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헌법
조너선 라우시 지음 | 에코리브르
지식의 헌법: 왜 우리는 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가
조너선 라우시 지음
에코리브르 / 2021년 12월 / 432쪽 / 21,000원
“무사히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끔찍한 발언이네요”
- 혼돈과 동조가 인식론적 위기를 초래했다
인식론적 위기: 견해차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진리를 찾을지 생각할 때면 미국인은 보통 비유에 의지한다. 바로 사상의 시장이라는 비유가 그것이다. 어느 정도는 괜찮은 비유지만, 불완전하다. 일종의 벼룩시장에서 생각들이 개인에 의해 거래되는 이미지, 혹은 육신을 떠난 생각들이 자체의 천상계에서 충돌하고 경쟁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장에 있는 사상들이 서로 직접 말을 거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 우리의 대화는 학술지와 신문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 같은 제도를 통해 중재된다. 그리고 진실성과 팩트 체크 같은 밀도 높은 규범 및 원칙의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동료 평가자와 편집자 같은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에도 의존하며, 시스템 전체가 가치의 기초, 곧 지식을 만드는 방식에는 옳고 그른 게 있다는 공동의 이해에 의존한다. 그런데 이런 가치ㆍ규칙ㆍ제도는 미국 헌법이 정치를 위해 하는 역할을 지식을 위해 수행하는데, 사회적 경합을 평화롭고 생산적인 경로 쪽으로 밀어붙이는 통치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그것들을 통틀어 ‘지식의 헌법’이라 부르려 한다.
과학ㆍ저널리즘ㆍ정치ㆍ일상생활에서 진실성이란 보통은 법률적 요건이 아닌 시민 규범인데, 그것이 21세기에 극심한 압력을 받았다. 가장 충격적인 건 미국의 대통령이 거짓말에 관한 한 알려진 모든 기록을 신나게 갈아치웠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라고 끼적이고 싶은 분도 있겠지만, 미국 정치계의 어떤 거물도 그만큼 뻔뻔하고 방자하고 왕성하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사실에 대한 그의 경멸적 태도보다 한층 더 강력한 것이 어쩌면 정정(correction)에 대한 그의 경멸적 태도였을 게다. 참고로 1690년 북아메리카 최초의 신문이 인쇄에 들어갔는데, 《퍼블릭 오커런스》라는 이름의 신문은 곧 검열 당국에 의해 짓밟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문은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1면에서 다음과 같이 자사의 강령을 선언한 것이 한몫했다. ‘수정(Curing)을 위해, 아니 적어도 우리 사이에 팽배한 거짓된 기운의 미혹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가 마땅히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적지 않을 것이며, 최고의 정보 출처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에 어떤 중대한 실수가 발생하면 정정할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책임, 그에 따라 기록을 바로잡는 책임이라는 발상은 주류 언론을 확립하는 데 문턱이 되는 개념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초로 남아 있다. 참고로 2017년 CNN의 몇몇 중진 언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 심복이 위험한 러시아 헤지펀드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도했는데, 그것이 오보로 밝혀졌다. CNN은 보도를 철회하며 사과했고, 거기에 책임 있는 언론인들이 CNN의 기준을 위반했다고 결론지은 후 강제 퇴출시켰다. 다음과 같은 트위터 메시지가 한 가지 반응이었다. “보도를 정정하고 불필요한 인원을 정리할 만큼 진실에 유념하는 CNN에 찬사를 보낸다. 이게 진짜 뉴스지!” 하지만 대통령이 트위터로 날린 말은 이랬다. “와, CNN ‘러시아’ 특종 철회와 직원 3명 강제 사임. 그들이 내보내는 다른 사기 보도는 전부 어떨까? 가짜 뉴스!” 그리고 이것도 있다. “이렇게 해서 가짜 뉴스 CNN이 곤경에 빠졌다는데, NBC와 CBS와 ABC는 어떨까? 망해가는 @nytimes(《뉴욕 타임스》)와 @washingtonpost(《워싱턴 포스트》)는? 그것들 전부 가짜 뉴스!” 대통령의 세계관에서는 방송사가 책임을 추궁하다가 진정성이 아닌 자신들의 부패 ? 그리고 사실상 뉴스업계 전체의 부패 ? 를 입증한 격이었다. 거의 같은 분위기로, 2018년 대통령과 공화당전국위원회는 자칭 ‘가짜 뉴스 시상식’을 요란하게 홍보했다. 대통령과 위원회가 주목하지 않은 것은 가짜 뉴스라고 추정된 11건 중 최소 7건은 그걸 발표한 매체가 즉시 정정 보도를 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대통령과 위원회는 해당 뉴스 매체가 가짜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보도들이 가짜인 걸 알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행위가 어느 정도는 강박적이거나 과대망상적이거나 병적이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 역시 의도적이지 않았을 리 없다. 2013년 @backupwraith란 아이디 사용자는 이런 트윗을 했다. “나는 @realDonalTrump가 트위터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트롤링(trolling, 게임 문화에서 파생된 용어로 악의적이거나 주제와 무관한 온라인 게시글을 고의로 올려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가리킴)의 대가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트윗을 인용하며 이렇게 언급했다. “멋진 칭찬!”
