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 돌배나무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돌배나무 / 2021년 3월 / 248쪽 / 13,000원
중국에서 차를 훔쳐라! 영국 스파이의 007 대작전
차가 없다면 어떻게 영국인들을 놀릴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차 애호가와 커피 애호가로 나눌 수 있을까? 물론 차와 커피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어떻게 모로코 식당에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웃기지도 않고 테이블보를 더럽히지도 않으면서 주전자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까?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차나무라는 대단한 식물이 없었다면 아마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차나무는 키가 작은 식물인 관목이고, 차는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도 짐작했겠지? 하지만 이건 몰랐을 것이다. 티백 형태의 차는 주로 차 가루로 만든다. 차를 선별하는 자리를 빗자루로 쓸면 차 가루가 모이는데, 이것은 나처럼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서양인에게 대접할 저품질의 차로 완벽하다.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유식하게) 차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차나무의 라틴어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이다. 사실 차나무는 집에서 자주 키우는 예쁜 동백나무와 같은 과와 속에 속한다. 차나무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7세기에 동인도회사가 중국으로부터 유럽에 차를 들여온 것이다. 동인도회사는 어린 나무를 주문했지만 중국인들이 더 약삭빨랐다. 차나무가 아니라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를 보낸 것이다. 영국인들은 사기행각을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관상용인 동백나무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서 영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아편의 나라에서: 차나무는 중국에서 수천 년 전에 알려졌고 중국이 유일한 재배지였다. 17세기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서양으로 들여온 차나무는 19세기 중반에 최상의 차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했던 영국이 그야말로 훔치다시피 가져갔다. 그 당시에는 두 종류의 식물이 세상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꼭지의 주인공인 차나무와 그 누구에게도 권하지 못 할 양귀비(Papaver somniterum)말이다. 영국은 인도에서 양귀비를 독점적으로 재배했고, 중국은 차 재배에 거의 완전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약 200년 동안 동인도회사는 중국인에게 아편을 팔았고, 중국인은 아편을 사려고 동인도회사에 차를 팔았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었다. 영국인은 양심이라고는 없는 마약 거래 전문가였고, 동인도회사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마약 거래상이었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왔다. 영국은 무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1839년에 제1차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은 1842년에 끝났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중국의 여러 항을 개항시킬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홍콩이라는 보너스까지 얻었다. 1845년경 영국은 중국과 무역 거래를 재개하는 데 기뻐하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도에서 재배할 최상품의 차나무를 확보하고 흥차와 녹차 제조 기술을 알아내려 했다.
영국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한 방법은 바로 스파이를 파견하는 것이었다. 중국을 잘 알고 차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용감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사람이 바로 영국의 유명한 식물학자인 로버트 포춘 (Robert Fortune, 1812~1880)이다. 그는 1848년에 중국으로 향했다. 포춘은 에든버러 식물원에서 일했고,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원예와 식물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또 영국 왕립원예학회에 의해 처음으로 중국에 보내졌을 때의 경험을 1843년에 책으로 발표해서 유명해졌다. 중국 북부지방에서 3년을 보냈던 포춘은 이때 이미 차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전에 했던 여행에서도 감귤류에 속하며 껍질째 먹는 작고 둥근 과실인 금감(Fortunella), 재스민, 국화 등 생소한 식물들을 유럽에 들여온 적이 있었다.
