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
손문숙 지음 | 힘찬북스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손문숙 지음 / 윤혜옥 사진
힘찬북스 / 2020년 9월 / 236쪽 / 14,800원
인간_ 태어나서 사는 동안의 예의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 『데미안』(헤르만 헤세/민음사/1997) 내 첫사랑은 데미안이었다.
중학교 때 문학반에서 『데미안』을 처음 읽었다. 중학생 때는 단순히 스토리 위주로 내용을 이해했다면 중년이 되어 독서 모임에서 다시 읽었을 때는 인생의 나이테만큼 이해력도 깊어져 문장마다 곱씹게 되었다. 같이 토론한 오십대 여교사가 ‘중학교 때 데미안이 첫사랑이었다’라고 했을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어렴풋이 ‘내게도 데미안처럼 생각이 깊고 어른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청소년, 청년뿐만 아니라 중년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에 이르는 인생의 시기마다 데미안을 비롯해 여러 인생의 스승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고 통찰력 있는 헤세의 문장에 담겼다. 싱클레어가 인생의 고비마다 얻은 통찰이 우리들의 인생과도 맞닿아있어 이 소설을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권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주제는 성인들에게도 계속되는 인생의 질문이 아닐까.
고전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변기다. 하지만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에 현대인들도 공감할 수 있다. 헤세는 데미안의 말을 통해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 짓기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어디서도 자유와 사랑은 없다’라고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을 비판했다.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개인들이 공동체로 도피하면서 패거리 짓기를 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p.182)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유럽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불안한 개인들이 패거리 짓는 혼돈의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헤세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상은 무엇일까? 헤세는 데미안의 입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혼돈기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자신을 알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개인들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p.9)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라고 헤세는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도 모르게 허물을 벗고 알의 껍데기를 부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양인이 되는 법 -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페터 비에리/은행나무/2018)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앎을 얻기가 어째서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 p.31
“이 책을 읽으면 나도 교양인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읽어봤어요.”
독서 토론 모임에 나온 어느 회원의 말에 우리 모두 까르르 웃었다. 책이 얇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표지도 예뻐서 선택했는데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소감을 먼저 나누고 한 시간 동안 돌아가며 회원들이 책을 낭독했다. 눈으로만 읽다가 낭독을 하니 시각, 청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회원들의 아름답고 개성 있는 목소리에 다시금 놀랐다. 그녀들은 새로운 독서 토론 방식으로 낭독을 한 경험이 신세계라며 좋아했다.
어느 회원은 “평소 교양인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다른 회원은 “철학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얇고 이해하기 쉬워서 좋아요. 독서 토론도 좋지만 낭독을 하니 색다른 경험이라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독서 모임 회원들의 말처럼 교양인이 되고 싶은 것은 지식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보편적 의지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교양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어느 회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페터 비에리는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p.9)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남이 정해주는 교육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평생 남의 기준에 맞춰 공부를 좇다 보면 자신의 힘으로 교양을 쌓는 방법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어서 하는 공부는 청소년기의 공부와는 달라야 한다.
“교육은 항상 어떤 쓰임새를 목적으로 합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하우를 습득합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그런데 교양은 다릅니다. 물론 교양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따라오기도 하고 유용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교양의 결정적 특성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양은 유용성을 포함하지 않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p.38)
페터 비에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희생 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진짜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에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p.15)와 같은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얻은 이차적 지식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들을 쉬지 않고 던질 때 우리는 교양인이 될 수 있으며,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교묘한 강압이나 세뇌, 또는 사이비 종교로부터 자신을 굳건히 보호할 수 있다.”(p.17)라고 말한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곳으로 무작정 홀릴 위험이 적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익 추구의 도구로 이용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에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꼼꼼히 장부를 검사하듯이 우리의 앎과 이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어낸 지식을 이차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p.14~15)
교양인이 되는 길은 혼자 힘으로 깨우쳐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부터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페터 비에리의 안내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교양인의 고갱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_ B와 D 사이, 그 어디쯤
그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 『삶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민음사/1999) 1911년 독일 출신 작가 루이제 린저의 대표 장편소설 『삶의 한가운데』는 여주인공 니나를 평생 짝사랑하는 의사 슈타인의 일기 및 편지 그리고 니나와 언니와의 짧은 며칠 간의 만남과 대화들로 구성된 소설로, 나치 체제하의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며 생을 치열하게 살아간 니나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되자 전후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니나 신드롬’이 생겨났다. 루이제 린저가 니나를 통해서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한 여성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니나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작 중에서 니나는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났던 나치당의 득세와 유대인 탄압,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겪었다. 따라서 전후 세대의 사람들은 반나치즘 투쟁과 휴머니즘적 태도로 생을 살아간 니나의 매력에 빠진 것이리라!
