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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왜 부모를 거부하는가

조슈아 콜먼 지음 | 리스컴


자녀는 왜 부모를 거부하는가



조슈아 콜먼 지음

리스컴 / 2022년 2월 / 325쪽 / 16,000원





멀어진 자녀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지배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로 선언한 아들

“모든 걸 통제하려는 아버지에게 지쳤어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 단절에 부모가 거의 책임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관계가 멀어지게 하는 행동을 수도 없이 한 부모들도 있다. 랠프는 아들이 연락을 끊자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그러나 내 조언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에 대한 아들의 냉혹한 평가에 대해서도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랠프는 불평이 많고 본인의 의견만 고수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결코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사와 존경을 기대했다. 아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준 것만으로도 그럴 자격이 있다는 착각이 그의 가장 큰 문제였다. 반면 그의 아들 프랭크는 아버지로부터 통제와 지배를 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인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아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아들에게 ‘실질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실용 학문이 아니라면 등록금을 대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랭크는 부모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대학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만남을 요청하는 아버지에 맞서기 위해 심리상담도 열심히 받았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그는 털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감정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하거든요. 나는 아버지가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에 지쳐버렸어요. 아버지와의 연락을 끊고 나서 나는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어머니와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 이야기에 따르기만 할 뿐이죠. 선생님도 우리 아버지를 만나셨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을 위해 다해줬는데, 내가 왜 사과를 하나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이유는 연락을 끊은 자녀와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첫 만남에서 나는 부모들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부모의 과거 경험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는지 또는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또 부모의 관점에서 본 자녀의 성장 과정 전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듣는다. 부모들에게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자기 자녀의 강점과 약점, 기질, 자기 통찰 수준, 그리고 자기 성찰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아버지 랠프와의 첫 상담에서 나는 아들에게 사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부자지간의 감정에 대해 그가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는 한 관계에 진전은 없을 거라고 아들 프랭크가 암시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자 랠프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사과할 게 없습니다. 그 아이는 좋은 학교에 입학했고, 학비도 내가 다 내주었어요. 아들 부부에게 집도 사주었고요. 그런데도 며느리는 나하고 말도 안 합니다. 나는 손주들의 대학 등록금을 따로 준비해놓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손주들을 볼 수도 없어요. 내가 뭘 더 미안해해야 하는 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들 녀석이 나한테 비난을 퍼부었던 적이 있네요. 오히려 그 녀석이 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그마한 그의 아내는 이러한 상황을 무척 슬퍼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온 힘을 짜내 대답하려는 듯 천천히 말했다. “아, 나는 모르겠어요. 그저 이런 갈등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손주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아들이나 아버지나 서로 다를 게 없어요. 둘이 똑같아요. 둘 다 자기 생각만 앞세운다니까요.” 부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어린 시절에 관해 물어보자 랠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매번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지요.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하면 어떻겠느냐고요?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버지는 나를 혹독하게 키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늘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뵙지요. 가족이란 원래 다 그런 거니까요. 아버지는 오늘의 나를 있게 했죠. 그 점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거부하는 아들과 분노하는 아버지 / 단절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다. “반드시 당신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당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니 좀 다르게 대화해보자는 거죠. 당신이 나쁜 아버지라고 고해성사하듯 말할 필요는 없어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서 부인은 남편을 바라보았다. “해볼 만한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요.”라며 그녀는 남편을 부추겼다. 하지만 랠프는 동의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강경해진 것 같았다. 이후에도 나는 이들 부부를 몇 번 더 만나 상담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억지로 아들과 화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학대받고 자란 엄마와 엄마에게서 상처받은 딸, 화해하는 방법 찾기끝없는 질책과 비난을 먹고 자란 아이:
카리나는 26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는데, 그녀의 엄마를 상담했던 심리상담사가 내게 의뢰를 한 경우였다. 상담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그녀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엄마와 가족 상담을 하는 게 좋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마는 무척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고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엄마가 관계 유지를 요구할 권리는 없죠. 엄마와 대화하거나 만나고 올 때마다 제 감정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은 걸려요. 내 결혼생활에 엄청난 긴장을 가져오기도 했고요. 여기요, 이메일 좀 보세요.” 휴대폰을 내게 건네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늘 이런 식이죠.” 이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카리나에게 - 너와 네 오빠의 자기중심적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난 지쳐버렸다. 지난 3년 동안 전화 한 번도 없고, 너나 손주들을 보러 오라고 불러주지도 않으니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넌 지금 네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니? 아이고, 내 어린 시절에 비하면 네 어린 시절은 소꿉놀이였단다. 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없어. 네가 참가하는 운동경기며 학예회에 난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이제 와서 엄마와의 관계가 얼마나 스트레스였고 네 결혼생활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나 듣게 되다니…. 말도 안 돼. 네 상담사가 뭐라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담사가 네게 제안한 것이 이 방법이라면 좋은 조언을 한 것 같지 않구나. - 엄마가’

“무척 강하시군요.” 휴대폰을 도로 건네주며 나는 말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 년 동안 전화도 안 했고 정말 엄마와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나 자신을 끔찍한 사람처럼 여겨지게 만드니까요. 저는 엄마가 없는 생활이 훨씬 행복해요. 내가 나쁜 사람인가요?”

때로 성인 자녀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관계 단절의 정도가 이해될 만한 수준인지 아니면 과한 것인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학대 경험이 있는 경우라면 성인 자녀가 부모와 관계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가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라는 역할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만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라면 반드시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자녀도 어린 시절의 문제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넘어가야 부모와 건강한 관계의 기초를 세울 수 있고, 자신도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부모로서의 능력을 다질 수 있다.

