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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 아라크네


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아라크네 / 2020년 5월 / 318쪽 / 16,000원



서론 - 페이스북의 문제는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좋게, 자주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중대 국면에서는 비판적으로 분석돼야 마땅하다. 페이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에 의해 해킹당한 순수한 친교 사이트에서 권력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개인생활을 약간 더 재밌게 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를 훨씬 더 힘들게 한다. 이 책은 선의, 선교사 정신, 그리고 컴퓨터 코드를 모든 인간 문제의 보편적 해결사로 여기는 이념의 자만심에 관한 이야기이고, 소셜미디어가 전 세계에서 어떻게 민주적 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겼는지에 관한 고발장이다.

오염: 2012년 2월,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기업공개를 수주 앞두고 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더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열린 문화를 창조하고 생명과 타인의 관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더 강력한 관계를 훨씬 더 많이 만들어 내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수의 다양한 시각들에 노출되도록 돕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겨우 4년이 지났는데, 페이스북이 사람들을 연결할수록 점점 더 사람들을 갈라놓는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이상적인 비전은 국가나 글로벌 문화를 발전시키지도, 상호 이해를 넓히지도, 민주주의 운동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각종 모니터, 우리의 삶, 우리의 정신에 대한 페이스북의 지배는 여러 위험성을 띤다. 첫째는 오보나 거짓정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매우 쉽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허위 뉴스’ 돌풍을 다룬 기사들에서 우리는 이것을 목격했다. 두 번째 구조적인 문제점은 페이스북이 기쁨이건 분노건 간에, 감성을 강타하는 콘텐츠를 키워 준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에서 재빨리, 멀리까지 전파되는 것들은 귀여운 애견동물, 귀여운 아기, 유익한 리스티클(listicles)과 생활상식 퀴즈, 그리고 혐오 발언이다. 페이스북은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 항목을 대놓고 띄워 주도록 만들어졌다. 셋째로, 더 쉽게 이해되는 현상이 ‘필터 버블’이다.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글과 페이스북에 말하면, 이 회사들이 사용자에게 그런 것들을 더 많이 제공하는 식으로 보상을 내려 준다. 결과적으로 시야를 좁게 하고 재강화된 신념의 반향실(echo chamber)을 만들어 내게 된다.

동기부여와 숙의: 페이스북은 구조와 기능상 동기부여의 역할을 강력하게 해낸다. 대의명분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거나, 기부를 간청하거나, 어떤 후보에 대해 투표를 권고하거나, 물건을 팔고 싶을 때 페이스북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미디어 기술은 거의 없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유도에 탁월하다. 반면 숙의에는 끔찍하다. 페이스북 포스트의 구조와 그 아래 달리고 있는 댓글 가닥들이 완전하고, 침착한 숙고를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와 댓글은 바로 위의 댓글에 답장을 쓰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성급하게 반응하도록 부추겨지며, 그래서 때로 버릇없이 답장을 보낸다.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에 잘못된 것이 두 가지 있다. 페이스북의 작동 방식과 사람들의 사용 방식이다. 그 회사는 그만한 책임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작동 방식을 바꿀 유인이 없다. 페이스북 사용자도 개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그것을 좋은 용도에만 쓰도록 자제할 유인이 별로 없다. 페이스북은 우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약화시킨다. 특히 그 문제 중 하나가 페이스북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페이스북의 고통스런 역설이 있다. 세계를 더 좋게 만들려고 진지하게 헌신한 결과로 증오와 혼란을 확산하려는 범죄 집단들을 불러들여 페이스북을 장악하게 했다는 점이다.

대혼란: 페이스북은 각종 사람들, 각종 움직임들이 공연하는 하나의 무대이다. 결국 무대는 생태계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매개체이다. 페이스북은 이 모든 불협화음 속에서 중요하고 힘이 커 가는 인자이다. 만일 페이스북이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페이스북은 오늘날 전 세계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무절제들을 완화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개인적인 문제들과 오락용으로만 제한적으로 참여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다면, 그것은 행복을 향상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그러지 않고 약자 따돌리기나 심한 편견 드러내기를 포함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가장 유해한 트렌드 일부를 키우고 확대시켜왔다.

페이스북이 모든 사람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친구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지지와 공동체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또 귀여운 아기와 강아지 사진의 주요한 원천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아기들과 강아지들이 인종주의와 테러리즘의 호소, 개인적인 재정지원과 의료지원 호소,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찬반 광고들과 함께 똑같은 칸에 나온다.

