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역사 공부
김영수 지음 | 창해
리더의 역사 공부
김영수 지음
창해 / 2020년 10월 / 352쪽 / 18,000원
1장 역사는 기록(記錄)이 아니라 기억(記憶)이다
사마천의 ‘삼립(三立)’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지준이라는 고매한 인품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 길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이요, 그다음은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이며, 그다음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사마천의 ‘삼립(三立)’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셋 중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며 나름대로 업적을 쌓게 되면 입신 내지 입공했다 할 것이며, 어느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자기주장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면 입언했다 할 것이다. 사마천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보았으며 자신은 감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없고, 그저 입언할 수 있다면 뜻한 바를 이룬 것이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나 그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른 대가를 생각하면 그의 입언은 입덕의 경지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그는 억울하게 반역죄를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시대가 자신에게 지운 역사적 책임, 즉 역사서 저술을 위해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궁형을 자청하고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다.
그런데 사마천이 말하는 입신(공)이든, 입언이든 그 결과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은 자신과 남을 기만하지 않는 도덕의 수립과 강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안 되면 입공한 자는 권세와 돈으로 세상을 해치고, 입언한 자는 글과 말로 혹세무민하여 사회를 부도덕하고 부정한 쪽으로 이끌게 된다. 사마천은 입덕은 언감생심이니 입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기》라는 절대 역사서이다. 하지만 입언도 입공도 입덕으로 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입공과 입언은 선택이지만 입덕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래야 입공도 입언도 세상에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언의 과정 내지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학문적 성과나 연구를 표절하고도 당당한 자들을 보노라면 ‘덕’이 실종된 입신출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하게 된다. 입언은 자기주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을 표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을 파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못할 짓이 없다. “지식 없는 열정은 무모하며, 열정 없는 지식은 무미하다. 과장된 지식은 허망하며, 거짓된 지식은 사악하다. 그리고 분별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 지식사회와 지식인이 총체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병폐가 벌써 골수에까지 사무쳐 도저히 손쓸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2장 옳은 길은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2,600년 전 한 사법관의 자결, 그리고 우리 검찰과 사법부의 민낯 약 2,600년 전 춘추시대 진나라에 이리라는 사법관이 있었다. 이리가 누군가의 거짓말을 듣고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그 사람을 죽게 했다. 소위 사법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나중에 그의 무고함이 밝혀지자 이리는 자신을 옥에 가두게 하고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당시 통치자였던 문공이 보고를 받고는 그건 이리의 잘못이 아니라 이리 밑에 있는 실무를 담당한 부하의 잘못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이리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담당 부서의 장관으로서 관리에게 직위를 양보하지 않았고, 많은 녹봉을 받으면서 부하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판결을 잘못 내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죄를 부하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문공은 그런 논리라면 너를 사법관으로 기용한 나에게도 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이리를 용서했지만, 이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법관에게는 법도가 있습니다. 법을 잘못 적용하면 자신이 그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 판단하여 남을 죽이면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임금께서는 신이 그러한 판단을 잘 할 거라고 생각하시어 사법관으로 삼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짓말을 믿고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검 위로 엎어져 자결함으로써 사형을 대신했다.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이끌어냈고, 새 정부를 통해 적폐청산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가 드러났고, 과거 검찰과 사법부의 그릇된 기소와 판결 사건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기 문란과 온갖 비리를 초래한 정당은 전혀 반성하지 않은 채 적반하장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윽박질렀다. 또한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의 실로 말도 안 되는 부정과 비리, 그리고 갖은 추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까지 결탁하여 국민을 속이고 겁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우리 국민은 ‘부끄러움’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우리 손으로 뽑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뒤늦게나마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들을 단호히 거부했고, 나아가 2,600년 전의 법관 이리의 자결이 남의 일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검찰, 사법부, 언론의 과거 작태들이 또 다시 우리의 이런 소망과 행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만든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판이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부끄러워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런 적폐 세력들의 척결에 단호히 손발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 아니 내 딸과 아들을 위해서라도!
