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조형숙 지음 | 산지니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조형숙 지음
산지니 / 2022년 2월 / 223쪽 / 16,000원
다문화 교육
다문화 교육과 책무성2010년 나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향했다. 나는 교육학 박사 공부를 하고 아들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아들은 현지에서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계 ‘다문화 학생’이 되었고 나는 ‘다문화 엄마’가 되면서 우리 모자는 ‘이민 다문화 가족’이 되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학교에서 ‘다문화 가족’을 위한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경험이 학위 논문의 주제를 다문화 교육으로 잡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이민자 문화와 다문화 교육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틈틈이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론과 현장을 연계시킬 수 있었다.
한편 아들은 미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지만 학년 편제가 달라, 중학교 3학년은 편입한 한국의 중학교에서 다녔는데, 한국의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라.’와 ‘여기는 한국이니까 외국에서 있었던 일들은 싹 잊으라.’는 것이었고, 아이는 자신의 행동 특성과 독특한 경험을 부정하는 교사들의 동화주의(Assimilationism)에서 ‘문화적 폭력’을 느꼈다.
동화주의적 접근법의 역사는 다문화 교육이 정착한 미주 지역과 상호 문화 교육이 정착한 유럽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다. 미국은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유색 인종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1967년 금지되었던 백인과 유색 인종 간 결혼도 합법화시키면서 다인종 다문화 정책은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에 발맞추어 이민자 문화와 흑인 문화를 존중하는 다문화 교육이 학교 현장에 서서히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단적인 사례가 학교에서 사용하는 백인 영어(White English)로 진행되는 교과를 잘 배우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도 영어로 소통하기를 권장하던 기존의 언어 정책을 철회한 것이다. 이민을 온 가족이 영어로 서로 의사소통할 수도 없고 본국어를 사용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데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정책이었으며, 본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던 영어 기반 단일 언어주의(Monolingualism) 정책을 포기한 것이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이주한 학생들은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교사는 이 점을 잘 이해하는 편이고 학생의 행동이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행동 방식일 수 있음을 고려한다. 그리고 문화 다양성을 교육 패러다임에 반영하여 다른 언어, 다른 종교 및 다른 문화를 비난하거나 동화주의적 관점으로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또 생활 지도 측면에서는 문화적 배려 없이 다문화 학생을 섣부르게 지도하다가는 인종 차별과 아동 학대 등으로 간주되어 교직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런데 아들이 편입한 한국의 중학교에도 다문화 학생이 재학 중이었다. 물론 아들은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도 아니고 외국인 가정 자녀도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부 기준의 다문화 학생 범주에 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디시(인도네시아계 외국인 학생)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수업을 못 알아듣고 성적도 낮다.” “김 앤드류(미국 태생 귀국 학생)는 한국말이 안 되니까 다시 미국으로 갔다.” 등의 말을 교사에게 듣기도 했다. 한국어 공부와 교과 학습을 도와줄 책무가 교사에게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적응하느라 힘겨운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인데, 이를 ‘희생자 비난하기’라고 한다.
문화 다양성이 다문화 교육의 근본정신이라고 한다면, 교사의 책무성(Teacher Accountability)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 교육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출산율이 높지 않아도 이민 정책으로 끊임없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민 자녀를 잘 교육시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인 셈이다. 또 미국은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고 이직률이 높은 반면, 교사가 학생 위에 군림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느껴졌다. 교사는 학생을 처벌할 수 없고 다른 학생과 비교하는 것을 연방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주류의 가치관에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은 교사의 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문화 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학습 부진과 부적응은 학생의 탓이 아니라 학교의 교육 역량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교사들은 어떻게 더 많은 책임을 지고 학생을 덜 비난하는 교육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과거의 정책적 오류를 벗어나, 동화주의 입장을 철회하고 문화 다양성을 교사 교육에 적극 반영한 교육 과정 개혁의 결과이다. 참고로 미국의 예비 교사들은 다문화-다언어(Multicultural & Multilingual) 교육에 관한 강의를 학부 과정에서 이수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도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 대학부터 다문화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전 지구적인 인구 이동으로 인해 다문화 학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OECD 회원국은 동화주의 정책보다는 문화 다양성을 인지하고 교사로서의 책무성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문화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생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교육의 수준을 높였고 고급 인력이 안심하고 이주하는 계기가 된다. 참고로 아무리 부자 나라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자녀가 학교에서 차별받거나 공립 학교 수준이 낮아서 학비가 비싼 국제 학교나 사립 학교에 보내야 한다면 글로벌 인재가 모여들 수 없다. 그래서 다문화 학생을 차별하거나 시혜적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인권과 교육 평등과 수월성(秀越性) 교육의 가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제 한국의 초ㆍ중등 교사들도 다문화 사회를 준비했으면 한다. 좀 더 섬세하고 좀 더 조심스럽게 말이다.
