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부활
송동윤 지음 | 스타북스
영웅의 부활
송동윤 지음
스타북스 / 2021년 6월 / 208쪽 / 14,000원
이순신의 반역(윤석열과 이재명)
이순신의 반란과 대권주자들의 심중일기는 이순신의 반란은 심중일기 속의 반란이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세상이다. 과연 김충선의 재촉에 이순신은 어떤 결정을 했을까? 당연히 그는 선조를 몰아내고 이순신의 나라를 건설했을 것이고, 강한 조선을 통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선조는 이순신이 해전(海) 중일 때 자신만은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고, 여차하면 명나라로 망명하고자 세부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기에 선조는 자신보다 더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는 이순신에 대해 시기와 질투는 물론 열등의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순신을 두려워했다. 이순신은 백전백승의 전쟁의 신이었고, 그의 밑에는 전쟁을 해봤던 최강의 군사들이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선조 자신은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순신이 사라져야만 두 다리 펴고 편하게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선조 입장에서는 이순신을 살려두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도 전쟁이 끝난 후에 선조는 어떤 죄목을 씌어서라도 그를 제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순신은 선조의 그런 의중을 몰랐을까?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이미 꽤 뚫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순신은 7년 전쟁을 끝냈고,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가 떠난 조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선조는 여전히 조선의 주인이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인조의 병자호란을 거쳐 일제 36년에 이르렀으니, 비록 소설이지만, 심중일기로 끝난 이순신의 반란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만 남겼다.
역사는 반복된다. 선조시대의 선조, 이순신, 원균, 이원익, 유성룡, 김덕령 등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벌였던 판이 4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문재인 정권하의 문재인, 조국, 추미애, 윤석열, 이재명 등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그것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여전히 조선에서 대한민국에서, 임금이든 신하든,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저마다 자객의 검을 숨기고 있다.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다. 오늘도 내가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의 숨통을 끊어놓고자 일격을 노리고 있는데…….
초한지 - 영웅의 부활(윤석열)
핵폭탄 검사 마동팔 같은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장. 물론 나는 그날 저녁 TV뉴스에서 그를 처음으로 봤다. 평범하지 않은 외모의 검사가 일갈하듯이 말한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대사다. 그의 거친 목소리가 얼마나 강렬한지 송강호를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넘버3〉(1997)에 나오는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핵폭탄’ 검사 마동팔(최민식)과 오버랩된다. 그 마동팔 검사가 진짜 깡패한테 말하는 대사와 한번 비교해보자.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좆같아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야. 솔직히 그 죄가 무슨 잘못이 있어. 그걸 저지른 사람 놈의 새끼가 잘못이지.”
영화 속의 마동팔 검사와 현실 속의 윤석열 검사. 두 사람의 캐릭터는 닮아 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검사가 있구나 하면서도 내 하는 일이 검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서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졌다. 그럴 즈음에 그가 또다시 TV에 등장했다. 2016년 12월 어느 날 저녁 뉴스에서다. 이번에도 그의 대사는 그대로 내 심장으로 날아와 꽂혔다. “검사가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백전백패의 유방이 항우를 이기다한 사람은 전부 가졌고, 한 사람은 전부 갖지 못했다. 갖지 못한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의 장점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 건달출신의 사람 좋은 유방의 경우가 그렇다. 여기서 그것은 덕치와 인재등용, 그리고 용인술이다. 백성에게 덕을 베풀고 자기에게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가 해하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난 후 부하 장수들에게 했던 말이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리밖에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라면 나는 자방(子房)만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거리고 먹을 것을 공급하되 식량운송로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몰아 싸웠다 하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는 것이라면 내가 한신만 못하다. 내가 이들을 기용할 수 있었고,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 항우에게는 범증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마저 기용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내게 붙잡힌 까닭이다.”
정확한 분석이다. 유방은 인재등용과 용인술로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메웠고, 더군다나 항우의 단점까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항우다. 자타가 인정하는 천하제일인으로, 그렇다 보니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오만과 자존이 강했다. 상대가 누구든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주변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초한의 역사를 가른 홍문연의 경우를 보자.
