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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정길화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정길화 외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22년 2월 / 302쪽 / 17,000원





서사적 관점에서 본 <오징어 게임> - 정길화



넷플릭스 52일간 세계 1위의 위엄


2021년 9월 17일은 한국 드라마, 나아가 한류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 날은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 9부작을 전 세계에 론칭한 날이다. 이후 나타난 현상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오징어 게임> 열풍이 지구촌을 강타했다. 동영상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개봉한 지 4일 만에 국내 드라마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1위와 글로벌 넷플릭스 순위 2위를 차지하더니, 6일 만인 9월 23일부터 전 세계에서 1위에 올랐다.

방송 콘텐츠는 시청률이나 시청자 수로 흥행성과 대중성을 평가하고 그 연장선에서 성공 여부를 측정한다. 이와 달리 영화는 누적 관객 수 또는 박스 오피스의 액면가로 정량적(定量的) 평가를 하거나, 전문가들이 영화사적 의미나 완성도에 따라 평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정성적(定性的) 평가를 해왔다. 그런데 OTT 플랫폼은 완전히 새로운 측정 지표의 출현을 가져왔다. 넷플릭스가 사업하는 나라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를 집계하게 된 것이다. 바로 플릭스패트롤이다.

이 사이트는 전 세계의 VOD, OTT 드라마나 영화의 시청률을 순위로 매겨 점수로 집계하는 사설 웹사이트다. 플릭스패트롤은 80~90여 개 국가별 가입 가구 수에 따른 차별성을 부여하지 않고 똑같이 10~1점을 배당한다. 1위면 10점, 2위면 9점을 주는 식으로 수치가 나온다. 83개국이면 830점이 만점이 된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청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국가가 시청했나’를 집계하는 방식으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를 서비스한 83개국 모두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자국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는 ‘발리우드의 나라’ 인도에서도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되었다. <오징어 게임>은 1위에서 물러난 11월 19일 이후에도 톱10을 계속 유지하다가, 2022년 들어 106일 만에 물러났다. 어떻든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댈러스>와 <오징어 게임> 그리고 퀄리티 텔레비전


40여 년 전 <댈러스>라는 미국 드라마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1982년 이엔 앙은 『댈러스 보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어떻게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시청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의미들을 도출하는가” 등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에는 수용자들을 ‘행위성과 주체성이 결여된 익명의 군중’으로 여기곤 했는데, 이엔 앙은 이러한 지적 편견에 반대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이엔 앙이 제기했던 감정적 리얼리즘(emotional realism), 텍스트 중심 연구에서 수용자 중심 연구로의 전환, 조롱적 시청(ironic viewing), 질적 방법론의 부상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13년간 방송된 <댈러스> 시리즈와 9부작을 한 번에 넷플릭스 플랫폼에 론칭한 <오징어 게임>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댈러스> 시리즈는 B2B(기업 간 거래) 방식으로 전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하고 방영해, OTT 방식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만 『댈러스 보기의 즐거움』이후로 “문화에 관한 비평은 수용자들이 대중문화와 관계를 맺는 적극적인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엔 앙의 주장은 이제 보편적인 관점이 되었다.

특히 이엔 앙의 시대에서 달라진 것은 ‘조롱적인 시청법’의 종언이다. 이제 누구도 TV 시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드라마를 조롱하고 비꼼으로서 자신의 드라마 시청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대중문화 시대에 TV를 보면서 수치심과 즐거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지 부조화적’ 태도는 불필요해졌다. 결정적으로 넷플릭스의 랭킹은 자신의 시청 행위가 전 세계에서 공인받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 시대의 시청자는 적극적으로 이를 향수하고 SNS로 공유하거나 밈을 만들어낸다. 이를 ‘주도적 시청법(voluntary viewing)’ 혹은 ‘자기만족적 시청법(complacent viewing)’이라고 명명할 만하다. 시청자들은 ‘판관의 의자’에서 내려와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려 한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라는 점에서 <댈러스>에 대한 질문은 <오징어 게임>에도 유의미하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다. 가령 김주옥의 논문 「퀄리티 텔레비전: 한류 담론의 확장 혹은 관점의 전환」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한류가 방송 프로그램의 퀄리티 담론 구성에 어떻게 연계되는지 살펴봄으로써 한류 현상이 한국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논한다. 이어서 이러한 전환이 콘텐츠의 질적인 가치와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질 때 한류 현상의 지속성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한국 문화 콘텐츠가 ‘문화적 유사성’이라는 전제 조건을 넘어 인류 보편의 문제를 탐구하는 문화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발견해 가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는 <오징어 게임>에도 적용된다.

