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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운명

카일 하퍼 지음 | 더봄


로마의 운명



카일 하퍼 지음

더봄 / 2021년 7월 / 544쪽 / 25,000원





환경과 제국



로마 제국의 형성


로마의 발흥은 놀랄 만한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지중해 지역의 정치권력 가운데 로마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기 때문이다. 로마의 고대사를 군주제, 공화제, 제국주의 세 가지 시대로 나누는 것은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수백 년 동안의 군주제 시대는 시간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훗날 로마인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그 기원을 전하는 신화로만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로마 근처에서 일시적으로 살았던 인간의 흔적을 발견했다. 로마인들 스스로는 도시가 세워진 시기를 기원전 8세기 중반 첫 번째 왕 로물루스 때로 추정했다.

초기 고대 세계의 지중해 지역은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이 패권을 잡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문맹인 가축도둑들에 불과할 때, 그리스인들은 서사시와 서정시를 쓰면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그들의 연극, 철학, 역사를 창안했다. 가까운 해안에서는 카르타고의 포에니족이 야심찬 제국을 건설했다. 로마인들이 돛을 조작하는 법을 알기도 전의 일이었다. 25킬로미터쯤 내륙으로 들어가 티베르강의 축축한 강둑에 자리 잡은 로마는 뒷전에 있는 존재였고, 고대 초기 세계의 창조성을 구경만 했다.

기원전 509년 즈음, 로마인들은 왕을 쫓아내고 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그즈음부터 로마의 정치와 종교 제도들은 토착적인 것과 유입된 것이 서로 섞이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남의 것을 잘 빌리는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로마법인 12동판법조차 아테네의 법을 표절했다고 공공연하게 고백하곤 했다. 로마의 공화제는 시민권을 기본으로 하는 고전적 지중해인의 정치적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표면적-평등주의 정치조직체라는 개념에 강조점을 두었다.

로마가 융성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마지막 몇 세기 동안 지중해 지역에 지정학적인 무질서가 넓게 펼쳐진 시기와 일치한다. 적절한 역사적 순간에 로마인들은 공화정과 군국주의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전례 없는 국가 폭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제국의 건설은 피로 얼룩진 사업이었다. 병사들은 지중해 전역에 직선형으로 늘어선 로마의 식민지에 주둔했다. 잔혹한 폭력으로 침략한 곳들이었다.

로마 제국의 성립은 전례 없는 일로, 인류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부와 발전을 이루었고, 불안정한 공화제 헌법은 자유, 미덕,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반성을 촉발시켰으며, 제국주의 권력을 어떻게 적절히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졌다. 한편 로마의 법은 통치의 표준을 탄생시켰으나, 권력의 급격한 확대는 격변을 불러올 국가 폭력에 기름을 부어 독재의 시대가 시작되도록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BC 27 ~ AD 14)에는 로마가 지배하는 해안선이 확장되었다. 지중해를 ‘우리 바다’(nare nostrum)라 부르는 것이 허세가 아니었다. 로마의 성취를 평가하고 고대 제국주의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사회의 삶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삶은 느리고 유기적이었으며, 무너지기 쉽고 제한적이었다. 수로는 제국의 진정한 순환 시스템이었으나, 폭풍이 몰아치고 바다가 닫히는 추운 계절에는 모든 마을이 섬으로 변했다. 에너지는 당연히 부족했다. 힘은 인간과 동물의 근육에서 나왔으며, 연료는 통나무와 덤불이었다. 육지에 밀착되어 살아가는 삶이었다. 열 사람 중 여덟 명은 도시 밖에서 살았고 마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시골 같았다. 네발 달린 짐승의 울음소리와 코를 찌르는 배설물 냄새가 마을에 진동했다. 생존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제때 내리는 비에 좌우되었다. 대다수에게 먹을 것은 곡물뿐이었다. 죽음은 늘 곁에 있었다. 이런저런 전염병들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서 평균 수명은 20대, 20대 중반 정도였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제약들은 중력과 같이 현실적이었고, 로마인들이 알고 있는 세상을 규정하는 운동 법칙이었다.

