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음 | 부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음
부키 / 2021년 9월 / 308쪽 / 16,800원
세종의 허리: 조선 최고의 리더가 운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세종에게 찾아온 낯선 통증세종(1387~1450)에게는 낯선 통증이 있다. 그의 허리는 유리잔처럼 깨어지기 쉽고 대나무처럼 뻣뻣했다. 눈도 아팠다. 종종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까끌거렸고, 때로는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치료를 위해 용하다는 온천을 찾아 전국을 다녔지만 마음만 답답할 뿐 통증은 여전했다.
통증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통증은 엄격한 보호자다. 가끔 봐줄 법도 하건만 통증은 살짝 베인 손끝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불쾌한 신호를 쏟아 놓는다. 이런 방식의 경고는 유용하다. 덕분에 우리는 칼을 다룰 때마다 매번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통증은 친절하지 못하다. 통증은 “당신의 맹장에 균이 가득 차 터지기 직전이니 빨리 해결하라고 불쾌한 자극을 주는 중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배가 몹시 아프고 식욕이 떨어질 뿐이다.
적절한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점만 다를 뿐 옛사람들도 통증이라는 불쾌하고 원초적인 감각을 느꼈다. 세종도 마찬가지다. 피를 흘리고 고통을 감각했다. 세종의 통증에 대한 몇몇 연구가 있다. 어떤 연구는 세종이 피부병이나 임질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다른 연구는 세종이 당뇨에 걸렸고 후추를 뿌린 듯 따끔거리는 눈 통증이 당뇨 합병증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종의 병명은 과연 무엇일까? 세종에게는 독특한 질병이 숨어 있었다. 그 질병은 오래된 벽지에 스며든 곰팡이처럼 몸 구석구석에 침투해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그의 삶도 바꿔 놓았다. 과연 세종에게 병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병인지 진단해 내려면 세종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주홍 글씨가 새겨지다세종은 유독 운동을 싫어했고 말타기를 기피했다. 오죽했으면 아버지 이방원은 이렇게 말하며 함께 사냥을 가자고 졸랐다.
“주상(세종)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산책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문과 무, 어느 하나만 집중하면 안 됩니다. 오늘 이 아버지가 운동을 한 수 가르쳐 드릴까 합니다.”세종의 운동 기피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도 있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세종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한글 창작부터 그렇다. 인간은 6000년 전부터 문자를 썼고 오랜 시간을 거쳐 변화해 왔다. 몇몇 문자는 수메르 점토판 기호처럼 잊혔고 어떤 문자는 라틴 알파벳처럼 긴 세대를 지나왔다. 그런데 한글은 600년이란 짧은 시간을 거쳐 왔다. 한 인물이 모방 없이 창작한 문자가 널리 쓰이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한글이 유일하다. 이뿐만 아니다. 세종은 정치, 법령, 규정, 예법, 음악, 농학, 점술 등 여러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세종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운동을 꺼렸다는 점, 운동을 게을리한 왕이라는 꼬리표가 주홍 글씨처럼 평생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세종을 ‘고기를 좋아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결국 비만한 몸을 갖게 된 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세종은 완벽주의자다.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런 세종이 단순히 ‘하기 싫어서’ 운동을 피했을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뒤부터 운동을 피했다면 바쁜 업무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종은 왕자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은 ‘무’보다 ‘문’을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세종이 무예를 멀리했을까? 결코 그렇지도 않다. 세종은 오히려 강무를 중요시했다. 강무는 바쁜 농번기를 피해 봄과 늦가을에 열리는 대규모 군사 훈련이다. 세종은 자주 강무에 참여했다. 친히 전국을 돌며 군사를 격려하고 국방력을 점검했다.
