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 마음에 상처를 줬을까
재닌 믹, 잔드라 테믈-예터 지음 | 로그인
왜 아이 마음에 상처를 줬을까
재닌 믹, 잔드라 테믈-예터 지음
로그인 / 2020년 6월 / 262쪽 / 14,000원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가?
나는 왜 내 감정과 싸우는가? 상냥하게 부탁했음에도 아이가 당신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이는 남의 부탁에 “예” 아니면 “아니오”로 응답하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며, 이때는 ‘아니오’를 선택한 셈이다. 반면에 당신은 부탁을 가장한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쓴 약은 설탕을 섞어도 쓴 법이라 아이는 삼키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기대하는 당신의 태도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 주어 자리에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입해 보라.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화가 난다.’ 당신에게는 친구에게 복종을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아니다. 그러면 아이에게는 어째서 그런 강요를 하는 것인가? 이제는 아이 스스로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방식을 수정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소리 지르기와 감정 억누르기의 공통점 부모가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자기감정을 억누르거나 타인에게 분출하지 않고 그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법을 배울 시점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자기 자신과 욕구, 관념, 생각을 표현할 줄 알고 자녀 또한 잘 이끄는 성숙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자녀와의 관계, 자신의 감정, 그리고 감정에 대처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어른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미국의 무용가 가브리엘 로스(Gabrielle Roth)는 수많은 엄마들이 감정 조절과 관련해 성취해야 할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의 감정적 반응이 가진 충동성과 순수함을 갖추되 아이들처럼 감정의 폭풍에 휩쓸리지는 않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우리의 바람을 ‘제2의 천진난만함’, 다시 말해 지혜와 경험이라는 양분이 가미된 신선한 반응과 충동성으로 표현한다. 이에 다다르려면 감정을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하며, 그것을 잘 알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당신의 삶으로 흘러들게 하라. 진정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우리의 완전성을 해치는 것에 분노하며, 우리를 상처 주는 것으로 인해 울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미소 지을 수 있도록, 그리고 타인의 참된 욕구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진정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는 감정적 에너지다. 이것은 감정 전체를 형성하며, 각각의 감정들은 이제 그에 걸맞은 솔직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이는 어른이 된 아이다.”
부모가 스스로를 돌보고,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어 애정과 존중이 담긴 관계를 맺으며,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수시로 성찰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드라마’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 바람, 필요를 누군가 알아주고 수용하고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창한 무대나 쇼 없이도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 보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최대한 협동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그중 성인들이 자신과 타인들을 인지하고 존중해 준다는 점도 이에 기여한다. 가족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관계란 저절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사랑 받기 위해 감춰둔 나의 진짜 모습 어린 시절의 당신에게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분노, 좌절, 슬픔 같은 감정들을 감춘다. 혹은 당신이 중요하기는커녕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부담만 된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그에 맞추며, 이러한 순응이 당신의 인격과 행동방식을 빚어낸다. ‘사랑 받기 위해’ 자기 자신과 진짜 자아를 꺾어 버리는 것이다. 사랑받기 위한 순응은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와 똑같은 뇌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즉 당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된 뒤 자녀들이 당신 내면의 이 지점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오랜 세월 묻혀 두었던 감정들을 끄집어낸다. 이 순간 당신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가 단호한 눈빛으로 팔짱을 낀 채 정확히 자신이 원하거나 원치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었던 부분을 희생시키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방식은 자녀와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당신이 수치심 혹은 또다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내면 깊숙이 은폐해 버린 것을 간파하거나 짐작하거나 인지한다. 아이들은 당신의 진짜 모습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당신 내면에 무언가가 ‘배제’되어 있다는 것도 감지한다. 모든 감정을 아이 앞에서 분출해서는 안 되겠지만 은폐된 상자를 마냥 묻어 두는 것도 옳은 행동은 아니다.
