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생각 수업
임유진 지음 | 미래문화사
유대인 생각 수업
임유진 지음
미래문화사 / 2021년 4월 / 448쪽 / 15,800원
Ⅰ. 탈무드와 유대인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유대인의 역사와 탈무드: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일부 유대인은 난공불락의 요새 마사다에서 결사항전을 펼쳤지만, 73년에는 끝내 그마저도 함락되고 말았다. 로마는 그 기념으로 개선문을 세우고 금화를 만들었다. 그 금화에는 라틴말로 ‘유대아 데빅터’ 및 ‘유대아 가프터’라는 글귀와 로마 병사의 발밑에 꿇어 앉아 있는 유대 여인을 조각해 넣었다. ‘유대아 데빅터’라는 말은 ‘유대를 격파하였다’는 뜻이고, ‘유대아 가프터’라는 말은 ‘유대를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를 맞게 되었고, 로마인들은 승리에 도취했다. 그런데 승리에 도취해 있던 로마제국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패배의 고배를 마셨던 유대인들은 살아남아 시오니즘을 앞세워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얍복강 나루를 건너려 할 때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 다음 얻은 이름이다.
《탈무드》는 5천여 년 동안 유대인들이 생활하면서 축적해온 지적, 사회적, 민족적, 종교적인 생활 규범이라 할 수 있다. 《탈무드》는 각종 규례와 법규, 율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법전은 아니며, 역사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만 그 자체가 역사책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현자와 학자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지만 인물사전도 아니다. 또한 민속을 기록하여 전하는 보고이지만 인류학 논문집도 아니다. 랍비들의 사상이 기록되어 유대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신학의 논문집이 될 수도 없다. 《탈무드》는 체계적인 철학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고 있으며, 광범위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백과사전은 아니다. 종교책도, 역사책도, 윤리책도, 철학책도 아니지만 문학과 사상이 고루 포함되어 있다.
또한 《탈무드》는 단순히 사고와 결론을 집대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독자적인 해석과 분석으로 탈무드의 주석자로서 풀이에 가담할 수 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폭넓고 깊게 그리고 새롭게 전하고 있다. 그들의 전통은 신의 계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 연구와 응용은 인간의 손에 있었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신으로부터 받은 이성을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11세기에 사울 왕이 가나안 땅의 선주민 팔레스타인과 싸워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명실상부한 기점이다. 그리고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이곳에 왕궁과 야훼의 성전을 세웠다. 그 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윗 왕가와 더불어 야훼의 성전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적 자각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솔로몬 왕이 죽고 이스라엘의 12지파(루우벤ㆍ시므온ㆍ레위ㆍ유다ㆍ스불론ㆍ잇사갈ㆍ단ㆍ갓ㆍ아셀ㆍ납달리ㆍ요셉ㆍ베냐민) 중 유다족과 시므온족을 제외한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여 북왕국을 탄생시켰다(기원전 922년). 북왕국은 여로보암 1세부터 약 200년간 19명의 왕이 통치했다. 이 북왕국을 남왕국 유다족과 구별해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족과 갈라져 지내다 보니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이어졌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에 의해 북왕국이 무너졌고,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가 남왕국을 멸망시켰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족들은 바빌로니아(이집트ㆍ애굽)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로 살면서도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시련으로 인식하고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시나고그를 세워 전통을 유지했다. 에스겔이 그발 강가의 성읍 델아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도,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던 다니엘이 서기관 모임을 조직하고 꿈 해몽과 벽에 쓰여진 외문자를 해석하여 총리가 된 것도 이때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반세기 만에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 귀환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남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당시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게 되면서 유다족과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동의어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이를 기점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유다족을, 유다라는 말은 유대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 아래 들어갔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도 독립정부를 형성하여 로마제국에 저항하였으나 티투스 황제 때 엄청난 탄압을 받아 세계 각처로 흩어져 오랫동안 유랑하며 박해받는 생활을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후 2천 년 동안 유랑인으로 살면서도 《성서》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탈무드》를 지혜의 받침대로 삼았다.《탈무드》는 시대를 뛰어넘어 유대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데 이제 막 인쇄되어 나온 신문처럼, 샘물처럼,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로마인들은 유대 민족을 점령한 후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만들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거주해서는 안 된다고 출입을 금지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렇듯 유대 민족은 그리스 로마에 점령되었지만, 그리스 로마 문명은 결국 유대주의 모태에서 싹튼 문명이었음이 로마 멸망 후 1,600여 년이 지나서야 밝혀지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서구 문명의 정신, 도덕, 윤리, 사상의 뿌리는 결국 유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서구인들의 가구나 생활용품은 그리스 로마인들의 것이지만 그 문화는 누가 뭐래도 유대인들이 지녀온 유대인풍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유대인들의 문화는 흐트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강물처럼 흘러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세 대륙에 흩어져 있었지만 하나의 민족이며, 하나의 종교와 언어, 그리고 여호와의 법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들은 이교도의 국가에 살면서 국가 안의 국가로 조직되어 서로를 보호하고 의지했다. 