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역사
운노 히로시 지음 | 탐나는책
다이어트의 역사
운노 히로시 지음
탐나는책 / 2022년 1월 / 329쪽 / 17,000원
들어가는 글_ 다이어트의 신화
다이어트의 어원‘Diet’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 2가지 뜻이 있다. ‘① 일상적인 음식, 식사 ②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정해진 음식을 먹는 규정식, 식이요법’ 이 중 두 번째가 우리가 지금 말하는 다이어트에 해당한다. 한편 매일 정해진 음식을 먹는 방식은 모조리 다이어트라거나 건강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Day’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는지, 어느 특정한 날에 열리기 때문인지, ‘Diet’에는 ‘국회’, ‘의회’, ‘회기’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면 첫 번째 의미도 역시 ‘Day’와 연결해 ‘하루 치 정해진 식사’, 결국 하루에 필요한 정량의 음식을 다이어트라고 규정하는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내 상상인데, 옛날 사람들은 신체에 필요한 만큼만 식사했기에 하루에 먹는 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정량 이상으로 먹는 사람이 나타났고, 각자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먹게 되었다. 한편 지금 정량 식사를 하는 공간은 수도원과 군대, 교도소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처럼 정량 식사가 한정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상황이 되며, 정량 식사에는 징벌적 의미가 더해졌다. 수도원의 금식에도 속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다이어트에는 죄와 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다이어트에도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몸이 요구하는 필요량의 식사로 만족했으나, 차츰 필요한 양보다 더 먹게 되었고, 그 포식에 대한 벌로 제한된 식사, 다이어트의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입이 5분 즐거우면 엉덩이 군살은 평생 간다’는 말처럼, 입을 만족시키면 평생 거대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살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제 다이어트의 3가지 특성에 대해 고찰해보자. 다이어트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이 있다.
특히 근대다이어트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시대는 19세기 무렵이다. 하비 리번스타인 교수는 『식탁의 혁명: 미국 식단의 변화』(1988)라는 책에서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미국인의 식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날씬한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라는 개념은 이 무렵 100년 사이에 생겨났다. 즉 다이어트는 근대화 현상이다.
특히 미국근대 다이어트가 가장 성행한 다이어트 왕국은 미국이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는 미국적 현상이다. 왜 하필 미국이라는 나라였을까?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나, 여기서는 세기말 미국 식생활의 극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어느 순간부터 푸짐하게 양이 많아지고 살찌기 쉬운 기름진 식사가 미국인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고, 다이어트는 사회적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다이어트는 근대화ㆍ도시화에 연계되는 문제로, 다른 나라보다 더 큰 변환기를 거친 미국에서 다이어트는 첨예한 현상으로 격렬한 논쟁을 유발하는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여성미국의 다이어트 열풍은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 중심은 여성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여성은 사회로 진출해 활동하게 되었고, 즉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존재가 되며 스타일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페미니즘 역사와 다이어트의 관계는 양의적(兩意的)이었다.
다이어트의 주변다이어트의 확장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을 만들어보자. 먼저 다이어트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먹고, 먹지 않을지에 관련된 문제다. 또 살을 빼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식사와 운동이 다이어트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는 두 요소다. 그러므로 이를 양쪽 끝(운동은 위쪽, 식사는 아래쪽)에 두고 세로축을 설정할 수 있다. 한편 식사와 운동은 다이어트의 방법을 보여주는데, 다이어트의 목적을 생각하면 아름다움(왼쪽)과 건강(오른쪽)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를 가로축으로 설정하자. 이렇게 가로, 세로 직선이 교차하는 도표로 다이어트를 네 개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1사분면, 2사분면, 3사분면, 4사분면이라 부르자.
대충 시중에 나도는 다이어트법은 3만여 개 이상으로, 도저히 하나하나 모두 살펴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다이어그램에서 어느 영역에 들어가는지 정도는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식사와 관련된 것인지 운동과 관련된 것인지로 양분되고, 아름다움을 위해서인지 건강을 위해서인지로 양분된다. 물론 복합적인 다이어트도 있다. 사과 다이어트, 녹차 다이어트, 현미밥 다이어트 등은 식사 쪽으로 들어가고, 덤벨운동, 수영 등은 운동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식사는 신체 내면의 다이어트, 운동은 외면의 다이어트를 보여준다. 또 건강은 ‘개인’의 영역이고, 아름다움은 ‘사회’의 영역이다. 이처럼 다이어트의 공간적 축을 고려하면 다이어트를 둘러싼 몇몇 문화적 영역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식사와 건강 사이 1사분면에 들어가는 영양학이 있는데, 음식이 어떻게 소화ㆍ흡수되고 우리 몸을 구성하고 에너지를 내는지, 또 신체와 환경 사이에서 어떻게 에너지 순환이 이루어지는지를 문제로 삼으며 환경문제, 자연, 지구 등 생태환경론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또 건강한 종을 만드는 우생학, 유전자조작 등에도 접하고 있다. 다음으로 건강과 운동 사이의 2사분면에는 체조와 스포츠 등이 속한다. 그리고 이는 1사분면과 겹치는데, 신체의 메커니즘과 생리학 등이 포함된다.
