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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의 배신

김명수 지음 | 모아북스
노동정책의 배신



김명수 지음

모아북스 / 2021년 7월 / 297쪽 / 22,000원





포스트코로나 시대, 노동의 미래



대한민국의 변곡점은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올 때마다 대대적인 일자리의 교체를 가져왔다. 그러는 가운데 경제가 침체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가 살아나면 일자리가 회복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설비 자동화를 더욱 첨단화하고 노동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일자리도 혁명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도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자리 대변화의 서막이 열리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 구조가 크게 변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로 급속하게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이 소수에게만 더욱 편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이 닥치면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본다. 한편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비 심리를 북돋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지만, 불평등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가 크다. 아무튼 이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한데다가 바이러스에서 안전하기까지 한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로봇이 상용화되면 사람은 힘든 일과 하기 싫은 일은 모두 로봇에게 맡겨버리고 매일 휴가를 보내며 편히 살게 될 줄 알았지만, 이제 로봇에게 속속 일자리를 빼앗기고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복지정책은 어떻게 덫이 되고 말았을까


경제를 살리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 시장 경제를 활용하여 시장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제도를 만들고, 꼭 필요한 곳을 먼저 선택하고 그곳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모두를 살리겠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정작 그 아무도 살리지 못하는 실책을 자초하고 있다. 노동 정책은 혼란만 더 가중시켰고, 집값은 오히려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경제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참고로 미국은 정부 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도 감내할 수 있다.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해도 자국 내 수요 기반이 탄탄하고, 전 세계에서 채권을 사주기 때문에 재정 적자가 나더라도 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기축 통화 국가가 아니어서, 대외여건이 나빠지면 환율로 인해 수출이 크게 흔들려 나라 전체가 출렁인다. 기축 통화 국가가 아닌 나라들이 정부 부채 비율에 신경을 곤두세워 그 비율을 낮게 유지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이다. 세금으로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고, 공무원을 많이 뽑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양극화로 나뉜 사회의 분배 문제를 책임져서 모든 사람이 억울하지 않고, 평등하게 나눠 갖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복지 정책이 국민이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 역할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일자리가 없고 소득이 없는 계층까지도 확대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참고로 현대 사회에서 복지라고 하면, 우선 일자리를 되찾아 주는 것으로 보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긴 하겠지만, 능력이 있다면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개인이 감당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불확실한 위험에 대처해 복지 망을 촘촘하게 짠다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에서 어떻게 ‘잘’ 사느냐의 문제로 복지 영역이 확대될 것이다.



정권 때마다 바뀐 노동정책의 모순(矛盾)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오류

기울어진 노동시장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나: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 환경을 되레 악화시켰다. 한편 촛불 혁명의 염원을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기울어진 노동시장을 바로잡고자 ‘노동 존중’을 내걸었다. 그런데 사용자 위주로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운동장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로 노동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과 변화를 매끄럽게 유도하는 섬세함이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요란한 전시효과에 비해 지속적인 정책 달성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용두사미의 정책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전환 형태와 규모에서 갈등을 일으킨 것이 하나의 실례다. 전체 노동자 하향평준화 전략을 추진했던 과거 정부와는 달리 비정규직 감축, 주 52시간제 도입,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상시적 위험 작업 사내하도급 전면금지 등 노동 존중 공약을 내걸었지만, 정책 실현에서는 실패한 바가 많다. 많은 부분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뿐더러 전반적인 노동정책에서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을 국정 과제로 삼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전환 대상에 간접고용까지 포함한 것은 이전 정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전환이 결정된 인원은 과반수에 미치지 못한 점이 한계로 꼽힌다.

‘최저임금 1만 원’ 대선 공약은 왜 물 건너갔을까: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을 결국 포기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2018년 16.4%(7,530원), 2019년 10.9%(8,350원)로 올리면서 공약 실현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각각 2.87%(8,590원), 1.5%(8,720원)로 급락했다. 이처럼 빠르게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철회한 이유는 재계와 보수 언론의 총공세에 따른 패배이며, 소득 주도 성장의 중도 포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전환점에 선 노동정책:
노동 배제, 기업별 노조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특징으로 한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우선,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공권력 탄압은 줄어들었지만, 손해배상 소송ㆍ가압류 등 법률적 수단을 이용한 단체행동권 통제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둘째, 기업별 노조 체제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뿌리 깊은 반노조 정서로 인해 제도 개선은커녕 기업 단위 교섭을 사실상 강제하는 조항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셋째, 노동시장 유연화 흐름을 제어하는 데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는 제도가 이행되지 못한 것이다.

