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향기
알랭 코르뱅 지음 | 돌배나무
풀의 향기
알랭 코르뱅 지음
돌배나무 / 2020년 6월 / 268쪽 / 16,000원
풀, 태초의 무대 풀은 본질적으로 태초의 정취를 간직한 듯하다. 유년 시절 어떤 방식으로든 풀과 마주해 본 이들은 그 풀이 우리 기억 속 유년기의 원형적 장면을 이룬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브 본느프와는 풀을 다시 만난 순간 이러한 특별한 느낌과 마주하며 소리쳤다. “여기가 바로 내가 있을 자리이니, 결코 이론(理論)의 여지조차 없는 이곳.” 인간은 풀을 탐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새긴다.
인간에게 풀은 자연 속에서 가장 조숙하고 변함없는 둥지로서의 모습을 구현하고, 인간을 만물의 중심에 내려놓는다. 우리는 예로부터 인간과 풀잎 사이의 유사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랄프 에머슨이 표현한 인간과 풀 사이의 불가사의한 관계이다. 인간은 풀과 마주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여기가 바로 나의 고향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브 본느프와의 언급과도 일맥상통한다.
풀은 인간을 바라본다. 풀은 인간에게 말을 건다. 풀이 건네는 말이 곧 자연의 말이다. 풀을 바라보고 글을 쓰면 풀처럼 담백한 말들을 찾아 쓰게 된다. 풀은 시의 근원이 된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풀의 존재는 비관념적 언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풀은 대지의 수많은 비밀을 담고 있으며 땅 그 자체를 담아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풀은 안과 밖 사이의 연속성에 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월트 휘트먼의 눈에는 풀이 지상 최고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작가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풀에게 다양한 교훈적 가치를 부여해왔다. 그중 가장 높이 사는 가치가 풀의 끈기, 에너지, 솟아나는 능력이다. “풀은 포기할 줄 모른다.” “풀은 자신의 존재를 붙들고 인내한다.” 그야말로 귀감이 되는 풀의 모습이다. 장 지오노는 한번 생명을 틔우면 아무리 낫에 베여도 다시금 돋아나는 풀의 성질에 감탄했다. 풀은 끊임없이 소생한다. 따라서 풀은 곧 영원한 젊음이자 무덤 속에서 되살아나는 자이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살아 있는 존재다.
풀은 초록색인데, 초록색은 여러 가지 감정을 이끌어낸다.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프랑시스 퐁주는 “우리의 자연은 이제 진실이 푸르길 바란다”라고 썼고, 필립 자코테는 “인간은 푸른 진실을 쫓는다”고 단언했다. 한번 들어보자. “모든 색깔들 중에 초록색이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색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초록색이 밤낮없이 자신의 가장 깊은 빛깔을 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초록색은 초목이라는 이름으로 식물에 깃들어 있다.”
이제부터 그 형태에 대해 살펴보자. 가장 간단한 형태는 풀잎이다. 휘트먼은 풀잎을 “형언할 수 없는 완벽함”의 기적이라 형용한다. 풀잎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개성을 지닌다. 괴테의 작품 속에서는 풀잎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괴테는 이런 감정을 베르테르에게도 부여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루이즈 콜레에게 이렇게 썼다. “한 장의 풀잎에 대한 이야기에 무한한 사랑을 담아낼 수 있겠지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풀잎은 희망의 증거였다. 소로는 이렇게 썼다. “마치 녹색의 긴 리본이 땅속에서 흘러나와 여름을 재촉하는 듯하다. (…) 샘이 마르는 6월이면 풀잎이 수로가 되어 (…). 이렇게 인간이 그 생명을 뿌리째 앗아도 풀은 어김없이 푸른 잎사귀를 내민다.”
한편 잡초는 지금처럼 하찮은 대접을 받기 전까지 꽤 오래도록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연민을 이끌어내는 존재를 넘어 심지어 감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17세기 말부터 약으로서의 가치와는 별개로 잡초 그 자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조지 왕이 통치하는 동안 잡초에 대한 찬가들이 울려 퍼졌다. 존 클레어는 농부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잡초들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잡초들을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나는 차라리 산에 꽃을 피운 소박한 잡초를 더 사랑한다. 자신이 태어난 샘물 근처에 싹을 틔운 한없이 미천한 풀 말이다. (…)”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이렇게 외쳤다. “잡초여, 영원하라!” 이 시인들에겐 푸르른 모든 것들 안에 신이 깃들어 있었다.
