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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이승철 지음 | 행성B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이승철 지음

행성B / 2020년 3월 / 391쪽 / 18,000원



배제 사회 - 너는 이제 투명인간



죽기 전엔 모른 척, 무라하치부


‘무라하치부’는 마을 전체가 특정 구성원이나 가족을 따돌리는 방식으로 징벌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언젠가부터 촌락에서 징벌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그 면면한 전통이 현대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마을의 질서를 깨뜨렸다는 이유로 무라하치부 대상자가 되면 성인식, 결혼식, 출산, 간병, 집의 증개축, 수해 방지, 제사, 여행 등 8가지 일에서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일손이 절실한 전통적 촌락에서 농삿일에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는, 글자 그대로 마을에서 완전히 없는 존재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결정적인 부분은 마을 공동의 산과 임야 등 생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땅의 이용 역시 제한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물도 사용할 수 없어 사실상 거주하는 마을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행위가 제한되는 무서운 처벌이다. 다만 두 가지 경우에는 무라하치부에서 제외된다. ‘사람이 죽었을 때’와 ‘불이 났을 때’이다. 죽은 사람을 방치하면 시신이 부패하면서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불은 다른 집에도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주와 무사, 농민 등 계급 질서가 뚜렷했던 일본의 봉건적 사회 구조에서 마을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에 대한 처벌은 대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유력자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일종의 통치 수단으로서 무라하치부를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고학자인 키요유키 히구치는 저서 『우메보시와 일본도』(2000)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와 이별하거나 불이 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만큼은 모든 마을 사람이 슬픔을 공유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어쩐지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기엔 무라하치부라는 행위가 대상자에게 주는 타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법원 판결이 이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1909년 일본 법원은 무라하치부를 통보하는 행위에 대해 ‘협박’이나 ‘명예 훼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보’라는 형식에 대한 것이지, ‘마을의 집단 이지메’ 행위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다. 무라하치부 ‘행위’를 처벌하기엔 그 대상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탓이다. 실제로 인사를 안 한다거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법적 판단이 미적지근해서였을까? 무라하치부는 태평양전쟁 이후에도 쉽게 근절되지 않고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이어지게 된다.

현대에 들어서도 무라하치부라는 전근대적 유산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04년 니가타현에서는 마을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한 촌민을 대상으로 마을의 유력자가 “따르지 않겠다면 무라하치부를 행하겠다”고 밝힌 뒤 11개 가정에 산나물을 캘 때 사용하는 공용도구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사안은 결국 소송을 제기한 11명에게 220만 엔을 지급하라는 판결로 끝이 난다. 또 2011년에는 효고현에서 휴대전화 중계기지국 설치를 둘러싼 갈등 끝에 일부 마을 주민에게 ‘개인적인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공동절교선언’ 문서가 송부돼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공동 여행 적립금을 일방적으로 해약해버린다든지, 연락을 받을 수 없다고 피하는 등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이지메’나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이 ‘인격권’ 침해라는 점을 명시해 개인의 인격에 대한 공격임을 판단한 것은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국민이 ‘집단의식’이 강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집단에서의 이탈은 곧 사회적 존립 근거를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선택이라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잠재의식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무라하치부’는 그 단초를 보여준다.

집단 사회 - 암묵적 룰입니다



정한 사람은 없어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암묵적 룰


드라마는 키코가 매회 구청에 찾아가 아이를 언제쯤 공식 인가 보육원에 보낼 수 있을지 구청 직원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매번 듣는 건 ‘대기 순번이 몇 번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뿐이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유명 사립유치원의 원장은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그녀에게서 뭔가 새로움을 느끼고는 아이의 입학을 권유하는데….

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요지경 세상은 아무리 씩씩한 키코라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엄마들 사이엔 이미 계급이 나눠진 듯, 모임에서 앉는 자리마저 정해져 있고 지켜야 할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고… 도저히 적응 안 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찬 이 엄마가 이상하다며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날아오는 한마디가 “암묵적 룰입니다”다.