“잘하려고 했지만 결국 너에게 고통을 주었구나”:
카리나의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끔찍한 엄마인지는 다 들으셨겠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경멸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호의를 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청나게 큰 불만을 듣기는 했지요.” “뭐, 그랬겠지요. 오래전부터 들어온 터라 딸애가 선생님에게 뭐라 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아요.”

카리나의 엄마는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가끔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 이유 없이 그녀를 때리며 “이렇게 맞아야 그딴 생각을 안 하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그녀의 아버지는 망상형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고 42세를 끝으로 자살할 때까지 끊임없이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고 한다. 한편 그녀의 엄마는 더 매력적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녀의 언니와 그녀를 비교하곤 했는데, 툭하면 몸무게와 용모를 비교하고, 대놓고 “내 미운 오리 새끼”라고 경멸조로 부르곤 했다고 한다.

혹독했던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에 대해 염려스러웠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어려움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다 오래전 지난 일이에요. 이런 얘기가 뭐가 중요한가요? 몇 년 동안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걸요.” 나는 분명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다 보면 딸의 불만을 부당한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부모로부터 과도하게 거부당하고 사랑받지 못한 것 때문에 딸에게서 거부당하는 것이 무척 불공평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질문들이 다 쓸데없다는 듯 회의적인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내 딸과 단절되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흥미를 이끌어낸 것 같았다.

나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의뢰인에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의뢰인의 성인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한다. 내가 과거에 겪은 딸아이와의 단절과 화해의 경험이 그들에게 동질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비난이 아니라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부모로 하여금 딸의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딸이 자신을 미워할 더 많은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이유로 카리나의 엄마가 이번 상담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딸이 그녀를 더 미워하게 만들지 않았다.

부모나 성인 자녀 모두에게 가족 상담은 힘든 과정이다. 성인 자녀로서는 믿었던 상대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고, 바로 그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 또한 자신이 자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믿음을 저버렸으며, 양육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로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부모가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자녀에게 관계 단절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관계 단절이 가져온 고통, 슬픔, 죄책감을 참아내야 한다. 거대한 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것에라도 공감하고, 비춰보고, 찾아봐야 한다. 이때 부모가 자기방어를 하거나, 이유를 설명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자녀를 비난하거나, 이혼한 전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누구든 비난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아무튼 카리나의 엄마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과 수치심이 딸의 불만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딸과 상담 중에 소리 내어 울면서 사과했다. 그것은 후회와 갈망과 슬픔이 뒤엉킨 길고도 어려운 절규였다. 어린 시절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그리고 잘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엄마의 절규였다. 딸에게 안정감을 주려 했지만 결국 고통을 주었다는 절규였다. 자신의 해결되지 못한 고통이 딸의 양육과정에 얼마나 많이 스며들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절규였다. 딸은 눈물을 흘렸고, 기쁜 마음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삶에 한 부분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화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앞의 두 사례에는 관계 단절에 대해 다룰 때 공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족의 역학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례에서 보듯이, 자녀가 함부로 취급받고 상처받고 학대를 겪었다는 것에 부모가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고치려 하는가에 따라 화해의 가능성이 결정된다. 그러나 성인 자녀가 부모와 연락을 끊고 화해를 거부하는 데에는 부모의 학대나 방임과 무관한 다른 이유들도 존재한다.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오늘날 부모와 성인 자녀 간의 관계는 평생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정신적으로 밀착되어있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보다 더욱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부모와 성인 자녀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이 요구된다.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들] ① 자녀의 부정적인 성향이나 불평, 비판, 거절 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 ② 자녀의 가치관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③ 자녀가 부모와 분리되어 자신만의 삶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능력. ④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이나 삶의 상처, 실망들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 이를 위해 다음 내용을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 자녀는 부모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다. ㉡ 자녀는 부모의 보상심리를 만족시켜줄 의무가 없다. ⑤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고 비판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의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능력 ⑥ 어느 정도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능력

[자녀에게 요구되는 것들] ①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부모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능력.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바람에 지나치게 영향 받지 않으면서 부모의 생각이나 감정, 필요를 알아챌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②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모에게 불만을 말하거나 느낀 점을 알려줄 수 있는 능력 ③ 부모인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부모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④ 자녀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없는 것은 부모의 결핍 때문이지, 부모가 자녀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부모가 제공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 곧 자녀가 그것을 누릴 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⑥ 어느 정도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능력



단절에 이르는 다양한 과정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는 ‘관계 단절’

고통을 주고 간섭하는 가족은 필요 없다!:
지난 40년간의 임상 경험으로 볼 때 부모와 성인 자녀의 관계 단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성취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치관은 ‘가족은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발상으로 대체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모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충고는 이제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자녀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로 바뀌었다. ‘노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도 ‘존중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의무, 책임, 충성 등 가족을 우선시하던 가치는 개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다. 이제는 남녀관계가 더욱 평등해져서 친밀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결혼 관계가 가능해졌다. 상처를 주는 부모나 자녀, 형제와의 관계를 끝내기가 더 쉬워져서, 가족 구성원 각자는 심리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는 다른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결혼생활을 끝내는 것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상과 성적 취향에 따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보다 자유로워졌고, 가정폭력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부모는 이전 세대보다 성인 자녀와 훨씬 더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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