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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

신승철, 이승준, 장윤석, 전병옥 지음 | 북코리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



신승철 외 지음

북코리아 / 2021년 8월 / 315쪽 / 19,000원





배달플랫폼의 문제 : 신종코로나 시대와 플랫폼 자본주의 - 이승준



신종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와 플랫폼 자본주의


이제 전 지구 경제의 상당 부분은 ‘초유연 공유노동’으로 상징되는 ‘긱(gig) 경제’에 의해 그 동력을 공급받고 있는데, ‘긱 경제’란 정규적인 직장과 그에 따른 노동계약이 아니라, 단기간 노동이 요구되는 상황을 위해 재능이나 시간이 있는 사람들을 필요에 따라 임시적이고 초단기적으로 서로 연결하여 재화나 용역을 거래하는 방식(이른바 ‘노동의 공유 서비스’나 ‘공유경제’)을 말한다. 노동자는 이러한 긱 경제 속에서 노동을 매개해주는 파견업체를 통해 공급되어 초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거나 앱과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나 상점의 중간에서, 혹은 그 각각과 직접 계약을 맺는 단위 사업장 자체가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플랫폼 자본과 긱 노동의 성장을 전통적인 2가지 관점, 즉 한편으로는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기업가의 성공 신화 이야기나 다른 한편으로는 착취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노동자연합을 이뤄내려는 전통적인 노동자 투쟁의 서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이러한 관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독립계약자 분류에 관해 산업계가 거의 보편적으로 주장하는 내용과도 차이가 없다는 데 있다. 즉, 전통적으로 노동을 이해하는 관점은 긱 경제의 노동자를 노동자나 생산자가 아니라, 유통시장에 참여하는 개인 사업가로만 분류하거나, 설령 노동자로 이해하고자 할 때조차 예외적인 영역의 특수노동으로 이해할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립된 일반적인 노동법에 따른 임금계약이나 노동조합 설립, 집단적 항의(파업이나 노동쟁의), 보건과 안전 그리고 해고보호에 이르는 법적 장치에서 벗어나 있거나 기껏해야 그러한 법이 부분적으로만 적용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여기에 더해 설령 상황이 더 좋아져 긱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고 기업가나 경영자로 바라볼 때조차 해당 계약자들은 기존의 독립적 사업장이 누릴 수 있는 권리나 이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거대 프랜차이즈 회사 입장에서는 사업상의 위험이나 비용손실을 떠넘길 수도 있는 힘없는 ‘을’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들 물류ㆍ배달노동자는 자본(기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회색지대에 머물며 새로운 형태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호출노동으로서의 배달노동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18~24세 청년의 산재 사망 원인 1위는 ‘배달’이며, 꼭 청년이 아니라도 배달노동자는 늘 교통사고나 과로사의 위험, 호흡기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된다. 배달 플랫폼 노동은 흔히 ‘호출노동’이라 불리는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의 노동을 말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일감을 앱에 올리고 호출하면 거기에 노동이 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때 호출에 응하는 노동이 모두 똑같은 방식의 노동력을 발휘하는 것(배달 속도, 배달물의 보존, 소비자를 향한 태도 등)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플랫폼 회사가 개입해 배달 서비스 상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플랫폼에 대한 신뢰도는 현저히 낮아질 것이고 시장 내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플랫폼 기업의 역설이 있다. 아담스-프라슬에 따르면, “실제로는 전통적인 사용자처럼 종종 행동하면서도 긱 경제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상품, 서비스 등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노동력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기 위해 지휘ㆍ감독ㆍ교육ㆍ감시하게 된다면, 플랫폼 노동자는 개인 사업자가 아닌 고용된 노동자가 되고, 그에 따라 기존 노동법의 적용을 받아야 할 것이며, 노동자의 노동조건(예컨대 노동시간 준수, 최저임금 적용, 휴식공간 제공, 식사 및 식비 제공 등)을 공식적으로 승인된 기준 하에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플랫폼 배달노동이 긱 경제의 ‘초단기 유연노동’이라는 점에 있다. 즉 플랫폼의 노동 중개 과정이 데이터, 노동, 토지 및 주택, 자동차, 서비스, 지식 등 누군가의 남아도는 자원을 시장 거래 대상이 되는 품목으로 올려놓고 이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에게 기술적으로 매개해주는 형태를 띠는 만큼, 플랫폼 기업은 시장수익을 최대한 증대시키기 위해 노동자와의 고정된 장기간 고용계약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특히 배달 플랫폼의 경우는 생산자의 의지에 따라 일정한 노동을 부여해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의 비정기적인 욕구에 노동이 응답하는 구조이기에 노동의 유연성을 필수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이는 플랫폼 노동이 (추상적) 일반노동이 아닌 바로 그 순간에 (구체적인) 사적 노동이 되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배달노동은 그 밖의 다른 모든 노동 생산자의 생활주기 및 노동 패턴과는 정반대, 즉 노동 생산자 일반의 퇴근 후 여가, 수면시간, 휴가 기간에 가장 많은 노동을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점심 식사시간, 저녁 식사시간, 가장 무더운 하절기, 혹한의 추위, 평일보다는 주말, 낮보다는 밤, 평일보다는 명절 연휴 등에 노동이 집중된다. 따라서 플랫폼 회사 입장에서 배달노동자는 ‘직원, 사원, 소속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동이 휴일과 연휴에 가장 필요하며, 다른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쉬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많은 노동이 수행되길 바라는 한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플랫폼 기업이나 배달 대행업체는 이렇게 배달ㆍ물류 노동을 독립된 자영업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그런 형태로 상호 간의 계약을 맺는 것으로 배달사고가 발생할 때 그 책임에서 회피할 근거를 마련한다.

