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전염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 에코리브르
행동의 전염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에코리브르 / 2021년 4월 / 424쪽 / 21,000원
도입
논쟁의 개요내게는 성인이 된 아들이 넷 있는데, 그중 흡연자는 아무도 없다. 언젠가 친구에게 아이들이 성장하던 시기에 내가 담배를 피웠더라면 넷 중 적어도 둘은 흡연 습관을 들였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1959년 14세에 흡연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 중 상당수는 이미 몇 년 동안 담배를 피워온 상태였다. 당시에는 미국 남성의 60퍼센트 이상이 흡연자였고, 흡연자의 거의 절반가량은 매년 금연에 도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나 역시 금연을 대여섯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따라서 용케 대학 입학 전에 그 습관을 떨쳐냈다는 사실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그 까닭은 오늘날의 환경이 우리 부모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흡연을 하게 될지 말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담배 피우는 친한 친구의 수가 몇이나 되느냐다. 만약 그 수가 20명에서 30명 사이로 늘어나면 흡연할 가능성은 25퍼센트 증가한다. 나의 10대 친구 대부분은 흡연자였던 데 반해, 내 아들들의 친구 가운데는 흡연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늘날의 환경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우리가 주로 흡연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세금 제도, 금지 규정, 그리고 기타 규제 조치 때문이다.
미국인이 사회공학에 오랫동안 적의를 품어왔음을 감안하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조치 역시 하나같이 심각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런 조치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규제자들은 자신들이 늘 해오던 반응을 되풀이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야말로 때로 무고한 옆 사람에게 지나친 피해를 입히는 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로 규제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것은 옆 사람으로서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해악을 주는 간접흡연이다. 그렇다면 간접흡연의 위험은 흡연을 말리는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데 충분한 요소일까? 사실 간접흡연의 피해는 스스로 흡연자가 됨으로써 입는 피해와 비교할 때 극히 사소하다. 따라서 흡연 규제 조치는 그것이 실제로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죄 없는 옆 사람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는 흡연자를 본인 자신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흡연을 규제하기 위한 두 번째 논리는 46개 주 법무장관을 위시한 여러 사람이 1990년대에 담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언급된 것인데, 이 소송에서 손해 배상은 흡연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에게 부과된 세금으로 지급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흡연자가 진짜로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는지 여부는 여전히 상당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 킵 비스쿠시가 주장한 바와 같이, 흡연자는 조기에(평균적으로 약 65세경) 사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기관은 도리어 상당액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간접흡연과 재정적 영향으로 초점을 좁히면 흡연자가 타인에게 입히는 피해를 턱없이 과소평가하기 쉽다. 흡연자가 되기로 한 누군가의 결정이 낳는 최대의 해악은 다른 사람들도 담배를 따라 피울 가능성을 높이는 데 따른 피해다. 누군가가 흡연자가 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동료 집단에 흡연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집단의 구성원은 모두 흡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아무튼 오늘날의 환경은 내가 성장하던 때와 다르다. 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흡연을 말리기 위해 채택해온 세금 및 기타 규제 조치 덕분이다. 하지만 미국 성인의 15퍼센트 이상이 아직도 담배를 피우며, 저소득층 성인 등 일부 집단에서는 그 비중이 한층 높다. 그렇다면 규제자들로서는 훨씬 더 강력한 반흡연 정책을 실시해야 할까? 예산에 주는 부담이나 간접흡연에 따른 피해만으로는 그 주장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행동 전염이 일으키는 피해까지 모두 고려한 ‘비용-편익’ 균형에 비추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수많은 규제 반대자들은 이내 행동 전염은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적합한 근거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규제 반대자들은 사람들이 ‘행위 주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담배를 피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이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르는데, 이 오류를 말해주는 예는 솔로몬 애시가 실시한 실험들이다. 특정한 환경적 신호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감각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무시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10년 뒤, 스탠리 밀그램은 사회적 맥락의 위력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실은 실험자가 학습 관리를 돕는 피험자를 뽑는다는 설정이다. 각 실험에는 실험자(밀그램 자신), ‘선생(사실상 그 실험의 피험자)’ 그리고 ‘학생(또 다른 피험자로 묘사되지만 실은 밀그램의 실험 협력자)’, 이렇게 세 사람이 참가했다. 실험자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이 정답을 맞히면 또 다른 문제를 낸다. 하지만 학생의 답이 틀리면, 실험자는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기계의 버튼을 누르라고 선생에게 지시한다. (피험자는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전기 충격이 전달되지 않았다).
