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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차홍규 지음 | 아이템하우스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차홍규 엮음

아이템하우스 / 2020년 4월 / 496쪽 / 19,800원





여인이라는 이름의 원죄, 끌림




숨기는 여인 칼립소


칼립소는 아틀라스의 딸로 바다의 님프였다. 그녀는 전설의 섬 오기기아에 살았는데,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강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홀로 이 섬에 도착하였다. 칼립소는 ‘숨기는 여인’이라는 뜻을 지닌 여인답게 세상의 서쪽 끝에 있는 오기기아 섬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나긴 고독한 날들을 지새우던 어느 날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이 섬에 나타나자 칼립소는 한눈에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였다.

칼립소는 향기로운 포도주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내놓으며 연회를 펼쳤다.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위한 간절한 연회였다. 오기기아 섬의 그녀의 동굴은 화려하였다. 암벽 주위로 갖가지 꽃들과 열매들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께서 결심만 한다면 영생을 줄 것을 약속하겠어요. 훌륭한 잠자리와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거짓 없는 사랑을 주겠어요.” 오디세우스는 10년에 걸친 전쟁과 힘든 여정의 항해 속에 아름다운 님프 칼립소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뜨거운 육체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불사신 제의와 자신에게 몰두하는 온갖 지극 정성보다 더 그녀에게 몰두했던 건, 이 섬에 오로지 혼자밖에 없다는 절대적인 고독이 그녀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한 감정을 갖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칼립소의 섬에는 배라고는 한 척도 없고, 수행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7년 동안 그 섬에서 살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전적으로 속할 수 있고, 영원히 서로를 즐길 수도 있는, 세상과 절연한 이 아름다운 섬은 사랑하는 시간만큼만 그에게 구원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밤이 지나 사랑이 다 식은 아침이 찾아오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절감하며 더 깊이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키워만 갔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체절명의 불안과 허무함은 그만을 향한 칼립소의 뜨거운 갈구가 깊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차갑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오디세우스에게는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칼립소와 뜨거운 정사를 나눌수록 고향을 그리며 우울해 했고, 자신과 고향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칼립소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연모의 정을 더욱 키우면 키울수록 안타깝게도 서서히 식어가는 오디세우스의 예전 같지 않은 반응을 확인하며 단 하루를 같이 있더라도 그와 좀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 다가올 불행에 대비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변함없는 세월이 흘러갔다. 오디세우스가 10년의 귀향길에서 칼립소와 함께 지낸 세월은 무려 7년이나 되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에게 탄원하여 오디세우스를 구해주라는 명령을 받아냈다. 칼립소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로부터 오디세우스를 보내주라는 거역할 수 없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해 들었다. “참으로 무정하신 분들이군요. 그대 올림포스 신들께선 질투할 상대도 못 되는 나 같은 여신에게 그렇게 유별나게 질투를 하시고, 사랑하는 사내를 남편으로 맞아 동침하는 여신마저 시기하시다니! 나는 제우스께서 천둥 번개를 던져 오디세우스의 배를 바다 한가운데에 난파시켰을 때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모두 잃고 표류하다가 이곳까지 떠밀려 왔지요. 그런 그를 나는 사랑하고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제우스께서 그를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요? 아,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제우스의 명령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그를 서둘러 망망대해로 팽개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노를 저을 배는커녕 길동무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주면 그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한 다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하겠어요.”

헤르메스가 떠나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찾았다. 오디세우스는 마치 망부석이 된 것처럼 해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칼립소에게서 떠나 있었다. 칼립소는 그 옆에 다가가서 말했다. “정말 당신은 불행한 분이군요. 제발 이제 그만 울고 그만 슬퍼하세요. 이 섬에서 더 이상 당신의 귀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내가 정성을 다하여 당신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칼립소의 진심 어린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미안하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여신이여, 제발 나에게 노여움을 갖지 마세요. 이타카에 있는 정숙한 나의 아내가 당신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몸이지만 당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이 아니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귀향의 행복한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의 남자일 뿐입니다.”

