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권시진, 오흥권 지음 | 홍익출판사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권시진, 오흥권 지음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0년 7월 / 260쪽 / 15,800원



〈사랑의 기적〉(Awakenings, 1990)


“제가 믿는 건…, 제가 아는 건…, 이 사람들의 내면은 살아 있다는 겁니다.” 1969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 위치한 배인브릿지 병원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기면성 뇌염으로 30년 째 잠자고 있던 환자 래너드가 세이어 박사의 엘-도파 치료로 깨어난 것이다. 일상적인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레너드는 감격에 겨워하는데….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 일상을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다를 바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조차 전혀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코마 상태로 병실 침대에서 수십 년째 잠들어 있는 기면성 뇌염 환자들처럼 말이다.

1969년 여름, 뉴욕 브롱크스에 위치한 배인브릿지 병원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기면성 뇌염으로 30년 동안 살아 있는 동상처럼 무기력하게 잠만 자던 환자 레너드가 깨어난 것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레너드는 담당 의사 세이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또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내가 느끼는 것은 삶의 즐거움, 삶의 선물, 삶의 자유,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반드시 필요한 공기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는 이미 그것을 잃고 난 후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사랑의 기적, Awakenings(1990)>은 주어진 것에 대한 축복과 소중함을 깨닫는 레너드를 통해 우리에게 삶이라는 선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레너드가 앓고 있는 기면성 뇌염은 1910~1920년대 유행한 전염병으로, 점점 무기력해지다가 하루 종일 잠만 자게 되는 기면 상태에 빠지게 되는 병이다. 배인 브릿지 병원에 새로 부임한 세이어 박사는 기면성 뇌염을 앓는 환자들에게 엘-도파 라는 약물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이어 박사는 약물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병원 의료진의 만류에도 11살 때부터 무려 30년을 기면성 뇌염으로 코마 상태에 빠져 있는 레너드에게 엘-도파를 투여한다. 세이어 박사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레너드는 기적적으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레너드에게 세이어 박사가 그의 상태를 설명하며 영화의 영문 제목인 'Awakening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Awakening의 사전적 의미는 ‘자각과 일깨움’이다. 수십 년간 무기력함과 기면 상태에 빠져 있다 깨어난 환자들은 ‘자각’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환자들은 그 이전에도 창밖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음악에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약물을 통해 깨어난 이후 비로소 감각을 감정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깨어난 모든 환자가 레너드처럼 일상의 소중함에 감격하지는 않는다. 몇몇 환자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깨어난 것에 회의감마저 토로한다. 결국 진정으로 ‘깨어난’ 유일한 사람은 깨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자각했던 레너드뿐이었다.

기적을 만드는 힘, 사랑!


기면성 뇌염 환자들을 깨어나게 만든 기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단순히 엘-도파 투여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환자들을 깨어나게 한 직접적인 방법이 약물의 효능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치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세이어 박사가 없었다면 엘-도파는 환자들에게 결코 투여될 수 없었다. 세이어 박사는 아무런 응답 없는 그들에게 유일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기울이며 깨어나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특히 레너드에게 엘-도파를 투여한 후, 그가 깨어나기를 기도하며 극진한 정성으로 보살핀 세이어 박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기적이 일어났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본 영화가 국내에 처음 상영되었을 때, 라는 영화의 원제를 <사랑의 기적>으로 바꾼 것 또한 세이어 박사의 헌신적 행동에 초점을 맞춰 감동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영화의 제목과 달리 끝까지 기적을 지속시키지는 못했지만, 세이어 박사와 간호사들이 보여준 사랑이야말로 짧은 기간이나마 환자들이 깨어날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킨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짧았던 행복


엘-도파는 감각과 감정을 회복시켜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병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 다른 사람과의 온전한 관계 등 ‘진정한 삶’ 그 자체를 회복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또한, 약의 부작용은 레너드의 생활을 병원 내에만 묶어놓았다. 결국 엘-도파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고, 레너드를 포함한 몇몇 환자는 다시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이어 박사는 그를 성심껏 도와온 간호사 엘리너와 함께 레너드가 깨어난 이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며 그녀에게 말하며 슬퍼한다. “엘리너, 당신은 레너드에게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어떻게 삶을 주었다가 다시 빼앗은 나 같은 사람을 친절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때 엘리너는 세이어 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차미 삶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빼앗겨지는 것이지요.”

물론 엘리너의 말처럼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인생을 각기 다른 내용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기면성 뇌염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먹지도 못하고, 배설 조절도 못 하는 레너드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갇힌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레너드는 깨어난 후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맛보게 된다. 레너드에게 깨어 있던 3개월은 환희와 감동으로 가득 찬 30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그 시간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겼고, 가능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가진 것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신을 늘 불행한 존재로 만들 뿐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소한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의미를 찾고자 한 레너드를 통해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영화를 본 모두에게 또 다른 ‘깨어남’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의학 이야기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 루이소체 치매


로빈 윌리엄스는 <사랑의 기적>을 비롯해서 <죽은 시인의 사회>, <어거스트 러쉬>, <굿 윌 헌팅>,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많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과 힐링을 선사한 배우이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의 아내 수잔 슈나이더는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원인이 루이소체 치매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사실 일반인들은 치매와 치매의 원인 질환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많이 들어보았겠지만, 루이소체 치매라는 질환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질환으로 루이소체라는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침착되어 기억, 행동, 운동 등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알츠하이며병, 혈관성 치매 다음으로 치매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아직까지도 완치제는 없다. 루이소체 치매 환자들의 운동장애는 근육이 뻣뻣해지거나 손을 떨거나 동작이 느려지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생생한 환시를 호소하며 렘수면 행동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가장 두려운 병일지도 모르는 인지 기능의 장애는 아직 뚜렷한 원인도 치료법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근래에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병태생리 및 발병기전과 관련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컨테이젼〉(Contagion, 2011) _ 팬데믹, 9년 전 영화가 현실이 되다


홍콩으로 출장을 떠난 베스 엠호프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한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장 앨리스 치버 박사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어스 박사를 발병 지역으로 보내 방역 대책을 세우도록 하지만, 미어스도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또한 앨런 크럼위드 프리랜서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올리면서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는데….

