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융
미구엘 세라노 지음 | BOOKULOVE
헤세와 융
미구엘 세라노 지음
BOOKULOVE / 2021년 6월 / 244쪽 / 16,500원
헤세와의 만남
데미안1945년경에 나는 헤세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그때까지도 헤세는 칠레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소수의 독자들만이 그의 작품을 읽고 간간이 이야기할 뿐이었다. 1946년에 헤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세의 작품은 몇몇 나라에서만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예컨대 영어권에서는 그를 우울하고 재미없는 작가로 여겼다. 그것이 아직도 영어판 헤세 전집이 출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에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만 헤세를 모르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인기 있는 헤세의 작품 중 한 권을 구하려고 런던을 며칠씩이나 헤맨 일이 있다. 반면 스페인어권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헤세는 계속 많이 읽히고 있고, 스페인과 남미의 젊은이들은 그를 일종의 예언가로 여기고 있다.
어느 멕시코 화가가 나에게 『유리알 유희』의 음악 명인과 크네히트를 그린 그림의 컬러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다. 피아노 앞에 교사가 앉아 연주를 하고 있고, 어린 크네히트가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하는 그림이었다. 그 멕시코인은 『유리알 유희』에 매료되어 이 그림을 그려서 헤세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이런 열정에 나는 너무나 동감한다. 중요한 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오늘도 세계를 반 바퀴 돌 수 있다. 책이 손 안에 들어오기만 기다리면서 책을 찾지도, 열심히 읽지도 않는 오늘날의 열의 없는 젊은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책을 포기하느니 먹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나는 책을 빌리는 법이 거의 없다. 책이 온전히 내 것이기를 원하고, 낮이고 밤이고 나의 동반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도 나름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책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딱 맞는 순간에 독자에게 나타난다. 그렇게 해서 생명 있는 원료로 만들어진 책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나의 첫 번째 헤세 책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흥으로 나를 채웠다. 내가 읽은 책은 스페인어판으로 아마도 많은 오류가 있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넘치는 마력과 힘을 느꼈다. 그 책을 헤세는 아직 젊은 시절에 바덴의 베레나호프 호텔에 살면서 썼다. 온 마음을 다해서 쓴 이 작품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생명력이 넘치고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데미안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힘과 평정심을 닮고자 했다. 『데미안』을 읽고 난 후 나는 내 고향의 거리를 몇 시간씩 걸으면서 내가 새로 태어났음을 느꼈으며, 내가 어떤 징표 혹은 메시지의 전달자같이 느껴졌다. 헤세는 나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작가나 시인 이상의 존재였다. 그의 작품이 지닌 마법은 지난날 오직 종교만이 파고들던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데미안』 외에도 『동방순례』, 『일기 모음』,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에게 오래도록 깊은 감동을 남겼다.
데미안이라는 인물 자체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주인공인 싱클레어와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 그의 깊은 <자기>, 우리의 심연에 내재하는 일종의 원형적인 인물이다. 다시 말해 데미안은 불변하고 본래적인 <자기>로, 헤세는 그를 통해 인간 존재의 마법적 본질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데미안은 어린 소년 싱클레어로 하여금 내면에 내재하는 본래적 존재에 대해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흔히 사춘기 시절에 겪게 되는 혼란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데미안같이 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존경과 경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데미안이 있다.
작품 결말에 야전병원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나타나 키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잘 들어, 싱클레어. 내가 필요하게 되더라도 내가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올 거라고 기대하지 마. 네 자신 속에서 나를 찾도록 해.” 이 말을 헤세는 개인적인 엄청난 고통 가운데, 즉 전 유럽을 뒤덮은 전쟁 때문에 조국을 버리려 할 때 썼다. 헤세 역시 데미안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메시지가 책에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마법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상징적 진실은 오직 직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당사자의 전 존재를 환하게 밝혀준다. 그것이 바로 수년 전에 내가 고향의 거리를 걸으며 새로운 어떤 것이 내 삶으로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르치스, 골드문트, 싯다르타헤세의 작품을 아는 사람에게 나르치스, 골드문트, 싯다르타 같은 이름은 동일한 개념이다. 이들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들로, 헤세의 모든 작품은 동일한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하나의 동일한 인물이듯,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내면의 두 가지 본질적인 성향, 즉 묵상과 행동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싯다르타와 고빈다 역시 서로 상반되는 특성, 즉 순응과 저항을 보여준다. 이런 성격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이웃에 대해서도 또한 자애롭다. 우리는 내향성과 외향성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유리알 유희』는 사랑, 연민, 이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헤세는 그것에 독일인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음악의 푸가와 아라베스크 형식을 담았다. 헤세의 사상은 힌두교와 중국의 도교, 선불교, 심지어는 수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용해되어 바흐의 푸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처럼 순수하다.