노동정책이 자꾸 실패하는 이유는:
노동정책이 성공하려면, 경제의 현주소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한편,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해야 하고, 노동사회에 대한 통찰과 현실 인식이 깊어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단순히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스스로 비판의식을 키우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돈놀이보다는 정직한 노동을 기본으로 삼고 존중하는 사회, 노동기본권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는 사회, 초ㆍ중등 교육과정에서부터 노동권 교육을 통해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사회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100만 원 버는 노동자가 200만 원을 버는 노동자를 비판하고, 200만 원 버는 노동자는 300만 원 버는 노동자를 비판한다. 공무원, 대기업 직원, 교수 등을 지칭하며 ‘귀족 노동자’니 ‘철밥통’이니 하면서 편 가르기와 갑을 논란, 흑백논리 등과 같은 분열과 혐오가 심화되고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걸까:
정부와 자본과 언론이 암묵적으로 결탁하여 여론을 호도하여 노동환경과 노동시장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조합을 불온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조합의 교섭과 단체행동이 기업을 망치고 경제를 좀먹은 원흉으로 간주하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을 한없이 올리고 비정규직이 전무한 노동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OECD 국가 평균만큼의 노동환경이라도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지 못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구제할 제도 마련과 같은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갈등은 분열과 분쟁의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건강한 갈등은 해결 과정을 통해 인식의 수준을 높이고 산재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힘이 된다.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노동정책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어설픈 채로 겉돌아:
앞에서 말했듯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촛불 혁명의 기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숙성은커녕 준비 기간조차 짧은데다가 높은 기대를 성급하게 충족시키려다 보니 어설픈 채로 겉돌 수밖에 없었다. 뜸도 안 들인 밥을 퍼내려다 보니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흐르고 만 것이다. 정부 초기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 등을 추진하며 노동 친화의 방향을 분명히 내보였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사태 등 굵직한 국면에서 대처에 한계를 드러내며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의 불신을 샀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 등 영세 자영업자에게 치명타가 될 공약 정책을 포기해야 하는 혼선에 빠졌다.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는 정치ㆍ경제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다 놓친 꼴이 되었다. 예로 일자리의 양과 질을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양립하기 힘든 정책 목표인데도, 의욕만 앞선 나머지 예산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노동현장의 혼선을 가중시켰다. 정치는 뜬구름 잡는 슬로건일지 몰라도 행정은 철저하게 현장주의여야 한다는 걸 몰랐을까.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실시한 노동정책이나 사회정책들은 그 철학이나 방향은 맞지만, 정책의 완성도와 실효성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긴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노동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600만여 명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적 구제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비판받는다. 그리고 국정 과제로 선정한 성별 임금공시제도는 공공기관조차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동정책은 따로 떼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 전반, 또 전체 사업자와의 관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안되고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전체 틀에서 전면적으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잘못된 노동정책, 몰락의 신호탄



청년 일자리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나

고용시장에서 청년이 멀어지는 이유: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현 정부 이래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 일자리 195만 개가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주 40시간 미만 노동자는 213만 명이 늘었다. 풀타임 일자리와 단축시간 일자리가 이렇게 역전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재정 일자리 확대와 노동 규제 강화와 경기 침체가 강제 워라밸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고용시장에서 멀어진 청년은 정부가 미취업 청년을 지원하는 50만 원 지급액에 무려 약 17만 명이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정부가 예상한 목표 인원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청년수당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을 재원으로 쓰기 때문에 말이 청년수당이지, 결국 세금 수당에 불과하며, 정치권에서 지지율 반등을 위해 청년을 돈으로 유혹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편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공시에만 몰리는 현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청년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또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인지하여 혁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인재 교육과 양성에 힘써야 한다. 아울러 기업은 기업하기 좋도록 규제를 낮춰 경제 환경을 조성해주고, 청년들이 다양한 일자리에 적재적소로 투입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해줘야 한다.

최저임금 정책은 왜 딜레마에 빠졌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시장의 충격: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최저임금 1만 원을 밀어붙이다 보니 집권 초기에 인상률이 무려 29.1%다. 그래서 고용지표 악화가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 탓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코로나까지 터지는 바람에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되는 일은 불 보듯 뻔했다. 참고로 2017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56%에 달해 이미 어지간한 OECD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중위임금은 노동자의 소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첫해부터 최저임금을 16.4%나 올려버려 경제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는 중위임금 대비 65%나 오른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높은 인상률을 유지했던 것은 되도록 빨리 OECD 평균에 가까운 중위임금 50% 수준에 도달한다는 목표 때문이었으며, 이 목표는 박근혜 정부 초반에 이미 달성한 바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만의 특징인 주휴 수당까지 고려하면 약 20%를 더해야 하므로 최저임금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보다 사실상 더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 불과 40% 수준이다.

저임금 노동자는 빈곤층일까:
현대의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빈곤층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과거 한 가구에 한 명씩 노동시장에 참여하던 시기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가구소득 격차를 효과적으로 축소하고 빈곤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노동시장에서는 최저임금 노동자 중 빈곤층에 속하는 비율이 30%도 되지 않는다. 저임금 노동자와 빈곤층 간의 일치율이 낮아진 이유는 무엇보다 각 가구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의 수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빈곤 고령가구 및 맞벌이 부부의 증가, 서비스화로 인한 저임금 노동의 증가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가정은 취업자가 없는 가구다. 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게 되면서 소득이 없는 가구 비중이 점차 늘고 있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데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제도는 취업 취약계층과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노사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법적으로 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좋은 의도로 도입된 제도지만 경제학적 논리에 따르면, 시장의 균형임금을 초과하는 최저임금은 고용을 위축시키므로 완벽한 제도가 되지 못한다. 제도의 보호를 충분히 받고 고용도 안정된 핵심 노동자가 임금 인상 협상에 힘을 쓰기 위해 저생산성 부문이 견딜 수 없을 강도의 인상률을 강제하면, 이에 취약한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거나 보호 장치가 없는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모든 직종에 일괄적으로 확대 적용된 이후, 아파트 경비원들이 대규모 해고된 것을 떠올려보면 상황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현장 사정을 무시한 주 52시간 근로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의 현주소:
한국경제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으로 26만 6,000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연간 12조 3,000억 원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나마 대기업은 이를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다지만, 특히 중소기업은 노동시간 감소분을 채울 만큼 신규 채용을 하지 못하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열악하다. 생산성 감소에 직면한 기업들은 고용을 늘려야 하는데 노동시장 경직성과 비용 부담 탓에 고용을 마냥 늘릴 수만은 없다. 채용을 많이 할수록 단순 급여뿐 아니라 4대 보험, 복리후생, 인사관리 비용 등 총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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