식물학자 스파이: 혹시 식물학자 스파이였던 로버트 포춘은 기상천외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영웅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산업 스파이나 도둑놈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말하자면 식물을 훔치는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쯤 되겠다. 야망에 불타고 결의에 찬 식물 애호가이자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확신에 찬 애국자로 말이다. 그는 경제 질서를 뒤흔들어서 세계를 조금 바꾸고 조국 영국을 경제대국으로 부상시키는 데 일조한 남자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포춘은 중국으로 떠나면서 많은 돈을 받았다. 사실은 아주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매우 위험한 여행에 그를 뛰어들게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모험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가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 임무는 최상급 차나무가 자라는 중국 남부에 가서 차나무와 차나무 씨앗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푸젠성의 우이산맥과 안후이성의 황산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통행이 금지된 지역이었고, 몇몇 예수회 수도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발을 들인 유럽인은 거의 없었다. 사실 포춘은 중국인을 고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지역의 차를 가져다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직접 현지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지어가 불가능하다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갈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없었고,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한어 병음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안내인이 필요했다. 아니, 두 명이나 필요했다. 한 명은 몸종이자 통역으로 고용했고, 나머지 한 명은 쿨리(짐꾼)로 고용했다. 그런데 포춘은 이 두 사람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만리장성 너머에 있는 먼 나라의 군주: 완벽한 스파이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포춘은 변장을 하기로 결심했다. 스코틀랜드 남자가 앞머리와 옆머리를 밀고 남은 머리를 뒤로 길게 땋아 내린 변발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스꽝스러울 것 같지 않나? 하지만 이 방법이 통했다. 머리를 미는 과정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서툰 쿨리가 포춘의 두피에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포춘은 고통에 눈물을 흘렸고, 뱃사공(뱃사공들은 포춘의 모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당시에 중국의 주요 교통수단이 배였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들은 이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포춘과 동행했던 두 사내는 여행을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포춘은 그의 쿨리를 “내가 가려고 하는 지방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굼뜨고 서툴고 둔한 남자”라고 묘사했다. 또 몸종인 왕에 대해서는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을 뻔한, 어리석고 고집 센 남자”라고 했다. 두 사내는 쉴 새 없이 싸웠고 주인에게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잔꾀를 부리곤 했다. 또 그들은 실수 연발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포춘은 늘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결국 한 명은 뱃사공들에게 외국인이 타고 있다고 고자질을 하곤 했고, 나머지 한 명은 해적과 도둑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얘기해 주어 주인이 맘 편히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였고,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은 척하거나 뱃사공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결국 여행 내내 싸움이 끊이지 않았으니, 차라리 냉정함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노력하며 낯선 사람과 말을 하다가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내 이름은 포춘이오.”라고 할 수는 없었으므로) 포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만리장성 너머 먼 나라에서 온 군주올시다.” 이 대답에 놀란 사람들은 포춘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었다. 포춘은 능숙한 모험가답게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묘안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절대 냉정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여행가, 특히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다. 이것이 항상 최선의 길이다."
중국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영국인: 만리장성 너머 먼 나라에서 온 귀족 포춘은 어느 날 아침 여인숙에서 벌어진 난투극 소리에 잠이 깼다. 밖을 내다보니 자신의 하인 한 명이 타다 만 장작을 휘두르며 건장한 사내 열 명이 우르르 달려드는 것을 막고 있었다. 포춘은 방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작은 권총을 꺼냈는데, 습기 때문에 포신이 녹슬어 총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춘은 할 수 없이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표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자신의 하인이 다른 짐꾼들에게 300냥을 사기 치려다가 들킨 것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날, 아무도 포춘과 그의 하인을 위해 일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인 싱후가 모든 짐을 지기로 했다. 그런데 당나귀처럼 짐을 가득 지는 바람에 짐을 떠받치던 대나무가 부러지고 짐은 모두 진흙탕에 쏟아지고 말았다. 실수만 연발하는 사내 녀석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포춘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신사답게 발목까지 진흙에 빠진 하인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겼다.
또 한 번은 남자 네 명이 포춘이 타고 있던 배의 선장에게 달려드는 일이 벌어졌다. 선장이 쌀가마니를 훔쳤기 때문이었다. 쌀을 도둑맞은 사람은 포기를 모르고 돈으로 싸움꾼들을 사서 선장에게 보냈다. 가뜩이나 술에 취해 있던 선장이 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자 사내들은 돛을 가져가버렸다. 갈 길이 멀건만…….
포춘은 여행 도중에 아편을 피우는 사람들도 당연히 만났다. 아편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양귀비보다 동백을 더 좋아했다. 그가 묘사한 아편 중독자들을 보면 《땡땡의 모험》에서 푸른 연꽃의 나라 중국에 간 땡땡의 처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아편을 무분별하게 취했을 때 중독자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씁쓸하다. 중독자는 얼굴이 수척하고 낯빛은 창백하며 얼이 빠져 있다. 피부가 매우 칙칙해서 피부 상태만 봐도 아편 중독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기적으로 아편을 피우는 사람은 5~6년 이내에 사망했다. 아편을 태우면서 나는 연기도 꺼림칙하지만 중독자 옆에서 자면 그밖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포춘도 늙은 관료가 머무는 방의 윗방에서 자다가 그런 경험을 했다.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깬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의 코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불협화음인 소리가 났고, 뿐만 아니라 그가 아기 같은 울음소리를 내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차의 나라 중국을 여행한 그에게는 불행만 닥쳤던 듯하다. 중국을 여행하며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편만은 피하라. 차라리 취두부나 개고기를 먹어 보는 게 어떨까? 적어도 해롭지는 않을 테니.