선생은 실험자로부터 학생이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그 기계가 전달하는 전기 충격의 강도가 높아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피험자들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충격을 주자 학생은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험자의 65퍼센트는 가장 높은 수준(그들은 450볼트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까지 계속 전기 충격을 높여나갔다. 이 실험에 대해 읽는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밀그램의 피험자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행위를 멈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피험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도덕적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좀 더 그럴듯한 설명은 이 실험에 대해 읽은 수많은 사람이 ‘기본적 귀인 오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맥락의 여러 세부 사항 이 경우는 기성 권위자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 우리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과소평가한다.
맥락이 중요한 것은 부분적으로 모든 인간의 결정은 평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그 판단은 다시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맥락은 거리 같은 일상적인 물리량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여섯 살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뵈러 운전해 가고 있는데 딸이 “거의 다 왔어요?”라고 물었다고 치자. 이동 거리가 12마일인데 10마일 정도 남았다면 당신은 아마 “아니, 아직 멀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120마일인데 똑같이 10마일 남았다면 “응, 거의 다 왔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맥락과 평가 간의 관련성은 행동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공공 정책에 관한 수많은 논의에서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대체로 그것은 대다수 정책 관련 논의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전통적 경제 모델에서 맥락이 인간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방어할 논의는 다음의 일곱 가지 전제로 요약된다. ‘① 맥락은 많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② 맥락은 때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웃 대부분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분별력 있는 식사를 하는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 할 공산이 커진다. ③ 맥락은 때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흡연자로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담배를 배울 가능성이 커진다. ④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은 그 자체로 우리가 행한 개별적 선택의 집단적 결과다. ⑤ 하지만 개별적 선택은 각각 이러한 맥락에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만 끼치므로, 사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개인들은 대체로 전제 ④에서 기술한 순환 고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⑥ 우리는 흔히 이로운 맥락은 북돋우고 해로운 맥락은 억제하는 선택을 장려하는 집단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⑦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는 흔히 과세 제도가 규제 제도보다 지시적ㆍ계몽적 성격은 덜하고 효과는 더 낫다.’
행동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들 전제 가운데 앞의 5가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은 전제 ⑥과 ⑦뿐이다. 전제 ⑥의 경우, 흡연의 예에서 보듯 행동 전염이 피해를 낳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할 때조차, 흔히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을 바꿔주는 집단적 조치에 합의하기란 어렵다. 부분적으로 그 어려움은 종종 개인적 유인(incentive)과 집단적 유인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제 ⑥에 대한 반대는 일반적으로 규제를 적대시하거나 규제가 늘 문제를 개선해준다고는 보지 않는 오랜 미국적 전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시장은 이따금 최적의 결과를 내놓는 데 실패하지만 정부의 개입 역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제 ⑦에 대해 시비 논란이 분분한 것은 순전히 대다수 사람이 과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이내 이 영역에서 흥미로운 질문은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대해, 어느 정도 세금을 내야 하는가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든 개방적인 진보주의자이든, 값진 공적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세금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세수를 올린다. 가령 우리 대부분은 기업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것을 좋은 일이라 여기지만, 기업이 제공하는 봉급에 많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다시 기업이 고용을 꺼리게끔 만든다. 더 나은 선택지는 우리의 선택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맥락을 바꿔주는 세금처럼, 피해를 초래하는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는 쪽일 것이다.
한편 경제학자들은 외부성(externality)을 비용 혹은 이익의 창출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제삼자가 초래하거나 받게 되는 비용 혹은 이익이라고 정의한다. 참고로 대기 오염 및 수질 오염 같은 환경 외부성 문제들의 경우, 표준적 해법은 예컨대 배출물에 대해 각 단위당 세금을 부과하거나, 혹은 그와 마찬가지로 각 단위당 ‘거래 가능한’ 배출권을 구입하도록 요구하는 조치다. 그런데 1960년대에 경제학자들이 산성비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을 때, 비판론자들은 돈 많은 기업에 마음껏 오염시킬 수 있는 허가증을 부여하는 행위를 옹호한다며 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비판론자들의 견해는 지나친 공해를 일으키는 경제적 힘에 대한 완전한 오해를 드러낸다.