2018년 CBS 뉴스의 레슬리 스탈(Lesley Stahl)은 선거 캠페인 중인 트럼프에게 언론 공격을 그만둘 계획이 있냐고 되물었다. “그는 ‘내가 왜 그러는지 알아요? 당신들 전부의 신임을 떨어뜨리고 품위를 손상시키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나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면 아무도 당신들을 믿지 않도록 말이지’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스탈의 이런 언급을 부인하지 않았다. 왜 그러겠는가? 트럼프와 그의 댓글 부대는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우리는 트럼프도 알고 있었다는 걸 안다. 그가 우리한테 경고했었기 때문에. 참고로 2004년 트럼프는 NBC 뉴스의 크리스 매슈스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방금 끝난 공화당 대선 후보 전당 대회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해 대통령 경선에서 공화당원들의 골칫거리는 자신들의 후보인 조지 W. 부시는 안전하게 텍사스주 방위 공군으로 있으면서 베트남전이 끝나길 기다렸던 반면, 그의 적수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전투에서 은성훈장ㆍ동성훈장에 용맹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2개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진실을 위한 고속정 참전 용사들’이라는 집단은 케리의 전시 기록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공적인 프로파간다 캠페인을 벌였다. 아래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트럼프] 저는 끝까지 뉴욕 전당 대회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잘 해냈죠, 공화당원들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껏 본 가장 위대한 반전은, 부시가 전쟁 영웅이고 케리는 아니라는 구도로 거의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위대한 반전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매슈스] 왜죠? [트럼프] 글쎄요, 분명 부시와 부시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을 고속정 집단의 모든 일이 공교롭게도 탁월했다는 거죠. 케리한테서 전쟁 영웅 그딴 걸 모두 빼앗아 부시한테 거의 안겨준 셈이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부시는 군 복무를 안 하고 있었어요. 그건 우리가 알잖아요. [매슈스] ……어쩌면 정치에 불필요한 거친 질문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관해 여쭤보겠습니다. 이번 주에 엄청난 터프 가이 딕 체니 부통령이 만일 우리 미국인이 케리를 선출한다면, 치명적인 (테러리스트) 공격의 위협에 근본적으로 직면하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을 뽑으면 공격을 받게 될 거라는 얘깁니다. [트럼프] 글쎄요, 그가 무사히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끔찍한 발언이네요.’
