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 탐나는책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탐나는 책 / 2021년 3월 / 236쪽 / 16,000원
인류를 창조한 자연이라는 식량 창고
썩어가는 식자재와의 싸움부패는 요리의 어머니: 수렵 채집 시대에는 자연이 선사해 주는 식자재가 식문화 그 자체였다. 식자재의 획득이 계절적으로 한정된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식자재의 부패를 막고, 시간이 흐르면 나빠지는 식자재의 맛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요리법이 탄생했다. 역설적이게도 부패는 요리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처럼 요리는 식량의 소비 양식을 넘어서 문화의 토대가 된다.
부패를 막은 소금과 식초: 수렵 채집 사회의 가장 큰 숙제는 음식을 썩지 않게 오래 보관하는 것이었다. 농업 사회가 되어서도 소금과 식초 등을 이용한 식자재의 보존법이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었고, 수렵 채집 사회부터 생식을 연장하기 위해 행해져 온 건조와 발효법도 유효했다. 지금부터 내륙에 위치하여 생식을 멀리한 중국과 생식을 버리지 못한 일본의 식품 보존법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자.
고대 중국에서는 날생선이나 날고기를 젓갈로 만들어 보존하였다. 해산물이나 육류에 소금을 넣고 절여 자연스럽게 발효시킨 것이다. 전국 시대부터 한으로 이어지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지(?)’라는 생선 절임과 ‘해(臨)’라는 고기 절임을 많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대(기원전 202~서기 220)에는 양쯔강 이남의 강남 지역을 개발하여 경작지를 넓혔고, 이때 쌀을 발효시키는 보존법이 등장했다고 한다. 고기나 생선에 소금과 쌀밥을 섞어 3개월에서 1년간 발효시키는 방법이다. 잘게 저민 생고기나 생선, 또는 그것을 식초에 절인 회도 만들어졌다. 아세트산균이 발효하면서 만들어진 식초는 식품 보존에 유용하였다.
살균과 방부 작용을 하는 소금이나 식초를 식품 보존에 이용한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식초는 와인으로 만들었는데, 영어로 식초를 의미하는 비니거(vinegar)는 프랑스어의 방(vin, 와인)과 시큼하다는 의미의 에그르(aigre)의 합성어이다. 식초는 발효되어 시큼해진 와인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벼농사의 전래와 함께 전통적인 보존 식품인 스시와 독자적인 생식 문화가 발전하였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1338~1573) 중기에 날생선을 먹는 사시미와 발효시켜 산미가 있는 쌀에 날것에 가까운 생선을 더한 스시가 등장했다. 에도 시대(1603~1868)에는 간장이 보급되었고, 오늘날과 비슷한 사시미와 스시가 만들어졌다. 자투리로 남은 날생선을 초밥 위에 얹어 간장에 와사비를 넣은 소스에 찍어 먹는 스시는 일종의 패스트푸드로 하나야 요헤이(1799~1858)란 사람이 만들었다.
농경과 목축에 따른 음식의 정형화
쌀, 밀, 옥수수로 만든 음식의 세계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쌀의 여정: 벼는 같은 작물을 연이어 같은 땅에 재배하여 땅을 못 쓰게 만드는 연작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고 생산량이 많아 인구 부양력이 높은 작물이다. 중국과 인도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는 모두 쌀에 의해 유지된다. 오늘날 벼는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재배되며,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의 주식이다.
벼는 윈난과 아삼의 산악 지방을 기원으로 하는데, 동아시아의 양쯔강, 동남아시아의 메콩강, 그리고 인도의 갠지스강을 따라서 전파되었다. 특히 메콩강 유역은 자포니카종(japonica, 일본형)과 인디카종(indica, 인도형)이라는 두 종의 벼가 모두 발견되어 쌀의 원형지로 보고 있다. 그곳을 기준으로 동쪽의 중국, 한국, 일본으로 자포니카종이, 그리고 서쪽의 인도로 인디카종이 퍼졌다.
