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김현수 지음 | 덴스토리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김현수 지음
덴스토리 / 2020년 11월 / 232쪽 / 15,000원
아이들 이야기
코로나는 지옥이었다감금, 자율의 박탈, 친구와 학교의 상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렇게 장기간 학교의 문이 닫힌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질병관리청의 브리핑에 따라 일상의 경계를 조절하면서 지낸 적도 없습니다. 국가가 국민들 각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일도 처음일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각자의 삶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일을 시작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시민들을 위한 마음 백신 7가지’가 작성되어 전국에 퍼지다시피 했습니다. 뉴스 보고, 해외 논문 읽고, 회의하고 이러다 상반기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국가의 통제는 높아지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대감염의 위험이 확장되던 시기에는 더 정신이 없었고, 대감염의 여파로 우리 모두에게 진짜로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지요.
3월 초순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이 코로나 대감염 시기에 학생들, 학교, 사회, 국가 등이 각각 무엇을 해야 한다고 바라고 투사하고 원망하고 감사하고 주장하고 그랬을까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확실히 가정, 학교, 국가의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코로나 시기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고 또 말하고 지내왔는지에 대한 면밀한 파악은 곧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상처를 받았을까?지금부터 전하는 이야기는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고, 학교에서 만나고, 또 어른들을 통해 전해 들은 것들을 5개의 트라우마로 정리한 것입니다. 잘 정리된 것도 있고, 모호하거나 과장되거나 축소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새학기가 사라졌다 - 단절의 트라우마: 안개에 둘러싸여 앞이 안 보이는 느낌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과도, 반 아이들과도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만나야 하고 적응해야 하는 현실이 어색하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어떤 아이들은 1학기 내내 학교에 몇 번밖에 가지 않아 새로운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새로운 친구가 생기지 않은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친구 좀 못 만났다고 인간이 죽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가족 없이 산다고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관계를 겪을 만큼 겪은 어른들은 이미 머리와 가슴 속에 가득한 인간관계의 고통으로 인해 만남을 잠시 멀리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 막 친구관계, 또래관계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아이들은 물 없는 곳으로 실려 가고 있는 물고기 같은 기분이라고 합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살 수 있는 거잖아요.
무한 반복 도돌이표 잔소리 - 규칙 트라우마: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시작된 수많은 새로운 규칙은 기본적으로 금지하는 것들과 통제하는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 규칙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이유를 자세히 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손 씻기와 마스크쓰기, 그리고 기침금지, 대화금지는 반항성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더 도전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금지하고 통제하려면 차라리 아무도 안 만나고 밖으로 안 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교실은 기침만 한 번 해도 눈길이 쏠려서 다들 참을 수 있는 한 참는다고 합니다. 아니면 화장실이나 밖에 나가서 기침을 한다고 합니다. 기침만으로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집중되기에 감기라도 걸리면 정말 지금은 등교뿐 아니라 만남은 끝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면 아마 친구들이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할 것은 틀림없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함께 만난 어른들의 질문들>
본인은 걸려도 죽지 않는다는 청소년의 만용과 허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청소년들 중 일부가 코로나 감염 후 심각한 병세를 겪은 사례에 대한 보고들도 있습니다. 물론 비율적으로 보면 가벼운 경과를 겪는 환자들이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와 청소년 본인은 심각한 질병의 경과를 겪지 않지만, 할아버지?할머니 혹은 면역 상태가 좋지 않은 부모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꼭 자신들의 조부모, 외조부모가 아니어도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나이 든 분들도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설명해주시는 것과 더불어 공공장소에서의 수칙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는 윤리적 무책임함에 대해 끈질기게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혼자는 어려워 - 일상 유지 트라우마: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장 짜증나고 당황한 이야기는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라는 권면과 압박이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보낸 초기 원격 수업 시간표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등교 수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학교에 가는 날과 안 가는 날의 법칙이 확립되기까지 일상이 흔들리고 생활을 감당하기가 벅찼다고 합니다. 이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벅찬데, 어떻게 규칙적으로 지내란 말인지, 규칙을 지켜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고3들은 코로나 초기부터 이 특별한 상황에서 입시가 어떻게 될지 제일 힘들어했고, 지금도 가장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신을 생각하는 학생들은 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며, 수행평가는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엄마랑 대판 싸웠어요. 자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해서는 학교에서 전화 왔다고, 오늘이 학교 가는 날인데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학교 가는 날도 모르면 어떡하냐고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저도 소리를 질렀죠. 