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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철학

안상헌 지음 | 행성B


사장의 철학

안상헌 지음

행성B / 2021년 7월 / 324쪽 / 17,900원



1부 세계적 브랜드는 철학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구글과 아마존은 어떻게 플랫폼 제국이 됐을까?


아고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폴리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직장, 동호회, 교회, 노동조합, 독서회 등이죠.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인간답게 살기도 어렵습니다. 폴리스의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아고라입니다. 아고라는 ‘모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고라는 시민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거나,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가 토론하는 곳이었습니다. 상인들이 노점에서 물건을 파는 시장, 운동 경기가 열리기도 했죠.

아고라는 우리가 왜 SNS에 접속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통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글과 사진, 영상으로 알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로 답하죠.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요’가 늘어납니다. ‘좋아요’ 숫자가 많을수록 기분이 좋아지죠. 페이스북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리고, 콘텐츠를 홍보하고, 역량을 자랑합니다. 페이스북은 사회적이면서 정치적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인간의 본성, 사회성과 정치성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고대 철학자의 생각에 현재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플랫폼, 접속의 시대: 포노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항상 들고 다니며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현대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은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됐습니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말은 ‘접속’입니다. 네이버에 접속해서 검색하고 다음에 접속해서 메일을 보내죠. 유튜브에 접속해서 영상을 보고,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서 사진을 올립니다. 접속이야말로 우리 시대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접속이 핵심 키워드가 됐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플랫폼의 출현입니다.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은 ‘플랫폼 4대장’으로 불립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디지털 제국들이죠. 이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강력한 플랫폼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접속의 물결은 플랫폼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플랫폼을 무기로 활용했습니다. 플랫폼이 뭘까요?

플랫폼은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환경 혹은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모두 플랫폼입니다. 여기 접속해서 뉴스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고, 영상을 보고 소통합니다. 이 모든 활동이 접속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자신이 선호하는 플랫폼에 상주합니다. 나아가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보여주려 합니다.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제작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고 싶어 하죠. 이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훌륭하게 제공할수록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겁니다. 고대 그리스인이 아고라를 찾듯이, 우리는 플랫폼에 접속합니다.

사람을 읽는 아마존: 성공한 펀드 매니저였던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고, 1994년 아마존을 설립합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서 DVD, 컴퓨터 소프트웨어, MP3 다운로드로 분야를 넓히다가 장난감, 전자 제품, 가구까지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로 진화하죠.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존이 첫 흑자를 기록한 2002년까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공 궤도에 오르게 만든 것이 플랫폼이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쇼핑할 때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뭘까요? 바로 복잡함입니다. 회원 가입하고, 주소 등록하고, 신용카드 번호 입력하고… 그러다 지쳐 포기합니다. 아마존은 복잡한 절차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원클릭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냅니다. 이전에는 물건을 살 때마다 결제 정보를 입력했지만, 이제 클릭 한 번으로 종전의 배송 주소와 신용카드 번호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고객이 환호한 것은 당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의 정보입니다. 고객의 정보를 가졌다는 것은 어떤 고객이 어떤 제품을 구매했고, 어떤 성향이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아는 것이죠. 사람은 각자 성향이 있고, 그것을 알면 설득하기 쉽죠.

아마존은 고객의 정보를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이 제품을 구매한 분들이 구매한 제품’ ‘이 제품과 관련된 추천 상품’ 등이 표출됩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수집한 빅 데이터는 ‘아마봇’이라는 AI가 담당합니다. 고객의 성향 데이터를 분석해서 각 페이지에 보일 상품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고객마다 다른 페이지를 보게 되죠. 결과는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고객의 정보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 셈이죠.

분위기를 탄 아마존은 사업을 확장해 A부터 Z까지 모든 물건을 팔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아마존 스토어, e-book 킨들 같은 디바이스 판매로 확장한 뒤 클라우드 플랫폼과 인공 지능 영역까지 넓혔습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의 폭식자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끌고 있죠습니다. 고객이 머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람을 알고 사업을 한 것입니다.

나만의 아고라를 찾아라: 자기만의, 우리 회사만의 아고라를 갖고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존과 구글의 시작은 작았습니다. 온라인 서점, 검색 사이트라는 독특함이 그들의 무기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킬러 콘텐츠죠. 우리들도 각자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독특하고 매력 있는 어떤 것 말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고객이 내 플랫폼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찾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구매, 검색, 메일, 공감, 소통, 뉴스, 비즈니스, 재미 등 각자 목적이 다릅니다. 그 목적을 쉽고 재미있고 저렴하게 달성할 수 있다면 다시 그곳을 찾겠죠.

기업만 플랫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은 개인에게도 중요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플랫폼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접속합니다. 나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이 내게 접속하는 이유를 안다면, 그리고 그 매력을 끌어올린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겠죠. 나의 킬러 콘텐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인터넷 환경은 인간의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진실이 될 것입니다. 접속의 시대, 사람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성공한 사장들은 어떻게 일할까?


노예는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 로마제국은 침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더 큰 목적은 노예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예노동을 통한 생산이 고대사회의 물적 토대였기 때문이죠. 주인은 노예를 소유하고 명령하며, 그의 노동으로 편하게 먹고 지냅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편안하게 먹고 지내는 주인이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농사도 노예가 짓고, 음식도 노예가 하고, 잠자리까지 노예가 봐줘야 합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노예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됐죠.

