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즐기기
닐 포스트먼 지음 | 굿인포메이션
죽도록 즐기기
닐 포스트먼 지음
굿인포메이션 / 2020년 4월 / 272쪽 / 16,800원
제1부
미디어는 메타포다
오늘날 우리는 슬롯머신과 코러스걸의 모양을 본딴 9m 높이의 입간판이 상징하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를 주목해야 한다. 이 도시는 20세기 말 미국의 특징과 열망을 상징하는 메타포와 같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오락과 유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도시이기에, 공공담론조차 하찮은 오락거리로 변질시키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문화의식을 물들인다. 미국의 정치, 종교, 뉴스, 스포츠, 교육과 상거래는 별다른 저항이나 소리 소문 없이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와 유사한 부속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우리들은 죽도록 즐기기 일보 직전에 있다.
나는 의사소통(conversation)이란 용어를 포괄적 은유로 사용하는데, 담화뿐 아니라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기술체계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문화 자체가 의사소통 행위이며, 조금 더 명확하게는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얽히고설킨 관계인 셈이다. 이제 여기서 공공 담론을 표현하는 형식이 어떻게 그 형식 자체로 인해 드러나는 내용을 규제하고 심지어 지시까지 하는지 주목해 보도록 하자. 이해를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27대 대통령으로 다중 턱에 몸무게가 150㎏에 육박하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같은 사람이 요즘 시대에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리라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누구든 글이나 라디오, 연기 신호를 이용해 자신을 알릴 경우 외모가 그 사람의 지성을 가로막는 일은 없지만, 텔레비전에서는 보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150㎏ 가까이 되는 사람이 연설하는 TV 영상은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논리적이고 정신적인 민감성을 쉽게 압도해 버린다. 텔레비전에서는 공공담론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기능하는데, 한마디로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이미지로 말을 건다는 뜻이다. 텔레비전에서 정치철학을 논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의 의사전달 형식은 철학이라는 내용물을 배제시킨다.
이제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20세기 후반 가장 의미심장한 미국의 문화적 사실(활자시대의 쇠퇴와 텔레비전 시대의 부상)에 대한 탐구와 탄식이다. 이러한 주력매체 간 전환은 공공담론의 내용과 의미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극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이 두 매체는 너무도 달라 동일한 사고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활자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정치, 종교, 교육, 그리고 공공 비즈니스를 둘러싼 모든 분야에 걸쳐 그 내용을 텔레비전에 적합하게끔 바꾸고 새롭게 주조(鑄造)해야 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매체는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는 데 있어서 새로운 방향감각을 제시하기 때문에 독특한 담론형식을 만들어낸다. 이는 물론 맥루한이 매체는 메시지라고 말하면서 의미했던 바이다. 그러나 맥루한의 경구 그대로는 메시지와 메타포를 혼동할 수 있기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 메시지는 세상에 대한 한정되고 구체적인 진술을 뜻한다. 그러나 의사전달이 가능한 상징을 포함하여, 우리가 접하는 매체유형은 제한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특정하게 정의하도록 암시를 투사하는 메타포와 같다. 우리가 말을 통하든 아니면 문자나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든, 우리가 접하는 매체가 방출하는 메타포는 세계를 분류하고 계열화하고 틀 지우고 확대하고 축소하고 채색하여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름대로의 인식론을 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은 매체가 개입함으로써 우리가 보거나 알게 될 것을 지정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시계를 힐끗 쳐다볼 때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체계화하고 통제하는지 대체적으로 관심이 없으며, 책, 텔레비전 또는 시계가 어떠한 세계관을 제시하는지에 대해선 더더욱 둔감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20세기 말에 이러한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다. 이 위대한 관찰자 중의 한 사람이 루이스 멈포드였다.
『기술과 문명』에서 멈포드는 14세기 이래 어떻게 시계가 사람들을 ‘시간기록자’에서 ‘시간절약자’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간의 노예’로 이끌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태양과 계절을 무시하는 거만함을 터득해 왔는데, 이는 분과 초 단위로 엮인 세계에서 자연의 권위가 폐기된 탓이다. 멈포드가 지적했듯이, 시계의 발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영원성을 인간 활동의 목적과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똑딱 소리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쏟아낸 모든 논문보다도 신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이는 말하자면 시계는 신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의사소통 형식을 소개한 셈이며, 거기에서 신은 패배해 온 듯하다.
한편 철학은 비평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데, 글쓰기를 통해 생각하는 바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으며 편리하기까지 하다. 글쓰기는 말하기를 동결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법학자, 논리학자, 수사학자, 역사학자를 낳았다. 이들은 모두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지향점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앞에서 언어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부류들이다.
