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 문예춘추사
털 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 343쪽 / 18,000원
기원(ORIGINS) - 놀랄 만큼 강렬하고 극적인 진화
인간은 왜 털을 벗어야만 했을까인간의 여러 해부학적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인간이 일종의 영장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종류의 영장류이다. 192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의 가족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인간의 피부를 어딘가 적당한 위치에 끼워 넣으려고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괴상한 영장류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에 집어넣어도 인간의 피부는 잘못 놓인 것처럼 동떨어져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피부를 그 줄의 맨 끝에,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꼬리 없는 유인원의 가죽 옆에 놓을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 놓아도 인간의 피부는 두드러지게 다르다. 그 피부가 사실상 털이 없는 벌거숭이라는 점이다. 머리와 겨드랑이와 생식기 주변에 눈길을 끄는 이채로운 털이 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의 피부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하면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더 이상 조사할 필요도 없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종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털 없는 원숭이’는 단순한 관찰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묘사적인 호칭이며, 주제넘은 가정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균형감각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가 속해 있는 영장류는 원래 원시적인 식충류(食蟲類)에서 생겨났다. 이 초기의 포유류는 안전한 숲속을 성급하게 뛰어다니는 조그맣고 하찮은 동물이었고, 동물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거대한 파충류였다. 그런데 8000만~5000만 년 전에 파충류 시대가 무너진 뒤, 곤충을 잡아먹는 이 작은 동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영토로 과감하게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곳에 널리 흩어져 수많은 이상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일부는 초식동물이 되어, 몸을 지키기 위해 땅 밑에 굴을 파거나 적으로부터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기다란 다리를 갖게 되었다.
한편 숲속에서는 아직도 작은 동물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진보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곤충만 먹던 식충류는 먹이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하여 과일과 견과류, 딸기류, 식물의 싹과 나뭇잎을 소화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들이 가장 열등한 형태의 영장류로 진화하자, 눈이 얼굴 앞쪽으로 나오면서 시력이 좋아졌고, 두 손은 먹이를 잡는 도구로 발전했다. 3차원적인 시야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팔다리를 갖게 된 이 동물은 두뇌가 커지면서 숲속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3500만~2500만 년 전에 이 조상 원숭이는 어느덧 진짜 원숭이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몸의 균형을 잡는 기다란 꼬리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몸의 크기도 상당히 커지고 있었다. 일부는 나뭇잎만 전문으로 먹는 초식동물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먹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을 유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원숭이 비슷한 동물들 가운데 일부는 몸이 더 커지고 무거워졌는데, 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대신, 두 손으로 번갈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자 꼬리는 쓸모가 없어졌다. 몸이 커졌기 때문에 숲속에서 움직이기가 훨씬 거추장스러워졌지만, 땅 위를 돌아다니는 육식동물들의 공격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단계 - 유인원 단계 - 에서도, 나무와 풀이 우거져 안락하고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숲은 그들에게는 에덴동산이었다. 그들은 숲에 머물면서 과일을 따 먹고 조용히 자기 일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약 1500만 년 전에는 그들의 본거지인 숲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조상 유인원들은 비좁아진 숲속의 요새를 고수하든가, 아니면『성서』에도 쓰여 있듯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감수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침팬지와 고릴라, 긴팔원숭이, 오랑우탄의 조상들은 숲속에 남았고, 그때부터 그들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 이외에 살아남은 유일한 유인원 - 털 없는 원숭이 - 의 조상들은 숲을 떠나, 이미 오래전부터 땅 위에서의 삶에 효율적으로 적응한 동물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성공적인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모험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숲을 떠난 원숭이의 성공담털 없는 원숭이가 숲을 떠난 뒤부터 이룩한 성공담은 잘 알려져 있다.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 우리 조상들의 앞날은 암담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생존해온 육식동물보다 더 뛰어난 육식동물이 되거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생존해온 초식동물보다 더 뛰어난 초식동물이 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육식동물로도 성공했고 초식동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농업은 고작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을 뿐이고, 우리는 지금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론 육식동물 세계의 살상 전문가들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강렬하고 극적인 일련의 진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털 없는 원숭이의 조상들이 걸어온 역사 가운데 마지막 100만 년에 해당한다. 