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의 발견
임두원 지음 | 부키
튀김의 발견
임두원 지음
부키 / 2020년 7월 / 236쪽 / 14,800원
1장 인류는 언제부터 튀기기 시작했을까
전 세계인의 소울 푸드, 튀김치킨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조선 시대부터 각별했습니다. 조선 세조 때 어의를 지낸 전순의가 1460년경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과 『식료찬요』에는 ‘포계’라는 닭튀김의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국내에 약 8만 곳의 치킨 전문점이 영업 중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 켄터키 지방에서 유래했습니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KFC’의 명칭은 ‘Kentucky Fried Chicken’의 약자입니다.
감자를 길게 썰어 튀겨 낸 프렌치프라이의 인기는 또 어떤가요? 우리나라에는 약 2만 개의 패스트푸드 매장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될 메뉴가 바로 프렌치프라이입니다. 감자튀김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요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국민 요리, 피시앤칩스입니다. 대구와 같은 흰살생선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 내고 여기에 ‘칩스’라 불리는 감자튀김이 함께 제공되는 매우 간소한 요리이지만, 윈스턴 처칠이 ‘영국인의 좋은 친구’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합니다.
전 세계 각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을 조사하면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라면 또한 튀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삶아 내는 식재료인 면을 튀겨 낸다는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라면이 탄생했으니까요.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튀기지 못할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튀김의 응용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또한 일본에서 유래했지만 우리나라에선 흔히 돈가스라 불리는 돈카츠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튀김을 논할 때면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요리가 바로 탕수육입니다. 탕수육은 분명 튀김 요리입니다. 그리고 튀김의 매력은 바삭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걸쭉한 소스를 더하는 것은 얼핏 튀김의 매력을 반전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튀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바삭한 식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튀김이 품고 있는 다양한 풍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튀김옷에 뿌려진 달짝지근한 소스는 튀김의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처럼 튀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튀김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튀김이 전 세계의 ‘소울 푸드’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돈가스는 제육볶음과 더불어 우리나라 남성들의 대표 메뉴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인의 ‘최애’ 메뉴 중 하나는 프라이드치킨과 프렌치프라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인에게는 피시앤칩스, 중국인에게는 탕수육(혹은 꾸루로우), 일본인에게는 덴푸라와 돈카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리들은 그저 맛이 좋아서, 대중에게 인기가 많아서, 언제 어디서나 접하기 쉬워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요리, 또는 누군가의 소울 푸드가 될 것이 아닙니다. 이 요리들의 탄생 배경에는 안타까운 사연과 가슴 아픈 역사가 존재합니다. 프라이드치킨에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아프리카 흑인의 비애가, 피시앤칩스에는 영국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탕수육과 돈카츠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난사가 담겨 있습니다. 즉, 각각의 요리에는 역사의 한 장면과 주인공들의 한과 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튀김은 ‘진짜’ 소울 푸드인 셈입니다.
요리가 인류를 진화시키다‘요리(料理)’라는 단어는 ‘헤아리고’,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처방전에는 다양한 약재의 배합 비율이 적혀 있었는데, 요리는 약재들의 ‘정확한 분량’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와 같은 어원을 염두에 두고 요리를 정의하면 ‘정확한 헤아림을 통해 식재료를 먹기 좋게 가공한 최종적인 산출물 또는 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 행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원시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약 400만 년 전입니다. 원시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 채집의 단계에 머물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날것 그대로 섭취했습니다. 그러던 인류는 2가지 큰 사건을 계기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불의 발견’과 ‘농경의 시작’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약 50만 년 전에 불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연히 발생한 산불로 인해 타 버린 동물의 사체를 먹어 본 후, 화식이 음식의 풍미를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식은 음식의 풍미를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효율적으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커다란 뇌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음식이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면, 요리라는 창조적인 활동이 더해지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전환점이 된 사건은 약 1만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때 인류는 오랫동안 이어 오던 수렵 채집의 단계를 끝내고 농경문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농경문화가 시작되자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훨씬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어 도시들이 형성되고 바야흐로 인류 문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경의 시작으로 식량 생산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지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식량이 조, 기장, 수수와 같은 일부 곡물에만 국한되면서 영양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었던 수렵 채집 단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게 되었습니다.