요컨대 요즘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의 ‘자기 주도적 시청법’에 이어, ‘퀄리티 텔레비전’이라는 개념으로 한류 담론을 확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아마도 왜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지, 어떠한 기제로 재미를 느끼게 되는지, 다시 말해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의 재현 방식이 될 것이다. 어떤 드라마는 대중에게 외면 받고, 어떤 드라마는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히트를 친다. 전 세계가 OTT로 연결되는 시대에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대박 콘텐츠’가 나오면 공명의 파장 속에 드라마의 노하우를 찾으려는 업계와 학계의 소환이 뒤따른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었기에 이와 같은 흥행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즉 성공 방정식에 대해 천착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온상은 한국 사회


나는 <오징어 게임>이 나온 뒤 초반에는 이를 볼지, 말지 망설였다. 세계 1위라니 올림픽으로 치면 금메달감인데…, 국민 된 도리(?)로 아니 볼 수는 없고…. 사실 그 얼마 전에 나왔던 장안의 화제작 는 중도에 시청을 포기했다. 가 추구하는 극도의 리얼리즘은 왕년의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소환했고, 그 때문에 드라마 시청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지금까지도…). 세계적 화제작이 된 <오징어 게임>도 그런 소지가 다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1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돌연한 대량 학살극은 충격적이었다. 급기야 페이스북에 이런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를 계속 시청할지, 말지를 곤혹스러워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페친’인 상지대 홍성태 교수의 ‘격려’로 힘을 얻었다. 그는 내 글에 댓글로 “가 ‘현실적 허구성’으로 우리를 괴롭게 한다면, <오징어 게임>은 ‘허구적 현실성’으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사회적 독해를 하게 되더라도 ‘휴먼 드라마’의 성격이 더 강하다. 또 여기서 나오는 게임들은 한국의 50대 이상이 유년기에 매일 했던 놀이들인데, 2030 세대나 심지어 외국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건 이미지와 스토리가 다 기이한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청이 끝난 후 다시 보니 매우 적확한 진단이었다.

이렇게 정주행을 재개했지만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가혹한 현실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했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온상’ 혹은 ‘태반(胎盤)’은 결국 한국 사회의 ‘헬현상화’ 또는 ‘흑화(黑化)’일 것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재구성한다.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이라는 옛말이 있다고 하더니, 한국 사회의 불행은 콘텐츠 제작자의 행복인가. 그럼에도 이를 세계인이 공감하는 스토리로 만들어낸 것은 시나리오와 연출의 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오징어 게임>의 선풍과 함께 외신들의 보도도 늘어났다. 해외 언론들은 먼저 한국 콘텐츠의 저력과 성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 타임스》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대표 사례로 제시하며,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을 집중 조명했다. 이 매체는 특히 한국이 ‘문화적 거물(Cultural Juggernaut)’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런 뉴스 사이사이에 간혹 <오징어 게임>에서 묘사하는 한국의 현실에 주목하는 기사도 출몰했다.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에서 오는 리얼리티 때문인지 <오징어 게임>의 배경적 서사, 즉 한국의 부동산 가격 폭등과 청년 실업, 개인 부채 등 한국의 현실 문제를 드라마와 연결하는 보도였다. 가령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가디언》) 등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경험하고 인식한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리얼하게 반영하고 투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한국의 문제만인 듯 몰고 가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처사일 뿐 아니라 마치 자신들은 그런 현상이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을 무대로 한국의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룸으로써 세계인의 호응을 얻었다. 이들 기사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반대로 해석하면 드라마의 세팅과 묘사가 너무나 그럴싸한 바람에 이 작품의 풍자성을 망각하거나 고의로 외면한 것일까. 황동혁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처음 <오징어 게임>을 만들 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긴 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말은 누구나 해왔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방탄소년단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도 그랬습니다. 저 역시 이 게임이 단순한 한국의 옛날 놀이지만 세계적으로 어떤 소구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고 넷플릭스와 작업했죠.” 시작하기 전에 이미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었고, 세계적인 소구력이 있을 것이라고 본 대목은 눈길을 끈다. 작품의 배경인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이미 도도한 세계적인 현상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읽기 ? 임종수



