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이학근 지음 | 호밀밭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이학근 지음
호밀밭 / 2022년 1월 / 244쪽 / 18,000원
그리스 편
아테네와 그 주변
신성한 땅 델피(델포이) - 세상의 중심 델포이아테네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성한 땅으로 여기는 델피(델포이)를 다녀왔다.
어느 날, 제우스는 독수리 (혹은 비둘기) 두 마리를 날려 세상의 중심을 찾았다. 서로 반대편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가 만나는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정하고 그곳에 원추형 돌(옴파로스)을 땅속에 묻었는데 그곳이 바로 델포이로 현재는 델피로 불린다. 그리스 중부 지방의 고대 도시인 델피는 파르나소스 남쪽 산허리, 파이드리아데스 암벽을 배경으로 멀리 코린토스만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에 있는 아폴론의 성지로 옛날에는 여신 가이아(대지)를 모셨으며, 지금도 그 성스러운 사적이 남아 있다.
B.C. 6세기 무렵 아폴론의 신탁을 들을 수 있는 델피 신전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그 주변 국가들에게도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졌던 곳이다. 그들은 신탁을 얻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하였고 제물을 바치기 위해 그들의 보물 창고를 이곳에 건립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이름하여 ‘세상의 배꼽(navel of the world)’이라 부르고 아폴론 신전 가운데 옴팔로스라는 돌을 묻었다.
아테네에서 하루에 다녀오기는 좀 먼 거리라 일찍 서둘러 호텔을 나왔다. 델피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기가 좀 어려워 택시를 타려니 아들 녀석이 우버 택시를 타자고 한다. 자기가 유럽에서 많이 이용하여 안다고 해서 우버 택시를 호출하여 이용하니 참 편리하다. 요금도 인터넷으로 결제되어 바가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리오시온 버스 터미널에서 델피행 버스를 타고 약 3시간 정도를 가니 버스 터미널도 없이 길가에 간이 정류소만 있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내려 준다.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하늘과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온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던 신성한 장소이다. 우선 가볍게 아침을 먹으려고 카페에 들어갔는데 카페에서 보는 경치가 두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협곡 위에 카페가 줄지어 서 있는데 어느 곳을 들어가도 깊은 계곡과 저 멀리에는 코린토스만의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었다. 과연 신탁을 받을 만한 장소라고 느꼈다.
버스 정류소에서 가까운 유적지는 델피 성역(아폴론 신전 지구)이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테네 프로나이아 성역에서 거슬러 올라오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미세 먼지에 찌든 한국의 하늘을 보다가 만난 먼지 하나 없이 파랗게 보이는 맑은 12월의 그리스 하늘을 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리스 여행에서 여러 유적지나 박물관과 함께 우리가 즐긴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기온이 제법 높아서 조금 걸으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햇살이 따가웠다. 한적한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아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면서 걸어갔다.
한 20분을 걸어가니 아테네 사람들이 세운 아테네 여신의 신전과 성역인 ‘아테네프로나이아 성역’이 나타난다. ‘프로나이아’란 신전 앞이라는 의미로 아폴론 신전에 가기 전에 아테네 신전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도 버스로 아테네에서 3시간여가 걸리는 거리인데 고대에 이곳에 아테네의 주신인 아테네 신전이 있다는 것은, 도시 국가 아테네가 아주 강력했음을 나타내는 징표로 여겨진다.
이 신전 앞의 톨로스는 너무나 유명해 관광 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원형 건물이다.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남아 있는 세 개의 기둥만으로도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와 아마조네스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메토프는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톨로스가 너무 유명하고 신전은 폐허가 되어 돌무더기만 남아 있어 사람들은 이 톨로스를 신전인양 착각하기도 한다.
톨로스 왼쪽 위에 있는 유적은 보물 창고로 고대 도시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신에게 봉헌했던 보물들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두 개 중 서쪽의 것은 지금의 프랑스 마르세유의 교역항으로 번창했던 도시 국가였던 ‘마실리아의 보물 창고’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델피가 얼마나 신탁으로 유명한 고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심지어 이집트까지 신탁의 유명함이 널리 퍼져 신탁을 받기 위해 델피에 머무르는 기간이 심지어 1년을 넘기도 했다고 한다.
아테네프로나이아 성역을 구경하고 다시 델피 마을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젊은이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한 장소로 대부분의 도시 국가에 있었던 김나지움 유적지가 나온다. 특히 델피의 김나지움은 4년마다 열렸던 피티아 제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경연을 준비하는 곳으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간 때에는 김나지움에 직접 내려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멀리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김나지움 규모를 짐작하면 지금의 올림픽 경기장보다 더 크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육상을 하던 직선 주로는 100m도 훨씬 넘어 그 크기가 우리를 압도한다.
