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굿모닝 인문학

공형조 지음 | 레몬북스


굿모닝 인문학


공형조 지음

레몬북스 / 2021년 1월 / 320쪽 / 16,000원



PART 1 겨울



고독이란?


고독과 외로움! 언젠가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고독은 나 스스로 타인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이고, 외로움은 타인에 의해 배제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었습니다. 마치 고독을 아는 듯 우쭐댔습니다. 고독하다고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이잖아요. 하지만 아직 고독과 친하지 못합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올라와 고독으로 가는 여정을 방해합니다. 아직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참 제목이 멋집니다. 김규항의 책을 다시 읽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전율과 감동이 살아납니다. 김규항은 말을 길게 하지 않습니다. 짧고 간결하게, 그렇지만 명확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고독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용맹하고 고독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이 보는 나는 어떠한가’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외적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행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내면을 돌아보기보다는 멋진 풍경과 맛집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며 남들이 누르는 ‘좋아요’ 숫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일상을 보내는 일도 외적 음성의 풍성함을 위해 포장하고 색칠합니다. SNS에 비춰지는 우리의 일상은 모두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외롭습니다. 외적 음성을 듣기에 급급해 내적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찰리 채플린은 말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향해야겠습니다. 나와의 대화도 충분히 나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과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더 고독해져야겠습니다. 내적 음성과의 대화에 더 치중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넌 어떻게 살고 있니? 너는 누구니? 지금 이렇게 살아도 부끄럽지 않니?’ 오늘 고독할 준비 되셨나요?

당장 내일 죽는다면


만약 당장 내일 죽는다면 오늘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 첫 시에서 시인 ‘드니스 레버토프’는 불완전한 것조차 감출 필요가 없는 완전함을 꿈꾸고 있습니다. 꽃을 피워 완전함을 이루고 싶은 것이지요.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경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 물질적인 완전함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영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완전함이란 무엇일까요? 문득 완전함은 놓아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을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완전하게 보이려는 집착을 버리고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겁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은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만듭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갑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두렵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거지요. 삶과 죽음은 대척점에 있지 않고 공존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습니다. 죽음을 인정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을 더 충실하게 살 원동력이 됩니다.

한때 ‘독서는 동사다’라는 문구를 지속적으로 노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기 때문입니다. 독서도 ‘동사’로 작동할 때 창의력과 창조의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되 삶 자체는 동사이어야 합니다. 멈춰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 오늘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이 동사가 될 때 삶은 창조적으로 변합니다.

내가 맞이한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라고 합니다. 기적 같은 오늘을 선물 받은 당신이 오늘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니가 너냐?


이 질문은 저의 질문이 아닙니다. 최진석 교수의 강의 내용 중 질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동안 저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 하나가 저의 모든 질문을 덮습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나인지 알아야 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입을 다뭅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입을 놀릴 수 있을까요? 그저 들을 수밖에요.

‘니가 너냐? 너는 누구냐?’는 질문은 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살아온 평생 들었던 질문인데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나를 모르고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서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고작 몇 년의 독서로 나를 완전히 찾기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오만한 생각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그냥 이 질문 하나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 하나로도 버겁습니다.

PART 2 봄



행복이란?


‘해적이 사랑한 인문학’에서 읽고 있는 『거절당하기 연습』에는 ‘워싱턴 D.C를 웃게 하라’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아디푸르라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높은 연봉을 받는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매주 월요일 아침 번잡한 워싱턴 D.C의 거리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쓴 커다란 팻말을 들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 팻말에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경적을 울리세요”, “오늘 멋진 하루 되세요”, “자신에게 모질게 굴지 말아요” 등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면서, 거절당하면 끔찍한 기분이 들지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다 보면 자신도 행복해진다며 거리에서 팻말 흔드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의미는 다 다르겠지요. 위에서 언급한 젊은이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은 듯합니다. ‘행복’은 사전적으로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규정된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언어적으로 정의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각자가 갖는 행복의 정의는 다 달라서일까요? 아니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일까요?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멤버들에게 가끔 질문해 봅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답들이 나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잘되었을 때, 목표를 성취했을 때, 가족들의 사랑을 느꼈을 때, 남에게 베풀었을 때, 타인을 배려했을 때, 마음을 비우고 잡념이 사라졌을 때, 아침에 일어날 때 등등. 이처럼 행복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내 만족’입니다. 어쩌면 행복은 자기만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공, 소확행, 화목함, 사랑, 배려 등등 다양하게 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공통된 모습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사람도 거기에서 자기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너무 이기적인가요?

건강한 생활을 위해?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매사에 주도적인 사람은 이미 일상에서 다양한 성취감을 맛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뛸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취감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운동할 확률도 높다고 하네요.

