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앨런 스턴, 데이비드 그린스푼 지음 | 푸른숲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앨런 스턴, 데이비드 그린스푼 지음
도서출판 푸른숲 / 2020년 10월 / 537쪽 / 25,000원
우주 대여행의 시작
시동을 위한 발차기 2006년 1월, 무게 약 453킬로그램의 자그마한 우주선이 로켓에 실려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을 향한 가장 긴 탐사여행의 시작이었다. 우주시대 여명기에 존재가 알려졌으나 아직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마지막 행성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라는, 딱 어울리는 이름을 지닌 그 우주선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던 탐사계획에 삶을 바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꿈과 희망이 실려 있었다.
뉴호라이즌스 명왕성 탐사계획 책임자 앨런은 1957년 11월에 미국에서 조얼 스턴과 레너드 스턴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앨런은 어렸을 때부터 과학, 우주 탐사, 천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12살 때 앨런은 텔레비전에서 뉴스 앵커가 NASA의 비행계획서를 들고 초창기에 발사된 아폴로 호의 착륙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계획서를 구하려고 NASA에 편지를 보냈지만, “자격을 인정받은 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획서를 보낼 수 없다는 답장이 오자 이 문제해결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1년 동안 자료조사를 해서 130쪽 분량의 책을 손으로 썼다. 제목은 『무인우주선: 내부의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앨런은 NASA에서 아폴로 호의 비행계획 일체를 받아봤을 뿐만 아니라, 휴스턴에서 NASA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존 매클리시의 눈에 들게 되었다. 그는 앨런에게 아폴로 계획의 기술 관련 문서들을 꾸준히 보내주기 시작했다.
175년 만에 찾아온 기회 매클리시와 친분을 쌓던 그 시기에 《내셔널 지오그래픽》1970년 8월호에 무인우주선의 우주여행 이야기가 실렸는데, 그 기사에는 NASA가 계획하고 있는 탐사계획의 목록도 실려 있었다. 먼저 1971년에 화성을 향해 한 쌍의 궤도선이 발사될 예정이었다. 다음은 당시 태양계 외행성이라고 불리던, 광대한 미지의 영역을 향한 첫 번째 탐사계획이었는데, 이를 위해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가 1973년과 1974년에 목성에 도달한 뒤 여행을 계속해, 멀게만 느껴지는 1979년에 토성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직후에는 매리너 10호가 금성을 이용해서 최초의 수성 여행에 나설 터였다. 우주선이 금성에서 사상 최초로 ‘중력의 도움’을 이용하는 계획이었는데, 그 뒤로 이 방법은 태양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재치 있는 요령이 되었다. 보충 설명하면,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려면 먼저 우주선을 해당 행성과 거의 충돌할 것 같은 궤도로 쏘아 보낸다. 그러면 행성이 중력으로 우주선을 끌어당겼다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고속으로 쏘아 보내게 된다. 파이어니어 11호는 목성 플라이바이(fly-by) 중에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해서 토성까지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이 방법을 쓸 수는 없다. 각각 자기만의 궤도에서 움직이며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지구에서부터 명왕성까지 줄에 꿰인 구슬처럼 일정한 위치에 와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밀통로처럼 행성들이 이렇게 늘어서는 것은 175년마다 한 번씩 있는 일이다. 이런 희귀한 기회가 마침 곧 다가올 참이었으므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여기에 ‘대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세기가 이루지 못한 꿈 당시 다른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들은 대부분 한 쌍으로 발사되었다. 한 대가 혹시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NASA는 대여행을 기획할 때에도 똑같은 우주선을 두 쌍 만들어 각각 행성 세 개를 방문하게 할 예정이었다. 1977년에 발사될 한 쌍은 목성을 플라이바이한 뒤 거기서 얻은 힘을 이용해 토성과 명왕성으로 향할 것이다. 1979년에 발사될 다른 한 쌍의 목적지는 목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었다. 이는 훌륭한 계획이었지만 보내는 비용이 너무 비쌌다. 작업에 드는 비용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60억 달러가 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NASA의 예산은 줄어드는 추세였기 때문에 결국 이 웅대한 대여행은 계획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취소되고 말았다.
과학계는 비용을 줄여 대여행 계획을 구출하는 일에 급히 나섰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규모를 줄인 ‘매리너 목성-토성’ 탐사계획이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25억 달러 정도 예산이 드는 이 쌍둥이 우주선 탐사계획은 1972년에 승인받았고, 공모를 통해 정해진 이 우주선의 이름은 보이저 1호와 2호였다. 1970년대 말에 발사된 두 보이저 호는 발사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 쪽으로 움직였지만 명왕성과는 방향이 맞지 않았고, 보이저 1호는 명왕성 쪽을 향했다. 그렇다면 왜 보이저 1호가 계속 명왕성으로 가지 않았을까?