감염병의 기초감염재생산수는 중요하다


2. 4, 8, 16, 32, …, …, 1024 …. 이 숫자들의 나열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부분은 2의 거듭제곱이 떠오를 것이다. 곱셈, 배수, 제곱은 수학의 기본적인 개념인 동시에 지수함수, 로그함수 더 나아가서는 미적분을 배우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시작점이다. 수리 영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러한 개념은 전염병의 영역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기초감염재생산수(RO)는 특정 감염병에 면역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집단에 해당 감염병에 걸린 사람 1명이 유입되었을 때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 수를 의미한다. 즉 감염병 A에 감염된 환자 한 사람이 전파 기간 동안 1명을 감염시키고 회복 혹은 사망하는 경우, 이 감염병의 기초감염재생산수는 1이다. RO가 1이라면 감염자의 숫자가 더 적어지거나 많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RO가 1보다 큰 숫자를 가지게 되면 전염병에 감염되는 환자의 수는 제곱의 법칙에 따라 증가하게 된다. RO가 3이라면 환자의 수는 저나 단계에 따라 3, 9, 27, 81 …로 증가한다. 서두에 언급한 숫자열은 RO가 2인 경우로 볼 수 있는데, 불과 30단계만 진행된다 해도 약 10억 명의 인구()가 감염병에 걸리게 된다. 기초감염재생산수를 파악하는 것은 전염병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부분이다.

9년 전 영화 내용이 현실이 되다


토머스의 아내 베스가 홍콩으로 출장을 다녀오고 난 뒤 그 지역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목숨을 잃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속출하고 사망자 수는 늘어간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질병통제센터에서는 전염병 전문가 미어스 박사를 파견하고,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오랑테스 박사를 홍콩으로 급파해 전염병의 발병 경로를 조사하게 한다. 전염병의 경로 파악과 대응이 이루어지는 사이, 다른 쪽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분석과 백신 개발 시도가 이어진다.

마치 2020년의 현재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 이 내용은 9년 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의 일부다.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1947년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와 함께 영화 <컨테이젼> 또한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영화와 현실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확실히 영화에서 보이는 군상의 일면들은 작금의 사태와 많은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각국의 질병관리센터와 감염병 전문가들은 전염병의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초기 발생환자들을 검사하고, 확산세를 모니터링한다. 1번 환자, 2번 환자, 3번 환자…, 환자들의 동선을 공개하고, 접촉자를 격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서 감염 환자의 수가 거듭제곱 수로 늘어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병상과 의료 물자는 부족하고,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심지어 사망자의 시신 안치도 쉽지 않다.

감염병 환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 공포감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고,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된다. 영화에서 프리랜서 기자인 애런은 음모론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잘못된 정보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개나리꽃이 감염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글을 올리고, 정부가 치료제를 숨기고 있다는 그릇된 정보를 유포한다. 그 사실을 믿은 사람들은 개나리꽃을 사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서고, 급기야 약국을 강탈하기까지 한다. 마트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가정집에는 강도가 침입하고, 결국 도시에선 폭동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2020년 현실은 어떨까?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으로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고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전국 초중고와 대학교의 개학은 거듭 연기되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약들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유언비어가 확산되고, 전 세계 정부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를 축소하여 발표한다는 낭설이 떠돈다. 뉴욕에서는 수용 범위를 넘어선 사망자 발생이 이어져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사망자를 땅에 묻고 있다.

이성과 감정 사이의 줄타기


감염병 확산 초기에 사람들은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한 명 한 명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들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사망자 수가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 환자 개인의 아픔보다는 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숫자(사망자 수)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보다는 몇 명이 죽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적인 관념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더 이상 동정심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정이 아무 소용이 없다면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을 닮을 필요가 있다.- 소설 《페스트》 중에서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페스트》에서 페스트를 추상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는 한편, 이러한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닮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카뮈가 말하는 추상이란 무엇일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슬픔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한 감정에만 매몰되어버린다면 정작 눈앞에 놓인 현실과 싸울 힘을 잃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상황을 추상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감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추상은 이성의 영역이며, 이는 결국 이성과 불가분의 관계인 숫자, 구체적인 수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감정이 없는 이성의 맹목적인 추구, 더 나아가 그저 숫자의 논리에 잠식되는 것은 어딘가 불편하다. 미어스 박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감염병에 대응하지만, 감염되고 만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덮고 있던 점퍼를 추위에 떠는 환자를 위해 내놓는다. 그녀의 헌신과 희생은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처럼 감성은 추상을 보완해주는 요소다.

실제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모습과 감성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겹쳐 나타난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섰다. 마스크의 공급량이 제한되어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선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영화처럼 약국을 강탈하는 등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마스크를 양보하는 흐름도 생겼다.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따뜻한 감성의 실천이다.

이성적인 대응이 더 중요한지 감성적인 대응이 더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든,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숙한 시민 정신을 구현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