지상으로 내려온 조상 유인원들은 이미 크고 발달한 두뇌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영장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사회조직도 갖고 있었다. 사냥감을 잡는 솜씨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똑바로 서게 되었고, 그 결과 더 빨리 더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동할 때 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의무에서 해방된 손에 무기를 든 그들은 강하고 효율적인 무기 사용자가 되었다. 그들의 두뇌는 한층 더 복잡해졌고, 그 결과 그들은 보다 영리한 결정을 보다 신속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타고난 무기 대신 인공 무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채택했고, 그것은 멋진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단계는 연장을 사용하는 동물에서 연장을 만드는 동물로 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발전과 더불어, 무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이라는 측면에서도 사냥 기술이 향상되었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떼를 지어 사냥하는 집단 사냥꾼이었고, 살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도 발달했다. 늑대들은 떼를 지어 살지만, 다른 무리와는 교류가 없다. 그러나 사냥하는 원숭이는 이미 늑대보다 훨씬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집단끼리 의사를 소통하고 협동하는 문제에도 머리를 쓸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복잡한 작전이 개발되었고, 그에 따라 두뇌도 계속 발달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컷의 사냥 집단이었다. 암컷은 새끼를 키우느라 바쁜 나머지 사냥감을 추적하여 잡는 일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가 없었다. 사냥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냥 기간도 길어지자, 사냥하는 원숭이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조상들의 생활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컷이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수 있는 곳, 암컷과 새끼들이 수컷을 기다리고 먹이를 분배할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일종의 기지가 필요해졌다. 이리하여 사냥하는 원숭이는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다. 이것은 짝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방식과 사회 유형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 먹던 옛날의 생활방식은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정말로 에덴동산을 떠난 것이다. 그는 책임을 가진 원숭이였다. 그는 선사시대의 세탁기와 냉장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가정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 - 불, 식량 창고, 인공적인 피난처 - 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서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정리하면 숲속의 원숭이는 땅 위로 내려와 지상 원숭이가 되었고, 지상 원숭이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었으며, 사냥꾼 원숭이는 영역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고, 이 원숭이는 다시 문화적 원숭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잠시 행진을 멈추어야 한다.
사냥하는 원숭이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무엇 때문에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 없는 원숭이가 되어야 했을까? 이에 대해 오랫동안 수많은 상상적 이론이 제시되었다. 가장 그럴듯한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유태보존 작용의 일부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유태보존 이론은 벌거숭이 상태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이다. 벌거숭이 상태가 새로운 특징으로서 갖는 가치, 즉 숲에서 나온 우리 조상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벌거숭이 상태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이 털가죽을 벗어던진 것은 불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사냥하는 원숭이는 밤에만 추위를 느꼈을 테고, 일단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는 사치를 누리게 되자 털가죽이 없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낮의 더위를 견디기에 더 좋은 벌거숭이 상태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더 독창적인 이론도 있다. 숲을 떠나 지상으로 내려온 최초의 원숭이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기 전에 오랫동안 물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의 몸이 유선형인 이유와 직립 자세까지도 설명해준다. 직립 자세는 우리가 점점 더 깊은 물을 걸어서 건너는 동안 발달했으리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수생이론은 우리의 과거를 재구성할 때 매우 중요한 잃어버린 고리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하여, 전통적인 화석 수집가들을 자극한다. 그리고 약 100만 년 전에 아프리카 해안이었던 지방을 조금만 찾아보면 그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럴듯한 정보를 고고학자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일은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생이론은 가장 그럴듯한 간접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지만 확고한 뒷받침이 부족하다.