의외의 곳에서 잡초를 만나면 특별한 감정들이 생긴다. 산비탈이나 도랑, 도로 갓길에 난 풀 말고도 철길 사이 공터에 조용히 자라나 있는 풀들을 봐도 그렇다.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잡초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장소의 잡초들은 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조르주 상드는 『콩쉬엘로』에서 도랑가를 따라 난 풀을 보고 느낀 놀라움을 표현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장 상퇴유』에서 산비탈에 난 어두운 빛깔의 풀들 사이에 숨은 개양귀비를 보고 든 강렬한 감정을 한 페이지에 걸쳐 길게 묘사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시인의 시선을 지닌 것은 아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이런 풀들은 그저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풀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1860년 출간된 프랑스어 사전 『베슈렐』에는 “잡초가 유해한 풀”이라고 나와 있다. 잡초는 반드시 뽑아버려야 하는 풀에 불과했다. 가능하다면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이어 18세기까지 잡초의 유해성을 널리 알리는 내용이 농학서의 단골 주제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펴는 사람이 있었다. 17세기 중엽부터 일부 예술가들과 박물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무시 받아온 식물들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잡초는 무성하게 자란 키 큰 풀과 마찬가지로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었다. 17세기부터 수채화가들은 작품 속에 온갖 종류의 야생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중산층은 시골에서 식물들을 채취할 때 이러한 야생초들을 더 이상 “잡초”로 보지 않게 되었다. 18세기 낭만주의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존재였던 풀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풀과 신을 연결 짓는 일 말이다. 풀은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창세기에는 풀의 탄생이 동물의 탄생보다 앞서고, 인간은 맨 마지막 순서에 나온다. 풀은 삼일 째부터 등장한다. 성서에서 풀은 여러 차례 인생을 비유하는 요소로 나온다. 번뇌의 상태, 미래에 닥칠 힘겨운 상황들 말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임이로다.”(시편 37편)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시편 102편)
한편 하느님은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짐승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시편 147편 및 104편) 하느님이 배를 불리게 하신다. 훗날 18세기에 이르러 루소는 이렇게 썼다. “풀잎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감각적인 증거와도 같다.” 라마르틴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슬랭은 나이가 들자 식물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깨우쳤다. “그에게 있어 풀 하나하나는 자명한 이치를 밝히는 빛이었고, 여명이 비치는 곳으로 인도하는 신의 계시와 다름없었다. (…) 무색무취한 존재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영혼의 반짝임으로 풀 하나하나를 비추며, 풀이 느끼고 생각하며 몸짓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노라.” 자연의 창조물에 관한 이 같은 신성화는 빅토르 위고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그는 풀이 일으키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신의 현존에 대한 영감을 여러 차례 받았다. 마지막으로 다룰 내용은 풀이 지닌 사회적 상징체계이다. 이 내용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계층의 개념이 풀의 형상에까지 반영되기도 한다. 귀족이 사는 저택 앞에 놓인 잔디밭의 모습은 집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필립 들레름은 이 부분을 직접 느끼고 확신했다. “(노르망디 지방의) 풀이 빽빽하게 자란 초지에 서면 마치 성주가 된 기분이 든다.” 그 밖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부분은 풀이 지닌 비천한 신분이다. 풀은 평민과 동일시된다. 풀은 권력자가 짓밟아도 되는 서민들과 닮아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더욱 심각한 상징도 있다. 풀을 외설을 연상시키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동시대에 영국에서만 사용한 속어를 보면 풀 중에서 악마처럼 인식된 종들이 많았다. 