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시장
이재준 지음 | 모아북스
돈 버는 시장
이재준 지음
모아북스 / 2022년 2월 / 266쪽 / 20,000원
지켜내다
권한은 크게, 행정은 효율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중독되다: 나는 도의원이 되기 전부터 불만도 많고, 제안을 밥 먹듯 내는 ‘제안왕’이었다. 상당수는 무참히 거절당하거나 사장됐지만, 간혹 살아남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아흔아홉 개의 아이디어가 거절당해도 마지막 한 개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질 때,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때 느끼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동일 구간을 지나는데도 고양 버스라는 이유로 서울 버스보다 비싼 값을 받는 청소년 버스요금에 대해 3년간 문제를 제기해 2017년 마침내 요금을 10% 할인토록 했다. 통신 감도를 높인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 학교에 기지국을 설치하는 통신사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지적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건물에 기지국 설치를 제한하는 ‘전자파 안심지대’ 제도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전자파 피해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 사소한 불편이라고 해서 그냥 넘기지도 않았다. 차량의 빠른 흐름을 중시하느라 보행자가 교차로에서 두 번 건너는 불편을 겪게 하는 ‘□자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널 수 있는 ‘X자 횡단보도’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 지금은 보편화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일종의 중독이었다. 안정적인 회사, 안정적인 사업을 그만두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급기야는 당시 국회의원 후보였던 노무현 캠프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도 내 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고양 시장 취임 후 받은 첫 업무보고는 조금 과장하면 절망적이었다. 고양시라는 거대 도시의 미래와 109만 시민의 앞날을 위해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도서관 하나 짓는 것, 기업 하나 들이는 것, 그린벨트 한 평 해제하는 것까지, 국가나 경기도 등 상급기관의 허가가 필요하거나, 수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또 하나, 내가 실망한 것은 관성에 젖은 공직 문화였다.
각종 규제와 불평등을 공직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 수동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물론 공직자를 비롯해 사람들 대부분에게 변화는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이다. 그 때문에 세상을 바꾸기 위한 대부분의 시도는 마찰을 수반한다. 그런데 관행대로 일하면 마찰을 겪을 일도, 갈등을 겪을 일도, 상위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고양시의 변화 역시 없다.
도시 브랜드 조사에서 고양시는 늘 전국 다섯 손가락에 들고, 오랜 시간 고양시는 ‘살기 좋은 도시’라는 그럴듯한 타이틀 속에 안주해왔다. 물론 고양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도시의 본질인가, 하는 것이다. 살기 좋은 도시의 정의는 늘 변하게 마련이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를 살기 좋은 도시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새 건물을 짓고, 도로를 넓히고, 공원을 만들었다. 그럴듯해 보이는 도시들이 기성품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도시의 ‘본질적 기능’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시 안에 시민의 생계를 책임질 직장이 있는지, 폭넓은 기회와 활동을 위한 교통망을 잘 갖추고 있는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위한 소통의 공간이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고양시는 계속 살기 좋은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영광만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허울 좋은 도시로 남을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고민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부터였다. ‘고양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단절 없이 성장할 것인지’라는 물음으로 고양시를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당장 큰 변화는 어렵지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바꾸어 가면 언젠가 더 큰 기회도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바꾸기 쉬운 것,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는 관성에 젖은 고양시 행정을 향한 최초의 경고였다. 그런데 내용의 변화를 위해서는 형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불필요한 관행의 타파였다.
우선 직원 스스로 불필요한 업무를 찾아 폐지할 기회를 먼저 주었다. 이른바 ‘워크 다이어트’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80개가 넘는 관례적 업무를 폐지하고, 여기에 쓰이던 19억 원의 예산도 덩달아 줄일 수 있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업무를 없앤 한 8급 직원은 고마움을 다음과 같이 표시해왔다. “전임자가 하던 일이라 저도 아무 의심 없이 따라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왜 제가 그걸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해도 남은 소모성 업무는 아예 다음 해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있으나마나 한 각종 위원회도 손질했다. 분야별로 자문이나 의견을 주는 위원회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꼭 필요하지만,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마구잡이로 만들다 보니 150여 개로 늘어나 업무 부담을 늘리고 있었다. 단 한 차례도 회의도 개최하지 않은 채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 ‘예산 먹는 하마’로 남아 있는 위원회도 상당수였다. 원래 설립 목적을 잃거나 기능이 중복된 30개의 위원회를 통폐합했다.