자포니카종 쌀은 부드러우면서 점성과 탄력이 있으며, 은은한 향과 맛이 있다. 일본에서는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자포니카종이 재배되다 11세기 무렵에 베트남 남부로부터 인디카종에 속하는 참파(城, 점성) 벼가 들어왔다. 가뭄에 강하고 두 달 안에 수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기 때문에 자포니카종을 몰아내고 강남 지방 논의 80~90%가 참파 벼로 바뀌게 되었다.
인도에는 아삼 지방을 경유해서 가느다랗고 퍼석퍼석한 인디카종 쌀이 전해졌다. 2,700년 전부터 1,700년 전 사이의 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쌀의 특성을 반영하여 기름에 볶는 독특한 조리법이 개발된다. 쌀을 끓이다가 중간에 물을 버린 후 찐 다음 기름에 볶는 방법이다. 인도 요리 플라오(pulao)는 물소의 젖을 발효하여 응고시킨 기(ghee)라고 하는 기름에 소금을 추가하여 볶은 것이다.
인디카종은 인도를 제2의 원산지로 하여 이슬람 제국에 전해졌으며, 나아가 지중해와 유럽 일대에 전파되었다. 쌀을 뜻하는 영어 단어 라이스(rice)는 고대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에서 기원한다. 아울러 인도식 쌀 요리법도 서역에 전해졌고 여러 지역에서 기름에 쌀을 볶는 요리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쌀을 채소의 일종으로 여겨서 육류 요리에 곁들일 때 버터로 볶는 경우가 많다.
변형된 쌀 요리의 하나로 터키가 원조인 필라프(pilaff)가 있다. 터키어로 밥 한 공기를 뜻하는 필라프는 먼저 쌀알과 잘게 썬 양파를 버터에 볶은 다음 부이용(bouillon, 고기나 채소를 끓인 액체로, 소스나 포타주 등을 만들 때 쓰는 국물)으로 만든 수프를 넣어 마저 볶는다. 여기에 추가로 양고기나 해산물, 버섯 등의 건더기를 넣은 일종의 영양밥이다. 한편 중국의 차오판 (炒飯)은 딱딱하게 볶은 밥을 라드(lard, 돼지의 비계 기름), 건더기와 함께 볶아 소금, 후추, 간장으로 간을 한 것으로 필라프와는 발상이 완전히 다르다.
필라프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이탈리아의 리조토(risotto)는 쌀을 올리브유, 버터와 함께 볶아 만든다. 스페인 동부의 발렌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요리 파에야(paella)는 일찍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요리로 쌀과 건더기를 올리브유로 볶은 후 수프를 추가해 볶는다. 지역마다 쌀 요리법도 조금씩 다른 것이 흥미롭다. 쌀이라는 같은 재료가 들어가도 소비하는 양식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반영되는 법이다.
건조 지대를 지탱해 준 밀: 밀은 껍질이 딱딱하기 때문에 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매우 손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었는데 가루로 만들자 발효가 쉬워진 것이다. 밀은 효모균이 방출한 가스를 반죽에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글루텐의 함유량이 다른 곡물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란의 '난',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의 '탄나와', 서양의 '빵' 등은 모두 밀반죽을 발효해 만든 것이다.
일찍이 고대 이집트에서도 밀을 발효시켜 부풀린 빵을 먹었다. 이집트의 빵은 제빵사가 대량으로 빵을 굽는 작업을 하다가 깜박하고 화덕에 넣지 않아 발효가 일어난 반죽을 구워봤다가 알게 된 우연의 산물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처럼 이집트는 나일강의 은혜를 입어 밀을 경작했고, 밀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풍작의 여신 이시스가 머리에 밀을 이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고대인에게 있어 울퉁불퉁한 돌 사이에 낟알을 넣고 갈아 으깨는 작업은 매우 고된 작업이었을 것이다. 공장을 영어로 밀(mill)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본래 뜻은 맷돌이며, 제분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된 작업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사람의 힘으로 낟알을 가는 원시적인 제분법이 맷돌을 이용하는 제분법으로 바뀐 것은 로마 제국시대부터였다. 맷돌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한 시대(기원전 124~기원전 42)에 중국으로 전해진 뒤 동아시아에 알려졌다.
