디오티마의 사다리’ 또는 ‘사랑의 사다리’를 제시한다. 디오티마의 사다리 이론은 사다리 맨 아래층의 ‘매력적인 육체를 향한 욕구’가 사다리 꼭대기 층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공감’에 이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사랑의 사다리는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단계, 개별적인 육체에 대한 사랑이다.

2단계, 모든 아름다운 육체들에 대한 사랑이다.

3단계, 영혼이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4단계, 아름다운 공적 제도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5단계, 앎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6단계, ‘미’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디오티마는 이 6단계를 ‘아름다움이라는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다. 미 자체를 관조하면 미덕의 도덕적 특징들이 따라온다. 그녀는 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향한 무한한 사랑 속에서 온당하고 숭고한 사상을 창조하는데, 그 사람은 점점 강해져서 결국 아름다움의 과학에 관한 비전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미를 관조하려면 단순히 외적인 것을 넘어서, 추상적인 ‘미의 관념’에 대한 이해를 배워야 한다.

이 논의는 플라톤의 유명한 ‘이데아’ 이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이데아는 변화무쌍한 물질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비물질적인 본질’이라고 수차례 주장했다. 우리 세계는 영원한 이데아 세계의 모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물질세계의 존재들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식을 얻으려면 그림자에 불과한 지각 세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로 향해 가야 하는데, 특히 그중 ‘선의 이데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선이 ‘미’나 ‘정의’와 같은 다른 이데아와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선의 이데아를 이렇게 표현했다. “존재 너머에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이를 잘 보여 준다. 하지만 디오티마의 선이나 미의 개념이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와 동일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디오티마는 미는 목적이 아니라 더 위대한 무언가를 위한 수단, 즉 일종의 재생산을 이루거나 불멸에 이르는 통로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을 잉태에 관한 논의를 통해 설명했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묻는다. “사랑의 기능은 무엇인가?” 디오티마가 대답한다. “육체와 영혼과 관련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출산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디오티마가 다시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여, 모든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잉태하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출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여기서 디오티마가 통념상의 임신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임신을 인간뿐 아니라 사상의 재생산에 빗대어 표현할 때가 많았다. 인간의 육체가 임신하려면 함께 아이를 낳을 상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이 잉태하려면 함께 지식과 미덕을 공유할 상대가 필요하다. 디오티마는 이어서 말한다.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들의 자녀를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시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돌리는 자녀를 가지기를 어느 누가 본받지 않겠습니까?”

궁극적 형태의 불멸은 다른 사람에게 사상을 공유하고 전수할 때 이루어지므로,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가 그랬던 것처럼 지적인 자손을 만들어 내야 한다. 디오티마는 이러한 재생산이 미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메리 엘런 웨이스가 말했듯이 디오티마의 선은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와는 기능이 다르다. “디오티마에게 ‘선’은 이기적인 선이다. 누군가의 선은 ‘미’라는 관념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재생산해 불멸을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와 토론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그녀의 지혜를 배우고자 했다. 소크라테스와 토론하던 중 디오티마는 자신 있게 ‘제 말이 맞습니다!’라며 자기주장을 펼치고, 때로는 논의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소크라테스를 꾸짖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로운 디오티마여, 네가 말한 것이 정말 사실이냐?’라 물었을 때는 뛰어난 소피스트들처럼 ‘소크라테스여, 그 말을 믿으셔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위대한 여성이 철학의 탄생지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모든 여성 철학자에게 하나의 소명으로 다가온다. 디오티마가 허구의 인물이든 아니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자신감과 지성을 본받아야 한다. 심지어 철학의 아버지와 논쟁할 때도 예외는 없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 케이트 커크패트릭




서양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이 처한 상황을 감옥에 비유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체를 감옥으로 묘사했다. 육적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구원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 플라톤은 인간을 마치 동굴 속에 살면서 실재의 그림자만 보고 오해하는 존재로 보았다. 즉, 무지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루소는 사회 그 자체가 인간을 얽매고 있다고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어디서나 속박을 받는다.”

시몬 드 보부아르도 감옥의 비유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가 묘사한 대상은 ‘인간’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여성’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감옥 비유는 일종의 하렘이었다. 하렘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기 일을 하거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떠받들고 즐겁게 해 주는 복종의 공간을 가리킨다.