부실한 경영 문제가 늘 언론에 단골처럼 오르내리지만, 아무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고양시 산하 공공기관도 함께 ‘다이어트’를 했다. 경영 성과와 관계없이 매년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던 관행적 예산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불용액 이월로 잠자고 있던 잉여금도 30억 원이나 반납을 받았다. 그리고 산하기관이 소유한 부지를 민간에 임대 시 기존에는 ‘엿장수 마음’인 양 주먹구구식으로 임대료를 매겼지만, 앞으로는 공개입찰에 부쳐 최소한 주변 공시지가와 임대료를 맞출 수 있도록 했다.
절감한 것에는 불필요한 예산과 행정력뿐만이 아니라 낭비되던 민원인의 ‘시간’도 포함됐다. 어느 토요일, 한 남성이 당직실로 찾아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월요일에 신고 서류를 접수했는데 이번 주에는 될 줄 알고 마냥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 남성은 “당장 꼭 필요한데, 서류만이라도 찾아갈 수 없느냐”라고 애원했고, 당직자는 “저희도 방법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궁금한 마음에 이 민원의 처리기간을 찾아보니 7일이었다. 그런데 규정상 마지막 날이 공휴일일 경우 처리기한이 그다음 날이 되므로, 월요일에 신청하면 사실상 그다음 주 월요일로 처리기한이 넘어간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왜 공무원은 주 5일 근무하는데 민원 처리기간을 7일로 운영하는 것일까?
조금 더 찾아보니, 대부분의 민원 처리기간이 5일이 아닌 7일, 10일이 아닌 14일로 법령에 정해져 있었다. 기한만 보면 각각 ‘1주, 2주짜리’ 민원이지만 사실은 ‘2주, 3주짜리’ 민원인 것이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민원 처리기간 단축제도다. 고양시만큼은 법정 처리기한보다 앞당겨 민원을 처리하기로 했다. 480여 종에 달하는 민원 대부분을 단축했지만, 주 목적은 7일을 5일로, 14일을 10일로 앞당기는 것이었다. 최대 4일로 일수로는 크지 않지만, 민원 당사자에게는 1~2주씩 처리기한이 앞당겨지는 체감 효과가 있었다. 특히 약국 개설, 지하수 개발 이용 준공신고, 토지 사용허가, 어린이집 변경인가, 거래가격 신고 등은 며칠만 더 빨리 처리해주어도 사업자의 비용이 절감되고, 시민도 불편을 하루빨리 덜 수 있게 됐다. 3년간 시민들의 총 67만 시간의 소중한 시간이 단축됐다.
돈 버는 시장
시장이 돈 번다고?: 시장이 돈을 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예산을 쓰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시장도 돈을 벌 수 있다. 불필요한 공사 또는 사업을 없애거나, 시스템을 효율화함으로써 예산을 절감하거나, 시민의 소유였어야 할 정당한 재산과 비용을 환수하는 것 등이 그런 일이다. 일례로, 도의원 시절 이뤄낸 ‘청소년 버스요금 할인’을 통해 경기도의 부모들은 연간 약 15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당시 같은 수도권인 서울과 인천은 청소년 버스요금 할인율이 40%였는데 경기도는 20%에 불과했다. 심지어 서울 버스와 경기 버스가 동일 노선을 통과하는데도 요금이 다른 까닭에 고양시 학생들은 가능한 한 요금이 싼 서울 버스를 이용했다.