‘무사히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끔찍한 발언’이라니. 트럼프는 최초의 거짓말쟁이 정치인은 아니다. 하지만 10여 년 뒤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고속정 캠페인처럼 사전 계획된 여느 정치적 음해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많은 이들이 그가 한 거짓말의 규모와 뻔뻔함에서 예사로운 정치적 의견 제시 및 과장과는 다른 무언가를, 더 불길한 목적을 가졌고 훨씬 혼란스러운 결과를 불러올 무언가를 감지했다. 조지 오웰의 『1984』 세계에 나왔던 무언가를, “당이 여러분의 눈과 귀의 증거를 거부하라고 명했다. 그것이 그들이 내린 가장 필수적인 최종 명령이다.” 트럼프와 그의 미디어 반향실은 공적 영역에서 진실과 허위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거짓말을 정상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허위 정보의 기술을 갈고닦았다. 그들은 진실에 대한 경멸을 보이려는 게 아니고서야 거짓말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때조차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취임식 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우겼을 때처럼 말이다. 거창하고 기상천외한 거짓말도 했다. 트럼프가 명명백백하게 패배한 선거를 이겼다고 우기며, 수 개월간 허위 정보 캠페인(폭력적인 내란 선동죄로 탄핵에 들어갔을 때에야 종지부를 찍었던 캠페인)을 벌였을 때처럼 말이다. 그들은 진실과 거짓, 아니 크고 작은 거짓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었다. 그들의 목표는 대중의 구분 능력을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건들을 지켜보며 여러 시사평론가와 학자들은 자유주의 질서 자체의 토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은 단지 트럼프와 그의 정치적 협력자뿐 아니라 트롤러(troller, 트롤링 행위를 하는 사람들. ‘어그로꾼’과 비슷한 뜻), 외국 활동가, 심지어 검색 봇(bot, 로봇의 약자로 자동 인터넷 프로그램을 가리킴)과 알고리즘한테서도 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역사학자 소피아 로젠펠드는 자신의 저서 『민주주의와 진실: 짧은 역사』에서 “우리의 현재 관행은 민주주의적 삶에 필요한 지적(知的) 신뢰 및 협동의 형태를 약화시키려고 하고 갈수록 더 극명하게 막강한 힘의 결과로 ‘진실’이 결정되도록 만들면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라고 썼다.
사상 초유의 묘안: 이 책은 자유주의의 인식론적 운영 체제인 지식의 헌법, 즉 견해차를 지식으로 변환하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설명하고 옹호한다. 그런데 이 체제는 사회적 마법에 의해 자동으로 자체 조립된 것이 아니며, 힘겹게 싸운 전투와 힘들게 얻어낸 규범 및 제도의 산물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것은 자체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따금 무너지기 쉬운 일련의 사회적 환경 및 이해에 의존하므로, 그것을 알고, 확인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식의 헌법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현대의 위협을 탐구함으로써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관한 더 명확한 이해로 그 옹호자들을 무장시키고 싶다.
이 책은 인간이 인지적 오류를 저지르고, 그것을 부족(tribe)의 견해차로 전환시키고, 지식을 두고 전쟁으로 치닫는 이유에 대한 연구를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여러 세대의 철학자 및 과학자들이 현대의 인식론적 질서를 발전시켰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이 책은 지식의 헌법의 설계 방식 ? 미국 헌법처럼 조정을 강제하는 사회적 메커니즘 ? 과 현실 기반 공동체의 경계를 탐구한다. 그리고 후반부는 역사와 이론으로부터 동시대의 여러 가지 도전 과제로 넘어가며, 21세기의 가장 불편한 인식론적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요컨대 디지털 미디어가 대화와 지식보다는 분노와 허위 정보에 더 잘 맞춰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진실 친화적인 디지털 설계 방식은 가능하며, 이는 디지털 플랫폼이 사실에 대한 제도적 책임을 떠맡기 시작함에 따라 이미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 그리고 우리 ? 은 두 가지 반란과의 싸움을 맞이할 처지에 있다. 바로 트롤링 문화라고도 부르는 바이럴(viral) 허위 정보와 대체 현실(alternative reality)의 전파, 그리고 취소 문화라고도 부르는 강압적 동조와 이념적 블랙리스트의 확산이다. 전자는 주로 우익과 포퓰리스트(populist,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정치인), 후자는 주로 좌익과 엘리트주의자다. 