『판도라의 씨앗』의 저자 스펜서 웰스에 따르면, 농경 생활이 시작되기 이전 인류의 평균 수명은 남성 35세, 여성30세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남성 33세, 여성 29세로 감소했으며, 남성의 평균 신장 또한 177센티미터에서 161센티미터로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단조로운 식단 때문에 발생한 영양 불균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했고,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식재료를 혼합하고 가공했더니 다양한 맛과 향이 창출되었을 뿐 아니라 영양분의 소화 흡수 효율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이처럼 요리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2장 세상에 튀기지 못할 재료는 없다
세 겹의 튀김옷을 껴입은 돼지고기: 돈카츠 서양 콤플렉스를 요리로 승화하다: 돈카츠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 후 고온의 기름에서 튀기고 여기에 갈색의 소스, 잘게 썬 양배추, 밥과 함께 제공되는 일본 전통의 튀김 요리입니다. 카레라이스, 고로케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양식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형태의 돈카츠는 1929년 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폰치켄이라는 식당에서 시마다 신지로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카츠의 기원은 이보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54년, 일본 정부는 미국 함대에 굴복하여 강제적으로 개항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왕을 받들고 서양을 배척하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운동이 전국 도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1867년, 마침내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권력을 왕에게 반환하면서 막부 정권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이때 즉위한 메이지 왕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기존의 쇄국 정책을 과감히 폐지하고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일본의 유학생들이 유럽 각국으로 파견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서양식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철도, 전신 등 서양의 신기술들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맹렬한 속도로 서구화가 진행되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인들과의 현격한 체격 차이였지요.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을 만난 일본인들은 그의 거대한 체격에 위압감을 느낀 나머지 그를 덴구라는 요괴로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콤플렉스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일본 왕은 서양인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육식과 목축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후 일본 정부는 우유와 육식을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시했던 일본인들이 육식에 익숙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만 했기 때문에 육식을 자신들의 입맛도 맞도록 다양한 시도를 펼쳤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덴푸라를 통해 친숙해진 튀기는 조리법이었습니다. 육류를 튀기면 잡내가 없어지고 고소한 풍미까지 가미되지요. 덕분에 일본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고기 요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돈카츠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돈카츠와 가장 유사한 서양의 요리로는 뼈가 붙은 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부쳐 내는 커틀릿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커틀릿을 ‘카츠레츠’라고 부릅니다. 1895년 도쿄 긴자의 음식점 렌카테이의 주인, 기타 겐지로는 이 요리를 응용해 뼈를 발라낸 돼지고기를 얇게 손질한 후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차례로 입히고 기름에 튀겨 내었지요. 여기에 채를 썬 양배추를 곁들여 내놓았습니다. ‘포크 카츠레츠’라는 이름의 이 요리가 바로 최초의 돈카츠인 것입니다. 이후 돼지고기는 더 두툼해졌고, 튀겨진 후 먹기 좋게 몇 조각으로 잘려 나왔으며, 일본식 된장국과 밥이 곁들여졌지요. 이렇게 돈카츠는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름과 건조 기술로 세상을 구휼하다: 라면 세상을 뒤바꾼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 즉석요리의 대명사, 라면은 밀가루로 반죽하여 길게 뽑은 면을 구불구불한 형태로 뭉친 후 기름에 튀겨 내고 건조한 제품입니다. 라면은 일본의 라멘에서 유래한 요리이기는 하지만 그 기원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국의 면 요리인 라이미엔, 즉 납면 (拉麵)입니다. 납면은 밀가루 반죽을 당겨서 면을 만들고 고기 국물로 맛을 낸 요리입니다. 중국의 납면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후반,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중국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부터입니다. 해산물을 이용해 맑은 국물을 내어 먹는 소바나 우동과는 달리 납면은 소, 돼지, 닭 등 육류를 이용해 우려낸 진한 국물이 특징입니다. 이후 납면은 점차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라멘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라멘’이라는 이름도 납면의 일본식 발음으로 유래했습니다. 한국에서 부르는 ‘라면’은 한자 납(拉)의 일본식 발음과 한자 면(麵)의 우리식 발음이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은 1958년,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개발했습니다. 몇 번의 사업 실패 후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그는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튀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면을 삶은 기존의 라멘 대신 면을 튀기고 건조하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토대로 닛신식품을 창립하고,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 라멘’을 출시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당시 일본은 부족한 식량의 상당 부분을 미국의 원조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밀가루였습니다. 오랜 세월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일본인에게 밀가루는 매우 생소한 식재료였고, 그래서 시중에는 미처 사용되지 못한 밀가루가 넘쳐났습니다. 안도 모모후쿠는 남아도는 밀가루를 활용하여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고 그 노력은 인스턴트 라멘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 제품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었던 ‘식족세평(食足世平; 풍족하게 먹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진다)’을 실현해 누구도 배를 곯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라멘은 서민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소박한 요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요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4년 영국문화원은 ‘지난 80년 동안 세상을 바꾼 80대 사건’ 중 하나로 인터넷의 탄생,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 소련의 붕괴 등과 함께 인스턴트 라멘의 발명을 꼽기도 했습니다.