이러한 제약들로 인해 로마 제국의 수직적 공간적 성취가 뚜렷해졌다. 전기 통신이나 엔진이 달린 운송 수단도 없이, 로마인들은 지구상의 서로 다른 지역들을 연결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의 북단은 북위 56도를 넘어섰고, 남쪽 경계선은 북위 24도 아래였다. 로마만큼 오래 지속되고 중위도 이상과 열대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다스린 제국은 없었다. 제국의 북부와 서부는 대서양 기후였다. 그러나 제국의 생태학적 중심에는 지중해가 있어 비교적 온화한 기온을 배경으로 건조한 여름과 축축한 겨울이 나타나는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이 뚜렷했다. 제국의 남부와 동부 가장자리를 둘러싼 아열대 기후의 압박으로 인해 육지는 사막 전단계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사막으로 변해갔다. 제국의 식량 창고였던 이집트는 완전히 다른 기후 체제와 로마를 연결시켰다. 로마인들은 이 모든 것을 통제했다.

로마인들이 폭력만으로 이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것은 아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힘이 필요했고, 로마 국경 안의 사람들과 그 너머 사람들이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다. 제국이 오래 유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국의 권력, 그리고 경제와 협상의 내적 논리가 여러 차례 형태를 바꾸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고대 로마 제국이라고 알려진 정권을 인수했다. 그는 공화체제의 종말을 주도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정권을 탈취하려는 엘리트들의 경쟁으로 인해 공화국 말기에 불붙었던 정복의 열기가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치세는 평화로운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민들로만 이루어진 군대를 해산시키고 직업 군인으로 대체했다. 공화국 말기는 여전히 무상 약탈의 시대였지만,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정복한 영토에서 통치와 정의의 규범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약탈은 일상적인 세금으로 변했다. 저항이 폭발할 때는 유대나 영국에서처럼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시민들은 처음에는 지방으로 서서히 흘러 들어갔으나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첫 이백 년 동안 제국의 체제를 규정한 거창하고 결정적인 타협은 제국과 ‘도시들’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로마인은 도시와 그곳의 귀족 가문을 지배했는데, 로마인은 지중해 세계와 시민 귀족 계급을 그들의 제국주의적 책략으로 구슬렸다. 지방 귀족들에게 세금 징수를 맡기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로마인들은 3개 대륙에서 선택한 엘리트들을 지배계급으로 편입시켰고, 그 결과 수백 명에 불과한 로마인 고위 관료들로 광대한 제국 전체를 통치할 수 있었다.

제국의 지속은 위대한 타협의 성과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초반의 첫수였고, 효과가 있었다. ‘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를 의미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약탈이 통치로 바뀌면서 제국과 함께 많은 민족도 번성하게 되었다. 도시는 원래의 경계를 넘어 확대되었고, 거주지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숲을 베어내고 새로운 농토를 경작해 농장들은 언덕 위로 확산되었다. 로마제국의 햇살 아래 모든 유기체가 번성했다. 이 시기의 첫 세기 즈음, 로마시 자체의 인구가 백만 명을 넘어서는 정점을 찍었다. 2세기 중반에 이르렀을 때, 7천5백만 명의 사람들이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는 전 지구상 인구의 1/4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인위적으로 성장이 강요되면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사람들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점점 더 강압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유한한 땅으로 몰려갔다.

토마스 맬더스는 인간 사회와 식량 공급의 모순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잘 이해했다. “집단의 힘은 인간의 호구지책을 공급하는 땅의 힘보다 훨씬 강하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죽음이 조급하게 인류를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류의 악덕은 적극적이며, 쉽사리 인구 감소를 야기한다. 그들은 파괴의 선봉에 서며, 그 무시무시한 작업을 직접 끝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소멸이 실패하면 질병의 계절, 유행병, 역병, 전염병이 대열을 짓고 진군해 와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그것으로도 불완전하다면, 피할 수 없는 엄청난 기근이 몰려와 식량 부족이라는 강력한 한 방으로 인구를 후려칠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대규모의 기아에 굴복하지 않은 게 확실하다. 여기서 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숨겨진 논리를 찾을 수 있다.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불행으로 가라앉기는커녕, 1인당 경제의 측면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했고, 곧바로 심각한 인구 팽창이 일어났다. 제국은 맬더스학파의 암울한 논리를 거스르거나, 최소한 유예할 수 있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로마의 통치는 그 지배하에 있는 사회를 변화시켰다. 상업, 시장, 기술, 도시화가 그것이었다. 제국과 동시에 많은 민족이 발전의 지렛대를 붙잡았다. 제국은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강력하고 폭넓게 성장했다. 로마 제국은 맬더스의 예상을 피해 갔고, 의도치 않은 정치적 자본을 얻었다. 이런 번영은 대제국이 성립한 조건이자 결과였고, 그런 순환은 매혹적이었다.

