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김용운 지음 | 맥스미디어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김용운 지음
맥스미디어 / 2020년 5월 / 380쪽 / 20,000원
이성은 어떤 과정으로 정립되어 왔나?
이성(logos)이란 무엇일까?
동서양의 이성은 왜 다르게 발달했나?: 이성을 처음 의식한 그리스인들은 이성에 로고스라는 말을 붙였는데, 로고스는 논리, 언어, 사고 등을 뜻한다. 문화도 로고스에서 발생했다. Y. 하라리는 약 7만 년 전에 발생한 ‘인지혁명’이 인류가 겪은 최초의 이성혁명이었다고 규정했다. 인지혁명은 유연하게 이루어져 사물에 대한 정보 전달뿐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정보까지 알게 해 주었다.
[추상화로 이성의 싹을 틔우다 / 한 사회의 지적 분위기가 곧 문명이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문화 영웅인 복희와 여와는 각각 자와 컴퍼스를 손에 들고 있다. 그리스의 유클리드도 컴퍼스로 기하의 초석을 놓았다. 이런 상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문명이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두 기하학을 중심으로 문명을 이루었음을 뜻한다. 한편 십진법은 인간이 10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어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은 가까이 있는 것을 이용해 사고의 틀을 구성한다. 10을 한 묶음으로 10, 100, 1000으로 단위를 올리는 10진법은 거의 모든 인간 집단의 일반적인 수 형식이다.
[이성관의 차이가 동서양 문명의 차이를 만들다] 진리 추구의 의욕은 동서양 모두에 있었다. 10진법의 수 체계와 자, 컴퍼스로 상징되는 기하는 여러 문명권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해 이성의 싹이 되고 인류의 지적 보배가 되었다. 이성의 출발점이 같았다는 사실은 이성의 보편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대 과학은 아쉽게도 동양이 아닌 서양, 정확히 말해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직선과 원’ 그리고 간단한 ‘손가락 셈’ 등 문명의 시작에서는 동서양이 같았으나, 동양의 수학은 산수 수준에 그쳤고, 자동차, 비행기 등 대부분의 중요한 발명들은 서양에서 나왔다.
그럼 동서양의 문명이 왜 다르게 발달했을까? ‘이성관’의 차이 때문이다. 지적 욕구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양이 동양을 앞지른 직접적인 계기는 ‘화약, 나침반, 인쇄술’을 보다 실질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발명은 동양이 먼저 했지만 화약은 불꽃놀이에, 나침반은 풍수지리에만 썼다. 한국인은 주로 불교서적이나 유교 경전(주자학) 등을 찍어 내는 데만 인쇄술을 이용했다. 한국의 금속 활자 인쇄술이 구텐베르크보다 앞섰지만, 이에 대한 문화적 요청이 따라 주지 않았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토정비결』이 베스트셀러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가 샤머니즘에 빠져 있을 때 서양은 화약을 무기화하여 전쟁에 이용했고, 나침반으로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인쇄술로는 『성경』을 찍어 기독교의 대중화를 촉진했고, 종교 개혁을 이루었으며, 계몽시대를 유발했다.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인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도 출판했다. 특히 『기하학 원론』의 보급은 과학혁명의 밑뿌리 역할을 했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문명의 단계는 그 사회의 지적 분위기의 수준과 연결되어 결정되고, 한 나라의 수학 수준도 해당 인종의 소질보다는 해당 사회의 요청과 문화적 요인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학적 내지는 인류학적인 카테고리이다. 현대 수학도 비록 고유한 체계를 가진 독립된 과학이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적인 발상이 함께 가야 한다.
이성은 학문의 융합에서 형성되고 발달한다: [이성은 생각이다] 이성은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즉, 충동이나 감각적 욕구에 따르지 않고 사색의 결과에 기초해 스스로의 행위를 규정하는 능력이다. 요컨대 불가분의 대상도 위치를 바꾸어 관찰해 보고, 알고 있는 사실도 전체와의 관계에서 조명해 보는 능력이다. 한편 논증적 이성은 대상에 대한 즉물(卽物)적 인식을 피한다. 편견을 피하고 본질적인 요소를 확인하여 이들 관계에 대해 가능한 데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직관적 이성은 개별적이 아닌 통합적 시각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것으로, 기존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이성주의적 사고는 ‘분석과 종합’ 중심으로 이루어져 근대 이성사의 막을 열었다. 수학과 철학에서 다듬어진 지혜였다. 수학은 비교, 분석과 종합을 수단으로 하고, 철학은 그 내용의 진위를 검토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당면한 정치ㆍ외교적 위기는 근원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이성 결핍’에 있다. 조선 5백 년을 주자학 하나로 유지했지만, 결말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식민지 국가로 마감했고, 해방 이후는 일본식 철학의 토대에 미국식을 가미했을 뿐이다. 한국적 이성 철학 형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고, 철학이 없으니 성찰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툭하면 삭발 경쟁이 되고, 진보와 보수가 데모 참가자 수를 과시하며 이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하는 광장정치로 달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 군중 심리에 좌우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휩쓸리면 이성 대신 어리석음이 앞선다. 그 때문에 이런 중우정치의 현실을 이제 이성사의 관점에서 분석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동시에, 지도자의 이성 형성 과정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이 이성적인 정치 지도자를 ‘철인왕’으로 여긴 것도 통치 권력은 철학적 이성을 갖춰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수학과 문명사, 역사를 연구하면서 필자는 공동체 문화가 각각 ‘자기 닮음’ 즉, 일정한 패턴을 갖고 되풀이되어 온 것임을 감지했다. 그 패턴은 공동체의 집합적 무의식 속에서 형성되어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다. 어느 개인도 똑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같은 원형과 문화를 가진 두 공동체는 없다.