2015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마더 게임: 그들만의 계급〉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다. 드라마야 예상대로 순수한 싱글맘이 좌충우동 불합리한 룰들을 깨나간다는 줄거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과 함께 틀에 갇혀 있던 엄마들이 함께 성장하는 드라마라는 평도 있다.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깨지지 않는 불합리한 룰’, 즉 ‘암묵적 룰’의 경우 일본에선 단순히 드라마 속 이상한 유치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포털 사이트에서 ‘입학식’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복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어야 하는 복장에 대한 ‘룰’을 보면 “검은색이나 짙은 감색 등 어두운 색은 피하고, 되도록 밝은 색의 정장 스타일 옷을 입는다”는 식이다.

‘암묵적 룰’이니 지키지 않는다고 대놓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다들 그러는데 나만 안 그러기도 참 힘든 사회가 일본이다. 그래서 인터넷상에는 ‘입학식 옷’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만들어져 있어 정장 세트를 판매하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입학식 옷을 어떻게 마련할까 부담스러워 하는 고민들도 터져 나온다.

이는 학부모들만 하는 고민이 아니다. 신입 사원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면접 복장이 룰처럼 정해져 있다. 남성은 어두운 색 양복, 여성도 비슷한 색의 재킷과 치마를 갖춰 입은 정장 스타일이다. 입사한 후에도 이 같은 복장을 한동안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봄 입사 시즌이 되면 삼삼오오 거리를 오가는 20대들의 옷차림만 보고도 “아… 신입 사원들이구나” 하고 생각할 지경이다.

억압 사회 - 일본의 감정선이 위험하다



나는 때릴 권리가 있다, 아동학대


규정되지는 않았으나 상식보다 자발적 강제성을 더욱 요구하는 여러 가지 룰을 준수해야 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개인을 위축시키는 ‘억압 사회’적 특징을 낳는다. 억압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평소에는 일견 질서정연한 틀을 갖춘 집단의 모습을 보이지만 소속된 개인이 그 준거틀을 벗어나 개인성을 분출할 때 상당한 이상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폭력적 성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보다 약한 이를 향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성(性) 의식 또한 왜곡돼 나타난다.

2019년 1월 지바현의 한 주택 욕실에서 10살짜리 소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름은 미아, 온몸에 멍투성이었다. 범인은 아버지였다. 숨진 당일 오전부터 가정교육을 한다며 아이를 세워놓고 폭행했고, 숨지기 전에는 한겨울임에도 찬물로 샤워까지 시켰다.

일본 사회에 보다 큰 충격을 안긴 것은 미아가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 학교 조사에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어요. 한밤중에 일어나 발로 차거나 손으로 때립니다. 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라고 적은 설문지를 내는 등 피해를 호소해왔음에도 결국 아버지 손에 숨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격리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끝내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낸 비극적인 사건이다.

게다가 이를 전후해 일본에서는 심각한 아동학대로 인한 어린이 사망사건이 잇따르면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7년도 아동상담소가 대응한 아동학대 건수는 약 13만 건이다. 10년 사이 3.3배가 급증한 수치다. 또 다른 수치도 있다. 2018년 일본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로 ‘경찰 보호’ 조치한 어린이 수가 4571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7년보다 16퍼센트, 733명 늘어난 수치다. 파악되지 않은 아동학대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사망에 이르는 학대 상황이 연간 수십 건씩 발생하는 원인으로 비뚤어진 훈육관이 꼽히기도 한다. 미아를 학대한 경우도 아이의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가 따라 붙었는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엄마와 내연남이 훈육을 이유로 8살 여자아이의 손과 발을 끈으로 묶어 방치하고 심지어 이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한 사건도 있었다. 일본 사회의 억압적 성격이 자녀에 대한 강압적 훈육으로 변질됐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 집안에서 본인이 받았던 강압적 교육이 자녀에게 전이됐을 가능성이 크고, 몸에 익어 있는 ‘룰’을 따르는 순종적 생활 태도 때문에 표출되지 못하던 억눌린 감정이 자신에게 저항할 수 없는 대상인 아이에게 ‘학대’라는 방식으로 폭발했을 수도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본은 2019년 6월,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의 아동학대방지법 등의 개정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체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제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 재팬’의 조사에서 일본 성인의 60퍼센트가 체벌을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32퍼센트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을 내놓았다. 특히 보수적인 자민당 내에서는 징계권에 손대는 것 자체에 대한 신중한 입장이 강한 편이다. 자기 속박 사회 - 변하지 못하는 나라