엄마는 뭐 했나고, 오늘 학교 가는 것 챙겨주었어야 하지 않냐고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불확실성과 불규칙성을 견디면서 그래도 잘 버텨온 것을 어른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은 “함께하면 더 잘하고 혼자 하면 더 잘할 수 없는 과제들이 있다”고 말해온 바 있습니다. 특히 흥미롭지 않고 어려운 것은 혼자서 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지요. 어쩌면 일 자체의 난이도보다도 혼자라는 사실이 어떤 과제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심리학자들 입장에서는 ‘모여서 공부하지 않으면 깨닫는 것이 줄어들 뿐 아니라 학습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학교 안에서의 경쟁 체제가 이런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오해입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협동 작업과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협동과 다양성이 학교 집단학습의 장점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결손 트라우마: 아이들이 어른들과의 대화 중 특히 마음 아파하는 것은 “이번 1학기 동안 코로나로 인해 우왕좌왕하면서 별로 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잘 버텼고 노력했고 또 그사이에 깨닫고 생각하게 된 것도 많고 나름대로 컸는데, 별로 한 것이 없다고 하니 참 허탈하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이런 유형의 말들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노력을 인정받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마치 코로나를 이용하여, 코로나를 핑계로 삼아, 더 나아가서는 코로나를 불러들여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말로까지 들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걱정이 아니라 순전히 비난처럼 들리는 것이죠. 어른들은 코로나 시기이지만 아이들이 잘 크고, 잘 자라나고, 이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 성공하고 있는 면모를 발견해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어른 자신의 조바심과 욕심으로 아이에게 발달이 멈춘 채로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이를 병들게 하는 말입니다.
스마트폰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 중독 트라우마: 어떤 부모님이 걱정되고 답답한 나머지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전화가 되는 돌덩이’처럼 여겨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돌덩이가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이가 ‘스마트폰 보기를 돌 보듯이 하라’는 부모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깔깔대고 웃어서,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스마트폰 노이로제에 걸렸고, 청소년들은 부모님 잔소리 노이로제에 걸려서 자주 다투는 예민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실제는 어땠을까요? 결국 아이들이 코로나 이전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고, 많이 하고 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하기보다 스마트폰에 붙들려 있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활동의 시간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집에 있는 동안 집안일도 돕게 하고, 반려동물이 있다면 반려동물 돌봄도 나누어서 하고, 또 일정한 시간에 산책 겸 운동 혹은 외출을 다녀오기도 하고, 유튜브나 TV에서 하는 신체 활동을 따라서 해보기도 하고, 몸만들기 프로젝트를 가족과 함께하면서 ‘홈트’(집에서하는 운동)를 하도록 해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
코로나 세대의 등장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0년 만에 감염병 대유행을 경험했고, 여러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 인류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기준, 새로운 정상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른인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도 잘 감당해왔고 버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은 이 경험을 어떻게 수용하고 또 이 과정에서 어떤 반응들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성장 과정에서 코로나로 인한 경험이 주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요? 그런 영향은 단기적,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나타날까요? 아동 - 빈곤화, 악순환, 기회의 상실: 『타임스』기자 제이슨 드팔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이러스가 아이들의 몸을 어른들의 몸만큼 파괴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할 수는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아동 지원은 절실하다.” 드팔은 코로나로 인하여 사업이 망하거나 해고가 되면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한 가정, 혹은 원래도 빈곤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더 빈곤해진 가정의 아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20년 9월에 발생한 일명 ‘인천 라면 형제’ 사건은 우리나라 빈곤 아동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여덟 살, 열 살 된 아이들이 라면을 먹으려고 하다가 불이 났고, 심각한 화상을 입어 전문 치료를 받던 중 동생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 내 상황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사건은 배가 고파서 일어난 일입니다. 현재 빈곤 가정에서의 아동 문제는 경제적 문제부터 식사, 정서, 기초 학력까지 모두 점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상태가 얼마나 더 악화되었는지를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팔이 보편적인 아동수당의 지급을 더 확대하자고 말하는 것에는 코로나 시기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빈곤층에서 극빈층으로 하향 이동할 아동들이 늘어날 것이 뻔히 예측되기 때문이었고, 이들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 - 붕괴, 불평등, 가장 힘든 시작: “인생의 계획이 무너졌어요.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리자마자 학원에 다닐 수도 없게 되었고, 또 학원을 마친 후 새로운 취업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살 집도 없어질 위기죠. 다시 부모님 집에 들어가기는 죽기보다 싫은데, 그냥 죽어야 할까 생각해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생일파티 하는 것조차 지금은 너무 사치예요.”(20대 초반 여성) 얼마 전 만난 20대 초반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많이 받은 집단 중 하나는 초기 청년기, 즉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입니다. 일자리를 가장 빨리 잃은 세대이고, 현재 카드 연체율이 가장 높은 세대이고, 구직과 진학 등 삶의 계획이 무너진 상태의 세대입니다.