[이분법적 사고와 이과와 문과의 구별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 이성은 학문으로 다듬어진다. 필자는 수학과 철학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진실한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해 왔다. 한편 한국 교육 정책의 최대 약점은 국가의 미래를 포괄하지 않은 진로(출세) 교육과 시험 제도에 있다. 이상적인 한국인상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부침과 관계없이 일관된 방향을 전제하는 교육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더 나은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교육, 경쟁적 우위에 서기 위한 교육이다. 이는 조선 시대의 양반적 가치관과 다르지 않다. 이성 교육의 결여는 충동성과 원리주의로 되돌아가게 하고, 한때 세계적이었던 교육열과 학업 성적마저 운동권 교육의 영향 탓에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식민지 역사 교육도 일부 정치인들이 반일 정서에 이용함으로써 너무 과장되거나 비이성적으로 치달았다.
이성적인 사고 능력은 자연 과학과 인문학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에서 형성되고 발달한다. 두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까지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수학과 인문학의 소질은 독립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건전한 이성은 이 두 분야의 능력이 합해질 때 발휘된다. 그런데 필자가 강단에 있을 때 철학적 소질을 가진 수학 전공 학생은 거의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있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대학에서는 전공과 관계없이 수학, 역사, 철학, 정보 과학 등을 필수 과목으로 익히게 해야 한다.
이성은 왜 명징해야 하나?
그리스 정신은 왜 증명을 요구할까?: [로고스를 존중하다] 한국인의 지력(머리)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는 지적 판단에 충실하지 못한 역사, 지적 용기가 부족한 위선의 역사를 오랜 기간 겪어왔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한국인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들은 지, 덕, 진리 등 추상적 개념을 화제로 토론을 즐겼다.
소크라테스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종일 자연과 인간 본성에 대해 논했고, 시민들은 큰 굿판을 보듯 그 모습을 즐겼다. 그리스인이 가장 존중한 것이 로고스(logos)였다. 로고스란 말에 정확히 대응하는 한국어는 없다. 이성, 증명, 논리, 지적 핵심 등이 될까.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것은 ‘권력으로 인해 불리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로고스를 따른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로고스는 이성의 또 다른 표현인 ‘지적 정직성’이었다. ‘지적 정직성’은 국가이성과 연결된다.
진리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인에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지적 의지와도 같아, 진리에 대한 깨우침을 생의 보람으로 생각한 것은 동서양이 서로 같았다. 다만 그리스인은 로고스적(증명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공자의 도는 주관적이어서 증명 없이도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공자에게 삶은 구도(求道)였고, ‘도(道)’는 최고의 지혜, 곧 중국적 인간 혼의 진리였고, 인간의 한계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증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공자를 포함한 중국의 현자들에게 있어서 도(진리)의 길이란 알 수 없고 길잡이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윤리적, 철학적 내용에 그쳤다. 따라서 진리 탐구로는 방법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사고는 그리스인의 이성보다 공자의 불가지론적인 지혜에 가깝다. ‘법 없이도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였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는 진리의 기준이 없는 불가지론의 세계다. 그러니 그리스의 이성을 이어받은 유럽인들의 국가이성과 같을 수 없다.
이성의 본질은 지역, 인종에 따라 다를까?
인간을 제대로 해석하는 길은 무엇일까?프랑스, 이성주의 전통을 세우다: 프랑스는 데카르트 이후 이성주의 대국이 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학문의 전통이 아닌 학문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었다. 독일의 경우 30년전쟁(1618~1648)으로 황폐화하여 19세기 초엽까지 대수학자가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자유로운 담론의 풍조도 일어나지 않았다. 칸트와 헤겔 등 대철학자를 배출시킨 풍토였음에도 학문적 분위기는 프랑스와 판이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백 년 후, C. 클라인과 힐베르트 등 대수학자들이 나오면서 독일은 수학의 메카가 된다.