제국의 안정성이 인구증가와 경제적 성장의 배경을 제공했다. 인구와 부는 이제 제국의 권력이 지닌 근육이 되었다. 병사들은 차고 넘쳤다. 과세율은 높지 않았으나, 세수는 넉넉했다. 황제들은 인색하지 않았다. 도시 엘리트들과의 타협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 어디에나 부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군은 모든 전선에서 적과 비교해 전술, 전략, 물류의 이점을 누렸다. 예상보다 더 무너지기 쉬울 가능성은 있어도, 로마인들은 일종의 긍정적인 평형 상태에 도달했다.

기번의 역작 『로마제국 쇠망사』는 2세기의 찬란한 날들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유명한 말, “세계사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대를 선택하게 한다면, 누구라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죽음(AD 96)에서부터 코모두스 황제 즉위(AD 180)까지의 시기를 꼽을 것이다.”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전근대 사회의 유기적 조건에서 가능한 것의 한계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기번이 ‘이 끔찍한 혁명’이라고 불렀던 거대한 제국의 몰락이 사람들을 영원히 매혹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변덕스러운 우리 행성


서기 650년 즈음의 로마 제국은 번성했던 과거는 그림자로만 남아 콘스탄티노플, 아나톨리아 그리고 바다 건너 몇몇 낙후된 소유지 속에서 쓸모없어진 비잔틴으로 줄어들었다. 서유럽은 게르만 왕국들로 분열되었다. 예전 제국의 절반은 아라비아에서 온 다른 신앙의 군대에 의해 신속하게 쪼개졌다. 한때 7천5백만에 이르던 지중해 지역의 인구는 대략 절반 정도에서 정체된 상태였다. 로마에는 약 2만 명이 거주했다. 그들은 이전보다 부유하지 못했다. 7세기 무렵에는 좁은 간선도로 하나가 바다를 가로질러 동서를 간신히 연결하고 있었다. 통화 체계는 중세 초기의 모자이크 형태로 분열되어 있었다. 유명무실한 재정기관 외에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과 이제 형성되어 가는 중인 이슬람교인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종말론의 공포가 지배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느껴졌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로마 제국의 몰락은 개화의 과정을 역행하는 것이다. 즉 에너지 획득과 교환이 후퇴한 것이다. 로마의 몰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논쟁하는 이론들도 산적해 있다. 독일의 한 고전주의자는 210개나 되는 가설을 제시했다. 넓은 시야로 선두주자의 위치를 차지한 두 가설은 제국이라는 체제가 태생적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메커니즘이라는 것, 그리고 제국의 최전방을 따라 가해지는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군주제의 틀을 확립했지만, 왕위 승계의 규칙은 확정하지 않았기에 운명 같은 우연이 위험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권력과 정통성을 얻기 위한 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군대를 통솔하기 위한 자기 파괴적 전쟁으로 치달았다. 그와 동시에 제국의 행정 전문 관료 집단이 점점 커져가면서 제국을 운영하던 지역 엘리트의 조직망을 대체했다. 관료가 많아질수록 국가는 무너지기 쉽다. 재정 압박이 커져서 시스템이 과열되기 때문이다.

한편 제국의 국경은 영국 북부까지 뻗어나갔으며 라인강과 다뉴브강, 유프라테스강과 사하라의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그 너머에는 질투심에 찬 굶주린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꿈꾸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이제 우리가 2차 국가의 형성이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로마의 적들은 수 세기에 걸쳐 점점 더 복합적이고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위협은 전선과 국가 심장부의 자원 양쪽 모두를 가차 없이 고갈시켰다. 왕위 다툼과 함께 제국의 운명에 치명적인 것이었다.