그래서 소로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이 이처럼 천대받는 풀에 대해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풀 중에서 빅토르 위고가 가장 아낀 풀이 바로 쐐기풀이다. 『레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시장이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풀도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쥘 미슐레는 초원을 꿀벌 덕분에 “모두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초원, 그 무성한 풀의 풍요로움 프랑스에서 초원이라 하면 면적이 넓고, 잔디와 꽃의 종이 풍부하며, 벌초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키 큰 풀들이 자라 있는 모습이 흔한데, 이러한 특징들이 주는 시각, 후각, 촉각적 메시지가 초원과 목장의 풀밭을 구분해준다. 폴 가덴은 초원의 풍성함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한번 들어보자. 『실로에』의 주인공 시몬이 발코니 앞에 펼쳐진 초원을 바라본다. “해질녘 빛을 받고 드러누웠을 때처럼 따스함이 느껴졌다. 초원은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그 무엇처럼 느리고 평온하게 호흡하고 있다. 햇빛이 그 위를 감싸 안으며 꽃과 짐승뿐만 아니라 땅조차 기쁨으로 충만하게 한다. 이제는 (…) 온 세상에 서로를 만나러 온 단 두 개의 존재만 남았다. 사랑의 향기로부터 흘러나와 뒤섞인 천체와 초원이 장엄한 회합을 이루며 세상 어디에도 없을 행복을 불러낸다.” 전날 밤 시몬은 초원을 바라보며 문득 이곳이 오래 전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알던 곳이라 확신했다. 예전에도 이곳을 지금처럼 바라봤던 것이다.
현대에는 도미니크 루이즈 펠레그랭이 초원의 본래적 의미가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느낌과 감정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초원은 “영혼이 잠시 쉴 수 있는 곳이요, 풀을 베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곳이며, 걸음을 잠시 쉬며, 파리를 쫓다가 구름을 바라보며”, 또 다른 상상의 초원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한편 19세기 초엽, 윌리엄 길핀은 픽처레스크론(論)을 내세우며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초원을 평가했다. 그는 초원이 그림 속에 쉽게 녹아들어 다양한 그림을 완성하는 데 일조한다고 했다. 초원은 모든 푸른 언덕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 풍경이 펼쳐진다. 초원은 다채로운 빛깔과 물결치는 일렁임으로 시선을 즐겁게 한다.
중세 시대부터 사람들은 초원이라 하면 우선 그곳에 핀 꽃들로부터 떠올렸다. 초원은 알록달록하다. 특별히 의미 있는 작품들을 몇 개 골라 살펴보며 이러한 특성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장 상퇴유』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초원에 핀 꽃들을 향한 찬가들을 지어 불렀다. 특히 노란앵초, 앵초, 개양귀비, 제비꽃, 미나리아제비를 향한 찬가들이었다. 프루스트는 이러한 꽃들이 유독 만발한 어느 초원을 언급하며 이 작은 꽃들이 일으키는 감정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달걀 노른자처럼 샛노랗게 반짝이는 꽃들이 풀밭 위에서 혼자, 짝지어 혹은 무리지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다른 어떤 곳도 쳐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꽃들을 바라볼 때 드는 즐거움을 그들이 금빛으로 물들인 지면에 차곡차곡 쌓다 보면 너무 과한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낸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느낌이 강렬해진다. 어쩌면 이 기쁨은 내가 어렸을 때, 동화 속 왕자님들의 멋진 이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그 시절, 오래 전 아시아에서 건너와 이곳 마을에서 조촐한 지평선에 만족하며 영원히 살아가게 된 이 꽃들에 손을 뻗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환희의 원천인 초원 코스를 직접 둘러보며 스스로 느껴보아야 한다. 이러한 느낌을 추억 속에 간직한 사람들이 말하는 야생적 기쁨을 겪어 봐야 한다. 초원에서는 목장과는 달리 오랫동안 맴돌거나 혹은 가로질러 걸을 수 있다. 19세기에 드니즈 르 당텍이 “풍만한 풀”에서 산책에 관해 형언한 내용과 일치한다. 풍만한 풀은 바람의 강약, 초록빛 물결과 넓은 풀밭 위로 내리는 빗물이 연출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밑바탕에 풀밭을 오랫동안 걷고 밟고 가로질러 달리며 무엇이 있는지 깊숙한 곳까지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가 시작되면서 매년 5월 1일에 초원을 산책하는 일이 관례가 되었다. 