아이의 감정과 마주하는 법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른들이 스스로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확신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부모와 자녀 관계를 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어른의 것과는 또 다른 능력과 지식을 가졌다는 의미다. 부모는 그저 더 오래 인생을 살아오며 더 많은 경험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무릇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둥 번번이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아이들이 모방을 통해 행동을 배운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미 ‘완성된 영혼’을 지닌 인간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존재와의 관계를 가꾸고, 그에 관해 알아가며, 연륜을 갖춘 안내자로서 삶의 여정에 동행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부모라고 해서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부모 또한 끊임없이 배우는 중이라는 겸손한 마음가짐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당신 안의 분노가 솟구칠 때
90초, 분노가 몸에서 빠져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분노나 슬픔, 실망을 맛보았을 때 아이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대부분은 울며 소리를 지를 것이다. 몸부림을 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물고 차고 때릴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들 때 대부분의 성인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지만, 사실 몸속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이 모든 작용이 고작 90초 안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뇌 안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분노가 당신의 몸을 타고 흐르다가 마침내 몸 전체를 흠뻑 적시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90초라는 말이다. 그러고 나면 자동 신체 반응은 끝이 난다. 당신은 이 90초 동안 감정의 파도를 타면서 분노에 대응하고 그것을 조절해야 한다.
미국의 신경학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는 『긍정의 뇌My stroke of Insight』에서 이에 관해 묘사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90초가 지난 뒤에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 이 상태를 계속해서 순환시키도록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나는 이 순환 고리를 계속 붙들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현재로 되돌아감으로써 이 반응을 끝낼 것인가를 매순간 결정할 수 있다.” 이때 완벽주의는 역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당신이 또다시 ‘실패’했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수치심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기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전보다 조금 더 ‘나은’ 반응을 보이는 일이다. ? 아이의 몸을 움켜잡는 대신 안락의자나 소파의 쿠션 움켜잡기. ? 아이가 아닌 벽에 대고 소리 지르기. ? 방에서 뛰쳐나가는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 위기에 처했을 때 지금껏 극단적으로 행동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한걸음씩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라. 매번 아주 조금씩만이라도 말이다. 성찰하라. 실패하라. 성찰하라. 성장하라. 그리고 의도와 다르게 행동했다면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사과하라.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스스로 평정 되찾기: 혼자 있을 때 다시금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몇 가지 소개한다. ?고무 밴드-손목에 고무 밴드를 끼고 있다가 스트레스가 닥쳤을 때 줄을 튕겨 보라. 뇌는 심리적 고통보다 육체적 고통을 앞세우기 때문에 이것이 당신을 현실로 되돌려줄 수 있다. ? 흔들고 두드리고 뜀뛰기 ? 육체노동 ? ‘스톱’외치기 ? 미소 ? 물-적당히 따뜻한 물로 손을 씻거나 커다란 잔에 물을 가득 따라 천천히 마셔라. 이 과정에서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 된다. ? 춤추기
아이와의 대화, 이게 바로 나야. 넌 누구니?
어떻게 하지? vs.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아이와의 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데 관심이 있다면 기존의 구조와 경직된 방식들을 타파할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옛것이 안전한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다. 맞지 않는 신발과도 같은 것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보다는 자신과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어라. 모든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모두가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비교하다 보면 비슷한 점이 눈에 띌 수도 있으나 완벽히 똑같은 관계란 단 하나도 없다. 엄마이자 여성, 배우자, 직업인으로서 당신이 거듭해서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지?”가 아닌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어보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Stop doing, start being!’이라는 관념을 발판 삼아 과연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고민해보라. 그런 다음 스스로 결정을 내려라. 최선을 다하되 당신의 결정이 항상 아이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라.
두려움과 사랑, 무엇이 당신을 이끄는가?