반나치즘 활동과 의대 입학, 안락사 논쟁, 자살 기도, 사랑하는 남자와의 만남, 슈타인과의 정신적 교류 등을 통해 생에 순응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 위험에 처할지라도 피하지 않은 니나의 삶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심리학 시간에 벌어진 안락사 논쟁에서 불치의 (정신)병자들에 대한 안락사 허용에 강하게 반대했다. 국가의 이념에 반대하는 자들 역시 국가 및 사회에 해가 되므로 제거할 수 있다는 나치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라는 미명 하에 한번 죽이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옳든 그르든 상관 않고 계속 죽이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살인자들만 남겠지요. 나는 이에 반대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살인을 허가하고 그 살인에 불가피함과 선이라는 딱지까지 부여하는 국가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p.199)
자신과는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니나를 사랑했던 슈타인은 나치당에 끌려다닌 나약한 독일 지식인의 전형이다. 그는 니나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구십 퍼센트 주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십 퍼센트 말입니다. 거의 다 주어진 셈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십 퍼센트가 빠져 있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p.76)
슈타인이 가지지 못한 십 퍼센트는 니나가 말한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것은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이 아닌 단 한 번의 큰 충격’, 즉 부당함에 싸우는 지식인의 행동이다. 니나가 나치들에 의해 내란 방조조죄로 감옥에 갇혔듯이 작가 루이제 린저도 반나치즘 투쟁으로 국가 반역죄 및 국가력 파괴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니나와 린저는 “제멋대로 살고 있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어요. 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던”(p.351)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런데 그것은 그들 탓이야. 그들은 운명을 원하지 않거든.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차 진창 속으로 몰아넣지만, 그건 아프지 않지. 일탈이란 편한 점도 있으니까.”(p.131~132)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p.78) 라는 말로 니나는 우리 안에 있는 자아들 중의 하나에 우리를 고정시키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전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생을 살아감에 있어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거침없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도 주고 있다. 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모험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삶의 방식은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도 동경하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뿌리가 자리잡히기까지 많은 국민의 희생이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소중한 경험이 있었기에 현재의 국민도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행동, 즉 ‘커다란 충격’으로서의 촛불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내지 못한 현직 대통령을 헌정 역사상 최초로 탄핵할 수 있었다. 촛불 혁명은 우리의 마음속에 민주주의를 국민의 힘으로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촛불혁명을 통해 일어난 국민의 모습은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니나의 모습과 닮았다.
감염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
- 페스트(알베르 카뮈/민음사/2011)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서운 전염병이 휩쓴 폐쇄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묘사된다. 인물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한다.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버린 오랑시에서 의사 리유가 목격한 환자들은 “멍울과 반점과 헛소리가 나올 정도의 고열과 마흔여덟 시간 이내의 임종”(p.73)으로 죽어갔다. 전면 폐쇄된 오랑시에서 시민들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어버렸다. 의사로부터 유행성 열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바로 구급차에 실려가 격리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시에서는 죽은 환자를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바로 매장해버렸다. 개인적인 운명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모든 것은 효율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감정은 “생이별과 귀양살이의 감정”, “공포와 반항”(p.221)이었다.
오랑시의 관리들은 상상력이 부족하여 페스트에 대항할 확신도 없었고 효과적으로 싸울만한 능력도 없었다. 결국 뜻 있는 일부 시민들이 당국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원보건대를 조직해서 다른 시민들이 페스트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왔다. 의사 리유는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이야말로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이것만은 말해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p.216)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시와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은 어떻게 다를까? 지금의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지휘 아래 선진적인 보건의료시스템과 시민들의 개인위생 수칙의 철저한 준수로 감염병을 잘 통제하고 있다. 선진국들조차 부러워하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소중한 방역 성과는 자기가 맡은 직분을 성실하게 완수하고 있는 전문가 관료와 방역체계를 수행하는 공무원들, 지자체, 의료진, 시민들 덕분이다.
카뮈가 1947년 『페스트』를 출간하게 된 계기는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 때문이다. 까뮈는 전쟁 당시 자신이 겪은 공포와 귀양살이의 분위기를 페스트라는 질병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다. 한가하고 습관에 젖은 삶 속으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전쟁은 질병이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것으로 생각했다. 『페스트』를 통해 까뮈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언제든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이나 질병 같은 재앙을 겪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이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