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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오세벨트 몬타스 지음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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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오세벨트 몬타스 지음

에코리브르 / 2022년 7월 / 286쪽 / 17,000원





나 자신에게 다시 관심을 돌리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1992년 1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있던 컬럼비아 학생은 나만이 아니었다. 사실 1학년 전교생이 1년짜리 서구 문학 고전 읽기 필수 과정인 교양 문학 강좌의 일환으로 같은 주에 그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속한 교양 문학 그룹의 학생 22명은 이 책을 비롯해 다른 ‘위대한 저서’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2시간씩 모이곤 했다. 우리 선생님은 내가 그의 교양 문학 수업을 신청할 무렵 이미 나이가 지긋했던 전설적인 영문학 교수 윌리스 그레이였다.

내가 그레이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된 건 수강 신청 줄을 서 있다가 내 앞의 어떤 학생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형도 컬럼비아에 다닐 때 그레이 교수의 교양 문학 강좌를 들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이 자기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하더라.” 대학 입학 책자에는 내가 동급생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게 될 거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 말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2번 연필로 ‘OMR 카드’에 적당한 동그라미들을 채웠고, 첫 수업 교재로 지정된 『일리아드(Iliad)』의 처음 여섯 권을 진득하게 읽기 시작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기고, / 숱한 영웅들의 굳센 영혼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 그들의 육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파괴를. /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이미 대여섯 번은 읽었는데도 그날 오후 위의 문장은 도통 낯설어 보였다. 여신, 하데스, 영웅, 영혼, 육신, 개, 분노를 어떻게 노래한단 말인가? 파괴는 또 어떻고? 분노에 관해, 파괴에 관해 노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걸까? 분명 그렇겠지. 시인은 “여신이여, 그러면 제가 듣겠나이다.”라는 뜻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쓰인 3,000년쯤 전의 목소리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걸 읽고 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한들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틀림없이 아주 유명하고 박식한 분일 우리 교수님은 이 이상한 시에 관해 과연 어떤 통찰을 전달하려는 걸까? 한 쪽 한 쪽 읽을 때마다 끊임없이 쏟아지던 이런저런 질문은 곧 해답을 찾든지, 아니면 적어도 내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점진적으로 자각하는 데 한 자리를 차지할 터였다.

교양 문학 강좌의 모델은 1919년 존 어스킨이 컬럼비아 칼리지에 만든 제너럴 아너스라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매주 문학ㆍ철학ㆍ역사 분야의 고전 한 권 읽기로 이뤄진 집중적 비학제 과정이 학부생들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바탕을 뒀는데, 잠시 중단되었다가 1932년 자크 바전 등에 의해 ‘중요한 저서들에 관한 콜로키움’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했다. 향후 몇 년 안에 확연해질 이 과정은 소수의 최우수 학생들에게 국한되었던 제너럴 아너스 과정보다 더 민주적이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었다.

제너럴 아너스 과정에서는 25~30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여러 그룹이 수요일 밤마다 만났고 ‘서로 반대되는 성향 때문에 선정한 강사 2명’이 각 그룹을 지도했다. 제너럴 아너스의 한 그룹을 가르친 이들은 마크 반 도런과 모티머 애들러였다. 애들러는 당시 예일 대학 법학대학원 학장 로버트 허친스에게 이 위대한 저서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허친스는 여기에 푹 빠졌고, 1929년 시카고 대학 총장이 되자마자 애들러를 데려와 학부 교과 과정에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그리고 1937년 컬럼비아는 학부 교과 과정의 정점으로서 오직 가장 진지하고 야심 찬 칼리지 학생들만 받아들였던 ‘중요한 저서들에 관한 콜로키움’을 1학년 공통 필수 과정으로 전환하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