청년들이 자신의 세대를 불행한 세대로 낙인찍지 않으려면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코로나 여파로 인해 영향을 받은 세대들에 대한 보고와 조사가 제안되고 있습니다. 특히 20~30대 여성의 자살 증가가 주목되고 있고, 그 사유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코로나 시기의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됩니다.
심리적 영향부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친구(또래)와 놀이의 박탈: “집에만 있으니 죽을 것 같아요.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모두 다 함께 코로나 걸리기도 하고 학교도 열고, 친구도 만나고, 소리도 같이 지르고 뛰어다니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메신저에서도 보지만 진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의 괴로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아요.”(중3 여학생) “외롭다는 것이 뭔지 전에는 몰랐어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저는 외롭다 이런 것이 나한테 생길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고1 남학생)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은 또래를 필요로 합니다. 또래는 아이들을 부모와 다른 방식으로 자극하고 학습하게 만들며, 부모가 주는 것과는 다른 체계를 활용하게 합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놀이가 어느 시점이 지나거나 혹은 부모의 놀이 태도에 따라 흥미와 재미가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반면 또래와의 놀이는 도덕성과 사회성을 자극하는 아주 중요한 뇌 학습입니다. 해리 할로의 사회 박탈 실험, 즉 원숭이를 혼자서 3, 6, 12개월간 키웠다가 또래 무리에 집어넣는 실험의 결과는 아주 비극적이었습니다. 또래 없이 지낸 원숭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혼자 지냈다는 사실 자체로 정서적 거식증을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기의 사회적 박탈감이 어떻게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강조하는 연구 결과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물 연구에서는 사회적 박탈감과 고립이 다른 삶의 단계에 비해 청소년기의 뇌와 행동에 독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접촉에 대한 박탈이 지속되면 세로토닌, 도파민 체제의 변화가 발생하여 사회관계에 필요한 시스템의 조절이 어렵고 결핍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반면 일부 느슨한 관계, 연대라도 맺게 되는 소셜 미디어는 대면 접촉에 비해 효과가 낮긴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효과가 두드러지는 그룹도 있고 미약한 그룹도 있고 해악이 되는 그룹도 존재하지만, 건강한 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면 비대면의 부정적 효과를 일부 개선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소중한 경험들을 빼앗기다 - 사회적 관계와 지역사회 경험의 박탈: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축제를 통하여 자신의 젊음과 창의성을 쏟아붓고 발산하곤 합니다. 그런 축제가 올해는 모두 온라인, 디지털, 랜선, 방구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초기에는 모두 생략되거나 연기되었고, 중반 이후부터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고 찾아가면서 그나마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형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올해 축제가 사라지면서 계승과 전수의 상실도 가져왔습니다. 올해는 모두 쉬고 가는 상태이므로 코로나가 물러간 이후를 기약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경험과 그 기억에는 올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성취를 빛내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고, 더 나아가 축제 속에 담긴 수 백 가지 만남과 전수와 계승의 내러티브들이 사라져질까 걱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