<오징어 게임>, 플랫폼 리얼리즘의 미학

<오징어 게임>은 대한민국에서나 전 세계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우리의 미학적 즐거움에 어떤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방송의 일방적이고 동시적인 힘이 구현해내던 ‘텔레비전 리얼리즘’이 아닌 ‘플랫폼 리얼리즘’이라 일컬을 수 있는 세계이다. 플랫폼 리얼리즘 개념은 검증받아야 할 가설이지만, 동시성의 방송이 제공하던 지배적 감각과 본질적으로 다른 <오징어 게임>에서의 리얼리즘을 해명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제기해 봄직한 개념이다. 사실 근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은 시청자의 삶과 텔레비전 속 세계가 동기화되는 텔레비전 특유의 ‘현재성(nowness)’이 없거나 매우 미약하다. 대신 수많은 관련 뉴스와 비평, 블로그, 유튜브 영상, 그런 작업물을 실어나르며 퍼져 나가는 SNS 바이럴 등 미디어와 미디어를 넘나드는 확산성(spreadability)이 어떤 공통의 리얼리즘을 실현시킨다. 이는 넷플릭스가 수용자 개개인의 미학적 취향에 대응하는 가운데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어떤 창발(emergence)에 이르러 (공통) 문화를 형성함을 의미한다. 과거 <스타워즈>, <왕좌의 게임> 그리고 마블의 MCU 시리즈 등이 그랬듯이, 그런 문화는 어떤 세계 또는 세계관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지배적 미학은 OTT의 복잡계 네트워크적 특성이 발현된 우발성(contingency)으로 풀이된다. 우발성은 완전한 질서와 완전한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계에서의 운동 법칙(흔히 멱함수, 프랙탈, 패턴 등으로 알려진)을 일컫는 용어이다. 21세기 미디어는 효과나 태도, 시청률과 같은 행동과학이 아니라 이 같은 우발성, 그러니까 창발, 패턴, 정동 등을 아우르는 복잡계 이론의 영역이다. 넷플릭스 같은 인공지능 미디어는 대량 생산 체계의 채널처럼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의 네트워크로 수용자마다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운데 어떤 공통의 미학적 경험을 구성해낸다.

복잡계 이론은 세계를 어떤 개체의 힘과 영향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어떤 이상하고 놀라운 물리 법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속성의 작용으로 파악한다. 개체가 사람이나 사물 또는 조직, 기관이라면, 속성은 사람의 성격, 평판, 태도, 취향, 관심, 사물의 작용 능력, 조직의 기능 등을 뜻한다. 속성은 계의 ‘되먹임’과 ‘창발’ 과정을 통해 발현되고, 개체는 그런 속성을 수행하는 행위자이다. 그렇게 보면, 넷플릭스 복잡계는 개별 행위자(이용자)의 수많은 콘텐츠 선택과 시청, 추천의 되먹임 과정에서 <오징어 게임>이라는 대중적 관심(어떤 속성)을 창발시킨 셈이다.

결국 플랫폼 리얼리즘은 넷플릭스는 물론 각종 SNS, 올드 미디어에서의 뉴스, 비평, 구전 등 이기적인 개체들의 자기활동이 나비효과나 반딧불이의 집단 발화처럼 어떤 미적 상태에 이르는 창발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것은 설명 가능하지 예측 가능하지 않다.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의 크기나 제작자의 명성에서 대중적 반응을 일정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넷플릭스 같은 OTT는 한 국가 내 단일 문화 시장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대중매체 시대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힘들다.

만약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과 시청을 관통하는 수많은 되먹임 과정에서 복잡계가 행위자와 행위자 간의 ‘연결된 취향’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크게 히트를 친 것은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비교해 전 세계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인간과 문화,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속성이 발견되어서일 것이다. 이 글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야기 형식에서 그 같은 속성은 전형적인 텔레비전 드라마와 다른 서사극(epic) 형식에서 잘 발현된다. 서사극은 현실 재현을 목적으로 했던 예술론에 반기를 들고 무대가 결코 현실과 같거나 그것을 압도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성장한 극 형식이다. 현실과 무대를 혼동한다면 예술은 쉽사리 선전선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서사극이 채택한 것은 현실과 무대의 분리, 그를 통한 현실에 대한 성찰, 관찰자로서 관객이다. 서사극은 감정보다 결정, 경험보다 지식, 암시보다 주장, 결과보다 과정, 불변하는 인간이 아닌 변화하는 인간, 사건의 직선적 진행이 아닌 곡선적 진행, 그대로의 세계가 아닌 되어가고 있는 세계, 책임져야 하는 임무가 아닌 강제되는 임무, 본능이 아닌 이성 등을 강조한다. 서사극의 이런 특징은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 극예술 또는 예술의 정치적 모더니즘의 기획으로 분류된다.

서사극은 2013년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면서 전 세계 각기 다른 수용자들에게 일괄 출시로 몰아 보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극 형식이다. 넷플릭스는 그런 극 형식과 그것을 담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텔레비전의 미래(the future of television)’라고 보았다. 텔레비전의 미래는 그저 그런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플랫폼으로서 넷플릭스가 서사극 형식을 통해 평균적인 정서가 아니라 가입자의 취향에 따라 모두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 확고한 선언이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전해 들었다는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은 사실 맞는 말이다.

서사극은 평균율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극 형식이다. 서사극은 시청자와 동떨어진 시공간, 서사극을 규정하는(그리고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게 될) 결정적인 특성으로서 낯설게 하기(alienation) 장치, 어느 한 곳으로 치닫는 정서, 그리고 ‘어딘가로 갔다 오는’ 이야기로 설명된다. 이는 시공간적으로 ‘이곳’의 현실과 동기화된 드라마와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국경도 인종도, 성이나 학력 등 맥락적인 지표와 무관하게 취향에 따라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극 형식이다. 이 글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플랫폼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인식 지평을 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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