벌거숭이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이론들이런 이론들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주장도 제기되었다. 인간이 털을 잃어버린 것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추세였다는 주장이다. 즉 벌거숭이 상태는 물리적인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냥하는 원숭이의 몸에서 털이 사라진 것은 그들이 신분증명서로 삼기 위해 제멋대로 선택한 특징일 뿐이라고 이 이론은 주장한다. 이것과 같은 계통에 속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인간이 털을 잃어버린 것을 성적인 신호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이 이론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포유류의 경우 수컷이 대체로 암컷보다 털이 많다는 점을 내세워, 털 없는 원숭이의 암컷은 이러한 차이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수컷에 대하여 보다 많은 성적 매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털 없는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털코트를 벗었다는 주장이다. 그늘진 숲에서 나오자, 사냥하는 원숭이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뜨거운 기온에 노출되었다. 그는 몸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털코트를 벗었다. 얼핏 보기에는 이것도 충분히 이치에 맞는 주장이다. 우리도 더운 여름날에는 재킷을 벗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면밀히 조사해보면 이 이론은 금방 무너진다. 우선, 탁 트인 들판에 사는 다른 동물들 가운데 이런 조치를 취한 동물은 하나도 없다. 또 다른 설명이 있는데, 이것은 털 없는 상태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좋은 해답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사냥감을 추격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체온은 상당히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과열상태를 줄여야 할 필요성은 절박했고, 아무리 사소한 개선이라도 바람직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상당한 희생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체온을 내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존은 바로 거기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털을 갖고 있던 사냥하는 원숭이가 털 없는 원숭이로 바뀌는 데 작용한 커다란 요인이다. 유태보존이 그 과정을 도와주었고, 앞에서 언급한 부차적인 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두꺼운 털코트를 벗어던지고 몸의 표면에 뚫린 땀구멍의 수를 늘림으로써, 그는 체온을 상당히 식힐 수 있었다. 물론 날씨가 너무 뜨거우면 노출된 피부가 상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적당히 더운 환경에서는 이런 방법이 바람직하다.
털이 사라지면서 피하지방층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피하지방층이 발달한 것은 털을 벗은 효과를 없애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피하지방층은 체온이 너무 뜨거워졌을 때는 땀의 증발을 방해하지 않고 추울 때는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냥이 그들의 새로운 생활방식에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털이 줄어든 대신 땀구멍과 피하지방층이 늘어난 것은 부지런한 우리 조상들에게는 꼭 필요한 변화였던 것 같다. 이쯤에서 그의 과거를 떠나, 털 없는 원숭이가 오늘날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짝짓기(SEX) - 강력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성애
우리 인류의 성적 행동은 세 가지 독특한 단계를 거친다. 짝짓기 단계와 성교 이전 단계, 그리고 성교하는 단계가 그것인데, 대개는 이 순서대로 이루어지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적 행동은 다른 영장류의 성적 행동과 어떻게 다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 인간의 성행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을 포함한 어떤 영장류보다도 훨씬 격렬하다. 다른 영장류들에게는 지루한 구애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원숭이나 유인원 가운데 한 쌍의 암수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를 맺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교 이전 단계는 아주 짧고, 이 단계에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대개 몇 가지의 얼굴 표정과 간단한 발성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성교 자체도 아주 짧다.
그리고 원숭이나 유인원 암컷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인간 여자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발정기는 대개 한 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것도 하등 포유류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영장류의 경향이 극한까지 진행되어, 인간 여자는 사실상 언제라도 남자의 페니스를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털 없는 원숭이는 분명히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인 동물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털 없는 원숭이의 기원을 다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생존하기 위해서 사냥을 해야 했다. 둘째, 그는 사냥꾼으로서는 열등한 몸을 벌충하기 위해 보다 우수한 두뇌를 가져야만 했다. 셋째, 두뇌를 더 크게 키우고 그 두뇌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을 더 연장해야만 했다. 넷째, 암컷은 수컷이 사냥하러 나가 있는 동안 집에 남아서 새끼를 키워야 했다. 다섯째, 수컷들은 사냥할 때 서로 협력해야만 했다. 여섯째,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똑바로 서서 손에 무기를 들어야 했다. 그런 변화들은 모두 동시에 서서히 일어났을 게 틀림없고, 각 변화가 다른 변화를 도와주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특성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 인간의 복잡한 성적 행동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털 없는 원숭이의 수컷은 암컷을 놓아두고 사냥하러 떠날 때, 암컷이 그에게 정절을 지키리라고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암컷은 한 마리의 수컷하고만 짝을 짓는 경향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냥할 때 힘이 약한 수컷의 협력을 얻으려면, 그런 수컷에게도 일정한 성적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수컷들은 암컷들을 더욱 균등하게 나누어 가져야 했을 테고, 성적인 조직체는 보다 민주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제적인 면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수컷도 역시 한 마리의 암컷하고만 짝을 짓는 강력한 성향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수컷들은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은 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이것도 역시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천천히 성장하는 새끼 때문에 부모의 부담이 훨씬 무거워졌는데, 수컷은 아버지다운 행동을 개발해야 했고, 암컷과 더불어 부모의 의무를 분담해야 했다. 이것도 강력한 한 쌍의 암수관계를 맺어야 할 또 하나의 좋은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