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색 인간 - 내면의 균형으로 가는 길
막스 뤼셔 지음 | 오르비스
4색 인간 - 내면의 균형으로 가는 길
막스 뤼셔 지음
오르비스 / 2020년 4월 / 247쪽 / 19,000원
4색 인간
자기실현 이제부터 특별한 네 가지 뤼셔 테스트 색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설명하겠다. 당신도 알다시피 황색, 적색, 청색, 그리고 녹색 이 네 가지 색상으로 조화로운 온전한 색상환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런데 당신이 알고 있거나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는 것처럼, 이 각각의 색상은 바라보기만 해도 당신에게 특정한 느낌을 전해준다.
예를 들어 오렌지 적색은 누구에게나 늘 자극적이고, 흥분을 가져다주며, 활동적으로 만든다. 오렌지 적색은 생기와 강함의 표현이며, 자기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어두운 청색은 깊은 고요함을 선사하는데, 이 색상은 만족감, 질서, 소속감, 보호받는 느낌과 같은 감정들을 대변한다. 성모 마리아의 외투가 대개 청색으로 표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어두운 녹색은 누구에게나 강하고 확고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안정성, 확고함, 자신감을 대변한다. 내적으로 확신이 있고 자신 있는 사람은 확고부동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자존이 바로 가장 중요한 자기감정이다. 이와 달리 밝은 황색은 누구에게나 발랄하고, 가볍고, 개방적이고, 탁 트여 있는 느낌을 선사한다. 이 색상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색상은 자유라는 자기감정을 의미한다.
4색 인간은 네 가지 자기감정 -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이 네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 - 을 토대로 체험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점이 우리를 불행한 대다수의 평균적인 대중과 구분시켜 준다. 정리하면 네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은 다음과 같다.
‘① 자존 - 푸르스름한 녹색 ② 자기신뢰 - 오렌지 적색 ③ 내면의 만족 - 어두운 청색 ④ 내면의 자유 - 밝은 황색’
4색 인간은 이 모든 네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을 통해, 즉 본질적인 전체성을 통해 자기실현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4색 인간은 다른 그 누구보다도 삶을 환상적이고 흥미롭다고 느끼며 행복하게 생각하게 된다.
진정으로 체험되는 삶이란 연인과의 사랑, 우정, 환경에 대한 깨어 있는 자각, 대화,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열띤 논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어진 임무 사이의 갈등과 화해, 예술가와 그의 작품 사이의 치열한 공방, 특히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뜨거운 오감을 통해 완성되는 법인데, 4색 인간은 이러한 삶 속에서 당초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통찰과 체험의 기쁨을 찾아내려고 한다. ‘기쁘고 행복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4색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결코 반복할 수 없는 삶의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다. 그 누구보다 크게 성공했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도 이와 유사한 말을 남겼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성공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4색 인간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켜 나간다. 정신적인 발달을 통해 4색 인간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자기의 친구들을 이해하며 자기의 적을 꿰뚫어 보는 법을 배운다. 한편 종교나 국가가, 또는 편견으로 가득한 과학이나 선동적인 광고가 우리에게 조금씩 주입하고 있는 그런 전통적인 선입견과 파괴적인 미신들은 4색 인간에게서는 설 곳이 없다. 4색 인간은 이런 현혹자들의 조작 동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우며, 아무런 나쁜 영향도 받지 않는다. 또 과도한 황홀경의 상태가 된다거나 하지 않으며 과한 요구사항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의 문제들을 다 풀어냄으로써 내적인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또 외적인 압박으로부터도 최대한 해방된 후에야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
4속성 네 가지 색상이 있다고 한 것은, 우리가 네 가지 원소, 네 가지 기질, 네 개의 방향, 네 개의 계절, 그리고 종교의 네 가지 상징인물, 네 명의 대천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이다. 사물을 이렇게 4 속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그 근거가 충분하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확실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각각에 해당하는 색상도 함께 명기했다.
‘네 가지 원소: ① 불 - 적색에 상응 - 생기 넘치는 활동성 ② 물 - 청색에 상응 - 고요한 민족 ③ 공기 - 황색에 상응 - 명랑한 자유 ④ 흙 - 녹색에 상응 - 진지한 확고부동성’
‘네 가지 기질: ① 다혈질 - 적색에 상응 - 생기 넘치는 활동성 ② 점액질 - 청색에 상응 - 고요한 민족 ③ 담즙질 - 황색에 상응 - 명랑한 자유 ④ 흑담즙질 - 녹색에 상응 - 진지한 확고부동성’
네 가지 각각의 색상은 특정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느낌은 다시 특정한 행동을 만들어낸다. 가장 중요한 행동은, 우리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을 가지도록 힘쓰는 데 있다.
