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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 파람북


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파람북 / 2020년 7월 / 240쪽 / 15,000원



나의 은신처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 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계획이 무산되고,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친구라던 이들은 초라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들떠 싸우는 인간들이 추해 보였다. 가혹한 운명이다. 그래도 어차피 죽을 것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다시 기운을 내든 해야지, 마냥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선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지평선 너머 울퉁불퉁한 봉우리들이 치솟은 높은 산으로 향했다.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해가 지면 뚝 떨어진 시골 여관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질려 버린 상태였지만, 혼자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들의 울음이 구슬프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시냇물 소리와 깊은 숲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웅성거림도 더 이상 침울하게 들리지 않았다.

큰길과 오솔길을 이리저리 걷다 보니 산의 초입에 들어섰다. 밭고랑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넓은 평야는 바위와 울창한 밤나무가 빼곡한 벼랑 앞에서 끊겼다. 가까운 봉우리들 건너편에는 까마득히 높은 새파란 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었다. 드넓은 평야를 층층이 타고 흘러내리는 강은 자갈밭 사이로 굽이치며 거무죽죽한 이끼로 뒤덮인 반지르르한 바위틈으로 콸콸 흘러내렸다. 나는 그 강을 끼고 하염없이 걸었다. 강의 양쪽 기슭 낮은 언덕바지는 산을 제일 밑에서 떠받치는 꽤 가파른 기반이었다. 마치 버팀벽 같았다. 아득한 시절부터 언덕바지 위에서 골짜기를 지키던 육중한 구조물들은 거의 무너져 있었다. 문득 골짜기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먼지와 연기와 소음에 파묻힌 대도시로부터 나는 벗어났다. 적과 거짓된 친구들을 남겨둔 채….

기쁜 마음에 온전히 휩싸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발걸음은 가볍고 침침하던 눈도 밝아졌다. 산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 공간에 먼지 날리는 대로 따위는 없었다. 이제 나는 평지를 완전히 떠나 미개척지인 산으로 들어왔다! 깊은 골짜기를 따라 목동과 염소 떼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오솔길이 뚫려 있었다. 산허리를 비스듬히 기어오르는 철로와는 아주 먼 거리였다.

나는 혼자 지낼 곳을 찾아 산길을 따라 걸었다. 길이 높아질 때마다 아래쪽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작게 보였다. 오두막집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푸르스름하고 뿌연 안개에 덮여 발아래 마을은 반쯤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천천히 위로 퍼지면서 숲 주변에서 흩어졌다.

바위들을 끼고 돌며 수많은 골짜기를 넘었다. 돌부리에 발길을 채이면서 요란하게 흐르는 개울을 건너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바위와 숲과 풀밭을 품은 산자락에 도착했다. 봉우리에는 안개에 가려진 오두막 한 채가 놓여 있었다. 기슭 아래쪽에서는 양들이 풀을 뜯었다. 오두막은 고운 잔디 위로 리본처럼 펼쳐진 황톳빛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막다른 길 같았다. 그 너머 더 멀리는 깊은 골짜기인데, 흙과 돌무더기, 폭포와 눈과 얼음이 보일 뿐이었다. 결국 이곳이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대였다. 나는 몇 달 동안 이곳 오두막에서 지냈다. 개 한 마리와 함께 살던 목동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다시 찾은 자유를 만끽하면서 나는 천천히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일상을 맞이했다.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높은 능선을 따라 돌아다녔고, 전나무 숲을 헤매기도 했다. 어떤 때는 산등성이 높은 곳까지 우뚝 솟은 첨봉에 올라가 멍하니 죽치기도 했다. 깊고 어둑어둑한 계곡에서는 마치 지하의 심연에 처박힌 듯했다. 자연 덕분에 좀처럼 식지 않던 쓰라린 기억도 차츰 누그러졌다. 나쁜 기억을 잊어보려고 길을 방황하는 일도 사라졌고, 나도 모르게 주변에 눈길을 돌려 자세히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산에 들어오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바위와 숲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덕에 나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과거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 산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늘 속에서도 햇빛을 받아들이는 차분하고 늠름한 모습이 좋았다. 푸른빛을 띤 채 빙하를 두르고 있는 그 튼튼한 어깨가 좋았다. 풀밭과 숲과 맨땅이 줄줄이 이어지는 기슭도 좋았다. 멀리 내뻗은 거목의 뿌리처럼, 작은 골짜기마다 개울과 풀밭, 호수와 들판이 힘차게 펼쳐지니 좋았다. 나는 산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바위에 붙은 누렇거나 푸른 이끼와 잔디 한복판에서 반짝이는 작은 돌멩이까지도 사랑스러웠다.

