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히스토리
댄 칼린 지음 | 북라이프
하드코어 히스토리
댄 칼린 지음
북라이프 / 2020년 10월 / 367쪽 / 18,000원
역경은 인간을 더욱 강인하게 만드는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몇몇 역사가는 인간이 혹독한 시기를 보낸 뒤 더 나은 인간, 더 강인한 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다. 전쟁이나 기근 같은 역경이 인간을 더 강한 존재, 더 탄력적인 존재, 더 도덕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는 비단신을 신은 자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고 나막신을 신은 자들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이 말은 볼테르가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국가나 문명 등 한 사회의 흥망성쇠가 사회 구성원의 특성에 달려 있고, 그 특성은 사회의 물질적ㆍ도덕적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런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가 기록되어 왔으며 20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그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현대 역사가들은 ‘나막신과 비단신’ 개념을 거의 묵살하다시피 한다. 여기에는 자료 부족을 비롯한 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강인함이나 탄력성 같은 무형의 특성은 입증하거나 정량화하기 어려울뿐더러 사실에 기반을 두고 동료 심사까지 거치는 학술서에 그런 내용을 포함하기에는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세대는 과연 가장 위대한가 1900년에서 1930년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불리곤 한다. 물론 역사상 험난한 시기도, 또 그런 시기를 극복한 세대도 많았기 때문에 한 세대를 콕 집어 “가장 위대하다.”라고 부르는 게 다소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위대한 세대’에 속하는 구성원이 정말 거칠고 굳세어 보인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에 이미 10년 이상 지속된, 현대 역사상 최악의 경제적 시련도 견뎌 냈기 때문이다.
어떤 세대의 상대적 강인함을 0~10점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가장 위대한 세대는 7점은 받을 것이다. 이는 1900~1930년대에 태어난 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강인한’ 인간의 자격 조건을 충족한다는 뜻이다. X세대 역시 강인했다. 그 중 몇몇은 네이비 실(Navy SEAL)이 되었고, 또 몇몇은 걸어서 남극 대륙을 횡단했다. 하지만 X세대는 열 명 가운데 두 명 정도만이 그런 일을 할 만큼 ‘강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세대가 역경에 더 탄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세대의 개개인이 모두 더 강인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그 세대 안에서 강인한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는 의미다. 이는 강인함이라는 특성을 전체 사회에 적용하는 개념화된 방법인 동시에, 강인함 같은 특성을 정량화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강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 전쟁과 빈곤은 역사에서 상수가 아니다. 그런 위기를 겪으며 회복 탄력성이 높아지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운이 대단히 좋아서 전투에 휘말리거나 경제적 궁핍을 겪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상 병으로 고통 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심각한 질병이 인간을 더 강인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언뜻 이상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염병이 비교적 자주 발생하고 그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던 사회의 구성원은 오늘날 대다수가 갖지 못한 수준으로 회복 탄력성이 높았을지도 모른다.
분명 질병은 어떤 면에서 우리를 더 강인하게 만든다. 인간의 면역력은 대개 질병에 걸렸던 사람들을 통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인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질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개인이 더 강인하고 탄력적인 사람일까?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더 강인한 사회일까? 바로 이런 질문들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가는 중요한 질문일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측정하거나 입증할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강인해져야만 하는 시기도 역사적으로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는 강인함이라는 자질이 생존을 위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 역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막신과 비단신’ 비유를 이해한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혹독한 시대를 겪는 사람들이 강인해지는 것이라면 그리 혹독하지 않은 시대를 겪는 사람들은 강인해질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게다가 비단신을 신은 계층 역시 강인함을 상쇄하는 고유한 강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백병전이 사라진 현대 전쟁에서 ‘강인함’은 얼마나 유효한가 군사사가 한스 델브뤼크는 현대식 군대를 특징짓는 요소(조직, 전략, 훈련, 병참, 지도력 등)가 문명 수준이 낮을 때 자연스레 얻게 되는 강인함이라는 강점을 상쇄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고대 게르만 민족이 잘 교육받은 로마 군대에 연전연패당한 사실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문명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야만인은 호전적인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낸다는 강점이 있다. 마치 고삐 풀린 짐승의 본능 같은 근원적인 강인함을 내뿜는 것이다. 문명은 인간을 개화해 더욱 감성적으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신체적인 능력이나 용맹함 같은 군사적 자질을 약화한다. 이처럼 문명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약점을 상쇄하려면 인위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 상비군을 조직하는 주된 목적에는 문명화한 사람들을 규율로 단련하여 덜 문명화한 사람들을 저지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포함된다.”