헤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골드문트보다는 나르치스처럼 보였다. 방랑 생활을 끝내고 그는 몬타뇰라에서 내면적인 노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이 다할 때까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나 자신은 아직도 두 인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일종의 골드문트였다. 싯다르타처럼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지를 수차례 방문했다. 헤세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책 한 권을 들고 찾아갔다. 나는 젊었고 그때가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내가 스위스에 도착한 것은 1951년 6월이었는데, 헤세의 거주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참을 수소문한 뒤에야 나는 그가 베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루가노로 갔고, 거기서 카스타뇰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때 헤세가 몬타뇰라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산맥과 루가노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산속 마을로 향했다. 버스는 좁은 길을 올라가 목적지에 닿았다. 젊은 여성이 나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는데, 나는 혹시 헤르만 헤세의 집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녀가 자신이 바로 헤세 집의 가정부라면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문 앞에는 ‘방문 사절’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키 큰 나무들 사이로 그녀를 따라갔다. 현관 앞에 서자 두 번째 명문이 눈에 들어왔다. 후에 나는 그 글이 옛 중국 성현의 말씀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할 일을 다한 뒤에는 조용히 죽음과 친해져야 한다. 이제 그에게 사람은 필요 없다.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고, 충분히 보아왔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고요함이다.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말을 걸고, 잡담으로 괴롭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런 사람의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빈집을 지나갈 때처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다. - 맹자”
날이 너무 어두워 이 글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가 현관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어두운 복도에 있는 작은 테이블 앞에 의자를 내주면서 명함을 부탁했다. 나는 명함을 갖고 있지 않아서 내 책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해도』를 건네주었다. 그 책에 나는 특별히 헤르만 헤세를 위해 스페인어로 헌정사를 써 가지고 갔다.
그녀가 사라졌고 나는 수도원 같은 분위기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옅은 백단향의 향내가 나는 것 같더니 문이 열렸다. 흰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헤세였다. 나는 일어나 그를 따라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헤세는 갸름한 얼굴에 밝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흰옷을 입은 그는 고행자나 고해자처럼 보였다. 백단향의 향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볼 때 헤세는 시간을 초월한 것 같았다. 그때 그는 73세를 넘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그의 미소는 젊은이의 미소였다. 그의 육체는 절제되고 영적인 모습이었다. “저는 먼 길을 왔습니다.” 내가 말을 꺼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내 작품이 스페인어권에서도 그렇게 많이 읽힌다니 놀랍습니다.” 헤세가 대답했다. “이따금 라틴아메리카에서 편지가 옵니다. 새로 나온 번역서, 특히 『유리알 유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유리알 유희』에 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이야기했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스페인어 번역본이 원본의 정신과 정서를 잘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영혼의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성격을 나타냅니다.” 헤세가 말했다. “그것은 묵상과 행동으로, 이 둘은 언젠가 통합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극단적인 둘 사이를 오가면서 긴장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묵상의 고요함을 꿈꾸는데 생활이 어쩔 수 없이 저를 행동으로 밀어붙입니다.”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가게 하십시오. 거부하지 마십시오. 신은 산과 호수에 계신 것처럼 당신의 운명 안에도 계십니다.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이 자연에게서, 그리고 자신에게서 자꾸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지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나는 우파니샤드 베단타보다 중국의 지혜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주역』이야말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녁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연한 푸른빛이 창에 물들어 헤세의 가냘픈 몸 위에서 나풀거렸다. “선생님께서는 이곳 산속에서 평온을 발견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헤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리는 저녁의 고요한 속삭임과 사물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자연에 가까이 있으면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나는 내가 떠나야 할 때인 것을 느꼈다. 헤세는 자신을 그린 조그만 수채화 한 폭에 ‘몬타뇰라 기념’이라고 서명을 해서 주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훌륭한 수채화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문까지 전송해주며 오랜 친구처럼 나와 악수했다.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되시면,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와 헤세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오후에 내가 헤세에게 했던 질문, 혹은 싯다르타가 부처에게 했던 질문을 할 정도의 젊은 사람이라면 내가 받은 감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몬타뇰라의 좁은 길을 따라 돌아 나오면서 버스 한 대도 만나지 못하던 차에 어느 청년이 오토바이로 나를 루가노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르네상스의 매력으로 가득한 피렌체에 도착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는 점령군의 달러와 알코올에 의지하고 있었다.