전자는 무질서와 혼란을, 후자는 동조와 사회적 강요를 조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비슷하고, 묘하게도 사실상 협력자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트롤링 문화와 취소 문화의 공통점은 프로파간다 전문가들이 보통 정보 전쟁이라 부르는 것의 기법이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 설득을 활용하기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회 및 미디어 환경을 조작하는데, 그들은 하찮거나 비체계적이거나 흐트러져 있는 듯 보일지 몰라도, 공격적이고 팽창적이며 인간의 인지적ㆍ감정적 취약성에 대한 정교한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백악관(4년간)과 학계의 상당 부분을 비롯해 지휘 기관의 고지를 확보해왔고, 디지털 기술 역량을 이용해 자신들의 속도와 도달 범위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그들이 제기하는 위험에 대한 의식이 고취됨에 따라 고무적인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자연 상태: 부족적 진실
? 편향, 집단 사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인식론적 전쟁
당신은 편향됐고, 나는 그렇지 않아: 인지는 온갖 종류의 왜곡에 시달린다. 벤 야고다는 《애틀랜틱》에 “100가지 정도의 굳건한 (인지적) 편향이 존재하는 것으로 반복해서 나타났으며,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망칠 수 있다”고 썼다. 우리에게 왜 지식의 헌법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려는 목적에 비춰본다면, 몇 가지 편향이 특히 중요한 듯하다. 하나는 확증 편향으로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작용하며, 우리의 사고방식을 편파적으로 만든다 ? 가까운 친족인 동기화된 논증이 그러하듯. 또 하나는 동조 편향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더 많이 작용하며, 우리의 상호 작용 방식을 편파적으로 만든다 ? 가까운 사촌인 인식론적 부족중심주의가 그러하듯.
“확증 편향과 동기화된 논증은 정치적 맥락과 비정치적 맥락 양쪽에서 널리 조사 및 탐구되어 왔다.” 이는 랜드 연구소의 제니퍼 카바나와 마이클 리치가 2018년 보고서 《진실의 쇠퇴: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감소하고 있는 사실 및 분석에 대한 초기 탐구》에서 쓴 내용이다. 신념에 대해 겸손하고, 자신이 틀릴 때가 많다는 걸 가정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정보와 견해를 찾아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우리는 마음 맞는 신념을 찾아낸 다음, 그것을 방어할 증거와 논거를 모색한다.
‘확증 편향’이란 용어를 만든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1960년대에 수행한 실험에서, 추가 숫자를 제시해 일련의 숫자(가령 2, 4, 6)를 생성하는 데 사용한 규칙을 추측하라는 요구를 받은 사람들이 규칙은 쉽게 찾아냈으나 자신의 짐작을 확증해주는 추가 숫자(가령 8, 10, 12)만을 제시함으로써 그 규칙을 시험하곤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확증하지 않는 7, 8, 9 같은 숫자 ? 규칙이 ‘증가하는 정수’이므로 이 숫자들도 맞았을 것이다 ? 를 제시하며 추측을 시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확증에 어긋나는 정보를 찾는 데 소홀한 것은 검은 고양이 세 마리를 보고 모든 고양이는 검다는 가설을 세운 다음, 검지 않은 고양이를 찾으려고 굳이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는 것과 같다.
이후 다른 조사들에서도 동일한 경향을 확인했다. 랜드 연구소의 카바나와 리치는 “사람들은 최상의 정보를 주는 결과가 아니라, 바라던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조사 및 결정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이용한다. 하이트에 따르면, 정파적 신념을 확증하면 뇌에 약간의 도파민을 촉발해 만족감을 전달한다고 한다. “정파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버튼 누르기를 멈출 수 없는 쥐처럼 이상한 것을 믿는 행위를 그저 멈출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썼다. “극단적 정파성은 말 그대로 중독적일 수 있다.” 연구들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정보를 찾거나, 거기에 귀 기울이거나, 심지어 알아채는 것조차 강하게 혐오한다고 밝힌다. 201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3분의 2가 상대편의 정치적 견해에 노출되는 불편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실험을 설명하면서 “오바마에게 투표한 사람의 3분의 1, 롬니에게 투표한 사람의 반 이상이 상대편 유권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걸 치아를 빼는 것에 비유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