불평등을 고치기 위해 경기도에 40%까지 할인할 것을 요구했지만, 요금 할인이 첨예한 사건이다 보니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정면 돌파로는 승산이 희박했다. 해답은 의외의 실마리에서 나왔다. 당시 경기 남부에서 버스전복 사고가 일어난 후 25년간 유명무실했던 버스운송사업법의 ‘입석 금지’ 규정이 소환됐고, 결국 버스 입석 금지 조치가 단행됐다. 경기도는 입석 금지 조치로 줄어든 버스 수용인원을 확대하기 위해 약 166대의 광역버스 증차를 허용했고, 보조금 360억 원이 추가로 투입됐다. 그러나 입석 금지 조치는 잠시만 지켜지다가 어느새 다시 입석으로 환원됐다. 지켜지지 않을 법을 들이대며 땜질 처방에 급급한 결과, 경기도에 남은 것은 늘어난 166대 버스와 360억 원의 보조금 낭비였다. 이 기막힌 부실을 파고들었다. 원가자료와 운행기록을 분석해 도정질문에 나섰고, 도지사도 면담했다. “청소년 요금 할인은 안 되고, 졸속 버스 승차는 되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 버스운송업체와 도가 비용을 반반 정도 부담하기로 하고, 청소년 요금을 30%까지 할인하기로 했다.
시장이 된 후, 떠밀리듯이 도입할 뻔했던 ‘최첨단 누수방지 자동 시스템’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도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흔히 지자체들은 최첨단 장비를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도입하곤 하는데, 최첨단 누수방지 자동 시스템은 상수도관 일정 구간마다 자동인식 밸브를 달아 통과하는 수량을 측정함으로써 누수를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내유동 한 곳에 설치하는 데 공사비가 약 200억 원이나 소요된다고 했다. 고양시 39개동 모두 설치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고양시가 상수도관에서 새어나가는 수돗물로 인해 수천억 원 비용을 낭비하고 있고, 이 장비가 누수 비용을 절감해 주는 효과가 있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설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의 누수가 그만큼 심각한지, 그리고 이렇게 큰돈을 들여야 할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비용과 현황을 차근차근 뜯어봤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담당부서에 되물었다. “매년 한 개 동씩 설치한다고 해도 그때마다 200억 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경기도 전체를 합해도 누수로 낭비되는 비용이 연간 430억 원(2012년 기준)쯤 됩니다. 경기도가 31개 시ㆍ군이니 인구나 면적으로 나누면 고양시의 누수 비용은 30~40여억 원에 불과하겠죠. 과연 이 장비를 설치하는 게 이익인가요?” 담당 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수도관 수명이 20~30년 정도 되는데, 이 상수도관들이 녹슬고 나면 누수방지장치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때 또 장치를 설치해야 하나요?” 이렇게 해서 결국 최첨단 누수방지 시스템은 채택되지 않았고, 매년 2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해 더 시급한 사업에 쓸 수 있게 됐다.
찾아오다
단 한 번도 양보하지 않은 땅
빈 땅의 정체: 고양시장 취임 후 내 손으로 맨 처음 쓴 조례, 그리고 통과하기까지 가장 큰 진통을 겪은 조례가 ‘미래용지 지정에 관한 조례’인데, ‘미래용지’라는 용어는 이 조례를 통해 최초로 탄생했다. 고양시 1호 미래용지는 일산 신도시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축구장 8개 규모의 땅이다. 아무리 부동산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미래용지를 보면 상당히 값진 땅임을 직감할 수 있다. 좌측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킨텍스 국제전시장이, 우측으로는 고양시의 랜드마크 일산 호수공원이 양 날개처럼 펼쳐지고, 2024년이면 강남까지 20분에 주파하는 GTX-A 역사도 지척에 들어선다. 실제로 이 땅은 ‘일산의 마지막 남은 황금부지’라 불리는데, 인근 아파트는 고양시에서 거의 최고가를 호가한다.
그러나 이 땅은 20여 년 동안 빈 채로 남아 있었고, 2019년 미래용지로 지정해 향후 30년 동안 매각과 개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의아한 눈빛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금싸라기 땅을 그렇게 오래 비워두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은 너무 좋은 땅이기에 비워둘 수밖에 없는 땅이 되었다. 그런데 미래용지 조례는 단지 5만5천㎡ 규모 땅을 팔지 못하도록 규정한 조례가 아니라, 베드타운 고양시의 미래를 위한 엄중한 선언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항변이다.