리더의 진정(眞情)과 고독(孤獨) 리더의 길은 고독하다. 진심을 몰라주는 대중과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자신을 물고 뜯는 정적들, 돈에 굴복하여 가짜뉴스조차 불사하는 사이비 언론들, 나라와 백성들보다는 자리와 권세에 눈이 먼 측근들로 둘러싸인 리더의 신세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척의 돛단배와도 같다. 이런 고독감은 리더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정직할 때 더 커진다. 주위보다 리더의 식견이 뛰어날 때도 그렇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군주 무령왕은 나라 전반에 걸쳐 개혁을 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호복기사 (胡服騎射)’를 단행한다. ‘오랑캐 옷을 입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쏜다’는 뜻의 이 말은 그 후 전면 개혁의 대명사이자 개혁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령왕의 개혁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친다. 개혁의 본질이 ‘이해관계의 재조정’, 다시 말해 이익의 재분배이니만큼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사활을 걸고 저항에 나서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무령왕의 숙부조차 저항 세력에 가담했다. 수구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무령왕은 머뭇거렸다.
그때 조정 대신 비의가 무령왕의 개혁 의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하고 나섰다. “신이 듣기에 일을 하려고 할 때 머뭇거리면 성공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에 주저하면 명예를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왕께서 기왕 세상의 습속을 위배하였다는 비난을 감수하려고 결심하셨으니 세상 사람들의 왈가왈부는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무릇 최고의 덕행을 추구하는 자는 세속적인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큰 공적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범부와 모의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기》<조세가>
개혁 의지가 꺾이려는 순간 비의는 무령왕의 용기를 북돋우었고, 무령왕은 확고한 신념과 과감한 결단으로 ‘호복기사’를 밀어붙였다. 아울러 숙부에게 사람을 보내 간곡한 어투로 “숙부께서는 지금 일반적인 풍속을 말씀하고 계시지만 저는 풍속을 조성하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솔선수범하여 ‘호복’을 입고 조정에 들어오게 했다.
리더의 길은 고독하다. 하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라면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운명이다. 그리고 역사상 옳은 길은 단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작으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한다.
3장 백성이 부유해야 나라도 부유해진다
관중(管仲), 부민부국(富民富國)을 말하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2,70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이 언급해온 이 명언은 다름 아닌 ‘관포지교’의 주인공인 관중의 말이다(사마천은 《사기》<화식열전>에서 이 대목을 다시 인용하여 그 의미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켰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이면에는 ‘가난한 백성은 국가가 통치할 수 없다’는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백성을 가난하게, 못살게 해 놓고 나라에 봉사하고 충성하길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관중은 나라가 백성들의 의식주와 문화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나라의 정책이 순조롭게 시행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라를 떠받치는 네 기둥, 즉 ‘사유(四維)’가 세워진다고 했다. 바로 예(禮), 의(義), 염(廉), 치(恥)다. ‘예’란 도를 넘지 않는 자세와 태도를 가리킨다. ‘의’란 이치에 맞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염’이란 자신의 잘못된 점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치’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다. 요컨대 관중은 이 ‘사유’의 기본 전제를 기본적인 물질생활로 본 것이다.
이 ‘사유’가 바로 서면 통치자의 위치가 안정되고, 백성들은 서로를 속이려 하지 않으며, 행동은 반듯해지고,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정치와 정책이 필요하고, 정치와 정책이 순조롭게 시행되려면 민심을 따라야 한다. 관중은 이를 ‘사순(四順)’’이라 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백성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통치차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백성은 가난과 천함을 싫어하니, 통치자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니, 통치자는 그들을 안전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백성은 자신이 죽고 후손이 끊기는 것을 싫어하니, 통치자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대를 이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관중은 ‘민심에 따르는’ ‘순민심’을 백성을 이롭게 하고 부유하게 하는 ‘이민(利民)’과 ‘부민(富民)’의 전제 조건으로 본 것이다. 관중에게 경제와 정치는 결코 둘이 아니라 백성들의 보다 나의 삶의 질을 위해 상호 보완 역할을 해야 하는 자동차 앞뒤 바퀴와 같은 관계였다. 정치와 경제가 앞뒤 바퀴가 되어 민심에 따르는 정책으로 시동을 걸면 백성이 가속 페달을 밟아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이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속도는 백성들의 부와 비례하는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 ‘부민’이 성취되고, ‘부민’은 궁극적으로 ‘부국’으로 귀착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를 앞세운 ‘부국강병’이란 일방적 이데올로기에 눌려 살아왔다. 하지만 이는 독재적 발상에서 나온 대단히 허황된 구호이자 허위임이 이미 입증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에서는 대기업, 재벌이 잘 되어야 그 이익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낙수효과’ 논리 역시 재벌과 대기업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가 입증하고, 지금의 현실이 보여주듯 백성이 부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관중보다 150여 년 뒤의 보수주의자 공자가 공평하고 공정한 분배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려 2,700년 전 관중이 지금 우리 시대의 화두인 기초 생활과 기본소득을 정확하게 인식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통치의 차원과 경지 고대 현자들은 리더와 리더의 통치에 질적 단계를 매겼다. 먼저 관중은 《관자》<추언>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왕도의 군주는 백성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패도의 군주는 군대의 지지에 승부를 걸며, 쇠퇴하는 군주는 지배계급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망해가는 나라의 군주는 여자나 보석에 승부를 건다.”