플라톤은 이 모두를 잘 알고 있었는데, 이는 글쓰기를 통해 인간의 언어처리기관이 귀에서 눈으로 이동하는 지각(知覺) 혁명이 도래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그러한 인지 전환을 촉진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자신의 학파에 들어오기 전에 기하학을 익히도록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옳은 판단이었는데, 위대한 문학비평가 노스럽 프라이가 했던 말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기록된 글은 단순한 기억보다 훨씬 강력하다. 기록은 과거를 현재에 재창조하고, 익히 알고 있는 사실뿐 아니라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눈부신 긴장감을 선사한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의사소통 매체에 관해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이 우리 족속 모두가 겪고 있는 글쓰기의 마법에서 전자기술의 마법으로 넘어가는 엄청나고 전율할 만한 전환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글쓰기나 시계와 같은 기술을 문화에 도입하면 시간을 붙들어 매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단순히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은 물론 나아가 문화의 내용까지 변질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매체를 메타포라고 부르는 의미다.
정확히 말하면, 메타포는 어떤 것을 그 밖의 무엇과 비교하여 어떻게 생겼는지 암시한다. 그리고 이런 암시의 힘으로, 메타포는 다른 쪽이 없다면 사람들이 그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도록 고정관념을 머릿속에 침투시킨다. 예컨대 빛은 파동이고, 언어는 나무와 같으며, 신은 지혜로운 성인이며, 마음은 지식에 의해 조명되는 어두운 동굴과 같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타포가 더 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같은 성질을 가진 것으로 이를 대신할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빛은 입자이고, 언어는 강과 같으며, 신은 미분방정식이고, 마음은 가꾸어지길 열망하는 정원과 같다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매체-메타포는 그렇게 분명하지도 않으며 훨씬 복잡하다. 메타포의 은유적 기능을 이해하려면 메타포에 관한 정보의 상징적 형태, 정보의 원천, 정보의 양과 속도 그리고 정보를 경험하는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계는 시간을 독립적이며 수학적으로 정확한 순서로 재창조하고, 글쓰기는 마음을 경험이 기록될 서판으로 재창조하며, 전신은 뉴스를 하나의 상품으로 재창조한다는 식으로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도구에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어떤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탐구는 더 쉬울 것이다.
참고로 갈릴레오가 자연의 언어는 수학으로 기록된다고 말했을 때, 그는 단지 메타포로 표현한 것이다. 자연 그 자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이나 신체, 좀 더 이 책의 핵심에 다가가서 우리 국가도 마찬가지다. 자연이나 우리 자신에 관해 의사소통을 주고받을 때는, 어떤 것이든 간에 사용하기 편하다고 여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자연이나 지성이나 인간욕구나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언어로 드러나는 대로만 본다. 따라서 언어는 우리가 이용하는 매체이고, 언어라는 매체는 우리의 메타포가 되며, 이 메타포가 문화의 내용을 형성한다.
삐까부 세상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2가지 관념(전신과 사진술)이 등장하더니, 이 둘이 융합하면서 20세기 미국의 공공담론을 드러내는 새로운 메타포가 형성되었고, 두 관념이 짝을 이루어 설명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쇼 비즈니스 시대로 들어서는 토대를 놓았다. 먼저, 모르스가 발명한 전신은 주 경계선을 허물고, 지역을 와해시켰으며, 대륙을 한 가닥 정보 배전망으로 휘감아 미국의 담론이 일체화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상당한 대가도 있었다. 모르스조차도 깨닫지 못한 무엇인가가 진행되었기 때문인데, 전신은 정보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깨뜨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공공담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러한 결과를 알아챈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메인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자기 전신기를 가설하기 위해 엄청나게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메인 주와 텍사스 주 간에는 전신으로 주고받아야 할 만큼 중요한 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서양 바다 밑을 뚫어 구세계(유럽)의 소식을 몇 주 빨리 신세계로 가져오려고 안달이 나 있다. 하지만 거기서 흘러나와 토끼처럼 쫑긋 세운 미국인의 귀로 들어갈 첫 번째 뉴스는 에덜레이드 공주가 백일해에 걸렸다는 소식에 불과할 것이다.” 소로우가 옳았음이 밝혀졌다.
소로우가 암시했듯이, 전신은 관련 있는 것들을 관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정보는 이를 접하는 사람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사회적, 지적 상황과는 무관한 정보라는 뜻이다. 도처에 널려 있지만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다는 콜리지의 유명한 글이 탈상황적 정보환경에 대한 메타포로 유용할 듯싶은데, 사실 정보의 바다에서 쓸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메인 주에 있는 사람과 텍사스 주에 있는 사람이 전신으로 대화한다 치더라도, 한쪽 편만 알고 있거나 고민하는 내용을 뉴스처럼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전신으로 전국이 ‘하나의 이웃’으로 바뀐 듯하지만, 실은 서로에 대해 피상적인 사실밖에 모르는 낯선 사람들로 이루어진 괴상한 이웃이었다.