보이저 호가 거둘 수 있는 커다란 성과이자 이 탐사계획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공식적인 척도 중 하나는 토성의 독특하고 정체 모를 거대 위성 타이탄 탐사였다. 타이탄의 대기는 심지어 지구 대기보다도 두텁고,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주로 질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 타이탄의 대기에는 탄소가 함유된 기체 형태의 메탄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1944년에 알아낸 천문학자 제러드 카이퍼는 현대 행성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타이탄 탐사에 문제가 하나 생겨서 다른 계획을 어렵게 포기해야 했다. 그로 인해 인류가 20세기에 명왕성을 방문할 기회가 사라진 것 또한 사실이다. 명왕성 방문은 다른 시기에 다른 세대가 해야 하는 일로 남았다.
“명왕성 연구를 해보지 않겠나?”
앨런은 1978년 12월 텍사스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고, 보이저 호가 목성에 접근하고 있던 1979년 1월항공우주공학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위를 마친 뒤에는 행성 대기 전공으로 두 번째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18개월 뒤 두 번째 석사학위를 손에 쥔 앨런은 콜로라도로 가서 항공우주업계의 거대기업인 마틴 마리에타에서 NASA 및 국방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18개월 뒤 그곳을 떠나 콜로라도 대학에서 핼리혜성의 1986년 출현 때 혜성의 구성을 연구하기 위해 우주왕복선에서 위성을 발사하는 계획의 프로젝트 과학자-NASA에서 수석연구자(이하 PI)로 불리는 프로젝트 리더의 수석보좌-가 되었다. 나중에는 탄도비행 탐사계획을 진행하고, 우주에서 핼리혜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우주왕복선에서 여섯 차례 실시될 실험도 이끌었다. 그런데 1986년 1월에 비극이 일어났다.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해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 일곱 명이 모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이 사고는 앨런이 3년 동안 푹 빠져 있었던 두 가지 프로젝트, 즉 핼리혜성의 구성을 연구하기 위한 위성과 그가 PI로 처음 맡은 실험까지 파괴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NASA가 추진하던 다른 계획들도 많이 박살났고, 우주왕복선 계획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앨런은 우주왕복선이 하늘을 다시 날게 될 때까지는 우주 탐사 분야에서 새로운 일이 추진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1987년 1월에 콜로라도 대학 천체물리학과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박사논문을 위해 혜성의 기원을 연구했다. 하지만 이미 명왕성이 그의 삶에 들어온 뒤였다. 그가 처음 과학연구를 제대로 맛본 것이 명왕성을 통해서였으므로, 1980년대 후반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벌써 명왕성 탐사만을 위해 우주선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명왕성 탐험가들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명왕성은 1930년에 정식으로 이 분야를 공부하지 않은, 캔자스 주의 시골 청년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동네 도서관에서 천문학과 행성에 관한 책을 죄다 찾아 읽었으며,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서 ‘발견’해서 널리 알린 ‘운하’에 대한 논란을 주시했다. 또 해왕성 너머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하나 더 있다는 로웰의 예언도 글로 읽어서 알고 있었다. 이후 클라이드는 로웰이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의 산 위에 설립한 천문대에서 그의 조수로 일하면서 명왕성을 발견했다.
명왕성에는 파헤칠 수수께끼가 아주 많았으므로, 과학자들 사이에 단호한 의지로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78년 6월에는 미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짐 크리스티가 명왕성을 찍은 사진들 중 일부에서 ‘융기’를 발견했는데, 크리스티가 발견한 것은 명왕성의 자전주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공전주기를 지닌 위성이었다. 이 행성에 크리스티는 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왕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카론의 궤도 기울기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가끔 아주 잠깐 동안 카론이 (우리 관점에서 봤을 때) 명왕성 바로 앞을 지나간 뒤 명왕성 뒤를 지나가는 행동을 되풀이할 때가 있다. 카론이 이런 위치에 오는 기간은 지구시간으로 248년이나 되는 명왕성의 공전주기 중 겨우 몇 년에 불과한데, 카론이 발견된 지 겨우 몇 년 뒤에 놀랍게도 바로 그 위치에 오게 되었다.
이 둘이 서로를 가리는 현상은 1985년부터 시작되어(몇 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약 6년 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이 ‘상호 이벤트 시즌’ 중에 둘 중 하나가 상대를 가리는 현상은 3.2일마다 한 번씩 일어날 터였다. 명왕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마크 뷔라는 젊은 과학자는 이 상호 이벤트를 관측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1985년 2월에 이벤트의 시작을 처음으로 감지한 사람은 리처드 릭 빈젤이라는 과학자였다. 이렇게 명왕성과 카론이 3.2일마다 한 번씩 서로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 많은 학자들이 관측에 뛰어들어 새로운 결과들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언더그라운드 앨런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감안해서, 명왕성이야말로 다음 탐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행성학자들 사이에서 명왕성 탐사에 대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에 마침 시기도 좋은 것 같았다.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행성학자는 약 1000명 수준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매년 봄과 겨울에 열리는 미국 지구물리학회(이하 AGU) 회의에 참석했다.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이 학회에서 학자들은 각각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세션’에 참가하곤 했다. 앨런은 동료 몇 명과 함께 명왕성에 관해 새로 발견된 사실들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세션을 조직하기로 하고, 이 세션에 참여할 다른 과학자들을 모으기 위해 젊고 유능한 영국의 행성학자 프랜 배지널에게 도움을 청했다. 프랜은 앨런의 열렬한 권유로 명왕성 연구보험에 몇 번 참석한 뒤, 곧 ‘명왕성 병’에 걸리고 말았다.