과로사보다 무서운 과로 자살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라면 역시 ‘잘 변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변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크지 않고, 한번 자리를 잡으면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는 사회다. 이러한 속성이 오래된 전통을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예를 보자. 도쿄대를 졸업한 다카하시 마츠리는 2014년 일본 최고의 광고 회사 ‘덴쓰’에 입사한다. 큰 회사에 입사했지만 다카하시가 트위터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들을 보면, 그녀의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근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정을 하고, 정말 죽어버리고 싶어.”(2015년 11월 5일) “하루 20시간인가 회사에 있으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 건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2015년 12월 18일)’

두 달 동안 힘들다는 트윗을 50개 이상 발신한 그녀였다. 그리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 결국 다카하시는 사원 주택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 결과 드러난 다카하시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10월에는 130시간, 11월에는 99시간을 초과근무 해, 과로사 기준이라고 하는 ‘월(月) 잔업 80시간’을 매달 훌쩍 넘겼다. 그리고 근무시간을 축소 신고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한 법정 공방을 거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개월이 지난 뒤, 그녀의 자살이 ‘업무상재해’, 즉 ‘과로 자살’로 인정받으면서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도쿄대를 나온 엘리트 여사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본의 기업문화에 대해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문제를 지적하고, 덴쓰의 노동 실태에 대해 전격 조사도 실시됐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2014년 ‘과로사 등 방지 추진법’에 ‘과로 자살’을 따로 규정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카하시의 어머니는 수기를 통해 “회사를 그만두라고 좀 더 강하게 얘기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그만둠’이라는 높은 벽을 본인은 넘기 힘들었고, 결국 일을 그만두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일을 그만두지 못해 ‘자살한다’는 역설에 이르고 마는 상황, 일에 치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다. 그 구조에 저항할 힘조차 자기 속박 상태에 빠진 개인에게는 없다.

함몰 사회 - 반전의 기회가 없다



어른이 되기 싫어요, 반경 1미터 세대


일본에서는 1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성인의 날’로 정해, 만 20세를 맞이해 새롭게 어른이 되는 젊은이들을 성대하게 축하한다. 이때 성년이 된 여성들이 성인식을 기념해 입는 복장이 후리소데다. 후리소데는 기모노의 일종인데, 사실 이날 한 차례를 빼고는 입을 일이 별로 없어 사기보다는 빌려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대개는 최저 5만 엔(약 50만 원)에서 10만 엔(약 100만 원) 정도를 줘야 한다. 여기에 당일 성인의 날을 기념한 촬영 비용 등까지 포함하면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을 훌쩍 넘는 것이 ‘렌탈 후리소데 세트 상품’ 가격이다.

성인식에 일본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재단이 2019년 전국 17~19세의 남녀 800명을 조사한 결과 “성인식이 공식 행사로서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69.8퍼센트, 즉 10명 중 7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이 되는 선언을 빨리 하는 게 싫다는 조사 결과도 함께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일본 민법이 개정돼 성인으로 인정하는 나이를 20세에서 18세로 낮추면서 성인식을 과연 몇 살에 맞춰 치러야 하는지의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토록 성인식을 중요시하는 일본 젊은이들이기에 당연히 성인식도 빨리하자고 할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래도 성인식은 18세가 아닌 20세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성인이 되기 위한 여러 준비 과정에 있는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 고민이 겹치는 시기에 성인식까지 앞당겨 치르기 싫다는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성인식에 들이는 여러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더더욱 그렇다. 일본 젊은이들이 이렇게 앞으로 남은 시간을 걱정하는 건, 이들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 안으로만 극히 파고드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고,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 ‘디플레이션 세대’라고도 불리는 일본 젊은이들은 모든 면에서 뭔가를 바꾸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세대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 2013년 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오른 ‘사토리 세대’다. ‘사토리’는 원래는 불교용어로 ‘깨달음’, ‘득도’, ‘달관’을 뜻하는 말이지만, 무엇에도 욕심이 없어 적극적이지 않고,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일본 젊은 세대의 특징을 표상하는 단어로 곧잘 쓰인다.

일본 청년들의 ‘보수성’ 내지 ‘자기 안착성’은 기본적으로 긴 기간 동안 불황을 겪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즉, 앞으로 소득이 늘 것이라는 확신이 약해 긴축적 성향이 강하고, 이러한 성향이 변화를 지양하면서 내 주변과 테두리 내에서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쪽으로 맞춰졌다는 이야기다. 이들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동차를 사지 않는 경향이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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