플랫폼과 오늘날 노동의 형상


오늘날의 플랫폼 자본은 사회관계와 그들의 협력을 추출해서 가치를 포획하는데, 이런 유형의 노동 조직화 및 가치화에서는 “주체성 생산이 하는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진다. 네그리ㆍ하트에 따르면, 주체성 생산이란 한편으로는 주체화, 즉 사회적 협동의 자율적 회로들을 통한 생산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속화, 즉 표현적이고 협동하는 특이성들을 명령 받는 주체로 환원시키려는 자본 측의 계속적인 시도를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바 있듯이, 이러한 인간 생산의 방식 그리고 생산자들이 서로에 대해 맺는 관계는 다음과 같은 일정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생산조건의 소유자들이 직접적 생산자들과 맺는 직접적인 관계 - 항상 해당 노동 유형 및 방식의 일정한 수준의 발전에 자연적으로 상응하고, 따라서 그 사회적 생산력에 상응하는 특정한 형식을 띠는 그러한 관계 - 안에서 우리는 사회라는 구조물 전체의 가장 내적인 비밀, 숨겨진 토대를 발견한다.” 즉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생산자 자신이라는 것, 자본가와 사장은 그러한 가치에 기생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생산성이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체성을 생산하는 다양한 과정이 혼합되는데, 이는 탈산업주의 상황에서 살아있는 노동력의 다양한 인간 형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머무는 지형이 어떻게 중심적인 투쟁 장소가 되는지를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플랫폼의 재전유, 즉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물리 기계, 인공지능 시스템, 사회적ㆍ협동적 관계, 과학지식 및 아이디어 등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일은 플랫폼 자본주의 노동자에게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인 대안이 된다. 플랫폼의 재전유는 여러 형태로 플랫폼에 접속하는 이들의 주체성 생산과 그들이 맺는 사회관계를 더 강력하게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며, 그 안에서 이뤄지는 기계와 결합한 활동들은 더 많은 공유재를 개방시키고 창출하는 활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유경제’를 출범시킬 플랫폼일 것이다.



로지스틱스 문제 : 생산과 유통의 통합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보안화 - 이승준



로지스틱스와 새로운 지도 제작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생산과 유통으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각각의 영역이 ‘로지스틱스(물류의 보관ㆍ운송ㆍ유통)’라는 새로운 분야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잉여가치의 생산을 이윤의 중심에 두는 관점에서, 유통과 소비를 중심으로 한 공급 사슬을 하나의 경제 시스템을 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자본의 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에 따라 자본에는 ‘재화 흐름의 보안’이 중요해졌으며, 21세기 초에 들어서면 전체 사회질서가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현재는 세계시장 전체가 ‘가능한 한 마찰이 없도록’ 혹은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물류가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편적 운송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런 과정이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인데, 그것은 운송 시스템의 한 영역의 부분적 붕괴조차 세계 경제에 근본적인 손상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로지스틱스가 특정 기업의 물류나 운송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 지구적인 용어로 보편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늘날 세계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로지스틱스 간의 경쟁은 그 분야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특정한 글로벌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영세한 자영업을 모두 포괄하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여기에 무수한 대중적인 광고 캠페인들은 로지스틱스를 전 지구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했다. 기업이나 국가 그리고 초국가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공급을 둘러싼 경쟁에서는 알맞은 시간에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물류를 순환시키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제 기업에 있어 이윤의 증식은 생산에서 잉여가치를 최대로 창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로지스틱스 혁명’을 통해 운송과 전체 경제 순환에서 비용을 아끼고 낭비를 최소화해 여기서 추가되는 가치를 최대로 만드는 일에 달렸다.

