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부가 온다
안상헌 지음 | 행성B
새로운 공부가 온다
안상헌 지음
행성비 / 2020년 5월 / 327쪽 / 17,000원
새로운 지식이 온다
벤치맨(Bench man), 지식의 경계에 서다
새로운 경계인, 벤치맨: 쿠르트 레빈은 과거 자신이 속했던 집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집단에도 적응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경계인’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모두 경계인이다. 한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2030년 이후 뇌의 신피질에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두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기계와 하나가 되고 있다. 예로 우리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으로 알아내는데, 검색 도구는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한몸처럼 움직인다. 세상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유비쿼터스적이다. 점점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꺼내어 사용하기 위해 배우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 꺼내는 인간, 그것은 새로운 경계인이자 벤치맨이다.
벤치맨, 경계에 서다: 벤치맨은 현실의 시간과 벤치의 시간을 구분할 줄 안다. 현실에서 잠시 물러나 벤치에 앉아 삶을 돌아본다. 벤치는 단순히 쉬는 곳이 아니다. 전체 경기를 살피고 새로운 경기를 준비하는 곳이다. 벤치에 앉으면 플레이어가 아닌 코치가 되고 철학자가 된다. 경기에 머물면서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경기 중 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을 안다. 나보다 강한 역대 최고급이 나타났다는 것도 안다. 그 주인공은 인공지능이다. 경기를 풀어가려면 경기를 떠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벤치로 내몰아야 한다. 그것은 불안한 일이고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진리는 길이 없다: 경계인은 이쪽 조직에도 저쪽 조직에도 완전히 몸담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덕분에 한쪽에 발을 담그고 다른 쪽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자기 스스로 문제를 부여안고 대답을 찾아다니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한다. 헤매고 좌충우돌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뭔가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만의 철학, 규율, 태도 등을 얻는다. 그는 경계를 견디고 긴장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경계인은 벤치맨이 된다. 벤치맨은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은 길을 모른다. 단지 진리를 추구할 뿐이다. 덕분에 그들은 어떤 길이든 갈 수 있다.
경계인의 빛과 그늘: 경계인은 뛰어난 적응력을 가졌다. 경계인은 기성세대의 규칙이나 신념을 따르지 않고, 과거의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데, 그들이 한 집단이나 한 분야에 소속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계인은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적응력을 예비하는데, 이것이 경계인의 빛이다. 한편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경계인의 양성과 관련이 깊다. 경영학만 알고 생물학은 모르는 학자, 전자공학은 알고 인류학은 모르는 전문가들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통섭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교육계에 침투한 결과다. 교육은 미래고, 공부는 가능성이다. 나와 우리, 이기심과 이타심, 불안과 확신, 시인과 과학자, 밥벌이와 자유의 경계에 선 인간, 모순의 날 선 긴장 속에서 사유를 지속하는 인간이야말로 미래의 가능성이다.
변방적 지식인이 되자
공자와 변방: 동아시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공자인데, 그는 변방적 지식인이었다. 그의 사유는 중심이 가진 체계나 경전적 고착이 없다. 그의 사상이 유학 혹은 유교로 체계화되고 교조화된 것은 그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한나라 이후 유학이 중심부를 차지하면서 체계를 세우고 세상을 해석하고 다스리는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한편 변방적 지식이 중심부의 주류적 지식으로 변질되는 과정은 주변이 중심을 장악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문제는 중심을 장악하고 주류가 된 지식은 현실적 문제해결력을 상실하기 쉽다는 것이다.
변방의 의미: 여기서 변방은 지역적 의미보다 내용적 면이 중요하다. 주류에 포획되지 않고 고유한 것을 지키며, 그것을 밀어붙여 독특함으로 완성하는 것이 변방적 지식의 특성이다. 그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며 끊임없이 변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기존 체계로부터의 탈주를 통해 과거와 선을 긋고 새로운 접속을 시도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고립과 정착은 쇠퇴와 멸망이다. 그들에게는 큰 틀은 있지만 체계적인 규범은 없고, 정체성은 가졌지만 그 내용은 열려 있다.
지식의 죽음: 중심적 지식은 정답에 매몰되어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처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왜 정답이 없냐’라고 묻는다. 수학과 과학처럼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학문에 익숙해진 탓이다. 이런 사고에 익숙해지면 하나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창의적 해답들을 찾지 못한다. 중심적 지식은 현실적 문제해결력이 취약하다. 반면 변방에서 등장한 지식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세상은 변하고 시대에 따라 직면하는 문제의 성격이 다른데, 과거의 패러다임과 이전의 지식으로 변해버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니 쉽지가 않다. 현실적 문제해결력을 상실할 만큼 지식이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변방적 지식인은 경계인인데, 경계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境界)에 머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경계(儆戒)한다는 의미다. 변방적 지식인은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생각이 옳다는 절대적 신념이 없다. 그렇기에 다른 지식과 쉽게 접속하고 융합한다. 또한 여러 지식의 경계에서 긴장을 견뎌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경계한다. 배우고 익힌 것이 고착되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지를 살핀다. 부와 권력과 결탁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지를 경계한다. 변방적 지식은 권력과의 타협을 통해 중심부로 진입하려는 유혹을 견뎌야 한다. 타협을 통한 유입은 포획이나 마찬가지다. 신선하고 생명력 넘치던 지식은 곧 부와 권력의 향유에 백기를 들고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인문학, 지식에 날개를 달다
지식의 넓이: 창의성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탐색한다. 인생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기를 시도한다. 철학은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는 학문이다. 의심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추구하는 바다. 의심은 창의적 활동의 시작으로, 새로운 해석과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업이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런 가능성과 연관된다. 한편 인문학은 기존의 콘텐츠를 두 가지 방향(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과 지식의 깊이를 더하는 것)으로 증폭시킨다. 그리고 또 인문학은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과 감성을 제공하여,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정신적 풍요: 인문학은 사물을 하나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고 허용한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수용력을 높이며,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가 적고 인간관계가 원만해진다. 또 폭넓은 수용력은 사물을 다르게 보고 연결하는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품격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훨씬 유리한데, 그 중심에 인문학이 있다.