처음에는 내가 도시에서 멀리했던 사람들과 비슷해 보여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느껴졌던 목동조차 같이 지내는 동안 차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목동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점차 우정도 싹텄다. 그가 마련한 음식과 보살핌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배우려 했다. 힘든 공부는 아니었다. 내가 자연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안 목동은 자신의 고향 산에서 가축이 풀을 뜯을 수 있는 산기슭을 알려 주었다. 작은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보석으로 손질될 암석을 캐내어 보여주었다. 험한 골짜기에서 길을 찾아 낭떠러지와 맞닿아 솟아오른 바위 꼭대기로 데려가 주기도 했다. 목동은 높은 산마루에 올라 골짜기들을 짚어가며 급류가 쏟아지는 물길을 가르쳐 주었다. 오두막으로 돌아와서는 지역의 전설과 역사까지 들려주었다.

나는 선뜻 이해하지 못한 것들, 혹은 목동이 나더러 알 필요도 없다고 했던 것들에 대해 더 묻곤 했다. 목동은 차츰 편안하게 털어놓았다. 목동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별것 아닌 것들을 알게 되면서 웃었다. 눈을 반짝이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두껍고 거칠기만 했던 그의 안색도 밝아졌다. 목동은 이전과 다르게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했다.

목동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 자신도 달라졌다. 목동에게 자연의 지리적 과학적 이모저모를 설명하려 애쓰다 보니 나 역시 자연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애쓰는 독학생이 되었다. 결국 자연을 사랑하고, 서로 비슷해진 목동과 공감하면서, 나는 산의 현재의 삶과 과거의 역사를 알아보고 싶었다. 우리는 마치 코끼리에 붙어사는 작은 벌레처럼 산에 붙어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땅에서 솟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을 공부했다. 계절과 시간과 관점에 따라 무시무시하거나 멋진,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빚어내는 대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눈과 빙하와 그것을 둘러싼 날씨의 변화와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을 학습했다. 여러 인류의 역사와 문학에서 산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고 싶었다. 인류의 진보에 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공부하는 동안, 나는 목동에게 큰 빚을 졌다. 기어 다니는 곤충들과 날갯짓하는 나비와 노래하는 새도 나를 도왔다. 형제처럼 친해진 작은 동물들을 바라보며 울음소리를 듣고, 풀밭에서 빈둥대지 않았다면 나는 대지가 얼마나 위대하고 또한 숨 쉬고 있는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 넓은 품에 작은 미물들을 모두 끌어안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도록 끌어들이는 대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의 기원


어떤 민족의 신화에나 산의 탄생 설화가 남아 있다. 강과 땅, 대양과 동식물 또 인간의 창세 설화들이다. 소박하게도 신과 영웅이 하늘에서 여러 산을 집어던져 우연히 지상에 떨어졌다는 신화가 있다. 아니면 신께서 지상에 산을 세우고 조심스레 다듬어 하늘이라는 둥근 지붕을 떠받드는 기둥으로 삼았다던가……. 이렇게 레바논 산, 헤르몬 산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구 변방에서 신이 건장한 어깨로 아틀라스 산을 들어 올렸다고 한다. 고대 사람들은 산들이 이렇듯 신들에 의해 마음대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대 전설을 믿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낭만으로 넘치는 전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전설은 몽상과 한패가 되어 흔적을 지우며 사라져 갔고, 탐구자들은 환상에서 깨어나 더욱 악착스럽게 진리를 추구한다. 다행히 우리 지구는 항상 새롭게 활동하기 때문에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칠거칠한 땅거죽도 차츰 변한다. 지구는 스스로를 매일 파괴하고 재건한다. 줄기차게 산을 깎아내리지만, 다른 산을 쌓아 올린다. 골짜기를 파지만 다시 채우려 한다.

지상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언덕과 산은 정말 천천히 이루어진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처럼 갑자기 치솟는 법은 없다. 땅 한복판에서 불쑥 솟아오르든 고원의 침식으로 천천히 태어나든, 대리석 덩어리가 석상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육지와 섬에서 수천 미터 높이의 땅덩어리가 많은 비를 맞으면 비탈은 점점 크고 작은 계곡과 협곡으로 깎인다. 단조롭던 고원 표면은 봉우리, 능선, 피라미드로 나누어진다. 둥글게 파이고, 넓적하고 가파르게 잘리기도 한다. 그렇게 산맥은 차츰 틀을 갖추고 여기저기 드넓은 땅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평지도 마찬가지다. 한구석에 계속 비를 맞으면 경사면으로 산은 초승달처럼 움푹해진다.