그의 말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의 욕구가 자신의 육감적인 매력보다 훨씬 더 큰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녀는 제우스의 명령보다 사랑하는 오디세우스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하였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손수 목욕시킨 다음 이별을 앞둔 연인처럼 한 몸이 되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초라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담아 화려하고 향기로운 옷을 입혀 떠나보냈다. 진한 포도주며 물과 음식이 들어있는 부대를 가득 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자는 마음이 없어도 팔을 내어줄 수 있지만 여자는 마음이 없으면 그 팔을 베지 못한다. 남자는 마음속에 묻어둔 그녀가 곁에 없을 때 그 그리움이 자기를 조금씩 갉아먹고 끝내는 흔적도 없이 무너뜨림을 안다. 하지만 여자는 곁에 없으면 마음도 두지 않는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 끝까지 함께하려는 것은 그때, 다른 사람이 아닌 오디세우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못 잊어 그리워하는 정절의 여인인 페넬로페는 진정 남편만 기다리던 순종적인 여인인가?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는 칼립소와는 다른 차원의 욕망과 허영을 지닌 여자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오래된 남편의 빈자리를 허허롭게 견디는 평범한 여자였던 것이다. 페넬로페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전술로 백여 명의 남자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대형 수의를 모두 짠 뒤에야 결혼할 작정이라고 구혼자들을 회유했다.

우리는 지조 있는 조강지처 페넬로페의 따분한 사랑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불같은 정염을 불살랐던 칼립소의 뜨거운 열정에 다분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전쟁과 모험의 방랑벽에 시달리며 이 섬 저 섬을 섭렵하며 묘령의 여인들과 한바탕 뜨거운 정염을 불태우는 오디세우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정절의 여인은 솔직히 답답하고 무덤덤하다. 하지만 칼립소는 사랑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을 열정을 다해 사랑했고, 실연으로 상처와 절망을 겪었지만 포기할 줄 아는 미덕까지 지녔다. 철저하게 자기 사랑의 주체가 된 칼립소의 후회 없는 사랑은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정성껏 보살피며 이별의 정한마저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내줄 수 있는 절대사랑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발적이며 독립적인 여자들은 절대로 서성거리며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자신이 찾은 사랑을 포기할 줄 모르는 나쁜 여자는 자신이 가고 싶은 열락의 세계로 기꺼이 자신을 던진다.

훗날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항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칼립소를 만나게 되었다. 칼립소는 단번에 그가 사랑했던 오디세우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오디세우스를 다시 그리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자 텔레마코스를 자신의 아끼던 시녀 에우카리스와 짝을 맺어주었다고 한다.



팜므 파탈의 치명적 욕망, 유혹




죽음의 댄서 살로메


성경에서 가장 잔혹한 피와 살육의 광기의 욕정이 불타는 장면은 단연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는 살로메의 치정살인극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여인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잔혹치정극은 살로메라는 여인을 동서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악의 악명 높은 팜므 파탈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살로메가 잔혹한 요부의 대명사가 된 것은 자신 매력을 미끼로 의붓아버지를 유혹해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를 살해토록 유도한 주도면밀한 피의 살육과정이 너무도 잔인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성경에 단지 ‘헤로디아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간교한 계략으로 유인해 사지로 몰아넣은 뒤 잔인하게 목을 베게 한 악녀로, 인류의 지탄을 받은 광기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세례 요한을 참수한 것은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가 요한을 몹시 미워했기 때문이다. 헤로디아는 헤롯의 동생 빌립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빌립과 이혼하고 헤롯과 결혼하였다. 헤롯의 형제와 이혼하고 재혼하는 일련의 일들은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이때 세례 요한이 그들의 결혼을 지탄하고 대담하게 비난했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을 신이 보낸 선지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처형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요한은 감옥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때 살로메가 요한을 찾아왔다. 그녀는 요한을 사랑했고, 그를 열망하여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요한에게 말했다. “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이런 컴컴한 감옥에 있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갈증으로 애태우는 당신을 위해 제 입술을 바치겠어요. 어서 저의 키스를 받아주세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당신의 갈증을 해갈시켜 줄게요.”

살로메의 뜨거운 구애의 몸짓에도 요한의 반응은 차가울 정도로 냉담했다. 그는 살로메를 패륜의 상징인 소돔의 딸, 창녀의 딸로 치부했다. 애절한 사랑이 변하면 지독한 애증만이 남는 법. 자신의 순수한 애정을 한갓 거리의 여자의 치정으로 치부한 요한의 냉정한 반응에 분노한 살로메의 감정은 애정에서 처절한 증오로 바뀐다.요한의 독설과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마침내 남편이 의붓딸인 살로메에게 홀딱 반한 점을 이용해서 요한을 살해할 결심을 굳혔다. 헤로디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요한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만 했다. 헤로디아는 늙은 왕이 딸의 풋풋한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에 혼을 빼앗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로메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왕은 숫제 넋이 나간다는 점을 이용해서 ‘왕이 네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할 때만 춤을 추라’고 딸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헤롯의 생일을 맞아 연회가 벌어졌을 때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에게 왕 앞에 나와 춤을 추도록 했다. 그것은 헤롯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헤로디아의 추악한 욕망이 빚은 계략의 결과였다.