운동과 아름다움 사이의 3사분면에는 춤과 패션이 들어간다. 운동은 외면, 겉으로 보이는 요소를 보여주고, 아름다움은 사적ㆍ개인적 세계에 대한 사회성, 문화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춤)과 형태(패션)가 어떻게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중시한다. 아울러 아름다움은 역사적인 개념으로서, 문화로 형성된다. 건강에 속하는 오른쪽 절반은 자연으로서의 신체를 다루고, 아름다움에 속하는 왼쪽 절반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로서의 신체를 취급하게 된다.
아름다움과 식사 사이의 4사분면을 다이어트에서 뉴에이지 분면이라 규정한다. 1980년대부터 다이어트의 주류가 된 새로운 방향이 여기에 속한다. 논픽션 작가인 미야모토 미치코가 쓴 『세상에도 아름다운 다이어트』(1994), 다카노 유리의 『아유르베다 아름답게 날씬해진다!』(1996) 같은 책을 4사분면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책에서는 단순히 살을 빼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과 날씬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1980년대 접어들어 머리(뇌)나 마음가짐(정신)으로 살을 뺄 수 있다는 방향성이 제시되었다. 요가교실, 단식원 등 오리엔탈을 지향하는 다이어트법이 등장했고, 스파와 피부관리실이 컬트문화나 신흥종교, 뉴에이지와 접목됐다.
이렇게 ‘식사-운동, 건강-아름다움’이라는 다이어그램으로 3만 개가 넘는다는 다이어트법을 분류하고, 각각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 물론 어느 영역으로 분류해야 할지 애매한 다이어트법도 있다. 이 다이어그램에서 알 수 있듯, 다이어트는 영양학, 생리학, 유전학, 생태환경학, 스포츠, 춤, 패션, 정신세계, 뇌, 도덕, 성형 등의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날씬해지고 싶다!’, ‘살을 빼야 한다!’는 다이어트 지향이 강박관념이 되고 신흥종교 형태로 발전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다이어트의 주변부에서 잊지 말아야 할 화두가 있다. 바로 1980년대 느닷없이 등장해 현대병으로 문제가 된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이다. 다이어트와 질병의 접점인 거식증은 다이어그램의 어느 분면에 자리 잡을까? 음식에 속하는 아래쪽 절반에 들어가고, 음식과 건강의 1사분면과도 관련이 있으나, 병적일 정도의 다이어트 열망은 정신의 영역인 4사분면으로 분류해야 한다. 거식증이 현대병으로 단숨에 알려진 사건은 1983년 캐런 카펜터의 죽음이었다. 오빠인 리처드와 듀엣을 결성해 만들어진 카펜터스는 1970년대
, 등의 히트곡을 내놓은 슈퍼스타였다. 이렇게 잘나가던 아티스트 캐런의 사인이 거식증으로 알려지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다이어트의 시작 - 세기말
여성 신체의 변화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쇼터는 『여성 몸의 역사』(1982)라는 책에서 여성 신체의 역사적 변화를 고찰했는데, 이에 따르면 근대(19세기 말부터) 여성의 체형은 4가지 측면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키가 커지고 체격이 좋아졌다. 둘째, 남성과 평등하게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구루병에 걸리지 않게 되며 튼튼한 골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넷째, 코르셋을 벗어던졌다.’
먼저 첫 번째 변화를 살펴보자. 에드워드 쇼터에 따르면 유럽 여성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전보다 체구가 작아졌는데, 이때 왜 여성은 작아졌을까? 문제는 식단에 있었다. 이 시대 유럽 경제가 악화해 여성이 배불리 먹을 수 없게 되며 몸집이 왜소해졌다. 여성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커지기 시작했고 이후로 1960년대까지 꾸준히 커졌다. 두 번째 변화는 여성의 키가 커진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이전 빈약한 식사로는 약자인 여성과 아이의 몫은 겨우 허기나 면하는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남성이 먼저 먹고 남은 음식을 여자와 아이들이 먹었다.
세 번째 변화로는 여성이 칼슘 부족으로 걸리는 구루병에서 해방되어 꼿꼿한 허리, 건강한 골반을 유지하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을 꼽을 수 있다. 20세기 초부터 의료의 발달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구루병이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건강한 실루엣을 가진 여성들이 나타났다. 네 번째 변화로는 근대 여성이 코르셋을 벗어던졌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에드워드 쇼터는 코르셋이 신체에 미친 영향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과장된 측면이 크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19세기부터 여성은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늘어나고 자세와 비율이 좋아졌는데, 그 주요 원인은 근대에 들어서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여성도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자 기쁨에 겨운 여성들은 보상심리로 그동안 먹지 못했던 원한을 풀기라도 하듯 음식을 탐하게 되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식탐에 몸을 맡기고 마구 먹다 보니 다이어트가 필요해졌다. 자유롭게 먹음으로써 여성은 남녀평등을 획득하고 사회적ㆍ정신적으로 해방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먹는 행위는 먹어서는 안 되는, 식사를 제한하는 행위, 즉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이어트는 자유의 대가인 셈이다.