고원을 산으로 바꿔놓는 것은 지표면의 원인뿐이 아니다. 땅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린 변화 끝에 거대한 붕괴가 일어난다. 망치를 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구조와 형태를 연구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산을 돌아다녔는데, 결국 산맥의 뼈대 대신 거대한 단층 또는 갈라진 틈으로 수백 킬로미터씩 뻗은 해저 기반을 찾아냈다. 단애 속에 수천 미터 두께의 덩어리들이 있었고, 완전히 뒤집힌 형태도 관측됐다. 과거의 땅 표면이 지금은 안쪽 면이 된 경우였다. 그 토대가 계속 가라앉는 바람에 망토처럼 지표면을 에워싼 바위들의 형태가 드러나고 말았다. 제막식 때 장막을 거둬 숨겨진 기념비를 갑자기 드러내듯 토대는 산의 핵심을 화끈하게 폭로한다.

하지만 거친 지표면을 이루는 산과 지구의 역사에서 붕괴 자체는 지층에 주름지는 습곡 현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오랜 세월 흙과 바위, 사암층, 금속 광맥 등 모든 것이 눌리면서 옷감처럼 주름 잡혀 산과 계곡을 빚어낸다. 대양의 표면처럼 육지의 표면도 물결처럼 출렁인다. 대단히 힘찬 물결이다. 지표면 보다 훨씬 높이 솟은 안데스, 히말라야산맥이 그 결과물들이다. 땅 위에 있는 바위들이 옆으로 밀어붙이는 힘에 따라 그 주변 바탕도 계속 요동친다. 마치 과일 껍질에 주름이 잡히는 것처럼.

땅바닥에서 솟은 봉우리들, 그러니까 해수면 높이보다 차츰 높아져서 대기가 차갑게 얼어붙은 높이까지 치솟은 봉우리들은 용암과 화산재가 굳은 산들이다. 지구의 수많은 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눈높이에서 이런 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산들과 다르게 화산은 중심에 굴뚝이 뚫려 있다. 굴뚝에서 증기와 불타는 용암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불이 꺼지면 굴뚝은 막히고, 원추형 화산의 경사면도 비와 식물 때문에 원래의 고른 모습을 잃고 다른 산과 비슷해진다. 물론 지구의 가슴속에서 치솟은 바윗덩어리들은 용암이든 반죽이든 모두가 그저 땅의 긴 크레바스를 뚫고 나왔다. 로마 남쪽의 베수비오스 화산이나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의 재처럼 분화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산마루에 쌓인 용암과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간 용암은 지표상에 솟은 해묵고 뿌옇게 빛이 바랜 산들과 초창기에만 달랐을 뿐이다. 옛날에 불타오르던 용암은 차츰 식고 풍화되어 식물성 흙으로 덮인다. 그 속으로 빗물이 스며든다. 빗물은 개울과 강으로도 흘러내린다. 바탕은 또 다른 새로운 지질 운동으로 넘치며,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자갈과 모래와 흙의 지층에 둘러싸인다. 이렇게 용암은 녹아내리는 금속 덩어리처럼 지구라는 거대한 용광로 한복판에서 솟아 나온다.

산맥 대부분이 용암과 같은 식으로 솟아났다고 할 때, 땅속에서 그 모든 복합 성분이 솟아오른 이유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보통은 지표면이 식으면서 벌어진 수축 작용 때문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태초에 지구는 뜨겁고 거대한 액체 금속 방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차가운 우주 공간을 굴러다니면서 차츰 굳었다. 그런데 지표면만 굳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지구 중심도 굳었을까? 아직 알 수 없다. 화산의 용암이 지구 속을 채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저장소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용암은 땅속의 갈라진 틈으로 솟아난다. 마찬가지로 화강암과 반암 또 기타 비슷한 암석들도 갈라진 지표면을 뚫고 나왔을 것이다. 지구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진물처럼 녹은 암석은 지표의 압력으로 차츰 식어 단단히 굳었을 것이다.