세종이 운동을 꺼린 이유는 바쁘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씨 왕조는 말타기를 즐겼다. 세종의 할아버지인 이성계는 8필의 명마를 갖고 있었고 사냥이 취미였다. 세종의 아버지 이방원(태종)과 세종의 삼촌 이방과(정종)도 사냥을 즐겼다. 세종의 큰형 양녕대군은 빡빡한 세자 수업을 받으면서도 승마를 빼놓지 않았다. 세종의 아들인 문종과 세조는 격구를 사랑했다. 가족 모두가 즐기는 사냥을 혼자 싫어할 이유가 없고, 굳이 운동을 피해 아버지께 밉보일 이유도 없다. 세종도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승마 솜씨를 뽐내고, 자식들과 함께 격구를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왜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의 병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이해할 수 없는 행동 배경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혹시 세종은 심한 병을 앓지 않았을까? 세종에게는 고질적인 병이 있었고 병 때문에 통증이 심해서 운동을 할 수 없었다면 그가 운동을 기피한 이유가 납득된다. 과연 세종은 어떤 병을 앓았던 것일까? 궁금하다. 자 이제 위대한 왕을 괴롭힌 질병을 색출해 보자. 대왕께서 돌아가신 지 이미 600년이 지났다. 세종을 괴롭힌 질병에 대해서는 기록된 자료만이 유일한 목격자다. 따라서 섬세한 증거 수집이 필요하다.
질병은 때때로 환자의 외모를 바꿔 놓는다. 척추 후만증 환자의 허리는 낙타 혹처럼 둥글게 되고, 갑상샘 항진증은 눈을 돌출시키기도 한다. 세종은 오랜 시간 질병을 앓았다. 세종을 괴롭힌 질병도 그의 외모를 바꿔 놓았을지 모른다. 세종의 의복과 초상화 기록을 찾아보자.
《상방정례》는 조선 상의원에서 궁중 의복 차림과 쓰임에 대해 기록한 도서로, 왕실 옷가지와 물품이 정갈히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어느 왕이 옷을 꼭 맞게 입고 누구는 크게 입었는지, 머리가 작고 다리가 길어 모델로 적합했던 왕은 누구인지, 허리에 찬 옥대의 평균 둘레는 얼마인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 때부터 기록되어 있어, 세종의 자료는 없다. 왕의 체형을 알 수 있는 다른 도구로 왕의 전신 초상화, 어진이 있다. 세종도 어진을 남겼다는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폐에 등장하는 세종대왕 초상화는 김기창 화백이 1973년에 상상으로 그린 작품이라 질병을 유추할 자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조선 시대 비서실인 승정원에서는 왕의 명령과 각종 행정 업무를 기록했는데 이를 《승정원일기》라고 한다. 여기에는 왕의 중요한 명령뿐 아니라 소소한 대화까지 적혀 있다. 왕의 건강이나 통증에 대한 언급도 있어 세종의 질병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세종이 집권하던 조선 전기 기록은 역시 임진왜란을 겪으며 소실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행적과 사건을 사관이 매일매일 기록한 문서로, 왕의 이야기라면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다행히도 안전하게 남아 있다. 드디어 목격자를 찾았다.
《조선왕조실록》은 객관적이다. 왕과 그 후손들은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왕가의 입맛에 맞게 기록이 바뀔까 염려되어 세운 규칙이다. 이를 어긴 왕은 연산군뿐이다. 기록의 정확도도 높다. 실록에 기록된 태풍이나 별의 움직임은 논문 자료로 쓰일 정도다. 우리에게는 왜곡되지 않은 증언과 세밀한 기록이 필요한데 실록은 이를 갖추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세종이 앓은 질병이 무엇인지 추적해 보자. 실록 곳곳에 흩어진 단서 조각을 모을 차례다.
실록을 채운 49,646,667개의 글자세종을 낯설게 만나야 한다. 익숙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종종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세종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세종에 대한 잘못된 설도 많다. 꾸며 낸 물증은 수사를 망친다. 이제 우리는 ‘전해 들었던 세종’이 아닌 ‘기록으로의 세종’만 분석해야 한다.