참고로 나는 고등 교육 기회 프로그램, 즉 HEOP를 통해 컬럼비아에 입학했는데, 이는 대학들과 제휴해 재정적 도움과 학업 수준 미달이라는 혼합 기준에 부합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 도서 구입을 보조하는 현찰 지급 포함 - 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두 기준에 부합했다. 그런 학생들 중 한 명으로, 나와 내가 속한 30명가량의 HEOP 학생 집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교양 문학 강좌였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이 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컬럼비아에 왔다. 처음에는 대학원생으로, 다음에는 대학원을 갓 졸업한 계약직 교수로, 나한테는 9월엔 HEOP 학생들을 가려내는 게 보통은 쉬운 반면, 이듬해 5월이 되면 이들이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구현대문명개론의 교수로서 나는 HEOP 학생들의 발전을 면밀하게 흥미를 갖고 계속 관찰했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면, 그들은 학문적 세련미란 측면에서 나머지 학생들과 구별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졸업한 그들과 마주치면 그들이 HEOP 학생이었는지 아닌지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튼 나의 대학 생활 첫해의 1월 말에 교양 문학 강의 계획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차례에 이르렀다. 『고백록』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여정 이야기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말을 걸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여러 쪽에 걸쳐 정교하게 『성경』 인용구를 엮으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계획 - 이미 알고 계시며 그에게 표현력 자체를 내려주신 신에게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분한테 다가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겠다는 계획 - 에 대한 진심 어린 불안이 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영점(zero-point)은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얘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처럼 동어 반복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내게는 깊은 인식의 열쇠인 연약함과 진실함도 있다. “누가 주님을 제 마음속으로 오시게 하여, 제 마음을 사로잡으시는 것입니까?” “제가 주님께 어떤 존재이기에, 제게 주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노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처음 읽을 당시, 도입부를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우구스티누스가 “내가 유아기에 저지른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묘사하는 대목부터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린아이들을 관찰해 자신의 유아기 죄악을 고백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기들의 “젖 달라는 탐욕스러운 울음”과 자신이 바라는 걸 얻지 못할 때 “몹시 분노하는” 데서 다른 사람이 “내 뜻대로 하도록” 만들겠다는 욕망에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는 병적인 의지, 죄악 본성의 흔적을 본다고 했다. “제게 복종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섬기지 않는 자유인들에게 분노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큰 소리로 시끄럽게 우는 것으로 그들에게 복수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분명 기본적인 실수를 하는 것 같았다. 예컨대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것처럼 상징을 매개로 아기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일 가능성이 절대 없는 것을 언어 습득 이전 유아들의 인지 과정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기는 추론하지 않는다. 선견지명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 전자를 성취하기 위해 후자를 하지 않는다. 그냥 본능에 따라 자기 보호 프로그램을 실행할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개연성 없는 말을 왜 힘들어하는 것일까? 하지만 유아기의 죄악에 관한 이 당황스러운 도입부의 반복적인 문구에도 불구하고, 『고백록』은 내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몇 주 동안은 삶의 한 가지 가능한 방식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내 의식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내 경험이 메아리치는 것을 여러 차례 발견했다. 그가 오랫동안 거부하고 조롱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몇 년 전에 한 나의 개종을 상기시켰다.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그의 관계는 나의 목회자가 된 에르네스토 세르반테스와 나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젊은 시절 무시했던 기독교가 유일하게 가능한 버전은 아니라는 그의 발견, 부인하고 회의에 빠졌다가 개종한 그의 점진적 변화, 그의 절실한 필요성,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지성, 채워지지 않는 그의 호기심…… 이 모든 것이 내게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아우구스티누스한테서 나와 아주 가까운 친족 같은 존재, 내면생활의 종잡을 수 없는 뭔가를 이해하는 듯한, 그리고 그 진솔함과 열정으로 나를 무장 해제시키는 그런 작가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대학 신입생인 나는 낯선 내 삶을 파악하고 내가 처한 종잡을 수 없는 세상에서 발 디딜 곳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내가 복음주의 기독교로 이끌렸던 경위를 알아내려 애쓰는 한편, 그것이 제공하는 확실성과 정서적 원인을 힘겹게 내던지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알고 싶었다. 아무튼 『고백록』은 대단히 개인적인 책이며, 언제나 은밀하게 속삭이는 대화 속으로 막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은 당신을 초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하느님 사이의 마음 툭 터놓는 질문과 절박한 대화를 들여다보게 한다. 주체는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되는 여정. 관심의 대상은 자기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자기 분석이다.

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세상에 관해 알았다. 나는 나 자신에 관해,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종류의 삶에 관해 알았다. 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어쩌면 내가 미국에 올 때 가졌던 것과는 다른 무신론, 아니 어쩌면 더 높은 부류의 신앙, 진리에 온전히 충실한 마음의 토양에서 자라난 신앙을 위해 복음주의 신앙과 교회를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어디로 갈지는 몰랐지만 나는 방향을 재설정했고, 왠지 명확해졌고, 그런대로 내 인생을 진짜처럼 여길 만한 조건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삶의 수수께끼들을 진솔하게 붙들고 씨름하는, 진리에 충실한 삶의 가능성을 봤다.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나는 진리를 향한 나의 가장 깊은 갈망과 그 진리가 지닌 집요한 모호성에 관해 확대되는 인식의 화해 가능성을 봤다.