이어서 델피 신전 쪽으로 가니 ‘카스탈리아의 샘’이 나온다. 카스탈리아의 샘은 신성하게 여겨지는 샘으로, 피티아 여사제가 신탁을 전하거나 아폴론 신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리고 운동선수나 사제와 순례자들 역시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샘에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했다. 수조 위의 바위에 있는 움푹하게 파여 있는 곳은 샘물의 요정 카스탈리아에게 바치는 봉헌 예물을 담아 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계곡에는 월계수가 많이 자라는데 델피의 피티아 제전 경기의 승자에게 월계수로 만든 관을 씌워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붕괴의 위험이 있다 하여 출입을 금지해 놓았다. 카스탈리아의 샘을 지나 이제 델피의 신탁과 전설이 서려 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 델피 성역으로 올라간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는 신탁을 받기 위해 그 당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 신탁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테오도시우스 1세가 델피를 폐쇄할 때까지 성행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탁을 우상 숭배라 하여 델피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신탁에서 얻은 예언은 무수히 많았겠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예언이 하나 있다. 바로 유명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다.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델피 신탁에서 ‘아들에게 살해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라이오스는 예언을 두려워하여 갓난아이였던 자신의 아들 오이디푸스를 산속에 버린다. 하지만 목동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은 아이는 이웃 나라의 왕자로 성장하여,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테베의 왕이 된다. 예언을 미리 들어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니 우리 인생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다.
성역 입구에서 아폴론 신전을 올라가는 길은 ‘신성한 길’이라 부르는 구불구불한 길이다. 신탁을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은 이 길을 온 정신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걸었을 것이다. 이 길의 주위를 보면 고대 국가들이 신탁을 받기 위한 봉헌 예물을 보관하던 보물 창고를 볼 수 있다.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아폴론 신전은 델피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한복판을 상징한다. 실제로 그리스인은 이 신전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었다. ‘옴팔로스’(배꼽)라는 이름의 돌이 그곳을 표시하고 있으며, 돌을 중심으로 전능한 그리스의 신 아폴론에게 바치는 신전을 세웠다. 그래서 이곳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널리 경배받는 신탁이 내려지는 장소가 되어, 그리스 도시 국가의 군주들은 전쟁 등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아폴론의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곤 했다.
지금은 6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처음에는 38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피티아(무녀)가 신탁을 받기 위해 앉아 있던 장소인데, 그 의자가 ‘트리푸스(세발 의자 혹은 세발 솥)’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지의 배꼽인 옴파루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원된 것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트리푸스의 발이 되는 기둥은 어디에 있을까? 그 궁금증은 나중에 터키에서 풀렸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멧 광장에 가면 이상한 청동 기둥이 놓여 있다. 처음 이 기둥을 보고 이 광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라 궁금했는데 이 기둥이 바로 이 트리푸스의 받침대 기둥이다. 그리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이 트리푸스의 뱀의 머리를 보관하고 있다.
아폴론 신전을 한참 보고 즐기고 나서 다시 발걸음을 위로 향해 가면 고대 원형 극장이 나온다. 이곳은 피티아 제전에서 음악 경연 대회가 열렸던 곳으로 보존 상태가 좋아 오늘날에도 여름에는 공연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에 신탁의 신성한 장소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리스 문명을 구경하면서 각 도시의 유적마다 원형 극장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예술을 즐겼는지 상상이 되었다. 고대 극장을 구경하고 그 길을 따라 위로 가면 델피 성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스타디온이 나온다. 피티아 제전에서 스포츠 경연이 열리던 장소이다. 그런데 트랙의 길이가 눈대중으로 보아도 약 200m는 될 것 같다.
이 스타디온을 끝으로 델피 성역을 뒤로 하고, 델피 성역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델피 고고학 박물관으로 간다. 델피 성역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만 가면 보이는 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사실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이다. 박물관의 입구를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데 바로 델피 성역의 ‘신성한 길’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모두 델피 성역과 아테나프로나이아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 박물관의 주요한 유물 중에서 전차를 모는 청동 마부상은 피티아 제전 전차 경주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바친 청동상으로 4마리의 말과 마부상이 한 세트라 하는데 말들은 어디로 달려가 버렸는지 알 수가 없고, 남아 있는 마부의 생생한 표정이 압권이다. 마부만 남겨 두고 달려간 말들은 지금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이 제법 늦었다. 마을로 돌아가서 카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냥 우연히 들어간 카페는 알고 보니 상당히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델피에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해 주는 식당으로 소박한 가정식 요리를 메뉴로 하는 전통적인 그리스 식당이었다. 음식도 상당히 좋았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좋았다. 이 조그마한 델피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옛날부터 이곳에 신탁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점심을 먹고 아테네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을 돌아보았다. 마을에는 조그마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대부분 카페와 마을 집을 개조하여 만든 것 같은 호텔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시간만 많으면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에 알맞은 마을이다. 오후 늦게 버스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아테네에서 델피까지 왕복 6시간을 버스를 탔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펠레폰네소스반도
코린토스1 - 시시포스 신화가 전하는 곳고대 코린토스는 신 코린토스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다. 코린토스는 B.C.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B.C. 8세기에는 25만 정도의 인구가 머문 거대 상업 도시로 발전하여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양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리는 국제 도시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알 수 있듯이 타락한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도시였다.
