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 교양 편
김옥림 지음 | 미래북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 교양 편
김옥림 지음
미래북 / 2022년 3월 / 408쪽 / 17,000원
CHAPTER 1. 세기의 문학가와 문학_ 세계문학사
요한 볼프강 폰 괴테괴테는 1749년 황제실 고문관이며 법률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했지만 명랑하고 상냥한 어머니는, 괴테에게 있어 인생의 좋은 멘토였다.괴테는 아버지와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후, 16세 때 법률가가 되게 하려는 아버지의 뜻대로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으나, 흥미를 갖지 못하고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그러던 중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괴테는 병이 나은 후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배운 후 법학사가 되었으며 많은 서정시를 썼다. 이때 괴테는 문학자 헤르더를 사귀고 그로부터 ‘그리스, 로마고전, 셰익스피어, 민요’ 등을 배웠는데, 이는 그의 일생을 결정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변호사가 된 괴테는 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 몇 달 동안을 베츨러에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샬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체험으로 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독일적 개성 해방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괴테는 바이마르 공국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을 걸치며 치적을 쌓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에 참여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삶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또한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자연과학의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동물에게만 있다는 간악골이 인간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그는 많은 희곡과, 기행문, 논문 등을 썼으며,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썼다. 그의 문학작품 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와 『파우스트』는 가장 유명하다. 특히 『파우스트』는 그의 나이 23세 때 써서 83세에 완성한 그의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의 최대 걸작 중 하나다. 괴테는 문학뿐만 아니라 희곡, 시, 과학, 그림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요한 W. 폰 괴테 |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독일 최고 시인. 소설가. 과학자. 정치가. 독일 고전주의 문학 대표작가. 주요 작품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외 다수
찰스 디킨스영국의 대표적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1812년 영국 남안의 포츠머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으나, 돈에 욕심이 없어 디킨스는 어린 시절부터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디킨스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한 채, 12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힘든 노동은 어린 그에겐 너무 벅찼지만, 그의 가슴엔 꿈에 대한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글을 썼다.디킨스는 자신이 쓴 원고를 탈고할 때마다 정성껏 출판사에 보냈지만, 그 어떤 곳으로부터도 원고가 채택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디킨스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원고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원고가 채택이 되었다는 편집장의 말을 듣는 순간 디킨스는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1836년 그의 첫 번째 책 『보즈의 스케치』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장편 『피크위크 페이퍼스』가 나오고, 이어 나온 『올리버 트위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작가로서 그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그 후 『니콜라스 니클비』, 『골동품 상점』,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장편소설,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그의 이름을 더욱 떨치게 했다. 그의 작품엔 그의 가난한 시절의 경험이 생생히 잘 묘사되어 있어, 그의 문체를 특성 있게 보여준다.1850년에 완결한 자서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쓰면서 작품 성향이 바뀌는데, 그의 작품에 많은 인물이 나타난다. 이는 사회 각계각층의 실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었다. 공장직공의 파업을 다룬 『고된 시기』와 프랑스혁명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자서전적인 『위대한 유산』 등은 그의 작가로서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그는 수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는데, 샘물처럼 솟아나는 열정적인 창작의 결과였다.디킨스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셰익스피어와 대등할 만큼 인지도가 있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찰스 디킨스 | Charles Dickens 1812~1870 - 영국 출생. 소설가. 주요 작품으로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외 다수
CHAPTER 2. 인생을 배우다_ 세계인물사
자하 하디드세계 최고 여성건축가 자하 하디드. 그녀는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다 뜻을 바꿔, 1972년 영국의 명문 건축학교인 런던건축협회학교로 유학하여 건축학을 공부했다.그녀는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페이퍼 아키텍트’로 유명해졌다. 페이퍼 아키텍트는 실제 지을 건물보다는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아이디어를 도면상으로 시도하는 건축가를 말한다.하디드는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구상으로 국제전 공모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독창적인 건축은 실제에서는 적용되지 못했다. 돈 되는 건축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다. 반드시 자신의 개성을 알아봐 줄 기회가 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는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 기업 바트라가 건축설계를 의뢰해온 것이다. 하디드는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를 살려,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쳐 보였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건물이 바트라 소방서인데, 이 건물은 현대건축물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그녀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그녀가 택한 새로운 시도는 마치 조각 작품 같은 건축물이었다. 이 건축물은 건물의 용도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지녀 많은 사람의 감상거리가 되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기존의 그 어떤 것과는 좀 더 다른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다운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다.”이후 그녀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베르크이젤 스키점프대를 비롯해, 독일 라이프치히 BMW 빌딩 등을 건축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으며 능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동대문 운동장터에 복합문화공간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하는 쾌거를 이뤄냈다.하디드는 평범한 것을 거부했다.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추구했다. 기존적인 틀을 벗어나 개성을 중시하는 그녀만의 스타일이, 그녀를 성공적인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던 것이다.