주의 사항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훌륭하지만 세종 시대의 의료 환경은 지금과 차이가 있다. 어떤 질병은 과거와 현대에 이르는 이름이 같지만 실체는 다르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임질과 현대 의학의 임질은 이름만 같지 다른 병이다. 조선 시대에는 소변을 볼 때 찌릿한 느낌, 소변이 남아 있는 느낌, 아랫배가 불편한 증상 등을 통칭해서 임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임질을 ‘임균이라는 세균에 의해 생기는 병’이라고 정의한다. 임균은 대부분 성관계를 통해 전파된다.
조선 시대에 임질이라 불렸던 질병은 현대 의학의 방광염에 가깝다. 방광염은 주로 대장균에 의해 발생한다. 방광염은 저절로 좋아졌다가 무리하면 재발하기도 한다. 세종의 증상은 가마 대신 말을 탄 날, 대규모 군사 훈련에 참여한 날 악화됐다. 이는 현대 의학의 방광염 경과와 일치한다. 조선 시대 진단에 초점을 맞추면 ‘세종은 성병에 걸린 왕’이 되지만, 증상에 집중하면 ‘세종은 대장균 때문에 고생한 왕’이 된다.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진단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통증은 같다. 우리는 당시의 진단을 버리고 세종이 호소한 증상에 집중해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방대한 양으로 472년에 걸쳐 총 49,646,667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뒤져서 세종의 통증을 분석하면 된다. 이 작업은 필자가 해 두었다.
평생을 안고 갈 독특한 질병세종의 통증은 50회가량 언급된다. 가장 많이 언급된 증상은 눈병으로 12번, 그리고 허리 통증 6번, 방광염 증상 5번, 무릎 통증 3번, 목마른 증상 2번, 살 빠지는 증상 1번 언급된다.
우리는 ‘세종이 통증으로 인해 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분석 결과는 석연치 않다. 세종이 눈이 아프다며 운동을 게을리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발 나아가 세종이 겪은 증상을 나이에 따라 정리해 보았다. 무릎과 허리 통증은 20대 초반에 발생했다. 허리 통증은 30대에 심해졌다. 눈 통증은 40대부터 악화됐다. 패턴이 보인다.
세종은 “기해년(1419년, 세종 1년)에 우측 무릎이 아팠다”고 했다. 증상이 발생한 정확한 연도를 언급한 경우는 이때가 유일하다. 당시 세종은 22세였다. 곧이어 허리 통증도 발생한다. 통증이 어찌나 심했는지 마음대로 돌아누울 수도, 묵묵히 참을 수도 없었다. 당시 세종은 30대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허리 통증은 내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숙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증상은 심해졌다. 조금만 몸이 고달파도 쉬이 발작했다. 통증은 세종 17년 4월 1일 기록에 자세히 적혀 있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에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예는 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이쯤 되면 그동안 세종을 ‘운동을 게을리한 왕’이라고 오해했다는 사실이 창피해진다. 세종은 사신에게 예를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세종은 통증마저 비범해서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보통의 젊은 환자와는 다른 증상이다. 30대 남성의 허리 통증은 대개 인대가 늘어나거나 근육을 다쳐서 발생한다. 환자들은 ‘자고 일어날 때 허리가 아프다’거나 ‘운동을 하다가 삐끗한 다음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또는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아프고 다리가 저린다’고 호소한다. 모두 세종의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세종에게는 거짓말할 이유도 없다. 근육이나 디스크에 손상이 왔다면 세종은 평범한 증상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특한 질병이 그의 허리에 숨어 있는 것이다.
세종을 괴롭힌 건 당뇨가 아니다이번에는 눈을 살펴보자. 눈은 허리와 다른 모양새로 세종을 괴롭혔다. 세종의 허리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잔처럼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까탈스럽게 튀어나와 세종을 괴롭혔다. 좋은 날 없이 나빠지기만 했다. 하지만 눈은 다르다. 세종의 눈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나빴다가도, 어느 날에는 말끔히 좋아졌다. 악화와 호전을 반복했다.