기원전 2000년경에 빵을 굽는 가마가 등장했고, 고온의 가마 내벽에 반죽을 붙여서 빵을 굽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에게도 많은 양의 빵과 맥주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중왕국(기원전 22세기~기원전 18세기) 시대에는 전문적인 제빵사가 등장하고 빵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를 여행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은 빵을 먹는 사람들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집트 빵의 품질이 좋다는 사실은 주변 세계에 널리 알려질 정도였고, 그 가짓수도 40종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의 역사학자 빌헬름 치르(Wilhelm Ziehr)의 『빵의 역사』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관리의 급료로 연간 360잔 정도의 맥주, 900개의 하얀 빵, 3만 6,000개의 일반 빵(빵의 색에 따라 신분의 차이를 나타냈는데 상류층은 하얀 빵을 먹었다)이 현물 지급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파라오가 여행을 떠날 때면 수만 개의 빵을 구워 왕과 시종들이 여행용으로 지참했다고 한다. 좋은 빵을 굽는 기술은 대도시에만 있었다고도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보물 옥수수: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에서 스페인으로 가져온 또 다른 벗과의 곡물 옥수수는 안데스 산악 지대가 원산지이다. 멕시코의 테와칸 골짜기에서 발견된 7,000년 전의 유적에서 가장 오래된 옥수수 알갱이가 발견된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일대에서 옥수수를 재배해 온 것 같다. 마야 문명부터 아즈텍 제국, 잉카 제국에 이르는 신대륙의 문명은 옥수수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수수는 낟알 1개로 800배에 달하는 수확이 가능한 생산성을 자랑하는데, 약 100배 정도 수확할 수 있는 쌀보다도 월등한 수치이다. 현재 옥수수는 식량과 가축 사료 용도로 세계적으로 수천 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곡물의 왕으로 꼽히고 있다.
옥수수를 사용한 요리로는 스위트 콘(sweet corn)에 베샤멜 소스(bechamel sauce)와 우유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콘 수프와 멕시코 요리인 토르티야(tortilla) 등이 있다. 토르티야는 옥수수 가루를 개어서 만든 반죽을 원형으로 얇게 늘린 뒤 도자기로 된 판 위에서 평평하게 구운 빵이다. 여기에 고기, 해산물, 소시지, 치즈, 토마토, 아보카도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멕시코 농민이 간식으로 먹는 타코스(tacos)가 된다. 토르티야는 아즈텍 제국에서 틀락스칼리(tlaxcalli)라고 불리던 전통 요리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는 말린 옥수수 가루를 연한 석회수로 처리한 후 갈아서 점성이 있는 반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 4대 요리권의 탄생
제국에서 체계화된 요리제국과 궁정 요리: 지역별로 식자재와 조미료, 조리 기술이 조합되어 요리 체계가 정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00년에서 4,000년 전 사이의 일로, 거대 제국들이 그 기초를 다졌다. 특히 제국의 수도에서 발달한 궁정 요리를 중심으로 요리의 체계화가 진행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에 걸쳐서 서아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경~기원전 330경), 남아시아의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317경~기원전 180경), 동아시아의 진한(秦·漢) 제국(기원전 221 ~기원후 220), 지중해 세계의 로마 제국(기원전 27~395년에 동서 분열) 같은 대제국이 유라시아에 잇달아 등장한 것이다. 도시의 형성과 문명의 성립은 기원전 5,000년 무렵의 일로, 제국이 세워진 시기는 문명의 성립과 현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새롭게 성립된 대제국의 수도에는 세금을 통해 막대한 부가 쌓였고 이를 기반으로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각 지방의 식자재, 조미료, 요리 기술이 수도로 유입되었고, 왕궁 조리사 등 전문가의 손에서 요리 체계가 정비되었다. 수도에서 체계화된 요리법은 지방의 도시를 경유해서 제국 주변 지역으로 전해졌고, 요리권이 형성되었다. 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지중해 요리권이 탄생한 순간이다.