4색 인간의 윤리 당신이 당신의 네 가지 자기감정을 실현하고 균형을 찾는다면, 상대방도 당신을 매우 호감 가는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남들이 힘들어하게 될 일들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에피쿠로스이든 괴테이든, 막스이든 모리츠이든, 이름이 뭐가 됐든 간에 4색 인간에게는 “안 돼”, “하지 마” 같은 도덕률은 도덕적인 영유아를 위한 울타리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4색 인간에게는 이러한 울타리가 필요 없다. 왜냐하면 4색 인간은 학습되어진 이런 의문스러운 도덕률이 아닌,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도덕, 즉 칸트가 말한 ‘내 안의 법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윤리적 근본규범: 우리가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상대방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늘 두 가지의 정상적인 자기감정이 전제가 된다. 아래(pc버전 참고)의 표에는 이 여섯 가지 윤리적 근본규범이 나와 있는데, 이는 자기조절심리학의 여섯 가지 범주에 상응한다. 그리고 각 범주마다 두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수용적’이라는 범주는 관용에 상응한다.
진정한 사랑 : 여섯 가지 윤리적 규범 중에서도 존경으로 가득한 호의는 진정한 사랑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성실, 정의, 그리고 협조적인 책임도 속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도 사랑으로 가득한 관계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당신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당신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이 어려운 문제는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그 사랑은, 당신이 네 가지 자기감정(자존, 자기신뢰, 만족, 그리고 내면의 자유)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는 데에 있다. 즉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란, 정상적인 자기감정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이 사랑을, 이 조화로운 자기감정을 당신의 이웃에게 적용하게 되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성실하고, 정의롭고, 책임감 있고, 관용적이고, 개방적이게 되고, 그럼으로써 당신은 그 사람과 사랑스러운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물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자기가 내키는 대로 걸어가게 놔두면서 자기 자신을 응석받이로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은 잘못된 이정표를 따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명한 통찰에 따라 우리의 삶, 사랑, 좀 더 정확히 말해 사랑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자기실현이라는 주제를 깊이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색 인간의 ‘유형론’ 당연히 4색 인간의 유형이라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4색 인간은 그 어떠한 유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4색 인간은 인간이라는 양산품을 위한 판형이 아니다. 정상적인 이 4색 인간은 내면적인 균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고정된 행동의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 운 좋게도 당신이, 뤼셔 컬러원반의 24가지 유형 중 그 어떠한 유형에도 해당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디에도 분류해 넣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으로 4색 인간과 연관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자기감정은 정상적이고, 과대평가되지도, 과소평가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4색 인간은 네 가지 정상적인 자기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자기 감정은 다음에 나오는 여섯 가지 주요한 자기감정들(자신감이 있다, 독립적이다, 진중하다, 명랑하다, 마음의 부담이 없다, 쾌활하다)과 연결되어 있다. 이 여섯 가지 자기감정은 무엇을 뜻하고, 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자신감이 생길까?: 자신감이 있으려면 자존 외에 자기신뢰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신뢰는 연습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배우고 연습하는 사람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신뢰, 즉 자기신뢰를 갖게 된다. 자기신뢰와 자존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자신감을 위해 꼭 필요하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관철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나는 독립적이 될까?: 독립성,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자주성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내면의 자유와 자존이 그것이다. 자존은 성실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갖고 있다. 자신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합치가 된다. 바로 거기에 자존이 있다. 자주성을 위한 두 번째 전제조건은 내면의 자유이다.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독립적이다. 자기가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성실하다. 이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 이들의 기본원칙은 바로 “옳은 것을 행하고 아무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진중해질까?: 진중함은 자존 외에 내면의 고요함과 만족도 전제로 한다. 뭔가를 진중하게 행하는 사람은 “좋은 일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는 뭔가가 성장하도록 놔두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진중한 사람은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로써 그는 질서를 찾아내고, 그 질서에 따라서 정돈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가치를 계승해주는 전통도 존중한다. 이와 달리 피상적인 사람은 전통을 비웃거나 파괴한다.
