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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스테판 오렐 지음 | 돌배나무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스테판 오렐 지음

돌배나무 / 2021년 5월 / 492쪽 / 25,000원





로비스트와 나 -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박사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1984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쇼 중 하나인 ‘레이트 나이트 위드 데이비드 레터먼’ 방송에 출연했다. 사회자가 물었다. “박사님, 무엇이 관건인지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초대 손님인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비밀 중 하나를 털어놓듯이 자신의 처방을 알려줬다. “실제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이겁니다. 제가 ‘박사님’으로 불릴수록 사람들이 절 더 신뢰한다는 거죠.” 데이비드 레터먼과 방청객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에드워드 버네이즈, 심리학 부당 이득자: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189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이후 가족과 함께 뉴욕에 정착했다.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기자 겸 광고제작자로 공보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후대에 조지 크릴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크릴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이 위원회는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17년에 발족시켰다. 위원회의 임무는 막대한 양의 공식성명, 브로슈어, 애국주의 영화와 포스터 공세를 퍼부어 미국 여론에 미합중국의 유럽전쟁 참전을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크릴 위원회가 세운 공적 중 하나로 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선전물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을 상징하는 엉클 샘이 짧은 턱수염에 진지한 눈빛을 하고 검지로 정면을 삿대질하는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이다. 아래에는 ‘미합중국군은 당신을 원한다(I want YOU for U.S.Army)’는 문구가 쓰였고, ‘당신’이라는 단어가 진홍색으로 강조됐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모두가 이 포스터를 알고 있을 정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전시에 국가 프로파간다 설계자로 활약한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이 현대에서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건 아니지만, 마케팅의 선구자로서 그는 평화의 시대인 만큼 프로파간다에 ‘PR(홍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PR의 고안자이자 이론가로 활약했다. 그는 단어로 현실을 포장해 사람들이 프로파간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바꿔버렸다. 즉, 새롭게 정의했다. PR의 등장은 일종의 빅뱅으로, 미국인들이 ‘스핀(Spin)’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기원이 되었다. 그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스핀닥터(Spin Doctor)’들이 다양한 전략들을 펼쳤다. 이미지 보호부터 위기관리, 스토리텔링 광고부터 데이터 왜곡까지 수많은 뉘앙스로 거짓말이 다채롭게 변주되었다.

PR의 고문으로 일컬어지던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또 다른 독보적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삼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삼촌 이론의 핵심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던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정부와 상사회사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설득할 때 무의식, 충동, 억압, 억제, 성욕 등 그에게 친숙한 개념을 - 말 그대로 - 이용하려 애썼다. 상담용 카우치가 없는 그의 사무실은 대기업 지도자들로 문선성시를 이뤘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곤궁에 처한 기업들을 위한 정신분석가’로 여겨지길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다.

1920년대 말,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의 최고경영자인 조지 힐이 버네이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거의 흡연을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담배시장에서 절반의 고객을 놓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사회적 금기가 사라지기만 하면, 그러니까 여성들이 담배를 더 피우기만 하면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브랜드의 매출이 대폭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프로이트의 제자인 에이브러햄 브릴 박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을 구했다. 브릴 박사는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여성의 욕망은 성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억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125달러였던 이 ‘상담’ 후에, 에드워드 버네이즈 사무실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자 남근숭배의 상징인 담배를 여성해방에 대한 주장이자 상징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1929년 그는 한 무리의 여성들을 고용해 부활절 퍼레이드에서 ‘자유의 횃불’인 담배를 보란 듯이 피우며 뉴욕 시내를 활보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찍게 한 사진들이 모든 언론에 뿌려졌고 다음날 일간지의 일면에 실렸다. 후에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인터뷰에서, 그로부터 며칠 뒤 샌프란시스코 및 덴버의 대광장과 모스턴 코먼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을 봤다는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었다고 과시했다. 몇 주 후 뉴욕의 공연장들은 자발적으로 여성의 실내흡연 금지조치를 폐지했다. 중독에 대한 굴복을 해방으로 전환시킨 위업을 달성한 장본인인 그가 말하길, 담배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를 거쳐 초가공 식품, 더 나아가 완전히 분말 형태인 식품 붐이 일어나고 있을 때, 제너럴밀스 브랜드는 첨가물이 가득하고 공기층이 많아 폭신폭신한 인스턴트 케이크 ‘베티 크로커’를 출시했다.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여성들을 대표하는 표본인 ‘포커스 그룹’을 조직해 제품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를 조사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어머니로서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있어 샐러드 볼에 물을 따라 붓는 것 외의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이러한 정황에서 확신을 얻은 그는 조리법에 계란을 넣는 과정을 추가했다.