녹차 vs 홍차: 하인들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포춘은 여행을 즐겼다. 중국의 광활한 자연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 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 그는 차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야 했다. 차나무는 중국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었다. 때로는 아주 가파른 산비탈에도 차밭이 있었다. 포춘은 원숭이를 차밭에 풀어 찻잎을 따오게 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원숭이를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돌을 던져 원숭이의 화를 돋우었다. 화가 난 원숭이는 차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인간을 향해 던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마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포춘은 그가 과거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봤던 것을 확인시켜주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홍차와 녹차가 똑같은 나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때까지 유럽인들은 발효 과정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다. 찻잎을 따서 짧은 산화 과정을 거치면 녹차가 완성되고, 홍차는 더 긴 산화 과정을 거친다. 포춘은 영국인 중국 학자였던 존 프랜시스 데이비스가 쓴 책 『중국인 The Chinese(1836)』에서 다양한 종류의 차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떠올렸다. 그 책은 다양한 품질의 차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중 페코차는 처음 난 찻잎을 따서 흰 솜털처럼 부드러운 맛을 낸다.
차나무는 공식적으로 학명 카멜리아 시넨시스를 얻기 전인 1712년에 중국과 일본을 여행했던 독일인 의사 엥걸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에 의해 테아 야포니카(Thea japonica)로 명명된 적이 있다. 유명한 스웨덴 식물학자인 칼 폰 린네(1707~1778)가 다시 테아 시넨시스(Thea sinensis)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포춘이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듯이, 홍차와 녹차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차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혼동이 생겼다. 그래서 녹차는 테아 비리디스(Thea viridis), 홍차는 테아 보헤아(Thea bohea)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887년에 독일의 식물학자 칼 에른스트 오토 쿤츠 (Carl Ernst Otto Kuntze, 1843~1907)가 차나무를 동백나무속으로 분류하고 현재의 학명으로 명명했다.
포춘은 반갑지 않은 발견도 했다. 중국인들이 수년 동안 영국인들에게 독을 먹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크게 증가한 차의 수요를 감당하고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인들은 오래된 홍차를 짙은 파란색 염료로 물들여 녹차로 탈바꿈시켰다. 어차피 영국 야만인들은 맛도 없고 독성까지 있는 차를 구분할 줄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포춘은 차가 어떻게 운송되는지도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차를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대나무로 엮어 고정시킨 다음에 상자가 절대로 땅에 닿지 않도록 했다. 포춘은 차나무 외에 다른 식물들도 채집했는데, 그 식물들을 그저 잡초라고만 생각한 중국인 짐꾼들에게 운반하라고 설득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는 멋진 당종려를 발견하고 영국에 있는 식물학자인 조지프 돌턴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1911)에게 보내기도 했다. 찰스 다윈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후커는 당종려를 카마이롭스 엑스켈사(Chamaerops excelsa)라고 명명했다. 그러다가 당종려가 다른 속으로 분류되면서 트라키카르푸스 포르투네이(Trachycarpus fortunei)로 다시 명명되었다(어려운 학명 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정확성을 따지는 꼼꼼한 독자들에게는 필요한 정보일 것이다. 식물학자들은 라틴어 학명에 엄격하다).
포춘은 한 여인숙 마당에서 멋들어진 측백나무를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벽을 타고 올라가 나무 열매를 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영국 스파이 포춘은 신사답게 행동하며 식물 사냥꾼의 충동을 자제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족인양 행세한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했다. 그는 아름다운 매자나무를 보고도 황홀해했다. 이후에 그는 유럽에 매자나무를 들여왔다.
포춘은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열심히 일했다. 1848년에 인도로 처음 차를 보냈는데, 운송 도중에 차가 거의 썩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더 좋은 운송 방법을 알아냈다. 휴대용 미니 온실이라고 할 수 있는 '워드의 상자'에 종자를 보관하는 것이었다. 3년 뒤에 포춘은 임무를 완수했다. 차나무 2만 그루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인도의 산자락에 심어졌다. 게다가 나무만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포춘은 차나무 재배와 차 제조를 잘 아는 일꾼들도 데려왔다.
오늘날 차가 누리는 인기는 부정할 수 없다.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가 바로 차이다. 맥주나 커피보다 앞선다. 사람들이 프랑스 와인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예전처럼 차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차가 인도에서 재배된 고급품질의 차라면 만리장성 너머 먼 나라에서 온 귀족 행세를 했던 식물학자 스파이를 떠올릴 수 있을까?
사략선 선장이 칠레에서 구해 온 흐벅진 열매
세상을 바꾼 식물을 거론하지 않고 이 책을 쓴다는 것은 아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은 식도락가들의 세상을 바꾼 것이지만……. 이 식물이 없었다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디저트에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질 것이고, 우리의 삶은 무미건조해질 것이다. 그 식물은 바로 딸기다. 딸기잼, 딸기 타르트, 딸기 아이스크림이 빠진 삶을 상상해 보라! 얇게 썬 딸기 위에 칠면조의 고환을 올린 요리법도 있다고 하지만 이쯤에서 멈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