자하 하디드 | Zaha Hadid 1950~2016 - 이라크 출신 영국 여성건축가.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 공동대표. 2004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
윌리엄 오슬러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인 존스홉킨스 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오슬러는 1849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처럼 목회를 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토론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진로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의 글을 읽고 그의 삶은 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우리들의 중요한 임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희미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분명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윌리엄 오슬러는 글귀를 읽고 가슴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며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날 이후 그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의과 공부를 하면서도 막연했던 그의 미래는 분명하고 확실해졌다.그는 하나를 배워도 확실하게 배웠고, 실습을 할 때도 다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의 실력은 날로 늘어갔고 교수진들에게도 인정받았다.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가던 그는 맥길 대학교로 옮겨 공부한 끝에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이후 윌리엄 오슬러는 유럽의 연구소를 방문해 견문을 넓혀 나갔다. 그는 연구소 중에서도 실험 생리학을 부각시킨 존 버든 샌더슨의 생리학 연구소가 있는 런던 대학교에 머물며 배움을 지속했다.캐나다로 돌아온 윌리엄 오슬러는 일반 진료를 시작했고, 맥길 대학교 의학연구소의 강사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몬트리올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의사로 일하면서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환자 진료와 강의, 연구를 병행하며 자신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윌리엄 오슬러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미국 볼티모어에 새로 생기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의학교수로 와달라는 초청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윌리엄 오슬러는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멤버들과 대학의 설립자가 되었으며, 모든 연구는 철저하게 책상이 아닌 실험실에서 진행되었다.그 결과 존스홉킨스 대학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윌리엄 오슬러 | William Osler 1849~1919 - 의사.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설립, 저서 『의학의 원칙과 실제』 외 다수
CHAPTER 3. 역사적 사건과 진실_ 한국사 속에 숨은 이야기
이성계와 정도전의 밀담이성계가 대업을 이루게 한 정도전의 결정적인 말이다.
“장군, 제가 바라는 나라는 덕을 갖춘 임금이 예를 갖추는 왕도정치의 나라며, 귀족이 아니라 백성이 근본이 되는 나라입니다. 또한 가문의 혈통이 아니라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벼슬을 할 수 있고, 백성이라면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나라이며, 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어 사는 나라입니다.”“뜻은 좋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소.”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새로운 나라의 필요성을 말하며 이성계가 중심이 되어달라고 말하자, 이성계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대업을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묻자 이성계는 칼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정도전은 자신 또한 피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힘을 앞세워 폭력으로 세운 나라는 망한다고 말했다.그 이유는 정통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덕을 앞세워 백성을 근본으로 세운 나라는 천 년을 간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이성계는 말했다.“정통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그것은 백성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저는 그런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을 듣고도 무덤덤해했다.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부패한 고려를 무너뜨리고 대업을 이루자며 권하는 말이다. 그의 말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것은 반역을 획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마음만 먹으며 그를 반역죄로 처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물론 이성계의 마음을 간파한 정도전의 계산된 말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도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성계에게 대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이 이야기에서 보듯 정도전은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생각을 말할 때는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화통하다’는 것은 바로 정도전을 두고 하는 말과 같다.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직설화법에 넘어갔고 그와 함께 대업을 이루었다.
정도전 | 鄭道傳 1342~1398 - 인기 정치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밑그림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 책략가. 주요 저서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외 다수
율곡 이이와 나도밤나무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 문인이자 유학자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이조판서와 판돈녕부사를 역임했다. 십만양병설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율곡 이이는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명은 현룡으로 어릴 적부터 재주가 출중해서 주목받았다. 어린 시절 그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그러던 어느 날 지나던 한 스님으로부터 현룡이 귀한 상이나 호랑이에게 물려갈 상이라 했다. 이에 놀란 외할머니가 액운을 물리칠 수 있는 묘책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현룡이 아버지인 사위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게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밤나무 묘목 500그루를 구해 심고, 나머지는 씨밤을 파주의 미추산에 심었다. 해가 바뀌고 밤나무 묘목도, 씨밤에서 싹튼 밤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랐다.현룡의 외할머니는 밤나무를 일일이 세어 보았다. 그런데 몇 번을 세어 보아도 한 그루가 모자란 999 그루였다. 외할머니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한 그루가 비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데.”그러자 “여기 있습니다. 나도밤나무랍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외할머니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밤나무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도밤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이렇게 해서 현룡의 외할머니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다. 그 일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현룡이는 무탈하게 영특하고 뛰어난 인재로 자라났다.율곡 이이는 ‘구도장원공’이라 불린다. 그것은 그가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가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주에 의해서도 이지만, 손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정성이 함께해서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율곡 이이 | 栗谷 李珥 1536~1584 - 조선 중기 때 문인, 학자. 십만양병설을 주창함. 이조판서. 지은 책 『성학집요』, 『동호문답』, 『격몽요결』 외 다수
CHAPTER 4. 옛것을 통해 미래를 보다_ 세계고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사상을 잘 알게 하는 대표적인 저서이다.프리드리히 니체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종교와 도덕, 문화, 철학,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으며, 경구aphorism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 약관의 24세에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고전철학을 가르치며 꾸준히 강연활동을 벌였다. 1872년 첫 작품 『비극의 탄생』을 발표했다. 그 후 대학을 그만두고 십여 년 동안 긴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집필활동을 했다. 그는 실존주의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유주의, 힘의 논리 등의 마키아벨리즘, 권위주의, 반대주의 등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사상, 권력에의 의지, 영원회귀사상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인간은 초극되어야 할 무엇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새롭게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니체는 현대문명의 니힐리즘(허무주의)과 퇴폐주의를 비판한다.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이런 삶의 순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사상인 ‘영원회귀의 논리’인 것이다.이처럼 니체는 현대의 허무주의에서 도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힘은 곧 ‘권력에의 의지’인 것이다. 이는 곧 초인사상의 근본적인 의의인 것이다. 즉, 인간 각자는 현 상태를 초극하면서 바람직한 자신을 실현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허무주의 초극을 모색하고, 새로운 인간성을 지향한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침묵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