신대륙에서 닭튀김의 신세계가 열리다: 프라이드치킨 아프리카 노예들의 한과 혼을 요리하다: 프라이드치킨은 닭고기를 여러 부위별로 나눈 후 각각의 조각에 튀김옷을 입히고 고온의 유지에 담가 튀겨 낸 요리입니다. 그런데 프라이드치킨은 언제 탄생했을까요? 아쉽게도 그 정확한 기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튀김 요리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중세 유럽에서 프라이드치킨과 비슷한 요리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 요리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기와 장소는 분명합니다. 바로 19세기 미국에서부터였지요. 그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과 망향의 슬픔으로 가득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유럽의 튀김 요리가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은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린 후부터입니다. 대항해 시대에는 유럽 열강들 간의 식민지 쟁탈전과 무역 전쟁이 활발했습니다. 당시 유럽의 무역상들은 각종 공산품을 싣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생활필수품과 술, 화약, 무기 등을 흑인 노예들과 맞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예들을 배에 싣고 다시 카리브해의 서인도 제도로 향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사탕수수, 커피 등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플랜트 농장들이 있어 항상 많은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작물들과 교환되어 그곳에 남겨지고 유럽의 무역상들은 이 상품을 유럽으로 가지고 와서 비싸게 팔아 큰 이익을 챙겼지요. 그렇게 흑인 노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죽도록 일만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타지에서도 삶은 계속되어 아프리카 흑인들은 점차 아메리카 내륙 곳곳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때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들여온 것은 흑인 노예만이 아닙니다. 16세기 이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닭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들어와 번성하게 되었지요. 스페인 탐험가들은 닭은 비상식량으로 항상 배에 싣고 다녔지요.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은 미국 남부 지방의 대규모 면화 농장의 주된 노동력이 되었습니다. 1807년 영국 정부는 노예 무역을 전면 금지시켰지만, 미국 남부에서는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예 제도가 지속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라이드치킨을 만든 사람들은 바로 이 아메리카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입니다. 당시 미국인 대다수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었고, 유럽은 중세부터 튀김 요리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다양한 튀김 요리가 존재했습니다. 한편 미국 남부의 흑인들 또한 오래전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로 전래된 튀김 조리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흑인들이 백인 이민자들의 주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튀김 요리가 서로 융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튀김옷에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는 방식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조리법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초창기 프라이드치킨은 노예들을 위한 요리였습니다. 백인 농장주들은 먹기 편한 가슴살과 다리 부위를 선호했는데 주로 오븐에 구워서 조리했습니다. 그 외의 날개나 목처럼 뼈가 많은 부위들은 자연스레 흑인 노예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흑인들은 이 부위들을 조각낸 뒤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내었습니다. 그런데 흑인 노예들은 왜 닭을 굽는 대신 튀겼던 것일까요? 우선 바삭하게 튀긴 닭요리는 뼈까지 씹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또한 튀기는 과정에서 한층 더 고열량의 음식으로 변모하였지요. 덕분에 힘든 노동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우수한 영양식으로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튀김 요리는 미국 남부 지방의 더욱 날씨에서도 비교적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