참고로 구두문화나 인쇄문화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전신으로 인해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전신의 시대에 들어서기 전에는 사람들이 접하는 정보는 대체로 특정한 행동을 결정하는 데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나름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즉 행동-가치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신이 빚어낸 정보세계로 인해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감마저 상실해 버렸다.
공공담론에 있어 전신이 기여한 것은 허상을 위장하고 무기력을 증폭시켰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전신으로 인해 공공담론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루이스 멈포드의 표현을 빌자면, 전신으로 인해 시간이 단절되고 주의력이 결핍된 새로운 세계가 조성되었다. 전신의 주된 능력은 정보의 운송량이지 정보를 수집하고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전신은 인쇄술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이제 정확하며 순차적이고 연속적인 인쇄형식은, 지식을 얻고 세계를 이해하는 길이었던 (그동안 누려왔던) 메타포로서의 공명을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했다. 사실을 ‘안다는 것’이 이제는 그 속에 숨은 함의나 배경, 연관성까지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기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르스가 정보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골몰하고 있던 비슷한 시기에, 루이 다게르는 자연의 의미, 나아가 실재 자체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있었다. 1838년에 다게르는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쓴 안내문에 이렇게 표현했다. “다게르의 은판 사진술은 단순히 자연을 그려내는 도구가 아닙니다…. (이 기술은) 자연이 스스로를 재생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합니다.” 다게르가 한 말의 본뜻은, 인쇄기가 기록된 글을 복제하는 장치이듯 자신이 세계 최초로 시각적 경험을 복제하는 장치를 발명했다는 의미였다. 참고로 ‘사진술(Photography)’이라는 명칭은 유명한 천문학자인 존 F. W. 허셸 경이 붙인 이름인데, 문자적으로 ‘빛으로 쓴다’는 뜻을 지닌 색다른 명칭이었다.
그런데 사진으로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은 언어와는 다르다. 언어는 순차적인 서술방식으로 표현할 경우에만 뜻이 통한다. 어떤 낱말이나 문장이 문맥을 벗어나면, 즉 읽거나 듣는 사람이 앞뒤에 읽은 것을 잊어버리면 의미가 왜곡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진의 경우에는 전후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언어와는 달리 맥락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한편 전신기와 마찬가지로, 사진술도 일련의 특이한 사건으로 가득 채워 세계를 재창조한다. 사진의 세계에는 시작과 과정, 종착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전신이 내포하는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세계는 원자 단위로 조각나 있다. 사진의 세계에는 오직 현재만 있기에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이야기의 한 터럭조차 차지할 필요가 없다.
한편 그림은 글에 비해 세 곱절 넘게 오래 되었으며, 의사소통 기술에 있어서 형상의 역할은 19세기에도 곧잘 수용되었다.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새로웠던 사실은, 사진을 비롯한 여타 도해(그림이나 이미지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가 상징 환경 속으로 급격하게 대량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바로, 대니얼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일컬은 ‘그래픽 혁명’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언어에 대해 격렬한 맹공을 퍼부으며, 아무런 제재 없이 미국문화 전반에 퍼지고 있는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이미지 형식(사진, 도표, 인쇄물, 포스터, 그림, 광고)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부어스틴이 말한 ‘그래픽 혁명’이 내포하고 있는 핵심을 드러내기 위해 앞에서 ‘맹공’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이제, 사진을 필두로 한 새로운 이미지 형식은 단순히 언어의 보조수단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을 해석하고 검증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언어를 대치하고자 했다.
참고로 전신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곳으로부터 날아드는 사실(facts)로 가득 찬 바다 속에 사람들을 밀어 넣으려 했다면, 사진은 특유의 방식으로 사방에서 전신을 통해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러한 뉴스거리에 제대로 된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왜냐하면 사진으로 인해 시의성(時宜性)과 무관한 뉴스거리에도 생생한 현실성이 부여되었으며, 뉴스에 비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사진까지 곁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사진은 ‘뉴스기사’가 적어도 사람의 지각(知覺) 경험 혹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오늘의 뉴스’가 필요로 하는 외관상의 배경을 만들었으며, 역으로 ‘오늘의 뉴스’는 사진이 필요로 하는 정황을 만들어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이 같은 전자기술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세상(사건이 눈앞에 나타났다가는 곧바로 사라져버리곤 하는 삐까부 세상, peek-a-boo world)을 출현시켰다. 이는 일관성과 판단력이 결여된 세계이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세계이며, 숨어 있다가 ‘까꿍’하고 아이들을 놀래주는 삐까부 장난처럼 완전히 따로 노는 세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애들의 삐까부 놀이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즐기는 오락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