이때 계란은 가임기의 아내가 남편에게 건네는 은유적인 선물을 의미한다. 반죽에 계란을 넣는 건 『당나귀 가죽』보다 더 오래된 사랑의 케이크 레시피다. 그러자 곧바로 판매량이 치솟았다. 봉지에 든 케이크 믹스는 오늘날 슈퍼마켓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내세운 이론에 따르면, 상징은 ‘프로파간다의 화폐’다.

여론을 요리하는 주방:
버네이즈는 1928년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에서 “집단기제와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의지에 따라 대중을 통제하고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통제에 필요한 도구가 바로 월터 리프먼에게서 차용한 개념인 여론 조작이다. 월터 리프먼은 언어 구사력이 뛰어났고, 그와 동일한 분야를 탐구했으며, 훗날 ‘냉전’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여론 조작을 사회과학과 정신분석학으로 형성된 ‘과학적 방법’의 결실로 내세웠다. 캐나다 퀘벡대학교의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은 『프로파간다』 프랑스어 역서의 서문에서 “이는 오히려 PR고문으로서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에 대한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라고 통찰력 있게 꼬집었다.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주장에 따르면, 소수의 엘리트들이 대중을 위해 결정을 내리고 교묘한 설득으로 대중이 이 결정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는 1928년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대중의 여론과 행동을 의식적이고 지능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의 이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 […] 오늘날 프로파간다는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중요한 모든 일에 필연적으로 개입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프로파간다는 보이지 않는 정부의 실행조직이다.”

이렇게 해서,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정신분석학이 향을 첨가한 스펀지케이크와 담배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PR과 한 몸이 되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 그는 또한 “어떤 제품을 구매하라고 설득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좋은 정부를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아니, 하지만 이 노인이 파스텔 색깔처럼 아름다운 구상을 했을 리 없다. 게다가 현대인의 시각에서 버네이즈의 저서는 민주주의 탈취를 위한 악랄한 계획서 말고 다른 의도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그 자체로도 유명한 요제프 괴벨스라는 이름의 독자이자 숭배자가 있었다.

1933년, 버네이즈는 나치당의 선전부장이자 독일의 국민계몽선전부를 신설한 괴벨스가 1923년에 쓴 자신의 첫 번째 저서 『여론정제』에서 큰 영감을 받고 개인서재에까지 뒀다는 사실을 접하고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괴벨스만이 아니었다. 버네이즈의 방법은 P&G부터 캘빈 쿨리지 전 미국 대통령까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부터 제너럴 일렉트릭까지 수십 명의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출발점이자 모범이며 영감의 원천이기도 한 그의 방법은 수십 년을 거쳐 전파되면서 다양한 술책을 탄생시켜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렸고, 사람들의 아침식사 메뉴까지 뒤흔들어 놨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식 아침식사에는 꼭 계란과 베이컨이 있다. 하지만 미국인이 원래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단백질 함량이 높고 기름진 식사를 했던 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손길이 닿은 이후부터였다. 1920년대까지 미국인은 오히려 과일과 오트밀 또는 작은 빵으로 가볍게 아침식사를 했다. 비치넛 패킹사가 베이컨 판매를 늘려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때다.

비치넛 패킹사의 의뢰를 맡은 버네이즈는 직접 개발한 천재적인 술책을 부린다. 바로 제삼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해당분야의 권위자면서 해당 이해관계와 표면적으로 어떠한 관련도 없는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버네이즈가 자문을 구한 한 의사는 아침식사가 든든하고 단백질이 풍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네이즈는 이 의견을 글로 쓰게 하고, 다른 의사 5천 명에게 보내 견해를 물었다. 거의 모든 의사들이 동의하며 간략한 서명을 덧붙였다.

버네이즈는 결과를 언론에 보내고, 이 내용이 과학적 연구 결과인 것처럼 퍼뜨렸다. 반세기 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국에서 일간지들이 이렇게 타이틀을 뽑았죠. ‘4,500명의 의사들, 국민 건강증진 위해 든든한 아침식사 권장. 대부분 아침식사로 베이컨과 계란 추천’이라고요. 그 결과 베이컨 판매가 증가했죠.” 제대로 먹혔다. 챔피언의 아침식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 시간이 되었으며 베이컨 사업은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제가 ‘박사님’으로 불리면 불릴수록 사람들이 절 신뢰한다는 거죠.” 에드워드 버네이즈는 이 점에 있어서 핵심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 주부, 정원사,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그리고 장관까지도 ‘박사님’으로 불리는 사람을 훨씬 더 신뢰한다. 심지어 박사끼리도 말이다.