두려움의 정체 무언가를 하도록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두려움이라는 말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두려움이라고? 에이, 내게는 두려움 따위는 없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개념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두려움이란 당신이 체험하거나 경험하거나 느끼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이다. 상실감, 굴욕, 비하, 분개, 격노, 분노, 근심 모두 두려움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당신이 지금 청소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오랜만에 집 안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데 주방에 가 보니 불과 몇 분 사이에 아이가 그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방에 밀가루와 물이 뒤섞인,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이는 그 한가운데서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 상황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때 당신이 첫 번째로 할 일은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감정의 파도를 타라. 몸이 에너지를 견뎌내느라 힘들겠지만 1~2분만 버텨라. 그러고 나면 끝이다. 더해봐야 향후 사흘쯤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 난장판이 된 주방에 관해 하소연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 뒤에는 정말로 끝난다. 이렇듯 감정이 솟구칠 때는 그에 맞서기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라. 어떤 결정을 앞두고 누군가에게 화가 치밀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사랑이 사람이라면 지금 어떻게 행동할까?”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라.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된다.
이중메시지 이중 메시지 또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은 의사소통의 덫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밖에 나가 흙을 가지고 놀아라”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아이는 몸을 더렵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 어떻게 해도 잘못인 것이다. 엄마가 아이와 이처럼 모순적으로 소통할 경우 아이는 진퇴양난에 빠지고 내적인 스트레스와 혼란, 불안에 사로잡힌다. 친밀한 애착 대상이 지속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 경우 아이는 병들고 만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마라 특정한 일을 시도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결과를 상상하면서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종종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업가이자 작가인 팀 페리스는 두려움을 친구이자 척도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두려움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일들을 보여주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인생의 목표로 삼는 최고의 결과물, 즐거운 순간들은 모두 ‘최악의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두려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당신에게 주어진 분석적 틀과 능력을 이용해 해묵은 두려움에 접근해보라. 그것을 당신의 꿈에 적용해 보라.” 더 이상 두려움을 떨쳐내려 애쓰지 마라. 두려움을 두려워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인가? 당신이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언제 두려움에 휘둘리는지 자녀도 모두 지켜보고 있다. 이 역시 아이를 키우는 본보기가 된다.
관용의 창을 넓혀간다는 것
관용의 창 당신이 즐겨 앉는 편안한 소파가 있다. 그리고 소파와 마주 보는 벽에 창 하나가 나 있다. 밖을 내다보는 당신의 몸에 따뜻한 볕이 내리쬔다. 밖으로는 해변이 보이고 파도소리가 솨솨 들려오며 당신은 청명한 하늘을 음미한다. 공기에 옅은 소금기가 묻어나 당신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미소를 짓는다.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개개인이 상상하는 여유로운 순간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이 바로 관용의 창, 정확히 말해 ‘스트레스 관용’의 창이다. 그 안에는 휴가를 즐기는 것과 같은 감정과 장면이 들어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다시금 숨 쉴 수 있다. 긴장이 풀어져 있되 졸리지 않으며, 깨어 있되 두렵지 않다. 당신의 기분 상태가 이 상상 속 장면과 들어맞는다면 당신은 창문의 안, 다시 말해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순조롭다. 관용의 창은 사람마다 크기가 제각각이다. 삶이 흐르는 동안 어떤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크기가 변하기도 한다. 대체로 느긋하고 난관에 대처할 수 있는 제법 큰 창을 가졌다 해도 갑작스레 등장한 짐들이 이 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창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탓이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모든 감정이 허용될 때, 다시 말해 감정이 들어설 여지를 충분히 주고 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줄 때 비로소 아이들은 그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아이는 다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어른은 그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보이면 애착 대상의 말과 아이가 느끼는 감정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이 모순을 감지한 아이는 ‘내 느낌이 잘못된 건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부정당한 아이는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된 뒤 자신의 자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이가 처한 위기에 동반자가 되어 주거나 곁을 지켜줄 수 없으며, 표출된 감정을 참아내며 애정 어린 태도로 아이를 받아줄 수도 없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전뇌가 오작동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징후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그러면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사정을 이해할 테니 당신은 늘 자동으로 나오던 행동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리 지르고, 달아나고, 비난하고, 발을 구르고, 차고, 울고, 주저앉고, 날뛰어도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징후는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이르면 스스로 ‘스톱!’을 외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때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 한층 더 도움이 된다. 당신은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가? 혹은 “나는 화가 났다!”라고 의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후자의 경우라면 당신은 분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아이의 감정 조절을 도와주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감정적으로 최대한 안전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