사람을 읽고 변화에 접속하라
변화가 공부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어느새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읽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고정된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공부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변화의 흐름을 알고 그것을 읽는 것이다. 변화가 곧 공부다.
변화와 유니크니스: 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다보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쉽다. 하지만 괜찮다. 정체성이 희미한 사람은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체성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만의 정체성이 없으면 변화를 읽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변화를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 인간일 뿐, 그 속에서 가치를 만들 힘이 없는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만들려면 자기만의 독특함, 유니크니스가 필요하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세상을 읽은 후에는 사람들의 선호가 아닌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유니크니스가 필요하다.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관심 분야,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결과는 열심히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 이해와 실패의 경험이다.
유희형 인간: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제품의 생산단가가 혁신적으로 낮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러면 안정된 수입원을 가진 사람들은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며 여유를 누릴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 중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유희다. 그래서 게임을 비롯한 놀이산업은 미래사회에도 전망이 밝다. 놀이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학습이다. 꼭 뭔가를 해야 하는 학습이 아니라, 세상을 알고 자신을 발견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수단으로서의 학습이다. 물론 앞으로의 학습은 사람이 직접 가르치고 배우는 강의장이 아니라 기계를 통한 접속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사람을 학습해야 한다.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변화를 학습해야 한다. 변화의 이면에 사람이 있다. 사람을 읽으면 변화가 보이고, 변화를 들여다보면 사람이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공부가 접속해야 할 곳이다.
벤치 인사이트를 키워라
메타인지를 키워라
공부에 밀도가 없는 이유: 지식과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가려내는 눈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공부를 많이 해도 그것이 어떻게 문제화되고,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벤치 인사이트(Bench Insight)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학생은 아는 부분은 빨리 넘어가고 모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데, 이런 학생은 고득점을 올린다. 그런데 가끔 중하위권에 머무르던 학생이 갑자기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경우다. 이런 능력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메타인지의 힘: 메타인지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혹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판단할 뿐 아니라, 학습을 실천하고 배움의 방법을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습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며 피드백하는 힘이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자신을 벤치에 앉혀야 한다. 벤치에서 자신의 공부와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 벤치맨이 되어야 메타인지를 얻을 수 있다.
메타인지력 높이기: 어떻게 하면 메타인지력을 키울 수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질문하고 스스로 피드백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나의 판단이 맞는가?’ 이런 질문은 자기성찰과 상황에 대한 주의력을 높여주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알게 되고 자신의 객관적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자기를 알고 상황을 이해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예측해보고 방향을 잡을 힘이 생긴다. 그런데 메타 질문을 하려면 자신을 벤치에 앉혀야 한다. 일에 열중한 상태로, 공부에 몰입한 상태로 메타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 객관화 연습이다. 세 번째 방법은 자극을 주는 멘토를 얻는 것이다. 참고로 그리스 청년들의 멘토였던 소크라테스는 아고라 광장에서 질문을 통해 청년들의 사유를 자극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론이나 사상을 가르치지 않고 철학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런 방법을 통해 제자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 자기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본적 역량, 즉 메타인지였다. 미래의 스승은 정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무지를 깨우치고 생각을 자극하며 벤치 인사이트를 키워주는 멘토여야 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
철학의 이유: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아정체성의 확립이라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자아정체성을 획득하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어 해낼 수 있는 역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아정체성이란 자기 안에 지속적인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자신만의 동일성은 타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수정되고 발달하며, 사회적 현실 안에서 능동적으로 작동한다. 그러자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이해하면서 미래의 모습을 연상하여 일관된 자아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유니크니스를 확립해야 하는데, 이것은 수학이나 영어 공부로는 성취할 수 없는 일이고, 규격화된 도덕인 윤리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학문은 철학뿐이다.
큰 그림 공부: 한 분야에서 중요시하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큰 그림, 벤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그 분야와 시대, 사상의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주장이나 사건만 봐서는 왜 그런 주장을 하고 일들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부는 미시적이기 이전에 거시적이어야 한다. 빅 픽처, 큰 그림을 그리는 공부여야 한다. 성공하는 방법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성공이란 무엇이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 아닌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고, 왜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돈 버는 방법이 아닌 돈 없이도 풍요로운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은 생존과 돈에 집착한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돈에 관한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세상을 배우고 인간을 알 수 있는 공부에 집중한다. 바로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등이다. 이들의 선택 배경에는 세상을 알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큰 그림이 작동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 의학이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연구한다면, 철학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심리학이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발견하려 한다면, 철학은 행복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묻는다. 과학이 화성에 갈 방법을 연구한다면, 철학은 우주의 의미와 화성에 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판단한다. 공학이 원자력을 효율적으로 개발한다면, 철학은 원자력 발전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다른 학문이 발전을 위해 노력할 때 철학은 ‘발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문명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왜 성장인가를 묻는다. 철학은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벤치 인사이트, 간결한 지식이 아름답다
버려야 간결하다: 『21세기 핵심역량』의 저자 버니 트릴링은 급변하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간결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간결함을 가벼운 간결함과 깊은 간결함으로 구분하는데, 가벼운 간결함이란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짧게 말하는 것이고, 깊은 간결함이란 전문지식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가벼운 간결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깊은 간결함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사물의 이치와 기계의 작동원리, 사람의 본성,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단순하고 명쾌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간결한 통찰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버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