그중에 《탈무드》는 법과 윤리로서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하나로 결합되어 사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결국 유대인들만의 보이지 않는 국가 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말이다. 《탈무드》는 이 국가연합의 사법, 무역 규칙, 상업, 부동산, 손해, 계약의 이행 등 광범위하게 경제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법으로서 기능한다. 《탈무드》를 가르치는 유대교의 랍비는 종교적 관습뿐만 아니라 상거래, 국제 무역 문제, 국제법의 판례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국제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대인들의 무역활동 규모가 커지자 각 나라에서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고, 유대인들이 자신들 국가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불안감이 자국 내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전통을 따르고 서로 소식을 전했을 뿐 살고 있는 곳에서 나라를 갖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국가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아주 작은 소수 민족이다. 더욱이 나라를 잃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으며, 그 수를 합쳐 봐야 겨우 2천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겪은 핍박: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은 유대인이라는 의미이다. 유대인이 디아스포라를 맞은 것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면서부터였다. 전쟁으로 나라가 멸망하자 유대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세계 각국을 유랑하며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성서》 ‘토라’를 통하여 자기들의 조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신이 어떻게 자신들을 세웠는지 상세히 알고 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8세기경 유목민으로,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성서》에 유대인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이 무렵의 인물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땅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중동의 소수 민족으로 이리저리 쫓기면서 살았다. 지형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천혜의 요충지이자 변란이 서로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런 변란 속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가는가 하면, 바빌로니아로 납치되어 노예로 살기도 했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유대 왕국은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등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은 로마에 정복되어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그중 일부는 아랍과 터키로 가 나라 잃은 설움과 멸시를 겪으며 2등 시민으로 살았다. 아랍과 터키로 이주한 유대힌들은 그다지 심한 박해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으로 건너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끈질긴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선택함으로써 게토에 갇히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치욕의 노란색 별을 택했다. 나중에는 노란색 별이외에도 특별히 정해진 복장을 입어야 했고 그리스도교인과 길에서 마주치면 비켜서서 길을 양보해야만 했다. 시나고그를 세우는 것도 일체 금지되었다. 개종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육체적 제한 조건을 토라와 《탈무드》의 빛으로 비추면서 지성과 신앙으로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어 각국으로 밀려들자 로마 교황 바울 4세는 1555년 유대인들을 따로 살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부락을 게토라고 불렀다. 게토는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터키,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시행되었으며 19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에 얹혀사는 처지라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칼이나 창을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벽을 쌓거나 울타리를 쳐야 했다. 하지만 나라가 없으므로 지켜야 할 땅도 군대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게토에 모여 사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1492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을 추방했다. 이들 대부분이 북아프리카와 터키로 이주했으며, 게토의 다른 표현인 슈터틀이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비엔나와 프랑크푸르트와 프라하 등 유럽 도시로 확대되었다. 비록 나라는 없었지만 유대인들은 배움으로써 유대인이 되고 《성서》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왔다. 흔히 국토를 잃었을 때 민족이 멸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버리고 점령자에게 동화될 때 확실하게 멸망하는 것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고대부터 학문을 숭고한 것으로 여겼으며,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존재였다. 유대인의 아이들은 용사나 왕자를 영웅이라 여기기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현인이 되는 것을 이상형으로 숭상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식을 갖고, 12세가 되면 ‘바 미츠바’라는 성년식을 치렀다. 이 성년식은 지금까지 받아 온 가정교육을 끝내고 성년이 되는 것을 뜻하는데, 이때 《성서》나 《기도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은 누구나 글을 안다.