로마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역사들 대부분은 배경이 되는 환경을 안정적이고 비활성화된 상태로 가정하고 전개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가정이 틀렸음을 안다. 지구 시스템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고대기후와 게놈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 진보한 덕분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암묵적 가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지구는 인간사의 요동치는 발판이다. 격렬한 돌풍 속에 휘말린 배의 갑판처럼 불안정한 발판이다. 물리적, 생물학적 지구 시스템은 끊임없이 설정을 바꿔왔고, 우리 인간은 내내 존 브룩이 ‘험난한 여정’이라고 불렀던 일을 겪어야 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의 대기를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기후 변화는 최근의 문제이며, 큰 그림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이 대기에 열을 가하는 화학물질을 안겨 주기 훨씬 전부터 기후 체계는 자연적 원인에 의해 흔들리고 변화해 왔다.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우리 선조들은 기후가 들쭉날쭉 진동하는 플라이스토세에 살았다. 지구 궤도의 작은 변화들, 그리고 지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기울고 회전하는 작은 변화들이 우리로부터 가장 가까운 별에서 도달하는 에너지의 양과 분포를 끊임없이 바뀌게 했다.

플라이스토세를 지나오면서 궤도 강제력이라 불리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되는 빙하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1만 2000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기후는 홀로세라고 알려진 따뜻하고 안정된 간빙기로 들어섰다. 홀로세는 농업의 번성과 복잡한 정치 질서의 성장에 필수적인 배경이었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극적이고 급격한 기후 변화의 시기였다.

지구라는 행성의 관점에서 보면, 로마인들은 운이 좋았다. 제국은 로마기후최적기(RCO)라고 불리는 후기 홀로세 기후 시대의 경계선에서 최대의 영토와 번영을 누렸다. RCO는 제국의 중심인 지중해 연안에 걸쳐서 따뜻하고, 습하며, 안정적인 기후였음이 밝혀졌다. 정치적 경제적 타협의 피라미드로부터 농경 제국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었다. 교역과 기술이나 마찬가지로, 기후 체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제국의 번영에 선순환적이면서 조용하고 협조적인 힘이었다. 로마인들이 그 한계까지 제국을 밀어붙였을 때, 그들은 환경적 토대가 자신들이 건설한 제국에 위태롭고 가변적임을 알지 못했었다. 2세기 중반부터 로마인들의 행운은 바닥에 떨어졌다. 수 세기에 걸쳐 홀로세에서 가장 극적인 기후 변화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우선 서기 150~450년에 걸친 기간 내내 혼란스러운 기후가 도래했는데, 이를 로마 과도기라고 부를 것이다. 기후가 불안정해지자 결정적인 고비마다 제국은 비축된 힘을 쥐어짜야 했고, 기후는 여러 사건의 진행에 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다가 5세기 후반부터 기후가 결정적으로 재편성되는 소용돌이가 시작되었고, 고대 후기 소빙하기에 접어들면서 절정에 이른다. 530년대와 540년대의 화산활동으로 후기 홀로세는 전반적으로 냉랭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태양에서 지구로 도달하는 에너지의 수준은 수천 년 만에 가장 낮은 지점으로 떨어졌다. 물리적 기후 조건이 악화되면서 남아 있던 로마 제국을 휩쓸어버리는 전례 없는 생물학적 재앙이 함께 일어났다.

물리적 기후가 요동을 치면 생태학적 또는 진화적 변화가 촉발되어 질병이라는 사건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탐구할 수 세기 동안, 기후 변화와 질병은 서로 어우러져 로마 제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기후 변화와 감염병 사이에는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최근까지 기후 시스템은 인간의 영향력에 상관없이 자체적인 속도와 주기로 진동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감염병의 역사는 좀 더 밀접하게 인간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다. 인간 사회는 치명적인 미생물들이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로마 제국이 야심차게 사회를 발전시킨 결과는, 역설적으로 치명적인 미생물이 번성할 환경을 여러 방식으로 배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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