무대에 모인 좌중의 눈을 사로잡은 살로메의 춤은 그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이었다. 그녀는 몸에 걸친 일곱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관능미 넘치는 자신의 알몸을 하나둘 드러내기 시작한다. 살로메의 도발적인 춤에 사람들은 넋을 잃는다. 특히, 헤롯 왕은 의붓딸이지만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딸의 동작 하나하나에 감추어져 있던 발그레한 몸을 놓치지 않고 훑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춤이 끝나자 헤롯 왕은 환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살로메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줄 것이니 말해 보거라. 나는 네 어머니의 자리라도 서슴없이 줄 것이다.”

살로메는 고혹적인 미소를 띠우며 헤롯왕에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은쟁반에 담은 요한의 머리입니다.” 헤롯 왕은 살로메의 말에 경악하였다. 헤롯은 요한의 머리 대신 보석을 주겠다며 살로메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살로메의 대답은 오직 “요한의 머리!”였다. 헤롯 왕은 마지못해 요한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망나니가 우물로 내려가고 잠시 후 요한의 머리가 담긴 은쟁반을 치켜든 망나니의 검은 팔이 서서히 우물 밖으로 나왔다.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움켜잡고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요한의 입술을 찾았다. “아! 요한, 내가 그대 입술에 키스했어요. 그대 입술은 쓴맛이 났어. 피의 맛이었을까? 아니야, 아마 사랑의 맛이었을 거야. 사랑은 쓴맛이 난다고들 하니까.” 그녀가 사주한 살인의 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다. 살로메는 자신에 대한 욕정으로 불타는 남자에게 그녀가 점찍은 남자의 잘린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선물로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살로메는 선혈이 낭자한 남자의 잘린 머리를 선물 받고선 더없는 희열을 느꼈다.

살로메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정욕의 화신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세기말 예술가들은 살로메의 치정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탐욕과 고통, 피와 순교라는 강렬한 주제에 압도적인 몰입에 빠졌고, 이러한 주제를 이끌어가는 어린 살육자이자 에로티스트인 살로메에게 새로운 유형의 팜므 파탈을 발견하게 된다. 살로메는 순결한 창녀에서부터 패륜적 요부, 질투의 화신 그리고 흡혈귀까지 팜므 파탈의 모든 성향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는 남자의 이상적인 갈망과 여성의 육체적인 욕망이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남자가 인공적으로 만든 여성상처럼 말이다. 그 살로메는 죽음에 이르는 남성을 거세하는 전사를 닮아 있다.



가질 수 없는 사랑, 관음




숭고한 헌신의 레이디 고다이버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관음적으로 대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상을 자기만이 바라본다는 예술주체로서의 관음적 희열에 늘 사로잡혀 있는 존재이다. 예술은 본래 대상에 시선을 던지기만 하는 예술가만의 주체적인 행위이다. 여기엔 시선을 던진 대상이 그 시선에 반응하는 대응이 없다. 예술가의 관음적 시선이 예술활동에 국한된 것이라면, 일반적으로 관음적 행위는 관음을 받는 이에게는 성적 가학행위가 될 수 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몰래 훔쳐봄으로써 얻는 가학적 쾌락을 관음증이라고 한다. 상대가 모르게 자기만의 상상으로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행위는 분명 부도덕한 성적 도착이다. 왜 훔쳐보는 게 죄가 되는가? 그건 바로 상대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시선으로 상대를 만지기 때문이다. 도착적 관음증은 강박적이며 만족을 모르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심각한 불안, 죄책감 그리고 피학적 행동을 가져올 수 있다. 관음하는 자의 속어인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을 생기게 한 전설적인 인물은 영국의 한 지방 백작부인이었던 고다이버 부인이다.

레이디 고다이버는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지방의 영주였던 리어프릭의 아내였다. 남편 리어프릭은 당시 자신의 영지에 있던 농민들에게 혹독하게 세금을 걷는 등 가혹한 정책을 시행했다. 신앙심이 깊고 정직하며 숭고한 고다이버는 백성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 줄 것을 탄원하였다. 그러나 리어프릭은 고다이버의 의견을 외면하고 더욱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농민들을 탄압했다. 고다이버는 남편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저를 사랑한다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세요.” 리어프릭은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는 것이 싫었고, 어린 아내의 정치적 간섭도 싫었다.

“당신이 진정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몸으로 증명해보여라. 만약 네가 완전한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그때 백성들의 세금 감면을 신중히 고민해보겠다.” 남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귀족인 영주의 아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영지의 백성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치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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