유대인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차별 없는 민주주의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사회는 고대로부터 철저한 평등주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누구라도 교육을 받고 배울 권리가 있으며, 《성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혜를 넓혀 갔다. 그들의 배움의 욕구는 《성서》에만 그치지 않고 성서 외에도 많은 책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탈무드》이다. 《탈무드》를 펼쳐 보면 최초의 단 한 사람, 아담이 등장한다. 단 한 사람, 한 인간을 지칭한 것은 아담 이후의 어느 한 사람이건 그의 세계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한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이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탈무드 배움을 날줄로 실천을 씨줄로 삼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책의 겉표지나 뒤표지와 같다’고 《탈무드》는 말한다. 책의 겉표지에 제목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야 할 방향과 살면서 겪어야 할 수많은 체험을 그 책 속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일주일의 모든 날을 교육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낸다. 유대인 철학자 이븐 데이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을 당신의 친구로 삼으라. 당신의 동반자로 삼으라. 서재를 당신의 낙원으로 삼으라. 과수원으로 삼으라. 향기로운 과일을 그곳에 모으라. 그곳에서 꺾은 장미로 당신을 아름답게 장식하라. 정원을 돌며 새로운 경치를 구경하라. 그러면 당신의 희망은 항상 신선하고 당신의 영혼은 기쁨 속에서 넘쳐흐르리라.”
사람이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 나이가 많아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사람은 배움으로써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청춘이란 나이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의욕적이고 생기발랄한 태도는 말 그대로 젊음이다. 따라서 삶의 태도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탈무드》는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많은 것을 지적한다. 걷는 법, 뛰는 법, 먹는 법, 앉는 법 등 살아가는 온갖 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해야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까지 세세히 일러주고 있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배우라고 권하고 또 그렇게 배운다. 배움에는 아래위가 없으며, 이는 랍비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보다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존귀하다’는 말은 ‘포도송이가 무거우면 아래로 숙인다’는 말처럼 유대인들에게 자극적인 교훈이다.
“매일 오늘이 당신의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매일 오늘이 당신의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하라.” 인간은 하루하루를, 그리고 1시간 1시간, 1분 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인생인 것이며, 1분 1초가 인생인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 갖추어진 삶이고 사소한 것 같은 기본의 소중함이다. 만약 오늘이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하루를 가장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만약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해 충만한 하루가 되도록 힘쓸 것이다. 삶은 여러 번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아니다. 그 하루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이런 인생을 어떻게 헛되게 살겠는가? 만약 헛되게 산다면 내 생명에 대한 죄인일 수밖에 없다. 헛되지 않게 살기 위해 배움을 날줄로 삼고 실천을 씨줄로 삼아 삶의 양탄자를 짜 나가야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과 탈무드: 유대인들은 기도의 의미를 ‘히트파렐’이라 한다. ‘히트파렐’은 ‘스스로 평가한다’ 혹은 ‘자기를 달아본다’는 의미다. 이는 여호와 앞에 자기가 얼마만큼이나 부응했는지 재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행위가 얼마나 옳았는지, 얼마만큼 세상을 옳게 만들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기도를 한다. 자기가 구하는 것, 자기가 갈망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은 여호와에게 욕망의 향수를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기도는 ‘신이 바라는 자기’를 만들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