이런 산책의 목적은 세상의 부패와 맞서는 데 있었다. 19세기 초에 나온 소설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처럼 산책하는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한편 19세기 전반에는 미국 서부의 초원이 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초원은 당시 미국에서 문학 및 역사 속 등장인물로서 역할을 했고, 그 뒤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그레이트플레인스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조나단 카버의 작품에, 맨 처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최초일, 개척자들의 침략 이전의 초원에 대한 정교한 묘사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1763년 10월에 나왔다. 한편 페니모어 쿠퍼의 『대평원』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는 아예 초원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1827년에 나온 이 작품은 단기간에 유럽에 번역서로 출간되었고, 특히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언뜻 보기에 한결같아 뵈는 이러한 “푸르른 초원들”은 사실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모여 이루어낸 곳이다. 이곳의 목초들은 움푹 팬 지형에 높게 자라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두터운 장막을 이루고 있는 목초들 덕분에 이런저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험이 닥치면 고개를 처박고 몸을 숨길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발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는 두텁고도 고요한 목초 아래를 기어갈 수 있다. 한편 이 목초밭에는 깃털 침대만큼이나 푹신한 층도 있다.
주기적으로 큰불이 일어 초원이 불바다가 되기도 한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속 주인공인 모피 사냥꾼은 이렇게 단언한다. “불길이 퍼지는데 여기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양봉장에서 연기에 쫓겨 흩어지는 벌 떼 꼴이 되겠군요. (…) 벌써 불꽃 소리가 들릴 텐데요. 제가 겪어본 바로는 초원에선 다 자란 풀에 일단 불이 붙으면 웬만큼 튼튼한 다리로도 불이 퍼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리기 힘듭니다.”
대초원의 푸른 일렁임은 숲의 모든 공세를 제쳐낸다. 큰 열매를 단 참나무가 보초를 서듯 늠름하게 서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그 일렁임을 멈춘다. 갖가지 새들과 들소 떼가 초원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대초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세기 중엽부터 대초원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대초원을 지키고자 하는 싸움에서 패배한 뒤로, 환경 보전 운동의 선구자인 존 뮤어와 그 뒤를 이은 알도 레오폴드와 같은 사람들이 대초원에 대한 향수를 앓았다. 20세기 전반기에 위스콘신에 정착해 생활한 알도 레오폴드는 대초원의 흔적을 오랜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는 대초원이 사라진 과정을 깊이 연구하고 분석했다. 인디언 추방 전쟁 동안 들소는 마구잡이로 죽임을 당했고, 대초원은 농장과 울타리로 뒤덮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대초원의 땅을 유럽에서부터 뉴저지와 뉴욕을 거쳐 건너온 “잡초”들이 장악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잡초는 참새귀리였다. 알도 레오폴드는 이 풀에 얄미운 감정을 실어 그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참새귀리는 “빽빽하게 자라며 줄기마다 노랗고 불이 쉽게 붙는 뻣뻣한 수염 같은 이삭”이 달려 있다. 들소를 비롯한 소과 동물들이 뜯어먹을 수 없는 풀이다.
더불어 대초원에 더 이상 불을 놓을 수 없었다. 불은 오래 전부터 대초원이 숲이 되지 못하도록 막아준 우군이었다. 그런데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불을 내는 일이 금지되었다. 당시 어렸던 존 뮤어는 숲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며 자신이 살던 마을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초원을 뒤덮는 모습을 보았다. 불과 몇 년 만에 초원의 잔디와 큰 열매가 달린 참나무를 비롯해 작고 희귀한 여러 식물 종까지도 모조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표적인 종으로 알도 레오폴드가 묘사한 양구슬냉이가 있다. 색깔은 “순백색”에, “너무 작아서” 아무도 먹지 않는 풀이다. “이 풀을 노래한 (…) 시인이 아무도 없을 만큼 작고 작은 존재이다 - 그
저 자신이 해야 하는 소소한 일을 묵묵히 하는 미약한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