마지막 남은 황금부지, C4: 미래용지의 원래 이름은 ‘C4부지’이며, 2005년 문을 연 ‘킨텍스’의 성공을 위해 탄생한 땅이다. 킨텍스는 각종 규제에 묶여 변변한 자족시설 하나 없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해가던 고양시의 구원투수였는데, 고양시에서 시작된 전시산업의 날갯짓이 먼 뉴욕까지 폭풍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며 킨텍스 외관은 나비 모양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킨텍스라는 나비는 홀로 날 수 없었다. 교통과 숙박시설, 이 두 가지 요소가 킨텍스를 뒷받침해주어야 세계박람회나 국제회의 유치가 수월해진다. 그런가 하면, 방문객이 전시장만 구경하고 돌아가게 해서도 안 된다. 단순히 행사 입장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볼거리’와 ‘가치’를 파는 것이 킨텍스를 만든 궁극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근 상권, 관광지, 숙박, 관련 기업 등 부대시설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복합관광단지가 형성될 때 비로소 관광객들이 전시장 밖에서도 지갑을 열고, 고양시 역시 킨텍스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를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고양시는 킨텍스 일대를 ‘복합 마이스 단지’로 조성하기로 하고, 킨텍스가 문을 열기 5년 전부터 킨텍스를 둘러싼 땅 약 34만㎡를 빚을 내어 사들이고, 이 부지들은 온전히 킨텍스의 성공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부지는 총 14곳 구역으로 나뉘었고, 구역별로 호텔, 무역센터, 업무시설, 공항터미널 등 용도가 엄격히 제한됐다. 또 멀리서도 킨텍스 전시장이 잘 보이도록 건물 높이도 저층으로 규제했다. 고양시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지를 등에 업게 된 킨텍스는 이제 나비처럼 비상할 일만 남은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초심과 의지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훼손되어 갔다.
킨텍스 개장 15년이 지난 지금, 이 부지들에는 자동차전시관과 아쿠아리움, 호텔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지원시설이 없다. 8,600세대의 고층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 대형마트, 백화점만이 주변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킨텍스 지원부지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킨텍스와 별개의 부지처럼 보인다.
참고로 부지 조성 이후, 지난 10년 동안 지원부지 대부분이 용도가 변경되어 민간에 팔려나갔다. 원하는 대로 자족시설이 유치되지 않자 당초에 투자한 토지매입비를 빨리 회수하기 위해 주거단지 등으로 용도를 변경해 매각한 것이다. 킨텍스는 결국 고립됐다. 마트와 고층아파트로 빙 둘러싸인 킨텍스에서 방문객들은 고양시의 다른 매력도 느낄 새 없이 그냥 박람회만 보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C4부지’는 모두 팔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킨텍스 지원부지다. 업무ㆍ숙박ㆍ판매시설 용도로, 14개 부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입지도 가장 좋은 부지다. 처음에는 이 노른자 땅이 왜 아직도 임자를 만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C4부지는 팔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좋은 땅이라서 팔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땅 파는 시장은 봤어도, 안 판다는 시장은 처음 봅니다”: 그동안 사겠다는 사람은 넘쳤지만, 정작 ‘팔 만한’ 사람이 없었다. 시에서는 이미 몇 차례 매각을 시도한 상태였다. C4부지는 면적의 60% 이상에 업무시설, 호텔, 판매시설 등을 지어야 한다. 가장 크고 비싼 부지에 엄격한 판매 조건을 내걸자 수년 동안 C4부지를 사겠다는 업체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2017년, 개발업체 측이 사업계획을 직접 제안하고 그중 가장 적합한 업체를 선정하는 공모를 하자, 사업자들이 관심을 두고 몰려들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모두 킨텍스 지원시설이 아니라 ‘집’을 짓겠다며 달려든 것이다. 입지가 좋다 보니 아파트나 주거용 오피스텔을 지으면 막대한 수익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에서는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공공과 민간의 동상이몽 속 C4부지는 다시 방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