한편 1960~1970년대 경제활동에서는 관문과 항로의 역할이 도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리학이 이 역할을 떠맡았다. 이상한 것은 경제적인 수준에서 공급사슬이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어내고 있던 이 시기에 오히려 지리학계는 관문과 항로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문제에 둔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인데, 이는 아마도 로지스틱스 혁명의 효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즉, 이 시기부터 기업의 로지스틱스가 ‘유통지리학’을 통해 대륙 간 관문과 대양의 항로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데보라 코웬에 따르면 그 결과 지리학은 두 분야로 분리되어 갈등을 겪게 되는데, 각각 기업의 순환 효율성을 높이려는 ‘지리학 분야의 응용연구’와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관심을 두는 ‘비판적 지리학’이 그것이다. 오늘날 관문과 항로에 대한 지도 제작은 더 이상 지리학의 고유한 학문영역이 아니라, ‘지역을 가로지르는 재화의 이동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부가가치 서비스의 창출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로지스틱스 산업’에 관한 것, 즉 ‘지리경제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물류회사의 소유주에게는 국경을 넘나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반대로 지구화된 로지스틱스의 핵심인 관문과 항로에 대한 지도 제작은 ‘비판적인 지리학 연구’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만큼 로지스틱스 산업이 지리학을 활용해 전 지구화 안에서 새로운 권력지형을 펼치는 상황에 올바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공간-정치-경제의 관계를 고려하는 ‘지리경제학’은 영토-주권-국가정치를 중심으로 다루는 ‘지리정치학’과 달리 전 지구화된 시장 논리와 관국가적 행위자들에 의한 국제공간의 재편성을 통해 지리학 내에서의 헤게모니적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예컨대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지리경제학 연구는 여전히 국경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지리정치학이나, 그에 기반해 세계의 권력지형을 비판했던 ‘비판적 지리학 연구’와 달리, 국경을 가로지르는 지역통합 문제를 고려한 지역의 ‘재지도화’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 ‘북미슈퍼항로연합’의 경우에서 확인되듯 지리경제학의 연구대상은 물리적 인프라 강화와 더불어 통합과 표준화, 세관 및 무역규제의 동기화 같은 ‘소프트 인프라’에 주력하는데, 이는 로지스틱스의 전 지구화에 따른 항로의 공간을 보안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난다.

전 지구화 로지스틱스 프로젝트는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를 가로지르며 진행 중인데, 데보라 코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마푸토 항로 로지스틱스 계획’(그리고 그 일환으로서 ‘원스톱 통관 사무소’)은 모잠비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경 관리뿐 아니라 인프라를 전환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두 국가를 위한 공동 가공 구역을 가능하게 만든다. 한편 중국은 그 자체가 단순한 일국적 국민국가로서보다는 전 세계의 로지스틱스망을 상호 연결하는 마디로서 기능하면서 로지스틱스 제국건설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지리학이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하위범주로 전락했음을 알려주며, 또한 그만큼 전 지구적 물류시장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새로 형성된 권력 지형에 대한 공간학적 비판이 그동안 세계적으로 전무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플랫폼 노동의 그림자 : 위험의 외주화와 실상의 비가시화 - 장윤석



결론 : 덧붙이는 대안 스케치


플랫폼 노동은 그림자를 지닌다. 배민과 쿠팡이나 다른 여러 사례에서 보듯, 위험은 외주화 형태로 플랫폼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이런 실상은 고도화된 복잡함과 낯선 반짝임에 가려 비가시화 된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 플랫폼 노동을 들여다볼 때, ‘프랜차이즈형 플랫폼’이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 청년 세대가 플랫폼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청년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살필 수 있는데, 이러한 그림자가 한편이라면, 다른 한편에는 플랫폼 노동이 그 자체로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 변주ㆍ포섭ㆍ전유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 사태에 드러난 ‘필수 노동’ 영역 또한 플랫폼에 포섭되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기후위기 시대에 플랫폼 노동은 위험에 노출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자를 양지로 드러내고, 플랫폼 노동이 처한 상황을 코로나, 기후위기 같은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산업화가 심화될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노동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이고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임은 노동권을 지키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노동 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권을 사고하고, 새로운 생산, 고용, 복지의 틀을 짜야 한다(김철식 외, 2019).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사회적 변화를 근본적인 시선으로 숙고하고, 앞으로의 향방에 주의를 기울여 전체 조감도를 그려볼 때인데, 넓고 급진적인 대안이 긴요하다. 플랫폼 기업에 노동자가 갈려 나가지 않게 플랫폼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계약에 바탕을 둔 대전환이 근본적인 해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다음에 정의로운 전환의 바탕이 된 ‘그린 뉴딜’의 이름으로 다루려 한다.

여기서는 배달에 국한해서 작은 대안의 이미지를 그려보기로 하자. 파리에서 시작되어 최근 도시의 녹색전환에 대한 대안이 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 ‘15분 도시(15min city)’가 그것인데, 이는 도시에 사는 이들이 15분 안에 운동, 녹지, 직장, 의료, 교육, 문화 등의 인프라를 풍부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도로ㆍ교차로였던 곳에 공유텃밭을 만들고, 학교 같은 공공시설 일부에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또 그렇게 마을을 걷거나 자전거ㆍ휠체어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출퇴근뿐만 아니라 ‘배우고’ ‘운동하고’ ‘돌볼 수 있는’ 도시를 형성해나가고 동네 주민끼리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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