델브뤼크에 따르면 애초에 도시 국가에서 국경 너머의 야만인들에 비해 온순한 농부들을 훈련과 규율을 통해 군대로 조직화한 것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사납고 호전적으로 변한 이들에 대적하기 위해서였다. “시민이나 소작농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로마인을 한 무리 데려다가 인원수가 같은 야만인 무리와 싸움을 붙이면 로마인 무리가 패배할 것이다. 사실 제대로 싸우기 전에 도망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상쇄하기 위해 로마군은 전술적으로 긴밀하게 단결된 보병대를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군사용 무기와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상황이다. 급기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미국 캔자스의 방구석에 앉아 아프가니스탄의 적군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이때 그 무인 비행기 조종사는 오랫동안 검술을 연마하며 미래의 결투를 대비해 온 19세기 일본 소년처럼 비디오 게임으로 조종 기술을 연마했을 터다. 사살한 시체를 가까이서 본 경험도 거의 없을 요즘 킬러들은 전투 무기를 다루는 법을 훈련하는 대신 드론을 날려 보내 산악 지대에 적응한 강인한 부족 전사들을 쏴 죽인다.
델브뤼크의 로마 군대 이야기에서 나타나듯, 오늘날의 군대도 부족한 강인함을 상쇄하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냈다.(물론 오늘날에도 전투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대의 선봉대는 적군 못지않게 강인하다. 고대 로마도 정예병만큼은 강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본국에 있는 지원 세력과 시민군까지 고려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강인함이라는 특성은 여전히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특히 계속 늘어나는 전사자 수와 전쟁 비용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강인함이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가가 동료 심사를 거쳐야 하는 논문에서 그 사실을 무슨 수로 확증할 수 있을까?
팬데믹의 서막? 과거를 살아가던 인류가 일상적으로 마주했던 질병과 전염병, 그리고 이따금 직면했던 세계적인 유행병은 규모 면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한다. 만약 오늘날 세계적인 유행병이 번져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사라진다면 그 파급 효과가 어떨지 상상해 보라. 이는 과거 최악의 유행병이 돌았을 때의 수치에는 근접하지도 않는 수준임에도, 오늘날 인구수를 고려하면 7억 명이 갑자기 사망한다는 뜻이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의 약 열 배에 해당한다. 그 여파가 상상이 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모두가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1340년대에 ‘흑사병’이 서방 세계를 찾았다. 흑사병은 그보다 10년 정도 전에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당시 중국 도시들이 황폐해졌고 몇몇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90퍼센트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역병은 처음이었다. 흑사병이 그처럼 많은 사상자를 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구가 임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더욱 효과적인 운송 수단이 발달하여 사회 간 상호 작용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는데, 이런 요인들은 흑사병의 전파력은 물론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속성은 전염병이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는지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흑사병을 보고한 초기 기록들에는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 항구에 모습을 드러낸 선박들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선박에 탄 선원들은 알 수 없는 역병으로 모두 죽었거나 죽어 가고 있었다. 아직 생존해 있던 선원들은 선박에서 화물을 내려 마을을 방문했을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부두에서 혹은 마을에서 그들과 접촉했을 것이다. 역병은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마을이란 마을은 모두 지도에서 사라질 기세였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거대한 구덩이를 여러 개 파서 수많은 시체를 빼곡히 쌓았다. 사람들이 밤낮으로 수백 명씩 죽어 나갔다. 구덩이가 가득 차면 곧바로 새로운 구덩이를 새로 팠다. 나, 뚱보라고도 불리는 아뇰로 디 투라는 내 손으로 나의 다섯 아이를 묻었다. 시체를 묻은 다음 흙을 너무 얕게 덮은 바람에 개들이 시체를 끌어내 도시 곳곳에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도 했다. 누가 죽더라도 슬피 우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모두가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전염병이 창조해 낸 고요한 비극 우리의 친구 뚱보 아뇰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버렸고 아내는 남편을 버렸으며 형제가 다른 형제를 버렸다. 이 질병이 서로의 숨을 통해 그리고 눈을 통해 전염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죽어 갔다. 돈이나 우정이 시체 묻을 사람을 찾아 주지는 않았다. 집안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망자를 데려다 구덩이에 넣었다. 사제도 없었고 기도도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유행병이 인간 사회의 유대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충분히 발전한 사회가 그처럼 빠르게 세균 지옥으로 몰락한 사례가 언제 또 있었단 말인가? 