노예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지만, 노동을 통해서 변해갑니다. 자연에서 재료를 얻고, 그것을 가공해 유용한 결과물을 만듭니다.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노예는 자신이 힘을 가진 창조적 존재임을 자각합니다. 이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역전되죠. 주인은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자기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노동은 창조적 활동이기에, 노동하는 과정에서 인식력이 높아집니다. 노예는 노동을 통해 주인으로 재탄생합니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죠.

마르크스는 헤겔을 이어받아 한술 더 뜹니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은 인간 자체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을 가공해서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속한 자연을 노동으로 바꿉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도 변하죠. 우리는 일한 뒤 보람을 느낍니다. 자부심이 생기고, 살아 있음을 자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이 커지고, 더 나은 노동의 가능성이 열리죠. 결국 노동이 인간을 만듭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프로그래머가 코딩하고, 셰프가 고기를 굽는 것은 노동의 결과입니다. 작가, 프로그래머, 셰프는 노동이 만든 것입니다. 노동이 없다면 인간은 동물일 뿐이죠. 노동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현대인은 생계유지를 위해 일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다보니 재미가 없습니다. 힘든 일을 피하려 하고, 어려운 일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의 소외’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됐다는 것입니다.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이죠. 노동자는 노동의 결과를 돈으로 받을 뿐, 자신이 노동으로 만든 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자기 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노동에서,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다름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창업하는 경우 이것은 중요합니다. 기업을 일구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는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는데 학교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고 학교를 그만둡니다. 관심 없는 공부를 하는 대신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여행을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이 엄청난 도전을 하게 만들고, 남들이 생각지도 않은 일에 달려들게 합니다. 일하는 방식도 자기중심적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통제 아래 진행하고, 생각과 행동도 통제합니다. 통제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자신감을 불러오고, 그 자신감이 일에 달려들게 하죠.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통제력의 달인입니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목표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죠. 보통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어린 시절 책과 컴퓨터에 빠져 살았습니다. 학교와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몽땅 읽은 뒤 사서에게 새 책을 주문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컴퓨터를 접한 뒤에는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꿈을 꿀 때,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목표는 여전히 진행행이죠. 테슬라로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그는 이제 화성을 식민지로 삼고, 진공 터널을 지어 지구와 연결하고, 인간의 뇌에 AI를 심으려 합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습니다. 일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노동의 소외는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에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은 돈벌이 수단이나 의무 방어가 아닙니다. 자기를 실현하고 삶을 펼치는 과정이죠. 노예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떨치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일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노동으로 노예를 넘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성공한 사업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부 성공하는 사업가는 어떤 철학에 집중하는가



철학자와 사업가의 5가지 공통점


철인왕의 등장: “철학자가 왕이 돼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가 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 철인왕을 주장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그곳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 철학자입니다. 원칙도, 가치관도 없는 사람은 현실과 타협하다가 나라를 망치기 십상이죠. 물론 철학자가 꼭 왕이 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철학자가 왕이 될 수도 있고, 왕이 철학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리더에게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나 조직에 철학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야말로 동물적 본능과 사적 이익만이 지배하는 곳이 됩니다. 자기 이익을 채우기 위해 패거리를 이루고, 무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부립니다. 자기 안위와 욕망이 판치는 곳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는 불가능합니다. 회사든 국가든 리더는 철학으로 무장하고, 그 철학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이끌어야 합니다. 플라톤이 한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플라톤이 죽고 500년 뒤, 그가 꿈에 그리던 철학자 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는 기울어가는 로마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군주이자, 배움과 사색을 실천한 철학자죠. 위기에 처한 로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덕분에 안녕을 누렸습니다. 그를 보면 왕과 철학자가 비슷한 점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왕은 다음 다섯 가지 점에서 사업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① 고독: “너의 판단력을 존중하라. 자연이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너의 이성적 판단을 따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철학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를 안고 혼자 답을 찾아가는 고독한 사람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에 오른 161년, 로마는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진 자들의 횡포로 농민들이 땅을 버리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파르티아의 침략으로 소모적인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페스트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자리는 결코 부귀영화만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중대한 사안을 혼자 결정하고,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과 싸우며 시끄러운 귀족의 요구까지 다루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자리입니다. 그가 “너의 판단력을 존중하라”고 스스로 다짐한 것은 이 때문이죠.

사장의 자리는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앉을 수 있습니다. 사원들은 사장과 밥도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따르는 듯하지만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고, 혹시나 하고 도와줄 사람을 간절히 찾지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 결정은 오로지 사장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책임입니다. 엄청난 짐을 지고 가는 사장이나 왕에게 고독은 숙명입니다.

② 통찰: “항상 전체적으로 보라. 모든 것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목적이 있고, 어떻게 끝나는지 살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철학자는 통찰을 추구합니다. 감각으로 파악되는 것을 넘어 보편적 법칙을 발견하고, 이성을 발휘해 무질서에 숨은 진리를 찾으려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원인을 추적하고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 배우고 분석하고 사색했습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한 일기입니다. 거대한 제국을 이끌 힘이 철학적 통찰에 있음을 《명상록》에서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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