문화 다양성
내가 몰랐던 인도나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미국 학생뿐 아니라 외국 유학생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니던 학과는 중국인이 가장 많고 미국인, 한국과 아랍 유학생에 이어 인도 유학생이 섞여서 공부했는데, 아무래도 한ㆍ중ㆍ일 친구들은 문화적으로 공감을 느낄 부분이 많다. 참고로 나보다 두 살 많은 일본 친구와는 입맛도 비슷하고 마음씨도 착해서 친하게 지냈고, 중국인들과도 이런저런 갈등도 있었지만 문화적 친숙함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갈등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인도 유학생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다음은 나보다 2년 먼저 박사 과정에 들어온 인도 유학생 찬다니와의 이야기다. 나와 고용 계약을 한 교수의 연구 과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복사를 해야 했고, 막상 학과의 복사기를 사용하려고 하니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도저히 작동이 되지 않아, 이리저리 들춰 보던 중이었다. “찬다니, 복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돼. 혹시 너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아니?” “글쎄, 나 한 번도 안 써 봐서 잘 모르겠네.” “아 어쩌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복사를 포기하고 박사 조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내 자리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보다 2년이나 먼저 입학했는데 한 번도 복사기를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그러다 잠시 후 이메일을 체크해 보니 학과의 직원이 나의 다음 학기 재계약을 위해 들러 달라는 편지가 와 있어 다시 학과 사무실로 갔다. 그때 나와 함께 입학한 미국인 학생 스테이시에게 찬다니가 복사기 사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복사기는 아무나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고 설명하며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비밀번호를 적어서 알려 주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이후 두 번째 학기가 되었다. 나는 지도 교수가 진행하는 이민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인도 학생과 함께 두 명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미팅에서 인도 학생 라만딥이 40분 지각을 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왜 늦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씩 웃는 것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다그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한 번은 그냥 넘어가자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미팅에서는 거의 1시간이나 지각을 했는데도 또 씩 웃으면서 태연하게 가져온 간식을 꺼내 먹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프로젝트 회의를 미루고 나와 버렸다.
며칠 후, 중국 친구 웬징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도 학생에게는 화난 얼굴로 고함을 지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해. 그러면 라만딥이 나이스하게 행동할걸. 실수를 이해해 주면 자기가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걔가 미국 학생한테는 절대 안 그러거든.” 그 말을 듣고 나니 웬징이 평소 인도 유학생에게 명령하듯 하는 말투가 이해가 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후 라만딥이 예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나도 인상을 쓰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관계가 서먹서먹해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그녀는 나에게 다과를 권하고 자기 페이스북을 보여 주며 더 상냥해졌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인도에서 무슨 선거에 출마했고 한창 선거 유세 중인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후 한국인 유학생 모임에서 이 어이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실험실에서도 인도 유학생과 한국인 유학생의 삐걱거리는 스토리는 부지기수였다.
이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고등학교 때 이민 와 그곳에서 취직하고 있는 조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영어도 상대적으로 유창하니까 친구도 많고 그렇지?” “영어를 잘하면 아무래도 유리하죠. 저도 대부분 듣는 입장이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난 언어적인 어려움도 있고 문화적으로도 외국인과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게 쉽지는 않아.”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외국 사람들 정말 좋은 사람들 많아요. 한국인이 획일적인 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고 친구를 맺는 데 어색할 수 있지만 겪어 보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구나. 너는 외국 문화에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네.” “예, 일본계 사람들은 나이스한 편이고, 중국인이라도 문화적으로 통하는 게 많아 친하게 지내고 있고요. 제 주변에 레바논 친구가 있는데 정이 많고 똑똑하고…. 정말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인도계는 어때? 인도 문화랑 잘 통하는 것 같아?” “아, 그건 좀…. 인도 쪽 사람들과는 좀 아닌 것 같아요.”