항우는 유방을 죽이기 위해 홍문의 연회에 유방을 불렀다. 그런데 하늘이 유방을 아꼈는지, 유방의 책사인 장량과 항우의 숙부인 항백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 장량이 그 전에 항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항백이 항우의 이런 음모를 알려주려 일부러 장량을 찾아갔다가 유방의 넉살 좋은 인간성과 그 특유의 친화력에 넘어가 사돈까지 맺었다. 물론 뇌물도 받았다. 결국 그 날의 연회에서 항백의 방해로 항우의 책사인 범증의 유방을 죽이려는 치밀한 시도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항우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도망가는 유방을 추격하지 않았다. 얕보고, 저따위가 뭘 하겠냐며 유방을 살려 보내 준 것이다. 여기서 항우가 범증의 의견을 따라 유방을 제거했다면 홍문연 이후의 초한지의 내용은 달라졌을 것이다.
보통 항우와 같은 이런 캐릭터는 막무가내로 잔인성의 끝을 보여주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거록대전에서 일어난 신안대학살이 그것이다. 진나라 장군 장한이 이끄는 30만 대군과의 전투에서 10만을 죽이고 승리한 항우는 범증의 권고를 무시하고 투항한 20만의 병사를 구덩이에 파묻어 생매장시켰다.
이상으로 항우와 유방, 두 사람의 캐릭터를 나열해서 그 장단점을 살펴보았다. 항우는 모든 전투를 다 이겨 놓고도 마지막 딱 한번 패했을 뿐인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이와는 반대로 유방은 모든 전투를 다졌지만 마지막 딱 한번 이겼을 뿐인데 모든 것을 다 손에 쥐었다. 서로 극명하게 비교되는 캐릭터다. 유방은 도망가고 숨고, 치고 빠지고, 협상하고 배신하면서 끈질기게 생존해 나가는 캐릭터다. 이와는 반대로 항우는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로, 타협 없이 존재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단 한번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캐릭터다. 이상의 두 캐릭터를 비교해 봤을 때 유방의 최종 승리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제 질문이다. 위에서 나열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차이가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까?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사적으로 절대 열세에 있는 유방이 절대 우위에 있는 항우를 죽이고 어떻게 패권을 거머쥐게 됐는지 설명이 필요하겠다.
윤석열의 시대정신은지도자에게 시대정신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그는 기자들 앞에 설 때마다 공정과 정의, 상식을 말한다. 이제는 이러한 단어들이 그만의 전유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4년 전에 문재인의 대통령의 당선 취임사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대통령은 항상 공정과 정의의 집행자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했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다. 특권과 반칙이 여전히 횡행했다. 조국사태에서 보듯 무 자르듯 니편과 내편으로 편을 갈라 우리 편은 아무리 잘못해도 모른 척 용서하고 넘어갔다. 실상이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고 다녔다. 이제는 상식까지 무너지면서 그것들의 개념조차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냥 쇼로 보였다. 그가 그럴수록 윤석열의 공정과 정의는 더 돋보였다. 2021년 3월 10일, 윤석열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요즘 왜 청년들이 분노하는 지 그 이유와 처방에 대해 설명했다.
“배경 없이 성실함과 재능만으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청년들한테는 이런 일이 없어도 이미 이 사회는 살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 이번 LH 투기사태는 게임룰 조차 조작되고 있어서 아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인데, 이런 식이면 청년들은 절망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은 공정한 경쟁이고,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지 못하면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지원책은 꼭 필요하지만, 특권과 반칙 없이 공정한 룰이 지켜질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게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러려면 이런 일이 드러났을 때 니편 내편 가리지 않고 엄벌되는 걸 만천하에 보여줘야 한다. 확실한 책임추궁 없는 제도개혁 운운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를 보면 그가 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 금방 이해가 된다. 분노의 이유와 그 처방을 이렇게 명쾌하게, 쑥쑥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서 말하는 걸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정치인들의 궤변은 신경 쓰지 말자.공정도 결국은 경제다. 그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더 중한 것이 있을까? 나는 윤석열이 대권을 넘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이 짧은 인터뷰에서도 보여줬다고 본다. 이렇듯 대통령이 독점해서 사용해왔던 공정과 정의가 어느 날부터 윤석열에게 넘어갔고, 내가 보건대, 지금은 그것이 윤석열의 시대정신이 됐다.