숲과 풀밭


녹아내린 빙설은 여름 내내 계곡과 개울에 물을 불린다. 그러면 산과 아래쪽 드넓은 곳까지 푸른 식물로 뒤덮인다. 산의 품 안에는 숲과 풀밭과 이끼 같은 야생식물이 자랄 만큼 수분이 넉넉하다. 게다가 더 많은 평지 식물을 먹여 살릴 만큼이나 풍부하다. 산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저 푸르지만, 그 속에 엄청나게 다양한 것을 품고 다채로운 대조를 보인다. 높낮이와 바닥의 굴곡과 비탈의 경사, 풍부한 물과 여기저기 쌓인 눈……. 이런 환경에서 식물이 탄생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흰 눈 위로 다시 돋아나는 풀과 잎사귀를 보면 정말 기쁘다. 잔디 줄기는 다시 숨 쉬고 빛을 본다. 처음에는 노르스름하다가 새파란 빛이 보인다. 초원에는 꽃들이 넘쳐난다. 미나리와 풀, 아네모네, 앵초가 다발로 피어난다. 더 멀리 푸른 덤불은 뿌리부터 꽃부리까지 전체가 꽃인 우아한 백수선화 또는 자홍빛 사프란에 덮인다. 개울가에서는 물매화가 세련된 꽃을 피운다. 여기저기 희거나 빨강, 노랑, 파랑의 작은 꽃들이 거대하게 무리 지어 한꺼번에 피어난다. 일찌감치 활짝 펼쳐진 푸른 풀밭에 밀려 백설은 높은 산마루로 쫓겨난다.

나무들도 금세 축제를 벌인다. 산의 맨 아래쪽 기슭에서 겨울눈이 걷히면 몇 주 뒤부터 열매가 또 다른 눈송이처럼 흰 꽃송이에 덮인다. 조금 높은 쪽에서 밤나무, 너도밤나무와 여러 가지 관목이 푸른 잎에 덮인다. 하루가 다르게 산은 벨벳으로 엮어 짠 듯 감탄할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렇게 야금야금 숲과 덤불의 옅은 초록이 산 위로 퍼진다. 마치 골짜기마다 깊은 얼음구덩이를 정복하려고 사다리를 걸치며 진군하는 듯하다. 가장 높은 곳은 뜻밖의 기쁨에 취해 흰 눈 때문에 시커멓게 보이던 바위들이 작고 푸른 풀포기로 울퉁불퉁 치장한다. 즐거운 봄 잔치에는 물도 빠짐없이 동참한다.

비록 꽃과 푸르름은 산 아래쪽보다 못하지만, 높은 쪽의 풀밭은 더 정겹다. 더욱 부드럽고 친근하다. 풀잎은 성가시게 발길에 걸리지 않는다. 무수한 덤불 사이로 피어난 꽃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붉은 별 모양의 끈끈이대나물,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고 파란 물망초, 금빛 암술이 박힌 성상화 꽃들이 쫙 깔린 알프스 산록의 거대한 풀밭 모두 눈부시다. 거친 암벽 틈새의 메마른 비탈에는 바닐라 향을 풍기는 흑란과 꽃이 절대 시들지 않아 변함없는 영원의 상징인 사자발이 자란다.

숲은 산비탈을 따라 풀밭과 교대로 반복된다. 우연한 반복은 아니다. 비탈에는 큰 나무들이 자란다. 그만큼 땅속 깊숙이 두터운 식물층이 있고 물이 넉넉하다. 숲과 풀밭의 교대 덕에 우리는 멀리에서도 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최소한 사람이 나무들을 거칠게 벌목해 산을 황폐하게 만들지 않는지 감시할 수 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모든 나무를 잘라내는 지역에는 나무 밑동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 거침없는 눈사태가 일어난다. 아직 산기슭에 남은 아름다운 숲을 보면 울창하던 숲을 앗아간 난폭한 투기꾼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평야 옆 낮은 산기슭에 자리한 밤나무들은 농부가 짐승들에게 먹이려고 거둬놓은 잎과 겨울 저녁에 먹는 열매 덕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아주 다양한 나무 집단이 뒤섞인 열대지방의 숲도 밤나무만큼 다채로운 모습은 아니다. 밤나무 주변 풀밭에서는 잡초덤불이 자라지 못한다. 덕분에 늘어진 밤나무 가지 사이로 늘 시원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푸른 나뭇가지가 둥근 지붕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흔들리는 잎사귀를 따라 짙은 그림자와 노르스름하고 옅은 광채가 움직인다. 풀밭을 덮은 이끼와 지의류도 덧없는 빛과 그림자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물론 외따로 서 있든, 서너 그루씩 뭉쳐 서 있든 밤나무의 모양 자체는 제각각이다. 거의 모든 나무가 껍질과 가지가 좌우로 비틀린 모양이다. 줄기와 가지가 고르게 뻗은 것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혹이 붙고, 꼬이고, 잎이 뭉치고 기이한 사마귀 같은 것이 돋은 것도 있다. 몸통이 거대한 고목은 폭풍우에 큰 가지들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창처럼 뾰족하고 작은 잔가지들이 붙어 있다. 멀쩡한 나뭇가지가 서로 붙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고목은 속살이 썩어간다. 오랜 세월 나무 몸통에 깊은 굴과 홈이 파였다. 몸통은 사라지고 거대한 가지만 위로 뻗어 그 무게를 견디면서 판자처럼 덜렁 붙어 있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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