부모가 자녀를 유기하는 상황으로는 부족했는지 흑사병을 향한 두려움은 사회를 지탱하던 다른 요소들까지 무너뜨렸다. 이웃에게서 우정과 지원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에 합선이 일어났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아무도 그것에 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결된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비해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흑사병은 고요한 비극을 창조했다. 사람들이 사실상 혼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최악의 감염병이 더 큰 규모로 더 빠르게 퍼질 수 있다 인류는 이미 흑사병 부류의 병원균을 무기화하려는 의도로 활용한 적이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본군이 의도적으로 벼룩에 페스트를 주입해 중국의 도시에 투하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때 이후로 세균전은 많은 진전을 보였다. 사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균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전 세계 무기고에 있는 다른 어떤 무기를 활용하는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하고 더욱 파괴적일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질병들도 나타난다. 거의 매년 새로운 종류의 독감이 돼지, 가금류, 조류로부터 인간에게 옮는다. 스페인 독감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었다. 에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우리가 ‘박멸’한 질병이라도 자체적으로 변이가 일어나거나 질병 억제를 위한 백신, 치료제, 항생제, 해독제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그 위험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아무래도 팬데믹에 따르는 직접적인 결과인 대규모 사망 사태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외에 다른 많은 사회 분야에 미치는 파급 효과 역시 상당하다. 정부나 보건 당국이 미래에 질병이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뿐 아니라, 대중의 공포나 불안, 불합리한 행동 등으로 촉발될 위협도 똑같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역사를 고려하면 당연하다.
우리의 구급함에는 질병에 맞서 싸울 도구가 그 어느 때보다 넘쳐 나지만, 현대 사회는 병균에도 어느 정도 유리하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 감염병이 훨씬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세계적인 유행병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인류가 역사상 다시는 없을 최악의 전염병을 이미 경험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H. G. 웰스의 『우주 전쟁』에서 지구를 정복하려던 외계인은 지구의 병균 때문에 전멸을 당한다. 바로 그 지구의 방어 기제가 우리를 먼저 덮치지 않기를 바란다.
학대받은 아이들 부모가 자녀를 잘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인간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한 인간이 성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양육 방식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식하지만, 과거에 그것이 개인 혹은 역사 전반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쉽게 평가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녀 양육 방식에 아무런 역사적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 옛날 부모들이 자녀를 전부 잘못 길렀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여러 조치들 덕분에 최근 자녀를 키우는 환경이 나아졌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이들 개개인이 얻은 유익은 하나하나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개인이 얻은 유익이 어떻게 사회적 차원으로 이어지는지를 평가하기란 어렵다. 양육 환경의 발전은 큰 변화를 일으켰지만 얼마만큼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밝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녀를 기르는 방식이 크게 발전하면서 사회는 더 나은 곳으로 바뀌었을까? 반대로 예전의 형편없는 양육 환경이 다시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자녀 양육 방식과 국가 외교 정책의 상관관계 로이드 드마우스는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초기 학자 가운데 하나인데, 드마우스를 비롯한 역사 심리학자들은 오늘날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개인을 바라보듯이 과거 사회를 바라보며, 영유아기에 아이들이 겪은 발달 과정이나 부모의 행동이 이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참고로 드마우스는 이전 시대 아이들 대부분이 오늘날 기준을 적용하면 아동 학대 피해자에 해당한다며, 이런 현실이 예컨대 중세 시대가 그토록 잔인했던 이유 같은 역사적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고려하면 그런 주장은 지나친 일반화처럼 보일 수 있다. 복잡한 도시 사회라면 그런 주장이 통할지도 모르지만, 대개의 전근대 및 부족 사회에서는 부모와 친지의 넉넉한 사랑과 돌봄이라는 오랜 관습에 기대 아이들을 길렀다. 물론 이전 시대 사회 구성원이 오늘날 관점에서 영구적인 손상을 줄 것처럼 보이는 행위나 활동에 아이들을 지나치게 자주 노출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수천 년 전 아이들이 성장기에 여러 차례 목격했을 폭력 행위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혹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아이들 세계에서는 그런 폭력이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