사마천도 역대 부자들의 기록인 <화식열전>에서 통치자의 질적 단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정치의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못난 정치는 (부를 놓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관중과 사마천 모두 백성들을 믿고 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배려함으로써 마음을 얻는 리더와 그 통치를 최고의 경지로 꼽았다. 특히, 사마천은 당시 통치자인 무제가 이른바 경제 전문가들을 관료로 기용하여 국가 권력을 동원한 통제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서민 경제가 파탄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리더와 통치의 질적 단계에 대해 위와 같이 정곡을 찌르는 통찰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사마천은 이렇게 증언한다. “당시 중산 이상의 상인들은 대부분 파산하였고, 백성들은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할 뿐 더 이상 재산을 축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정은 소금과 철을 관리하고 민전을 고발하여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점점 더 풍족해졌다.”
4장 권력(權力)은 힘을 나누는 것이다
권력의 본질은 나눌 줄 아는 힘의 균형이다 저울은 무게를 측정하는 기구고, 저울추는 물건의 균형을 잡아 무게를 알아내는 저울의 가장 중요한 부속물이다. 그런데 이 저울추의 이름이 ‘권(權)’이다. 이 ‘權’ 자에 ‘力’ 자를 보탠 단어가 ‘권력(權力)’이다. 따라서 권력은 ‘힘의 균형’이 본래의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만큼 잘못 이해되고 잘못 쓰인 것도 없다. 장악하여 휘두르는 것이 권력이라는 삐뚤어진 인식과 의식의 근원은 역사가 제공했다. 특히, 왕조 체제의 산물인 봉건적 요소가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권력은 흔히 절대 권력 그 자체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런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권력의 비극’이기도 했다.
‘권력’은 ‘힘의 균형’을 잡는 생동감 넘치는 고도의 행위이며, 이 행위는 ‘권력 행사’다. 권력 행사라는 말은 잘못 써왔고 지금도 오남용되고 있다. 권력 행사를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으로만 알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왔다. 우리는 권력에 대해 부정적 시각과 인식을 갖고 있다. 잘못된 권력 행사만을 경험하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과 관계되고, 권력의 본질은 권력 행사와 관계된다.’ 권력 행사와 권력이란 문제를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법’과 연계시켜 이해하면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에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여기에 ‘권력의 제한’을 뜻하는 ‘권한’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권력의 속성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을 확장 개념이 아닌 수렴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권한’은 권력에 대한 제한이기도 하지만 권력 행사의 한계와 경계를 가리키는 말로, 권력 행사자의 자발적 통제력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권한은 균형의 제한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균형이 갖는 ‘정태성’을 깨뜨리는 힘과 권한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하는 철학의 필요성도 함께 함축하고 있다.
권력과 권력 행사는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힘의 나눔’이라는 속뜻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눈을 돌려야 때다. 지난 대통령 취임사에서 권력을 나누겠다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왔다. 권력의 본질이 ‘힘을 나누는’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나온 대국민 선언으로 듣고 싶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권력 나눔’이 아닌 구태의연한 ‘권력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의 심판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시점임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