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유혜선 지음 | 피톤치드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유혜선 지음
피톤치드 / 2020년 1월 / 280쪽 / 16,500원
자아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나는 어떤 얼굴인가?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무척 상냥하고 예의 바른 후배 A가 있다. 고운 미소에 목소리 톤이 밝고 경쾌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 후배에서 호감을 갖는다. 그녀는 무척 매력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엇이든 될 것 같다. 어려울 일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갈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좋은 인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근사한 미사어구로 포장된 화술과 자신의 가면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그녀는 늘 행복하고 유복한 집안의 여인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이혼을 했고 두 딸과 함께 그리 넉넉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과 다르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남자관계도 복잡했다. 그녀의 일관성 없는 말과 행동에 사람들은 지쳤다. 더 이상 그녀를 신뢰하지 않았다. 화려한 미소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났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배신감이 컸다.
그녀는 뭇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사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모임에서 만날 때는 항상 남자가 운전하는 차에서 우아하게 내리는 모습을 연출했고 헤어질 때는 남자가 차를 대기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때마다 남자는 바뀌었다.
해골과 가면의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은 볼 때마다 슬퍼진다.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에서 독특한 비애를 엿볼 수 있다. 벨기에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엔소르는 슬프고 기괴한 가면을 쓴 사람들을 통해서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철학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의 빨간 깃털 모자를 쓴 남자는 온갖 표정의 가면에 포위되어 있다. 그는 마치 예술의 순교자처럼 보인다. 가면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맨얼굴을 드러낸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다. 굳건한 의지가 보이는 눈동자가 왠지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가면을 쓰고 웃거나 울면 좋으련만.
어린 시절 제임스 엔소르의 어머니는 가면을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성을 기대어 온갖 추악한 일을 자행하는 인간의 굴절된 욕망을 보았다. 불안과 공포가 빚어낸 인간의 이중성을 일찍 알아차린 것이다. 엔소르는 가면이 또 다른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칼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적인 관점에 의하면 융은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페르소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 질서, 의무 등을 따르거나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다스리기 위한 가면이다. 즉,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제 타협의 범위가 그다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아 어디까지가 얼굴이고 어디까지가 가면인지 하는 물음이 따라다닌다.
페르소나와 이미지 메이킹: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갈아간다. 근사한 미사어구로 포장된 화술과 자신의 페르소나를 과시하고 가면적인 유희를 즐기며 산다. 이 세상은 카니발처럼 현란하고 기괴한 가면이 넘친다. 현대에서는 이것을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이 세상에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살 수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변하는 마음을 그대로 다 표현한다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다면적 인격의 구성체이기도 하다. 가면은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결핍은 적절하게 가려주는 안정된 방패막이다. 그래서 사람은 가면을 쓰고 가면을 써야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이런 상태를 유지하다 보면 가면을 쓴 모습이 정상이라고 믿게 된다.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가면을 쓸 줄 아는 것도 현대인의 능력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중시하여 ‘중용’이라고 했고 오늘날에는 ‘균형감’이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후배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라하게 벗어던진 가면의 파편들만 주변 사람들에게 남겨놓고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어디에선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진짜 얼굴을 잊고 가면만 보면서 서로를 평가하는 삶이 서글프다.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솔직담백한 관계가 그립다.
독서는 나의 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여자〉 지성과 미모를 갖춘 잘나가는 변호사가 있다. 가끔 방송에도 출연한다. 변호사답게 말도 재치 있게 하고 논리적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멋지게 인생을 사는 똑똑한 커리어 우먼인 그녀는 사법연수원에서 남편을 만나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둔 다둥이 엄마이기도 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 또한 일과 삶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강하다. 그래서 그녀는 근처에 사는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 동시에 며느리로서의 할 일도 미루지 않는다. 계절마다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갔다.
나는 그녀를 세미나에서 만났다. 그녀는 독서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독서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인식과 세상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의 일과 인생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챙길까?’ 하며 감탄했다. 그 비결은 선택과 집중을 잘하고 시간과 인맥 관리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화려한 성공과 수려한 외모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삶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은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려 감옥에 가기도 했다. 네 아이를 낳아 기른 것도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막내를 낳고 몸을 풀고 조리원에 있을 때 큰아이가 고열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단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이겨냈어요?”
그 비결은 독서였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도 그녀는 책을 읽으며 장례식장에서 긴 밤을 보냈다. 남편이 정치적인 사안에 휘말려 억울하게 감옥에 있을 때에도 책을 읽으면서 아픔을 담담하게 견뎌냈다. 응급실에서 아이의 체온이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아픔을 책으로 이기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책의 힘을 믿기 시작한 것은 고시 준비를 하면서다. 우연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프랭클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책을 읽으며 그녀는 현실이 지옥처럼 힘들지만 미래를 바라보면서 닭장 같은 고시원 생활을 견뎠다.