힐베르트는 수학기초론이란 깃발을 들고 수학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수학을 기초부터 다시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킬 목적으로 직접 미래 수학의 연구 대상(예상 문제)까지 마련했다. 이것이 유명한 ‘힐베르트의 예상 문제’로, 증명론이 중심이다. 그는 수학은 결국 ‘증명 덩어리의 체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1931년, K. 괴델에 의해 완전히 뒤집혔다.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에서 ‘수학은 그 체계 안에서 완전성(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힐베르트가 의도한 형식주의는 성공적이었다. 수학 세계는 힐베르트라는 거목이 세워 놓은 이론에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었는데, 문제는 그 주류가 독일이 아닌 프랑스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산 거목에서 풍요로운 열매를 딴 프랑스 / 부르바키학파가 왜 프랑스에서 형성되었을까] 프랑스에서 구조주의 수학의 총본산인 부르바키학파(세계 최고의 수학자 모임)가 형성되었다. 부르바키학파가 왜 힐베르트를 배출한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형성되었을까? 사고의 흐름을 좇다 보니 수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에펠탑이 떠오른다. 에펠탑은 철근만으로 조립된 우아한 탑으로, 구조주의 건물의 상징이다.
1889년에 프랑스 대혁명 백 주년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를 맞아 건립된 철골 탑이었다. 시기적으로는 힐베르트가 세계수학자회의에서 수학 예상 문제를 발표한 때와 일치한다. 갈루아 이론과 부르바키학파, 구조주의를 촉발한 실존주의 사상, 에펠탑 등이 모두 파리에 모여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족 또는 공동체의 문화는 원형에서 파생되고 이들 사이에는 정합성이 형성된다. 사상, 수학, 건축물, 지식인 집단 등이 분야마다 차이는 있어도 같은 문화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선의 지적 전통과 이성] 조선의 학풍에 이성주의는 없었다. 주자학이 국민의 뼈와 살이 되었지만, 우리의 전통 철학은 중국의 철학을 수용한 뒤 원리주의로 흘러, 오히려 중국보다 더 경직되었다. 그것도 예학(禮學)의 중심이 되어 다른 파는 사문난적으로 역적 취급을 받았다. 고질화된 일변도의 사고 아래서는 정통파만 존중을 받는다. 이런 풍조는 유연해야 할 정치와 외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조선에서는 철학을 중심으로 한 보편성에 대한 담론 대신 당파 싸움만 있었다.
조선 시대의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등 사색당파에서 벌인 주장들은 국가이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승리하든 민족의 진로와는 상관이 없었고, 핵심은 권력 추구에만 있었다. 이성이 뿌리내리고 꽃피우려면 지식 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적 참여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민족(국가)의 원형에 이성적 요소가 정착된다.
그런데 국가이성은 하루아침에 뿌리내리지도, 성장하지도 않는다. 시민의 이성이 자라야 국가이성도 성장한다. 프랑스의 대학입시인 바칼로레아를 보자. 바칼로레아에 제출된 논술 문제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논제는 ‘시간은 창조적인가 파괴적인가?’ ‘정치에 윤리성이 필요한 것인가?’ 등이다. 해마다 바칼로레아 논제가 발표되면 입시생들뿐 아니라 전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서로 토론과 논쟁을 벌인다. 마치 소크라테스 시대에 광장에 모여 토론했던 그리스 시민들처럼 프랑스인들도 국민적 토론을 즐긴다. 이것이 프랑스적 담론의 전통이다. 프랑스는 보편적 이성을 존중했고, 그 전통은 학문으로 이어져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까지 탄생시켰고 계속 새로운 이성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정치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진보나 보수의 파벌은 더더욱 아니다. 오직 민족 차원의 이성 교육일 뿐이다. 우리 원형에 내재된 원리주의 즉,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 참여와 분열주의에서 벗어나, 그 궤도를 수정하려면 이성의 의미를 바로 세우는 길밖에 없다. 이성을 복구(르네상스)하려면 수학과 철학, 특히 인문학이 융합된 교양 교육이 강조돼야 한다.
왜 개인의 이성이 국가이성으로 집약되지 않을까?: [개인의 수준과 민족의 수준은 다르다] 이성이 결여된 원리주의적 성향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좌절은 정해진 궤도를 가는 열차처럼 계속 되풀이될 것이고, 분열과 충돌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시민의 이성이 국가이성으로 집약되어야 한다.
참고로 전두환의 군사 반란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감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 국내외의 수많은 저명한 지식인들이 마음을 모았고, 하버드대학의 E. 라이샤워 박사가 그 선두에 섰다. 당시 그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데, 한국 국민의 수준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은 정치를 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 정치는 기대보다 수준이 훨씬 낮다.” 그 말을 들으며 필자는 라이샤워 박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을 감지했다. 그는 한국인을 잘 알고 우수한 한국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한국인의 원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한국인 하나는 일본인 3명을 이길 수 있지만, 한국인 10명은 일본인 3명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었다.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선동 즉, 프로파간다였다. 그러나 후에 필자는 이를 개인의 능력으로 보면 탁월하지만, 그 능력이 ‘국가이성’에 반영되지 못했음을 이른 것으로 해석했다. 개인으로 보면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우수하다. 이들 개인의 능력이 산술적으로 민족의 원형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의 능력이 원형에 여과되면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