보부아르는 1930년대에 ‘인간’의 자유라는 개념을 내세운 20세기의 유명한 철학자 중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설적인 지성인 커플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에게 서면으로 도전했고, 계속 글을 써서 철학사에 길이 남을 베스트셀러 『제2의 성』(1949)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1980년대에 100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보부아르의 철학과 일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사르트르를 빼놓을 수 없다. 보부아르의 이름은 20세기뿐 아니라 21세기까지 사르트르가 철학자로서 누린 최고의 명성에 가려져 왔다. 심지어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철학을 이용해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다는 잘못된 사실까지 퍼졌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견해에 공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실존주의 철학을 구축했으며, 마침내 사르트르의 마음까지 바꿔 놓았다. 그렇다면 보부아르는 왜 ‘여성이 처한 상황’을 일컬어 감옥과 같다고 생각했을까?

보부아르는 학생 시절에 프랑스 국내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29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최연소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통과했다. 그 전까지 이 시험에 통과한 여성은 단 일곱 명에 불과했다. 다행히 보부아르가 학생 때 (사르트르와 만나기 전부터) 쓴 일기가 보존되어 있었고, 2008년 프랑스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보부아르는 10대에 이미 ‘실존주의’ 철학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철학책을 탐독하면서 자유의 본성에 매료되었고, 어떻게 해야 자신이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아버지와 가톨릭교도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기독교 윤리와 인본주의적 윤리에 모두 노출되었다. 두 전통 모두 ‘사랑’을 윤리적이든 낭만적이든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어렸을 때 이미 사랑에 대해 남자와 여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딸에게 ‘남자의 두뇌’를 가지고 있고 ‘남자처럼 사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성은 독창성이나 천재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보부아르는 아버지가 많은 철학자와 어울렸다고 기록했다. 쇼펜하우어는 1851년 쓴 「여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여성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제1의 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등한 제2의 성이다. 여성은 재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천재성’은 결코 가질 수 없다.”

아버지의 말이든 철학자의 글이든, 보부아르는 여성이 너무 밝게 빛나면 안 되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여자가 너무 천재적이면 남성 구혼자가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훗날 『제2의 성』에서 독창적인 철학 방법론을 적용해 실존주의 윤리학을 발전시켰다. 소설을 써서 명망 있는 문학상도 받았고, 프랑스의 법률 개혁을 요구하는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벌였다. 하지만 성공한 만큼 대가도 따랐다. 그녀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은 ‘사르트르의 노트르담’이라고 부르며 곁에 있는 남자의 천재성 덕분에 유명해진 여자라고 비꼬았다.

어떤 작품이 보부아르의 첫 번째 ‘철학적’ 작품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철학적 질문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출간한 작품은 소설 『초대받은 여자』(1943)였다. 현상학자인 모리스 메를로퐁티라면 이 작품이야말로 소설 형식으로 철학을 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며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의식이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분명한 관점과 논리적인 이론으로 구성된 ‘철학’을 원하는 철학자들은 소설 형식을 철학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보부아르가 곧바로 좀 더 전통적인 방식의 철학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44년 「피루스와 키네아스」라는 제목의 논문을 펴낸 것이다. 보부아르는 여기서 실존주의 윤리학을 발전시켰다. 이보다 1년 전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라는 제목의 두꺼운 철학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는 인간관계에 관한 절망적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인간관계의 핵심은 갈등이고 사랑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1940년대에 나온 두 편의 논문에서 보부아르는 『존재와 무』는 ‘실패작’이라 말했고 실존주의는 윤리학을 함축하지 않은 철학이라고 언급했고 자신의 철학은 실존주의에서 결핍된 윤리학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그녀의 역할은 20세기 내내 크게 간과되었다.

「피루스와 키네아스」에서 보부아르는 고대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왜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는 것일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보부아르는 인간에게는 어떤 존재가 되도록 결정된 플라톤의 본질이나 에피쿠로스의 운명 또는 신선한 소명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인간은 자신의 장래를 생각할 때 여러 가능한 자신의 모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실존주의자인 보부아르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형성하는 다양한 ‘기투(企投,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옮긴이)’를 추구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정도에 관해서는 사르트르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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