그녀가 틈틈이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차 안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침대 위에서나 언제라도 자투리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게 주변에 책을 두었다. 그 결과 재판을 하거나 방송을 할 때, 고객과 상담을 할 때도 다양한 사례와 폭넓은 경험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할 수 있다. 그녀는 평생 책으로 위로받고 책에서 힘을 얻고 책에서 지혜를 찾으며 자신을 지킨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망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만한 일 앞에서 그녀는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고난 앞에서도 단아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러자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자』가 떠올랐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프라고나르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그림은 당시 이탈리아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에서 나왔다. 그는 종교화나 역사화를 주로 그렸는데 로마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로 달라졌다. 역사화를 버리고 살롱이나 아카데미와는 관계없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분방하면서 쾌활한 관능적 주제를 많이 그렸다. 또한, 로코코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던 루이 15세의 쾌락적인 궁정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760년대 후반이 되면서 프라고나르는 신고전주의 화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책 읽는 여자>를 포함하여 소녀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이러한 초상화 속 여성들은 시, 음악 등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책 읽는 여자>는 은근히 끌린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연약한 소녀의 외양에서 안정된 힘과 은은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노란색으로 부드러움을 준다. 하지만 붓질은 거칠고 대담하다. 책 읽는 여자의 깊은 자존심과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소녀의 옆모습과 쿠션과 책의 삼각형 구도가 안정감 있고 편안하다.
이 안정감과 편안함은 어디서 왔을까? 프라고나르는 어린 처제 마르그리트 제라르를 무척 귀여워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일찍 잃은 처제가 안쓰러웠던 프라고나르는 처제를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다. 또, 어린 처제는 그를 아빠처럼 따랐다. 가족 같은 따뜻한 유대감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프라고나르는 왜 책 읽는 소녀를 그렸을까? 그는 로코코 시대의 대표 화가인 프랑수아 부셰의 지도를 받았다. 부셰는 ‘살롱의 화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 부셰의 지도를 받았다면 프라고나르 역시 우아하고 환상적인 여성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책 읽는 소녀를 그렸다. 지금 시대의 독서는 그다지 특별한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흔한 취미,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로코코 시대의 독서는 지금과 그 무게감이 다르다. 책 읽는 여자란 살롱 문화가 성행하던 로코코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살롱은 귀족 여성들이 독서를 하며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지적 허영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다. 책을 통해서 여자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남성의 전유물인 역사와 정치, 철학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상상력과 지식의 무한한 세계를 자유롭게 오갔다.
닫힌 대중에서 열린 개인으로 강의를 오래 해왔지만 아직도 강단 앞에 서면 긴장한다. 열 명 미만의 소그룹 강의가 더 많이 떨린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춰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마치 열린 개인들 앞에서 나체로 서있는 것 같다. 차라리 다수의 대중이 더 편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대중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 감정적인 부담이 덜한 것 같다. 반면에 개인은 그의 감정이 하나하나의 개체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렵다. 그래서 대규모 인원을 상대로 한 강의가 더 편안하다.
그러나 이제라도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각각의 개인으로 세상과 나를 돌아보려 한다. 그동안 나와의 만남을 미뤄온 탓인지 나를 돌아보려 한다. 그동안 나와의 만남을 미뤄온 탓인지 나를 돌아보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왜 그럴까?
19세기 말 절망과 공포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이 마치 사춘기를 맞은 아이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그린 <사춘기>의 발가벗은 소녀는 앙상한 두 팔, 아직 덜 자란 젖가슴, 겁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한다. 소녀의 눈에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 외로움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아이는 현대인의 황량하고 불안한 내면과 닮았다. 오늘날 문명의 풍요롭고 거대한 울타리를 걷어내면 작고 초라한 개인이 나타난다. 대중 속에 익명으로 있을 때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보이지 않는 감옥: 우리는 왜 불안에 떠는가?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삶을 주도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러한 현상을 ‘시스템에 의한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언어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지배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될 수 없다”는 경영 이론으로 모든 사회적 가치가 획일화되고 표준화됐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관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서 사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물질과 권력은 매우 교묘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우리의 고유성과 개성을 말살했다. 마치 덜 성숙한 뭉크의 사춘기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자본주의는 사상적으로 자연과학적 이성주의와 합리적 사고방식에 의존한다. 철학적 관점으로 따지면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에 가깝다. 철학은 이러한 현상들을 세련되고 논리적인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세상은 보이고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명치에서 꿈틀거리는 본능, 이 주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기존 가치와 기준에 저항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들은 자신만의 삶의 패턴과 색으로 살고자 한다. 어떠한 이성적인 권위에 억압되지 않은 개인으로 살고자 부르짖는다. 문제는 획일화된 가치를 제외한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잃어버린 우리의 고유성과 개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역사와 고전, 자연과 예술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인문학이 다시 떠오른 이유도 그래서다. 잃어버린 고유성과 개성을 찾기 위해서, 딜레마에 빠진 우리의 삶을 구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한다.인생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요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취업 재수생인 C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백 곳 넘게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다. 그의 친구들도 거의 백수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C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이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그와 오래 사귄 여자친구도 같은 생각이다. 각자 부모의 집에서 살면서 가끔 데이트 하고 여행도 다니며 청춘을 즐기고 있다. 결혼이나 내 집 마련, 출산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오늘을 즐길 뿐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경제적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라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가 48.9로 가장 높았다. 의외의 결과다. 실업으로 꿈이 좌절됐을 것이 분명한데 만족이라니. 뒤틀린 사회구조에서 나타나는 묘한 안정감일까?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체념적인 자기만족일까?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니 이 얼마나 우울한 청춘인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다 문득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그림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묻는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출생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고갱은 이 그림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렸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자연은 고갱이 원시의 이상형을 찾기 위해 가정과 문명을 버리고 선택한 남태평양의 타히티다.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누워 있는 아기는 인간의 탄생과 출발을 의미한다. 아기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야 할 고통과 고난의 삶을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