‘과학 세탁’ 기계처럼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독성학 교수이며 인체 및 환경독성학팀을 이끌고 있는 다니엘 디트리히는 이따금씩 유럽연합 의원들과 위원들에게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너무 엄격한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브뤼셀로 향한다. 참고로 그가 정치 및 과학 싸움터에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은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던 유럽 위원회 환경총국은 회원국 소속 전문가들과 2년간의 토론을 거쳐 구상한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안을 다른 부서에 제출하여 승인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규제안은 가장 최근의 과학적 지식과 유럽 연합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전예방원칙을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농약 제조업체들은 이 규제안을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고, 5월에는 조직적으로 이메일 전격전을 펼쳐 그들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료들로부터 유예기간을 얻어내려 애썼다. 이때 전대미문의 두 작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맞선 전문가들의 전투:
6월 중순, 56명으로 이뤄진 과학자 집단이 유럽 위원장의 수석 과학고문인 앤 글로버 교수에게 한 통의 서신을 보냈다. 그들은 “제안된 접근법에 따라 독성학과 환경독성학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는 과학 및 규제 원칙들을 제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증명할 적절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염려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나기 전에 이 서신은 이례적인 방법으로 공개되었다. 14종의 학술지에 동시 공개된 사실이 서신의 내용을 뒷받침했다.

사설 자체도 다음과 같이 비범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예방 조치가 유럽 위원회의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대한 권고사항에 힘을 불어넣고, 충분히 정립된 과학상식과 위해성평가 원칙을 무시한다.’ 사설의 공저자인 18명 중 일부는 앞서 말한 서신의 작성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14종의 학술지 어디에도 이해관계확인서는 첨부되지 않았다. 따져봐야 할 게 많았다. 우선 저자 18명 중 17명이 실제로 화학, 살충제, 의약품, 화장품 또는 생물공학처럼, 많든 적든 간에 규제안의 위협을 받는 업계의 기업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다수가 규제원칙의 정당성에 언제나 신속하게 대항하는 산업, 바로 담배산업에 협력한 바 있었으며, 내분비계 교란물질 전문가는 얼마 없었다.

그중 한명은 R. J. 레이놀즈의 전 직원이자 컨설턴트인 A. 월리스 헤이즈이다. 다른 한 명은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의과대학 퇴직교수인 한스 마쿼트로 사례를 받고 필립모리스의 외부연구 후원을 위한 과학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다른 한 명인 지오바타 고리는 담배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이중 작전을 주도한 건 세 명의 독일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국적을 명시하는 이유는 내분비계 교란물질 규제에 맞서 펼치는 로비활동의 전장에서 화학 및 살충제 업계의 독일 대기업인 바스프와 바이엘이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독성학 교수인 볼프강 데칸트는 당시 농약, 화학, 플라스틱 기업과 기업 소속의 로비단체와 체결한 약 20건의 계약서를 공시했다. 뮌헨공과대학교 독성학 및 환경위생 연구소 전 소장인 헬무트 그라임은 이미 화학, 살충제, 석면, 자동차, 향수 등의 수많은 산업에 협력했으며, 2015년에는 몬산토가 글리포세이트 제품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한 전문가 패널에 합류했다.

세 번째 사람은 다니엘 디트리히이다. 다니엘 디트리히와 기업의 관계는 세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다른 이들보다 오래됐다. 어쨌든 공공분야와도 인연이 깊다. 그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그가 질문을 받을 때면 ‘너무 오래전’이라며 둘러대는 불확실한 날짜에 화학산업단체인 유럽 화학물질 생태독성 및 독성센터의 고문을 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독성학자인 다니엘 디트리히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다우 유럽, 아스트라제네카 그리고 바이엘 헬스케어와 같은 제약 및 화학 기업의 직원들과 함께 연구논문 4편을 공동으로 작성했다. 마찬가지로 특기할 것은 2006년 그가 제품방어 전문대행사 더 와인버그 그룹의 직원으로 알려진 토마스 페트리와 함께 연구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왜 독자들과 유럽 정책 결정자들이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사설 아래에 이해관계확인서를 첨부하지 않았던 걸까? 2013년 9월 전화로 연락이 닿은 다니엘 디트리히는 “사설이었으니까요.”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발행인들의 의견이었어요. 특정 화학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발표한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설이야말로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이 기업과 연계한 저자의 게재를 막을 정도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던 형식 중 하나다. 공저자 18명 또한 문제가 된 학술지 14종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이었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다. 다니엘 디트리히가 이끄는 학술지 《화학-생물학적 작용》의 경우 다른 학술지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규칙을 정하거나 없앨 수 있었다.

해당분야 전문과학자 약 30명이 충격에 빠져 학술지 《환경보건》에 반박입장을 내놓았다. 두 편집장, 필립 그랑장과 데이비드 오조노프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투명성과 변형’에 대한 신랄한 사설을 게재해 그들을 호위했는데, 둘은 “오염물질 규제를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과학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학술연구가 산업의 후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숨겨진 의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오늘날 과학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전장의 한가운데 있다”고 기술했다. 문제의 사설이 어떤 이해관계확인서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사설 저자들에게 누락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해충돌에 관한 토론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토론은 진정한 문제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다니엘 디트리히는 “그들 중 누구도 자금을 받지 않았다”고 단언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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