조카도 인도 동료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힘들어했다.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다가와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한 후, 팀별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조카가 이야기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궁리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처럼 연기하면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발표를 해서 당황했는데 그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고 한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감당이 안 되어 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이중 언어 교육을 전공한 내가 인도 유학생과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가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박사님이 다문화를 공부했다고 해서, 무조건 외국 사람들 편을 들 것으로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 이해해 주고 참아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어요.” 그럴 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해한다는 것은 덮어놓고 무례함을 참아 주는 것이 아니다. 문화 간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인도의 신분이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라는 4가지 계급이 있다고 배웠지만, 실제 직업과 역사 등으로 세분되어 약 오천 가지쯤 된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어는 존칭이 과도하게 발달해 있어서 상대방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모르는 상태로는 장시간 대화가 쉽지 않듯이, 인도인은 신분제적 계급을 토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래서 미국의 회사에서 처음 만난 인도인끼리도 상대의 신분을 캐내려고 다양한 유도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인도인은 청소나 뒷정리하기와 같은 궂은일에는 소극성을 띠는데, 이는 궂은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을 낮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시회 등을 마친 뒤 사용했던 천막이나 탁자와 쓰레기 등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인도인의 ‘문제없음(No Problem) 정신’이라고도 한다. 육체적인 작업과 관련된 궂은일을 꺼리는 인도 문화에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문제없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안전 관리 혹은 뒷정리를 하지 않는다. 이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생겼을 때 그제서야 어떻게든 뒷정리를 하면 된다는 식이다. 따라서 인도인과 계약 시 반드시 뒷정리 문제를 명시해서 계약 불이행 시 위약금 내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찬다니가 포스트잇에 복사기 비밀번호를 적어 주고 있을 때, 나는 어이없어하며 가만히 있었고 그것은 ‘문제없음’의 신호가 되었다. 만약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들어 미국 학생인 스테이시가 보는 앞에서 ‘너는 거짓말쟁이’라고 항의했다면, 그것은 찬다니에게 ‘사고’가 생긴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또한 라만딥이 자신의 시아버지가 선거 유세 중인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 “난 너희 가족에게 관심 없어. 다음부터 지각하면 지도 교수한테 리포트하고 너를 해고하라고 건의할 거야.”라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하다. 라만딥은 더 많은 간식을 가져와 나에게 주었을까?
다문화 교육이란 덮어놓고 이주민을 도와주고 이해하라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 간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가 갈등적 요소로 폭발하기 전에 다양성이라는 유용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대응으로서 교육을 보는 관점이다. ‘진심은 통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그릇에 잘 담아야 진심은 통한다.’는 접근법으로 인도와의 교류를 준비했으면 한다.
인종 다양성
다문화주의와 인종현재 한국은 다문화 교육이 정착되고 있지만, 미국 다문화주의의 기초를 다진 데릭 벨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헌법학자인 그는 흑인 최초로 연방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하버드 법대에서 흑인 최초의 종신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하버드대학에 임용된 후 대학이 아시아계 여성을 종신 교수로 임용하기를 거부하자 하버드대학을 떠났다. 또 오리건대학 재직 시절, 대학이 능력 있는 유색 인종 여성을 교수로 임명하는 것을 꺼리자 대학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적 임용 관행을 비판하며 데릭 벨은 1985년 학장직을 내려놓았다. 인생의 많은 굽이마다 도덕성과 사회적 성공은 자주 충돌하는데, 그는 그때마다 바르게 살기를 선택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았다.
참고로 19세기 말부터 아프리카계 흑인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학, 예술, 언어를 학문적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흑인학(Black Studies)으로 탄생했다. 한편 법학을 전공한 데릭 벨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이 사실은 흑인을 차별하고 있음을 밝혀내기 시작했는데, 하버드 법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이 ‘비판적 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은 흑인학의 지평을 넓혔고 논리적 체계를 잡아 갔다. 그리고 또 비판적 법학은 흑인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지 밝힘으로써 법 개정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후 흑인학은 점차 아시아계 이민자, 남미계 이민자, 미국 원주민 등 다양한 인종의 학문으로 퍼져 나가며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으로 발전했고, 1960년대 미국 민권 운동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비판적 인종 이론은 기존의 인종 이론이 거짓이며 근거 없는 사이비 과학임을 입증했다. 한편 비판적 인종 이론이 교육 영역에 적용되어 인종 차별적 교육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다문화 교육이다. 참고로 워싱턴대학의 제임스 뱅크스는 ‘다문화 교육’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였는데, ‘다문화 교육(Multicultural Education)’은 교육 불평등과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세계 시민성(Global Citizenship)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