독자로서, 선생으로서 내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살아온 지도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처음 젖 달라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대한 그의 독단적인 판단이라 생각했던 부분도 지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컬럼비아 코어 커리큘럼에서 내가 읽고 있던 다른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따금 거슬리기도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찰은 내가 처음 의심했던 것보다는 이치에 더 맞는다는 게 드러날 것이다. 영혼이 철학적 사고를 향하도록 되돌린다는 생각은 우리의 동시대 교육 관행과 여전히 관련이 있는가? 이런 생각은 청년을 직업적 진로와는 상관없는 탐구와 성찰의 삶을 걷도록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그것을 길들일 방안을 찾을 수 있는가? 학생의 영혼을 인간 미덕에 대한 탐구로 되돌리는 것이 고등 교육의 목표여야 할까? 이는 우리가 오늘날 대학에서 교양 교육의 위치를 논할 때 공방을 벌이는 문제들이다.

칼리지의 교과 과정, 특히 모든 학생의 필수 교과 과정 부분을 설계할 때, 우리는 인간 본성에 관한 관점과 그런 본성에 가장 적합한 교육에 집중한다. 만일 교육을 협의의 도구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 바꿔 말해, 그것을 훈련과 혼동한다면 - 우리는 근본적으로 오류를 범하게 된다. 교육이란 말 그대로 학생으로부터 이미 거기 있는 것을 끌어낸다는 뜻이며, 그것의 성공적 함양은 인간의 최고선(最高善) 성취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은 생계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교양 교육이다.

현재 교양 교육의 지배적 관행은 고전적인 학습 전통이 제시하는 인생 변화 프로그램의 희미한 그림자다. 교양 교육 전문 실무자들 - 교수와 대학 행정가 - 은 교육의 근본 목적을 자신이 속한 기관과 직업적 야망 안에서만 유의미할 뿐인 전문화한 학문적 추구보다 부수적으로 취급함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변질시켜왔다. 그러나 참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언제나 교양 학습의 핵심은 비물질적 재화(goods), 즉 인간의 덕이라는 최상의 개념을 구성하는 재화를 향해 감성과 지성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원대한 개념을 염두에 두는 것,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것이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가 교양 교육의 생존 방식이다.



성찰하는 삶 -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약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거인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플라톤의 대화편은 즐겨 읽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학 1학년 때까지 접한 적이 없었다. 첫 만남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플라톤의 글이 지닌 매력과 아름다움이 내가 철학에서 기대하는 기준치가 되어버렸다는 게 한편으론 문제였다. 그 차이가 얼마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지 떠올리며, 나는 현대 문명 수강생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접할 차례가 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을 때 골판지를 씹는 기분이 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리스토텔레스한테 마법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한편 새내기 때 읽은 텍스트는 『시학』이었는데, 그것 역시 문제였다. 수업은 1학년 코어 커리큘럼 필수 강좌인 교양 문학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끝나면 몇 달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읽어야 했는데, 강좌의 공식 독서 목록에 있지는 않았으나 윌리스 그레이 교수가 고대 그리스 희곡들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와중에 우리한테 『시학』을 불쑥 던진 것이다.

『시학』이 완결된 작품이라기보다는 강의 모음집이라는 사실을 감안했다면,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학적이고 무미건조한 문체쯤은 아마 지나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문체를 떠나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어처구니없게 만든 한 가지 특이한 주장이 기억난다. 그는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의 문제”라고 했다. 그 상스러움이 난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단지 찬성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 발상이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구성 요소의 공식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내게 그것은 생명이란 순환과 호흡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보였다. 나는 아름다움은 반드시 분석을 초월하며 양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경우,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드라마와 낭만과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우리가 지니아 스트리트의 아파트로 막 이사한 참이었는데, 우리 옆집에는 에스파냐어를 못하고, 따라서 우리와는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친절한 노부부가 살았다. 그해 겨울 어느 날 저녁, 그 다정한 미국인들이 쓰레기 수거일에 맞춰 한 무더기의 책을 버렸다. 그것들을 몽땅 가져가고 싶었으나 너무 많은 데다 우리 집에는 책장이 없었다. 게다가 내 영어 실력은 어른들 책을 큰 어려움 없이 술술 넘길 만큼 좋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양장본 두 권만 집었다. 내가 습득해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두 권은 하버드 클래식 전집의 제2권과 제46권, 즉 『플라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엘리자베스 시대 희곡 1』이었다.

고2 때 어느 날 나는 플라톤 책을 들고 ‘연구’ 생물학 수업 때문에 학교에 일찍 등교한 터였다. 복도에 앉아 읽다 만 플라톤 책을 보고 있는데, 마침 필리피디스 선생님이 지나갔다. 책의 반짝이는 종이가 눈길을 잡아끈 듯 그가 내게 다가와 뭘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고, 그는 기뻐했다. 부리부리한 그의 눈에서 가르침의 열의가 불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 대해 많이 아는 듯했고, 그것에 관해 나한테 얘기해주고 싶어 죽겠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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