어떻게 하면 나는 명랑해질까?: 명랑한 사람들은 방종하지 않다. 다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즐거워한다. 이들은 내적으로 자유롭고 또 자기신뢰로 인해 스스로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명랑하다. 가볍고 명랑하게 느낄 수 있으려면 개방성과 자기신뢰가 필요하다. 자기신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때에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무엇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자 하는지를 배우고 연습해야만 한다. 한편 자기신뢰의 힘을 느끼고 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사람은 개방적이다. 개방적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않을까?: 스트레스에 내몰리게 되면, 어떤 사람은 과한 성과를 냄으로써 더 많은 성공과 이익을 가져가려는 중독 증상을, 또 어떤 사람은 위신과 인정에 대한 갈망을 보인다. 또한 둘 다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자기노예화의 취미가 전혀 없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기과시용밖에 되지 않는 무의미한 노력들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만족이다. 한편 내면의 자유는 4색 인간이 예민한 직관을 갖도록 해주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직관은 올바른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직관적인 감정이입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이 사람은 사람을 잘 알아주게 되고, 적대적인 관계나 분노도 덜 산다. 개방적이고 만족하는 사람은 관대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나는 쾌활하게 될까?: 편안하고 쾌활한 느낌이 되려면, 만족과 자기신뢰가 필요하다. 자신의 과제에 대해 스스로 성숙해 있다고 느끼고 또 그 과정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쾌활하게 느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호의적이 된다. 이런 사람은 시기란 것을 알지 못하며, 질투하지도 않는다.
4색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에 관해서는 딱 한 가지만 말할 수 있다. 4색 인간의 행동은 당신도 알고 있는 윤리적 근본규범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색상
색상의 객관적, 정신적 작용 오늘날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수행된 수십만 가지 종류의 색채연구들을 통해 특정 색들이 그들이 어떤 문화권에 속해 있는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인지적 자극 뿐 아니라 정확히 동일한 감각적 자극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색채심리학의 객관적 일반성이 나타난다. 이때 색채 인지가 객관적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감각인 반면, 사람들이 그 의미에서 느끼는 호감이나 불쾌감 여부, 즉 색채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 감정이란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처럼 객관적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느낌과 특수한 네 가지 뤼셔 기본 색상들이 갖는 의미이다. 황색이나 오렌지 적색 같은 밝은 색채는 팽창적이고, 발산적이며, 따라서 불안정하게 작용한다. 어두운 청색이나 푸르스름한 녹색은 수렴적이며, 따라서 불변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밝은 색상은 활동적이거나 따뜻하고, 어두운 색상은 수동적이거나 차갑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피하고자 한다. 따뜻함과 차가움은 촉각적 성질을 나타낸다. 이는 시각적인 색채의 작용에 대한 정의도 아니고, 심리학적인 진술도 아니다. 게다가 ‘활동적-수동적’이라는 개념이 일의적으로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수동적’이라는 말은 ‘평온한’ 상태뿐 아니라 ‘비참여적’, ‘부동(不動)의’, ‘게으른’, ‘참을성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적색과 푸르스름한 녹색의 밝기는 중간 정도이므로 이들 색상은 밝은 황색과 어두운 청색의 사이에 위치한다. 이 색상들은 명확하고, 따라서 고정적이다. 이들 색상에 해당하는 정신적 범주는 ‘지시적’ 속성이다. 가장 밝은 색상인 황색은 밝음 속에 녹아드는 것처럼 보인다. 황색은 정처 없고, 불확실하다. 어두운 청색은 암흑 속에 녹아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불확실하고, 정처 없다. 이들 색상에 해당하는 정신적 범주는 ‘수용적’ 속성이다. 이처럼 건조하고 추상적인 색상에 대한 정의는 아마도 당신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체험에 의해 보다 더 잘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감정에서, 흥분(적색)이든, 평온(청색)이든, 언제나 쾌(快)와 호(好) 혹은 불쾌와 불호라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관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구분한다면, ‘색채심리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혼돈에 쉽게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쾌와 호로서의 적색은 사랑, 욕망, 강점을 뜻한다. 불쾌로서의 적색은 분노, 혐오, 지나친 자극, 약점을 뜻한다.
색상은 특정한 감각들을 발생시킨다. 눈으로 들어온 색채 자극은 생리적 신경시스템을 통해 간뇌로 전달되기 때문에, 이러한 감각들은 확실히 간뇌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뇌의 다양한 영역이 신경시스템과 뇌하수체를 조절하는데, 이러한 반응은 장기들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동물 역시 동일한 육체적 과정을 통해 색채에 반응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알제리의 연구자 브누아는 수컷 오리의 눈을 검은 끈으로 가린 채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수컷 오리들의 생식 활동이 마비되었다. 다음으로 그는 수컷 오리를 120시간 동안 오렌지 적색 조명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수컷 오리들의 고환 크기가 거의 두 배로 커졌으며, 생식 활동 역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