기업이 독소를 공짜로 대기나 강ㆍ바다에 방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경우,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오염을 발생시키는 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독소를 필터로 처리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규제받지 않는 환경에 처한 기업은 오염 행위가 매력적이라는 오도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들에게 각 배출 단위당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는 오염 행위를 덜 매력적으로 만듦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준다. 아무튼 경제학자들이 처음으로 이산화황 배출권 거래를 촉구한 때로부터 1990년 청정대기법 수정안에 따라 그들의 제안을 실제로 이행하기까지는 약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자 기업들은 발 빠르게 자사의 이산화황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을 찾아냈다. 한때 뉴스를 장악하던 산성비 문제는 처방적 규제라는 전통적 제도를 실시했을 때 가능했을 정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되었다.
맥락은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때로는 더 좋은 쪽으로 때로는 더 나쁜 쪽으로, 우리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맥락과 선택의 관련성은 상호적이다. 즉 맥락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각각의 선택이 낳는 효과는 너무 사소해서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우리는 널리 만연한 일련의 ‘맥락 외부성(context externalities)’, 즉 ‘행동 외부성(behavioral externalities)’에 직면한다. 행동 외부성은 모든 면에서 대기 오염 및 수질 오염 같은 전통적 외부성(traditional externalities)과 유사하다.
흡연 예에서 보듯, 우리가 오늘날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문제 상당수는 전통적 외부성으로서 묘사되어왔다. 하지만 흡연으로 인한 피해의 원천을 면밀히 따져본 결과 분명히 드러난 대로, 반(反)흡연 조치가 예방한 가장 중요한 피해는 행동 외부성에 기인한 것들이다.
특정 맥락이 부정적 결과를 낳는 행동을 부추기는 문제라면 그것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책은 앞서 그 맥락을 야기한 개인적 유인을 변화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흡연 영역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우리의 정책적 대응은, 우리가 해결하고자 애쓰는 문제의 실질적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기반한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행동 전염의 사례
소비의 폭포 효과행동 전염은 흡연, 과음, 불건전한 식습관, 낮은 조세 순응, 그리고 수많은 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의 피해는 동료가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친 데 따른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낭비적 소비 패턴이 낳는 손실은 미국 한 나라에서만 연간 2조 달러를 넘는 게 거의 확실하다.
자유 시장 옹호자들은 사람이 정부 관료보다 좀 더 세심하게 자신의 돈을 소비한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사적인 소비 결정은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로 합리적이라고 인정하자. 하지만 개인적 합리성이 곧바로 집단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잘 보려고 모두가 일어서면 다들 앉아서 볼 때보다 더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처럼 말이다. 개인적 합리성과 집단적 합리성은 소비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서도 그와 유사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동료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연속적인 상호 상쇄적 소비를 촉발하고, 그 결과 훨씬 더 필요한 다른 부분에 쏟아 부어야 할 자원을 부족하게 만든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정책은 엄청난 이득을 낳을 것이다.이러한 문제가 왜 생기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우리에게 낯익은 군비 경쟁이다. 두 경쟁국 가운데 하나가 무기 재고량을 늘릴 경우, 다른 한 나라 역시 힘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면 그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국은 경쟁국이 얼마나 많은 소비를 했는지 불확실하기에 자국의 지출을 약간 더 늘리는 편이 분별력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결국 연쇄적인 군비 증강의 가속화로 이어진다. 물론 양국은 자기 나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교육, 의료, 도로, 주택, 기타 재화에 그 돈을 투자하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군사적 적국한테 뒤지면 결과적으로 심각한 생존 위험에 빠질 소지가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관점에서는 경쟁국의 군비 증강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하등 나무랄 데 없는 결정이다.
무기에 대한 소비가 국민소득을 넘어설 수는 없으므로 군비 경쟁도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안정한 평형 상태에 도달해 있을 때조차 그로 인해 양국이 보여주는 전체 소비의 구성은 턱없이 낭비적이다. 좌우지간 집단적 관점에서 볼 때, 상대국한테 질세라 무기에 돈을 퍼붓는 현상은 양국의 안보 증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양편이 화력을 증강하면 적대감이 폭발하는 순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군사 지출의 계속적 증가와 달리 공적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상호 상쇄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러한 투자를 늘리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