세계 3대 요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는?”이라고 질문하면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중국 요리, 프랑스 요리, 터키 요리를 세계3대 요리로 꼽는다. 그러나 이 세 요리가 형성된 시기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
중국 요리는 진·한 제국 이후로 2,000년 넘게 중화 제국의 전통 안에서 자랐으며, 송나라(10세기 말~13세기) 때 기본 형태가 정비되었다. 중국 요리는 복잡다단하지만, 크게 청나라(1616~1912)의 궁정 요리를 이어받은 베이징(北京) 요리, 양쯔강 하류의 풍부한 쌀과 어패류를 식자재로 하는 상하이(上海) 요리, 양쯔강 상류의 내륙 분지에 형성된 쓰촨(四川) 요리, 그리고 남쪽의 풍부한 해산물을 잘 살린 광둥(廣東) 요리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요리에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명물 요리가 있으며 폭넓고 깊은 내연을 지니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의술과 요리를 하나로 보곤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서 온 다양한 산물의 효능을 연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터키 요리는 세 대륙에 걸친 넓은 영토를 자랑한 오스만 제국(1299~1922) 하에서 체계화된 것으로, 그다지 오래된 편은 아니다. 흔히 터키 요리라고 하면 양 꼬치구이인 시시 케밥(shish kebob)이나 빵과 함께 먹는 되네르 케밥(doner kebob)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돌마(dolma) 또는 사르마(sarma)라고 부르는 각종 재료로 속을 채운 요리도 있고, 불가리아산이 유명한 요구르트도 알고 보면 테키어의 요우르트(yogurt, 휘젓는다)에서 온 말이다. 터키 요리는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지중해 요리가 합쳐진 형태로 그야말로 제국다운 요리이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토프카프 궁전의 주방은 매일 6만 명분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와 체제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루에 사용되는 식자재가 양 200마리, 새끼 양과 염소가 100마리, 닭이 600마리 남짓에 이르렀다고 한다. 터키 요리는 오스만 제국의 궁정 요리를 중심으로 각 지방의 요리가 조합되어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프랑스 요리는 고대 로마 제국의 궁정 요리를 토대로 세련된 조리 기술과 지역의 명물 요리를 조합한 것이다. 19세기에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근대 이후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유럽은 세계 각지의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부가 흘러들어 오는 제국들의 각축장이었는데, 프랑스 요리는 이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맛의 토대를 구축한 세계 4대 요리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세계의 요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분도 가능하다.
1. 주로 돼지고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과 기름을 사용한 요리와 특유의 보존 식품이 인상적인 중국 요리권2. 커리와 기(ghee, 기름)를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고, 양과 닭을 주 재료로 쓰는 인도 요리권3. 이란, 아랍, 터키 등 다수의 요리 문화가 섞여 있으며 양을 주재료로 강렬한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아라비아 요리권4. 빵을 주식으로 하며 햄과 소시지 같은 육류 요리가 특징인 유럽 요리권
이러한 구분은 거대한 제국을 기반으로 형성된 세계사의 틀과 겹친다. 그러므로 이 4대 요리권을 통해 대항해 시대 이전의 음식 세계를 상상해 보는 것은 충분한 의의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식문화 교류
식자재의 쉼 없는 이동이주와 교역을 통해 움직인 식자재: 유라시아는 많은 문명이 늘어서 있는 거대한 대륙으로, 늘 인류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식문화가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왔고, 그러면서도 각 문화권은 초원길, 실크로드, 바닷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각종 식자재와 향신료, 요리법이 길 위에서 장대한 교류를 이어갔다. 이 같은 교류는 교역과 이주, 포교, 전쟁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주와 무역의 역할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