조조 - 황제의 반란(이재명)
이재명의 시대정신은인터넷에서 그의 최근 몇 년간 일관되게 주장했던 글과 말들을 한 군데로 모아보니 그의 시대정신이 보였다. 그것은 복지다.
“국민이 낸 세금 열심히 아껴서 다시 돌려주는 게 왜 공짭니까?” (1916년 9월 26일)“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에 분노한다.” (2020년 9월)
다음은 그가 4월 29일자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그가 추진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저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기회가 많던 시대를 살았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가 계속되고 제도적 민주화가 불비하여 지금보다 불공정은 훨씬 많았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데는 모두 주저함이 없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 지금 청년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받아 집사고 결혼하는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사회적 성장판이 예전 같지 않아 선택지는 줄었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신분제에 가까운 ‘세습자본주의’가 심화되었다. 노동해서 버는 돈으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으니 주식과 비트코인에 열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성장의 동력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최소한의 먹고사는 문제, ‘경제적 기본권’을 지켜내고 청년은 물론 모든 세대에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 제가 줄곧 말씀드리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모두 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불공정과 사회적 성장판, 성장 동력!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글들 중에서는 이게 가장 명쾌하고 신선하게 이해되는, 그래서 부분적으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그리고 그가 현실의 실상을 제대로 진단해서 정책으로 제시한 그런 글이 아닐까 한다. 그 내용과 그 속에 흐르는 정서만으로도 그가 배고픈 시절에 넘었다는 보릿고개가 보인다. 그는 뼈 속까지 좌파는 아니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를 잘못 알고 있었다. 나 말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게 말한다. 더 나아가, 여기서 이재명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를 윤석열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겠다.
코로나와 이재명
바이러스의 지구 침공이다. 갑자기 창궐한 코로나가 인간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 놨다. 공포가 드리워진 대한민국.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간의 관계마저 단절되고,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즈음에 나는 TV에 등장하는 이재명을 보게 된다.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재명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 전부터 관심이 없진 않았지만……. 그런데 그가 바로 눈앞의 적과 총격전을 벌이듯이 나타났다. 야전사령관의 모습으로, 그 날부터 TV에 등장하는 그를 눈여겨보게 되고,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확률로 치면 상당히 높은 가능성을 전망하기에 이르렀다.
2020년 1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의료인과 정치인들은 저마다 처방과 전망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그해 3월에 유럽이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갑자기 이재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가 코로나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 내고, 그 이슈를 주도적으로 집요하게 끌고 가면서부터였다.
재난지원금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 그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내 주변에선 그냥 툭 한번 던져보는 말이겠지 하며 이재명 식 무책임한 포플리즘 정도로 넘겼다. 다시 그가 그 말을 했을 때는 귀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저러다 말겠지 하며 반신반의했다. 여기저기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여권에서조차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잡음을 무시하거나 진압하면서 그는 끝내 경기도전 도민에게 재난지원금으로 20만 원씩을 지급했다. 나는, 사람들은 그를 다시 봤고, 그때부터 그가 말하는 것들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신뢰다25년 째 나는 경기도 도민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에서 보듯, 나는 포플리즘 복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돈은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 동안 살면서 이런 용도의 돈은 받아 본적인 없다. 주말에 나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 돈으로 밥값을 지불했다. 당시 기분이 어쨌냐고? 나쁘지는 않았다.
식당 문을 나서면서 계산대 옆에 있는 알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다가 어금니로 꽉 깨 부셨다. 순간 알싸한 맛이 입안에 폭죽처럼 퍼졌다. 그날 그 순간이 내가 이재명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했다. 앞으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그가 해야 하는 염려를 나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신뢰였다. 다른 것은 다 젖혀두더라도, 그는 자신이 내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약속을 지켜 준다는 것이다. 경기도민으로서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건곤일척(乾坤一擲)
항우와 조조의 대결 승자는조조와 항우가 전쟁을 벌인 다면 과연 누가 승리할까? 이 미션이 떨어지자마자 조조는 항우와의 전쟁준비에 돌입했고, 날마다 항우를 죽일 온갖 궁리를 다 짜내고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반간계도 포함돼 있었다. 스스로 제갈량의 꾀가 있다고 자부하는 조조인데, 그 정도 계책이 없겠는가. 그런 며칠 후에 결론이 났다. 항우 곁에 있는 책사 범증을 전쟁돌입 전에 먼저 제거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