랠프는 뉴멕시코의 샌디아 국립연구소(핵무기를 개발하는 곳)에서 한동안 ‘어두운 일’을 한 뒤 다시 MIT로 돌아와 교수가 되었는데, 다음은 랠프의 회상이다. ‘앨런의 강력한 권유로 프랜과 나는 1989년의 그 AGU 학회에 명왕성과 태양풍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다룬 초록을 제출했다. 프랜이 발표자로 나섰고, 우리 둘이 함께 논문을 썼다.’ 랠프의 격려와 협조를 받으며 프랜은 앨런과 함께 AGU 최초의 명왕성 세션을 준비했다. 그러고는 명왕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발표할 내용을 제출하고 명왕성 세션에 참석해서 명왕성 탐사계획에 관심을 표명해달라는 말을 퍼뜨렸다. 이런 요청을 받은 사람 중에 윌리엄 빌 매키넌이라는,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똑똑한 지구물리학자가 있었다. 빌은 1984년《네이처》지에 「트리톤과 명왕성의 기원에 관해」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AGU 세션의 준비는 순조로웠다. 많은 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섰고, 명왕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거의 모두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앨런은 지금이야말로 NASA 본부에 명왕성 탐사계획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AGU 학회가 열리기 전 주에 앨런은 NASA 본부의 브릭스를 만나 AGU에서 명왕성 세션이 열린다는 것, 명왕성의 새로운 학문적 가능성이 크다는 것, 명왕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브릭스에게 알린 뒤 이렇게 물었다. “보이저 호의 여행도 끝나가고 있는데, 태양계 탐사를 완수하는 건 어떻습니까? 명왕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자금 지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브릭스는 놀랍게도 주저 없이 곧장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탐험단을 꾸리다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 호 계획은 1989년 5월의 어느 날 밤 볼티모어의 리틀이털리에 있는 평범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앨런과 프랜은 명왕성 세션이 있던 날 저녁에 핵심인물들의 만찬을 기획했는데, 명왕성 탐사선 발사계획을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나갈지 토의하기 위해서였다. 앨런, 프랜, 마크, 랠프, 빌. 그 밖에 아홉 명의 과학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날 저녁식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왕성 탐사야말로 어떻게든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공유했다. 그들이 그날 밤부터 명왕성 언더그라운드(The Pluto Underground)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이름이 언제 생겨났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하여튼 여러모로 그들에게 잘 맞는 이름이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거인들과 맞서 싸우기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NASA가 명왕성 탐사 팀을 선정하기 위해 경연을 열었다. 앨런의 APL 팀 외에 4팀이 더 명왕성 탐사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만만찮은 상대인 두 팀은 JPL 소속인데, 그중에 소더블롬은 행성지질학자로 예전에 보이저 호 카메라 팀에서 얼어붙은 위성들에 대한 연구를 이끌었다. 또 다른 PI인 래리 에스포지토는 NASA의 토성 궤도선 카시니 호에 실린 자외선 분광계의 PI이었고, 대학에서 행성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앨런은 자신이 이런 거인들과 겨루기엔 경험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팀이 최고의 제안서를 내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 플레이 오프 제안서를 쓰는 주에 아주 중요한 일이 대두되었다. 제안서와 탐사선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앨런의 팀은 에스포지토가 맡은 JPL 팀이 이름을 POSSE로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명왕성 외행성 탐험가(Pluto Outer Solar System Explorer)’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었다. 앨런은 보다 희망적인 이름을 원했다. 다음은 앨런의 말이다. ‘나는 우리가 많은 의미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뉴(new)’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우연히 서쪽 지평선(horizon)의 로키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뉴호라이즌스.’ 우리는 명왕성과 카론과 카이퍼대를 탐사하기 위해 새로운 지평선을 찾고 있었고, PI가 주도하는 최초의 외행성 탐사계획을 추진하는 것 역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작업이었다. 뉴호라이즌스는 부르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웠다.’ 그렇게 이름이 정해졌다. 그 뒤 뉴호라이즌스 팀과 함께 결승에 진출한 팀은 JPL의 POSSE였다. 두 팀은 이후 석 달 동안 정신없이 결승 레이스를 벌이며 상세한 탐사계획을 작성해야 했고, 결국 APL의 ‘NEW HORIZONS’가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