융과의 만남
남극에서나는 1947년에 남극을 여행했고, 내 책 『빙원으로의 초대』에서 이 여행에 관해 기술했다. 그런데 그 책에서 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를 여행 가방에 넣고 갔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책은 내 여행 목적에 방해가 되었다. 그 책에 빠져들수록 지나쳐 가고 있는 빙원을 세심하게 살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마지막에야 나는 그 책과 내가 찾아갔던 그 먼 세상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융의 저서와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읽은 적은 있었지만 융의 『심리 유형들』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만남이 그제야 성사된 것이다. 나는 융의 책을 파카 주머니에 넣은 채 칠레의 긴 해안을 따라 천천히 항해를 계속했다. 파타고니아를 지날 때는 계속 비가 내렸다. 배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을 지나고 혼곶을 돌아 드디어 비글 해협과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 남극의 거대한 설원에 도착했다. 순백의 빛과 아려오는 추위가 대기에 가득하고 바다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얼음덩이가 천둥 같은 굉음을 울리는 거대한 빙산으로 에워싸인 곳, 그곳에서 나는 융의 책으로 주의를 돌렸다. 다른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나는 현대인의 <자아>와 잠재의식을 분리하는 틈을 좁힐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때 그 장소에서 융의 책이 왜 그렇게 내 관심을 끌었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남극에서 확연하게 알게 된 원형의 개념, 또 슬쩍 던진 예수에 관한 언급, 그리고 예수가 황량한 빙원과 다르지 않은 가혹한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암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책은 내게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었고, 남극의 새하얀 정적만큼이나 커다란 두려움을 불러왔다. 그 책은 내 존재의 한 부분을 강력하게 건드렸고, 막연히 인식했지만 구체화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남극에서 돌아온 나는 여행이 더 중요했는지 융의 책이 더 중요했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융의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나는 여행의 기억에 깊이 빠져들어 마음속에서 다시 검토하면서 여행과 내 존재의 관계를 이해하려 애썼다. 동시에 인도 여행을 더욱 더 갈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남미의 전설과 신화의 근원을 밝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가의 가르침에 매혹되어 요가 공부도 시작한 상태였다.
몇 해 동안 연구를 계속하면서 나는 신화와 전설에 뿌리내린 오랜 지혜를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재차 융에게 관심을 돌렸고,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를 다시 읽었다. 그런 뒤 융이 중국과 티베트의 요가에 관해 쓴 논평을 읽는 데 열중했다. 『태을금화종지』 해설을 읽었고,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 즉 『역경』의 서문도 읽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프로이트에게는 오직 성과 관련되었던 리비도가 융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 즉 탄트라 요가의 ‘쿤달리니’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융의 저서를 읽을수록 그는 ‘분석심리학’이 어떤 의미에서는 입회를 위한 노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바닥에 융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어떤 다른 내용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정신분석가는 구루, 즉 스승이 되고 분석 대상자인 환자는 시스야, 즉 제자가 되었다. 만일 환자가 실제로는 분열을 앓거나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데 건강은 완벽하다면, 융의 정신질환 치료법은 현실이나 <자기>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주기 위해 환자의 과거에서 환상에 불과한 환영과 그림자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런 과정은 힌두교 구루의 가르침과 아주 유사하다. 융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인격 혹은 <자아>를 파괴하지 않고 개인과 우주 사이의 대화를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지낸 수년 동안 나는 시드하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연금술사이자 마법사인데,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로 아리아인이 침입하기 전까지 인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자아>와 <자기> 간의 대화를 유지하려 애썼는데, 베단타학파가 말하는 ‘사마디’가 아니라 ‘카이발랴’라는 훨씬 더 깊은 무아지경에 도달하고자 했다. 카이발랴라는 단어는 ‘고독’ 혹은 ‘분리’라는 뜻으로 우주로부터, 나아가 신으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함축하고 있다. 시드하들은 육신의 불멸을 얻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금속의 연금술적인 결합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