건강한 생활이라고 하면 보통은 운동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운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명상, 잠시 생각을 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등 다양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저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 많은 것을 했습니다. 명상과 식이요법을 했습니다. 과일 중심 식단, 1일 1식, 절제된 식사 등 많은 방법을 시도했었죠. ‘죄수운동법’이라는 운동도 잠시 했었어요.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맨몸으로 하는 운동법입니다. 죄수들이 좁은 감방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운동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실천했던 방법들이 전부 책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책을 보다가 호기심이 발동하면 바로 실행하고 또 다른 책에서 방법을 발견하면 그 방법을 따라 하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문제인지, 지속력의 부족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명상만 하고 있습니다. 뭐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요즘 부쩍 늘어난 뱃살을 줄이기 위해 식이요법과 죄수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건강한 생활을 위해 여러분은 오늘부터 무엇을 시작하실 건가요?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4시간』에서 팀 페리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구체성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질문에 의미 있고 실행력 있는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자가 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행복을 원하지만 어떤 모습의 행복인지 모호합니다. 그저 막연히 뭔가를 원한다고 이야기할 뿐이죠. 막상 부자가 되고, 행복이 와도 그것이 내가 원하던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게 됩니다. 정확한 모습을 그려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자도 그래서 ‘구체성의 문제’라고 언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려봐야 합니다. 구체적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연습 말이죠. 별생각 없이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하루가 훨씬 의미 있게 다가올 겁니다. 그런 하루가 쌓이면 막연하게 느껴지는 삶이 좀 더 확실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PART 3 여름



자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앞으로는 퍼스널 브랜드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미 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차 산업의 시대,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규정을 해야 하는가? 여러 문장으로 복잡하게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아! 그러면 남들이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져서 안 되는 건가요?

그러면서도 나를 정의하는 문장을 찾고 있네요.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다면 그만큼 나를 어필하기가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계속 해오는 고민이긴 하지만 다시 한 문장으로 정의하려니 어렵습니다.

책을 한 권 썼으니 ‘작가?’ 책 한 권으로 이런 호칭을 붙이기가 쑥스럽습니다. 그럼 ‘책을 쓴 사람?’ 이건 뭔가 유치하고요. 예전 독서 컨설팅을 할 때는 ‘책 읽기로 감동을 선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본 적도 있습니다. 책 읽기와 토론을 통해 컨설팅을 받으시는 분과 제가 같이 감동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해 본 문장이었어요. 앞으로도 이 문장이 저를 대표하는 퍼스널 브랜드로 자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확신은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저에게 ‘매일 진화하는 사람’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변하고 발전한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에요. 닉네임 치고는 좀 길지만 저는 이 닉네임이 좋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정의해 준다는 것은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연 스스로 그런지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문장이 나를 대변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뭐 연륜과 경험이 더 쌓이면 제가 정의하지 않더라도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 의해 정의될 수도 있겠지요. 꼭 한 문장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신가요?

술 취한 코끼리?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이 너무 좋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제 책에 인용한 부분 외에도 주옥같은 글이 많습니다. 삶의 문제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은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속 코끼리라며, 그 코기리를 정복하지 않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이 마음속 코끼리는 삶이 힘들 때 더 날뜁니다. 이 코끼리가 술 취해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힘듭니다. 이 책의 저자 아잔 브라흐마는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진정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는 전제를 놓고 보면 어불성설입니다.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라니요.

제가 생각하기에 행복은 술 취한 코끼리가 아닙니다. 행복을 원하는 마음이 술 취한 코끼리입니다. 행복을 원하는 마음 즉 욕망이 강해지면 행복이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죠?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 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진정 행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행복을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행복해진다’ 참 어렵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깨어 있는 삶을 살 때 진정 행복을 느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은 무엇을 내려놓을까요?

자유를 누리기 위한 조건?


독서모임의 필독서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는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라고 합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한 대가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 주제를 인용했습니다.

사람은 자유를 꿈꾸지만 자유를 누리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독과 책임은 싫어합니다.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합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주어진 의무가 무거운 거죠. 그래서 다시 자유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권위에 복종하고 약한 자를 지배하며 안정감을 느낍니다.

퇴직 이후 진정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불안합니다.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닫습니다. 그동안 고독과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온전히 혼자 일어설 수 있어야 진정 자유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과 책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걸 외면하고 자유만 찾았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라고 합니다.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죠. 나를 내가 인정할 때 자유 뒤에 따르는 고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그대로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뜻대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독불장군이라고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외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좀 어떤가요? 이때의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닙니다. 고독입니다. 외로움은 타인에 의한 것이고 고독은 자신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이겨낼 때 자유가 찾아옵니다. 저도 자유를 위해 내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독을 즐겨야겠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