19세기의 신체
1783년 미국은 영국에서 독립한다. 그러나 독립 후 1세기가량은 영국의 식생활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미국인은 영국인과 비교해 많이 먹었다. 넓은 토지에서 먹을거리가 풍성하게 생산되어 미국인의 식탁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요로운 식탁이 미국에서 다이어트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살을 빼기 위한 절제라는 의미에서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일반화된 시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다. 그 이전에는 영국에서는 ‘밴팅이즘(Bantingism)’, 미국에서는 ‘플레처리즘(Fletcherism)’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였다.
밴팅이즘은 런던의 장의업자인 윌리엄 밴팅이 제창한 다이어트법이다. 그는 관을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몸무게와 키에 관심이 있었는데, 포도주 상인이 사용하는 저울을 가게에 두고 늘 몸무게를 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맵시를 위해 살이 찌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온갖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그런데도 쉰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100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늘어 혼자서는 구두끈을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비대해졌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이비인후과 의사인 윌리엄 하비에게 진료를 받았다. 하비는 프랑스의 생리학자인 클로드 베르나르의 당뇨병 강의를 들었는데, 밴팅을 당뇨라 진단하고 당분 제한 다이어트를 처방했다. 처방을 지킨 밴팅은 1862년 8월부터 1863년 3월까지 16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했다. 1863년 9월에는 몸무게가 70킬로그램까지 내려갔고, 귀도 회복되었다. 밴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만에 관한 편지』라는 책을 써서 호평을 얻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878년에는 5만 부 넘게 팔려 나가 그의 다이어트법은 ‘밴팅 다이어트’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호러스 플레처(Horace Fletcher)는 백만장자였는데, 플레처가 평생 골머리를 앓았던 고민거리가 바로 비만이었다. 그는 1895년에 살이 너무 쪄서 생명보험 가입을 거절당하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이런저런 다이어트를 전전하다 마침내 하나의 방법에 도달했다. 바로 예부터 전해 내려온 꼭꼭 씹어 먹는 단순한 방법이었다. 플레처는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철저히 실천했고, 1898년에 이 방법으로 넉 달 동안 약 93킬로그램에서 약 74킬로그램까지 감량했다. 플레처의 방법은 시간을 들여 꼭꼭 씹으며 천천히 식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단백질 섭취가 절반 이하로 내려간다는 이점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세기말에는 단백질 과다 섭취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졌기에 플레처리즘은 당시 풍조에 딱 들어맞는 다이어트법이었다. 플레처의 방법은 1901년부터 과학 잡지 등에 보고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세기 중반부터 영양학의 발전을 등에 업고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자연과 원시로 돌아가자는 경향부터 근대 채식주의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1842년 영국에서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1847년에는 맨체스터에서 채식협회가 결성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장 앙투안 글레이즈가 근대 채식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1878년에 파리에서 채식주의 박람회를 개최했고, 1886년에 프랑스 채식협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908년, 파리에서 최초의 세계 채식주의자 대회가 열렸다. 먹을거리, 소화 메커니즘, 건강, 채식주의, 생태학, 종교적 신념 등이 다이어트의 배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이념과 사상들이 한데 어울려 19세기 신체 의식을 형성했다.
새로운 여성과 날씬한 몸매 - 1920년대
여성 혐오 시대
1920년대는 여성이 사회로 진출해 자립한 시대로 남녀평등이 다양한 영역에서 인정되었으나,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비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19세기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비만 그 자체가 일반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으며, 굳이 따지면 남성이 다이어트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 차츰 방향이 전환되어 특히 여성을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게 되었다.
피터 너새니얼 스턴스는 『비만의 역사: 현대 서구 세계의 신체와 아름다움』에서 다이어트가 특히 여성에게 의무로 부과되는 경향이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말하며, 이 시기를 ‘여성 혐오 시대’라고 정의했다. 1950년대 무렵부터는 이러한 경향이 다소 완화되어 남성의 다이어트도 등장했으나, 여전히 여성을 다이어트의 중심에 놓는 경향이 남아 다이어트라고 하면 여성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모름지기 여성은 날씬해야 한다는 인식은 절대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라는 한정된 시대에 나타난 일종의 변덕, 유행이었을 수 있다.
신체 측정
1920년대는 ‘메저드 보디(Measured Body, 측정된 신체)’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 시대에는 신체를 막연하게 느끼는 이미지가 아닌, 확실한 계측으로 계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눈금에 따라 신체는 수치화된다. 몸무게, 키, 혈압, 심박수 등을 측정하고 신체는 숫자 매트릭스로 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