세종은 안구 질환(안질)으로 고통받았다. 증상은 오른쪽, 왼쪽 눈에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때로는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심해지고, 때로는 언제 아팠냐는 듯 깨끗하게 낫기도 했다. 몇몇 연구는 세종의 안질이 당뇨병 악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종의 안질은 과연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세종이 겪은 눈 증상은 당뇨 합병증에 의한 당뇨병성 망막병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통증이 없다. 아프지 않다가 갑자기 실명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당뇨 환자들에게 주기적으로 눈 검사를 받으라고 강조한다. 세종은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프다”고 했다. 통증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뇨병성 망막병증 증상이 아니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지속적으로 나빠지기만 하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세종의 눈 증상은 심해졌다가 저절로 좋아졌다. 이 역시 당뇨병성 망막병증 증상과는 다르다. 심지어 세종이 당뇨에 걸렸다는 진단조차 확실하지 않다. 물론 당뇨가 있든 없든 세종의 안구 질환은 당뇨 합병증이 아니다. 더불어 세종이 당뇨병 때문에 운동을 못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유리로 만든 대나무처럼 뻣뻣한 허리세종은 20대에는 무릎, 30대부터는 허리가 아팠다. 눈 증상은 40대부터 심해졌다. 허리는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대나무처럼 뻣뻣했다. 눈 통증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했다. 이 모든 증상을 발생시키는 단 하나의 질병이 있다. 바로 강직성 척추염이다. 병명을 풀이하면 ‘척추에 염증이 생겨 허리뼈가 대나무처럼 뻣뻣이 굳는 병’이란 뜻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허리가 아픈 병이지만 다른 관절과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 증상의 시작은 23세 전후의 팔다리 통증인 경우가 많다. 세종도 22세에 무릎 통증이 생겼다. 그리고 무릎 통증은 강직성 척추염이 발생했다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세종의 허리는 굳어 갔다. 세종은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는 독특한 증상을 보였다. 이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들이 호소하는 특징적인 징후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허리는 4센티미터도 늘어나지 않는다. 22세에 우측 무릎 통증과 허리 통증이 발생했고, 허리가 뻣뻣해서 구부리고 펴기가 힘들다는 세종의 증언은 강직성 척추염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결정적인 추가 단서가 더해진다. 40대부터 심해진 눈 증상이다. 세종의 눈은 시리도록 아프고 까끌거리다가 돌연 씻은 듯 나았다. 뿌옇게 흐리기도 하고 붉게 충혈되기도 했다. 증상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급성 포도막염이다. 눈에는 3개의 막이 있다. 포도막은 중간에 위치한다. 포도 껍질 모양이어서 포도막이라고 불리며 홍채, 모양체, 맥락막으로 이뤄졌다. 이 막에 염증이 생기면 포도막염이라 한다. 강직성 척추염의 가장 흔한 합병증은 포도막염이다. 척추염 환자의 50퍼센트 이상이 포도막염을 앓는다. 포도막염은 통증을 유발한다. 어느 날은 눈 뜨기 힘들 만큼 아프다가 씻은 듯이 좋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세종의 눈 증상과 꼭 맞다. 물론 강직성 척추염을 확진하려면 정확한 문진과 신체 검진, 영상 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세종이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여러 단서가 가리키는 방향은 강직성 척추염, 한 곳이다.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아팠을 뿐세종은 유독 눈 통증을 자주 언급했다. 눈이 가장 불편해서일 수도 있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세종을 괴롭힌 강직성 척추염은 여러 합병증을 발생시킨다. 대장에 궤양이 생기는 염증성 장병증이나 치료가 힘든 피부병이 생기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발목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세종도 이런 통증을 겪었을지 모른다. 이 통증들은 세종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눈 통증은 다르다. 눈이 아프면 일하기 힘들고 그렇게 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