페이스북 문제를 단기간에 고칠 희망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희망이 있다. 건강한 사회적 정치적 삶을 회복하려면, 페이스북이 끼친 피해에 대한 합의된 인식과 페이스북의 마법을 넘어서겠다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수백만 명이 조언에 따라 페이스북을 정치적 지식이나 행동주의의 원천이 아니라, 친교와 가족 간 연락을 위한 수단처럼 더 맞는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규범의 확립이 기술 발전에 비해 훨씬 어렵다. 그래도 그것이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인 대응이다. 최종적으로 더 건강한 공공 문화를 바라는 우리는 도서관, 학교, 대학, 시민사회단체 같은 다른 기관들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오락 기계이다



2016년 10월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코노미석 뒤쪽으로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기내에서 앞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대중의 특이한 집착증이 드러났다. 약 250명의 승객 중 50명의 두 손으로부터 아주 똑같은 빛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들 50명은 휴대폰과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플랫폼에 런칭된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주변 상황과 연결을 끊고 화면만 노려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멍한 상태가 아니라 집중하고 있었다. 딱히 행복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은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것 같았다. ‘즐긴다’는 용어는 틀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게임 경험에 몰두한다. 그들의 표정은 차분했고 몸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장거리 비행에 잘 대처하도록 도와줄 무언가를 캐내고 있었다. 승객들 뒤에 숨어 한참을 지켜보다가 얌전하게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에어버스 A330기가 샬럿에 착륙하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켜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동행 승객들 사이에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이 확산된 것을 목격한 이야기를 올렸다.

페이스북은 문제를 조장하고 증오를 증폭시키지만, 그럼에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옛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면서, 새로운 페이스북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어울릴 이유를 찾으면서, 우스운 동영상을 보면서, 게임을 하면서 가치를 끌어낸다. 이러한 오락 기능과 서비스 기능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과 강아지와 아기 사진들은 대부분은 아니라도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가입한 첫째 이유들이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가급적 깊숙하고 오랜 시간 동안 페이스북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의 대가로 우리의 주목을 붙잡아 둔다. 우리는 기꺼이, 상당히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페이스북은 오락 기계이다. 즐거움은 가볍고 덧없다. 그게 우리를 페이스북으로 계속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또한 불안 기계, 분노 기계, 그리고 원망 기계이기도 하다. 쾌락은 가볍고 덧없을지 모르지만, 원한은 깊고 오래 간다. 이 공식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페이스북은 우리를 끌어들이고, 우리를 낚아채고, 우리의 소속을 선언하도록 권장하고, 우리를 분열시키고, 모든 상호작용을 추적한다. 페이스북의 감시체계는 오락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다.

페이스북은 감시 기계이다



2017년 2월, 미 해병대 현역 여성 간부후보생이 캠프 르준에서 전입신고를 하려고 줄에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한 남자 해병대 보병장병이 몰래 그녀의 사진을 찍어 ‘단결 해병대’라는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그러자 그녀에 관한 반응과 정보 요청이 빗발쳤다. 순식간에 페이스북의 사진 포스팅에 댓글들이 넘쳤다. 댓글은 거친 단계를 넘어섰다. 몇몇은 강간을 제안했다. 몇 시간 뒤 한때 애정 파트너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가슴을 드러낸 여성 사진을 단체방에 올렸다.

해병대 출신 토마스 브레넌은 웹사이트 ‘전마(The War Horse)’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해병대원 페이스북 그룹이 각 부대의 여군 사진 수천 점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폴더의 링크를 보여 주는 ‘리벤지 포르노’의 온상으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참고로 그 페이스북 그룹들은 전투 스트레스와 민간인 생활로의 복귀에 대처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브레넌이 기사를 쓴 지 며칠 후 해병대는 역겨운 사진들과 링크들을 삭제했고, 페이스북 그룹은 3월에 폐쇄되었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그룹 회원들 사이에 떠돌아다녔고, 지금은 해병대원 수백 명의 휴대폰이나 하드드라이브에 들어가 쉬고 있다. 이런 종류의 감시와 괴롭힘은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지르고 싶어 하는 악의적이고 잔인한 행동들을 증폭시킨다. 이것을 포함해 페이스북이 일을 잘하는 이유는 막대한 사용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분류해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우리의 뉴스 피드로 보내 주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저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들과 달리 감시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감시는 국가에서 나온 것이든, 다른 사람, 다른 그룹에서 온 것이든, 괴롭힘과 모욕을 조장한다. 만일 폴리스의 많은 사람이 대중 토론 참여를 시도할 때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말도 못하게 되고 위협당한다면, 우리는 공화국에서 책임감 있고, 정보를 가진, 참여적인 시민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인터넷 플랫폼의 잠재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제약일 것이다.

돈 벌이를 위한 데이터: 페이스북은 우리를 주요한 세 가지 유형의 감시에 노출시킨다. 첫째,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단체들은 페이스북의 광고 시스템을 통해 페이스북의 타깃팅 파워와 예측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페이스북의 다른 사용자들은 우리가 프로필에 적어 보여 준 것들을 통해 우리를 지켜보고 추적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끊는 것,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다양한 게시 글을 추천하거나 댓글을 다는 것, 각자의 의견이나 좋고 싫은 것을 드러내는 것을 다 본다. 셋째, 각국 정부들은 민간인이나 수상한 사람을 염탐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해 친구나 협력자의 것으로 보이게 페이스북 계정을 허위로 만들거나, 페이스북 보안을 깨고 들어가 데이터를 모은다.