택시를 불러 타고 아크로코린토스로 갔다. 여담이지만 그리스 택시비는 우리나라보다 많이 싸기 때문에 요금 걱정하지 않고 이용해도 된다. 고대 코린토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 중 하나인 아크로코린토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고도가 높은 지역에 요새를 지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고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입구는 산의 서쪽에 있고 문은 3개가 있는데 각각 투르크식, 프랑크식,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크로코린토스의 외성은 겉으로는 매우 아름답게 보이나 이 성은 피로 반죽하고 살로 구웠다고 하는 처절한 역사가 숨어 있다. 평소 성정이 차갑고 잔인했던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주였던 레온 스구로스는 프랑크족이 침입하자 항복하지 않고 자신의 애마와 성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레온 스구로스가 뛰어내리자 비로소 열렸다고 하는 지금의 이 문은 베네치아 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채가 있는 곳에는 원래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는 현대에서는 사랑의 여신, 미의 여신이라 불리지만 옛날에는 저속한 세속성이 강조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성의 아프로디테의 성역에는 1,000여 명이나 되는 히에로두로이라 부르는 신역 직속의 창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타락의 도시로 유명했던 코린토스의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을 쓴 사도 바오로의 눈에는 온갖 음행이 자행되는 도시로 보였을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이 춤과 노래로 사내들을 유혹하여 웃음을 팔던 이곳이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크레타섬
크레타2 - 유럽의 가장 오래된 도시 크노소스크레타는 유럽에서 문명이 가장 먼저 꽃핀 곳이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모태가 된 곳으로 수많은 신화가 전해지는 땅이다. 고대에 가장 발달되었던 이집트 문명이 유럽으로 전파되는 도중에 지중해를 건너면서 처음 도달한 곳이 아마 크레타일 것이다. 그리고 크레타에서 펠레폰네소스반도로 상륙하여 미케네 문명을 만들고 다시 이 미케네에서 아테네로 문명이 이동했으리라는 것이 대개의 의견인 듯하다. 이 유럽 문명의 기초가 되는 크레타 문명의 중심은 바로 미노아 문명이며, 신화의 궁전 크노소스는 미노아 문명의 상징이다. 우리가 잘 아는 라비린토스(미궁), 미노타우로스, 테세우스, 다이달로스, 이카로스 등 수많은 신화가 모두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노소스 궁전은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스 왕이 아내가 낳은 반은 인간, 반은 황소였던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지은 궁전이라 한다. 이 궁전은 섬의 북쪽 해안인 현재의 이라클리온시 남쪽 약 6km 지점 구릉 위에 있는 크노소스에 있던 고대 왕국의 궁전으로, 동서 170m 남북 180m 규모로 장방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로 60m 세로 29m 정도의 직사각형의 중앙 광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왕과 그 가족을 위한 거주구와 공방, 서쪽으로 제례와 정치를 위한 공실, 창고 등 약 1,200 내지 1,400개의 작은 방이 미로와 같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심한 붕괴로 상부 구조는 분명치 않으나 2층 또는 3층 부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 일종의 수세식 변소, 도관을 이용한 하수도 등도 발굴되었다.
크노소스 궁전의 한 가지 특징은 다른 고대 도시들이 대개 신전 중심의 도시라면 크노소스는 왕궁 중심의 도시라서 신에 관한 장식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의 벽이나 천장은 대부분 궁정 풍속, 동물, 식물, 새, 물고기 등을 그린 회화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 궁정의 프레스코는 모두 복제품으로, 진품은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크노소스는 고대의 왕궁 건축 중 가장 규모가 큰 궁전 중의 하나이며, 또한 그 복잡한 설계로 옛날부터 ‘라비린토스(미궁)’로서 유명하였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 깊숙이 살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하는 이야기는 잘 알려졌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테세우스의 신화 중 미궁에 대한 부분만을 소개하면,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기로 결심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겠다고 자원한 테세우스는 무기를 갖고 들어갈 수 없었지만 맨손으로도 충분히 괴물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탈출 방법이 문제였다. 일단 라비린토스(미궁)에 들어간 사람은 설령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고 해도 복잡하게 얽힌 미로를 헤매다가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테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미궁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실뭉치를 주면서 실 끝을 입구에 묶은 다음 미궁으로 들어가서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한다. 아리아드네의 말을 따른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탈출했다. 약 1,400개의 방이 있었다니 오죽하였겠나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