페이스북은 시위 기계이다



2010년 6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경찰이 28살 무역업자 칼리드 사이드의 집 앞에서 그를 때려 숨지게 했다. 경찰은 사이드의 가족에게 그가 마약 거래에 연루되어 있었고, 그가 질식사했다고 말했다. 폭행 목격자들은 경찰의 주장을 반박했고 폭행 장면을 증언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드의 부검 사진들이 페이스북 아랍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유튜브 페이지에 삽시간에 확산되었다. 곧 국제적인 아랍의 위성뉴스 채널인〈알자지라〉가 소요 사태를 알아차렸고, 그 사진들을 게재했다. 다른 국제뉴스 매체들도 사이드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죽음의 은폐와 그것을 유발한 경찰 부패에 항의하는 데모가 2010년 여름 내내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휘젓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의 운영을 지원했던 두바이 주재 구글 직원 와엘 고님은 2011년 테드 토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그 사진을 기억합니다. 그는 잔인하게 고문당해 사망했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수십 년간 비슷한 잔혹한 사건들에 했던 것처럼 기사를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사이드의 사진이 올라간 것이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2011년 1월과 2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포트사이드, 이집트와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거대한 봉기는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을 30년 만에 권좌에서 내몰았다. 무바라크의 권위주의에 대한 점차 증가하는 국민적 불만, 그리고 2011년 이전 약 10년간 축적된 경찰권 남용에 반대하는 고도로 조직화된 대중운동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폭발사태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2006년 시위와 2008년 총파업 때는 못 했다. 그런데 2011년의 데모는 어떻게 해서 사회 각계각층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했는가? 답변은 단순하다. 2006년과 2008년에는 페이스북이 영어판뿐이었지만, 2011년에는 아랍어로도 이용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저항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신호등 역할을 해냈다. 이것은 고님 생각이다.

만일 소셜미디어가 없었더라도 시위가 벌어졌을까, 또는 똑같은 방식으로 시위가 벌어졌을까를 시험해 볼 수는 없다. 아무튼 그 시위들은 벌어졌다. 소셜미디어 서비스, 특히 페이스북은 정치적, 사회적 대중운동과 이어지는 시위에 특별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페이스북의 존재 때문에 시위가 가능해지거나, 또는 더 현실적으로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정보와 계획들에 대한 관심의 공유를 밝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쉽게 만들어 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님의 표현대로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할 마음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어쩌면 속일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거대한 저항운동은 충분한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충분한 사람들이 설득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페이스북은 그들에게 대중운동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페이스북은 깊은 정치적 숙고나 조직화라는 어려운 일을 만들어 내지도 않고, 고무하지도 않는다.

이집트의 역경이 이 점을 분명히 해 준다. 1월 25일 혁명 때와 그 후에 고님과 다른 사람들은 봉기에 대표가 없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고님 자신도 무슬림들과 기독교도들이 나란히 시위에 나서 관대하고 민주적인 이집트의 비전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크게 자랑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편안한 의자에서 고님을 응원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했던 시위대였다. 그런데 무바라크를 전복시킨 대중운동의 실체는 이러한 초기의 희망 어린 조짐들과는 달랐다.

이집트는 악랄한 권위주의적 독재 정부에 의해 다시 통치되고 있다. 이집트는 군부에 의해 움직여진다. 알고 보니 무바라크의 실각의 열쇠는 2011년 초기 몇 주가 안 돼서 군부가 관여하기를 거부하면서 물러선 데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자유주의적 범세계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 간의 불편한 혼합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의 새로운 리더 무리는 새 정부 계획을 짜고 선거를 치렀다. 군부 지도자들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것은 단지 페이스북 페이지와 원대한 생각뿐이었다.

2012년 선거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았다. 형제단은 집권하더니 기독교도와 여성들을 지원했던 활동들을 탄압했다. 그러자 무슬림형제단 정부와 무함마드 모르시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012년 11월 모르시는 비상지휘권을 선포했고, 비판세력과 언론인들을 잡아넣기 시작했다. 2013년 4월 더 커진 반 모르시 시위가 2011년 시위에 맞먹는 규모와 강도로 터지기 시작했다. 2013년 7월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의 지휘 하에 있던 군부가 이집트를 장악했다. 이어 무바라크를 쫓아내기 위해 작동했던 모든 요소들을 잔혹하게 깨부수었다. 시시는 그 후 권좌를 지키고 있다.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라는 영어 페이스북 페이지는 28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채 활성화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안티 시시의 뉴스와 선전을 퍼뜨리는 데 열심이다. 하지만 또 한 번의 ‘페이스북 혁명’이 조만간 가능할 것 같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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