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지음 | 페이스메이커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지음
페이스메이커 / 2020년 3월 / 239쪽 / 16,000원
악성 베토벤, 모두를 하나로 만들다
왜 지금 베토벤인가흔히 클래식 음악을 지루하거나 고지식하며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레스토랑이나 공공장소,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듣는 배경음악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클래식이 단순한 클래식(classic), 즉 고전음악이 아닌 ‘위대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클래식이라는 말이 지닌 ‘고전(古典)’이라는 뜻이 모순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베토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는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고지식한 음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극단적인 감정 표현과 대규모의 스케일을 도입해 고전을 깨트린 작곡가다.
“더 위대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어길 수 없는 규칙은 없다.”라고 말한 악성 베토벤은 음악 작곡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뛰어난 발상으로 자신의 곡에 혁명적인 정신을 불어넣었다. 예로 1803년 작곡된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 ‘교향곡 제3번 E플랫장조 Op.55’ 〈영웅〉은 대단히 파격적인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기존 교향곡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전개부의 1악장과 장례식 때 연주되는 장송 행진곡을 도입한 2악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이처럼 평생에 걸쳐 혁신적인 행보를 이어온 자신을 두고 ‘고전 작곡가’라고 칭한다는 것을 안다면, 베토벤의 성격상 무덤에서 벌떡 뛰쳐나와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 클래식: 바흐, 모차르트, 쇼팽 등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은 소리의 과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 시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비교를 초월한 대표적인 음악이라는 뜻에서 클래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한편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자. 정열이 가득한 눈에 회오리치고 있는 듯한 머리카락,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듯 야무지게 다물고 있는 입술. 이는 우리가 흔히 베토벤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나는 이 초상화가 베토벤을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든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 특별한 음악가란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와 달리 베토벤은 생전에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특권 의식에 반발한 인간적인 베토벤: 베토벤은 인간 평등 사상의 기치 아래 귀족의 특권 의식에 큰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눈앞에서 황족이 지나가도 모자를 벗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어 함께 있던 괴테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특권층의 후원으로 먹고 사는 음악가로서는 용기 있는 처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한창 전쟁터에서 맹위를 떨칠 무렵, 악보 표지에 나폴레옹의 성 ‘보나파르트(Bonaparte)’를 적어 그에게 곡을 헌정하려 했었다.
하지만 평등의 기치를 중시한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군림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헌정을 철회했고, 최종적으로 교향곡의 이름은 에로이카(Eroica), 즉 〈영웅〉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쿠프너가 베토벤에게 “교향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제3번이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가 ‘교향곡 제3번 E플랫장조 Op.55’〈영웅〉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폴레옹에게 이 곡을 선물하려 한 이유는 황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프랑스의 자유ㆍ평등ㆍ박애 정신을 구현해줄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 베토벤은 단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위대한 소리의 과학을 통해 악보에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니 베토벤을 신격화해 거리감을 두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했던 그의 음악을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향유하는 엄격하고 딱딱한 고급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일만큼 모순적인 것도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장 현실적인 현대 음악이자 인류의 유산인 클래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베토벤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그를 딱딱한 가상의 인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심장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음악의 힘으로 절망을 뛰어넘다1798년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긴 베토벤은 1810년 무렵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막 빈에 정착한 젊은 음악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극심한 고독감을 느꼈고 유서를 쓰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삶을 지탱해준 희망은 역시나 음악이었다. 그는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내 목숨을 끊어버릴 뻔했다. 그것을 제지해준 것은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에게 맡겨졌다고 느끼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비참한 생명을 부지하기로 했다.’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베토벤은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창작욕을 활활 불태웠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모든 이가 한자리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수십 수백 명이 아닌 몇 천 명, 많게는 몇 만 명이 함께 모여 기적을 실현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연주회장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음악의 힘: 연주회장이라는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음악으로써 감정을 공유한다. 수백 년 전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러시아ㆍ영국 등 지구 곳곳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심장 안에 요동치고 있었을 감응은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음악을 통해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한마음, 한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베토벤은 청각을 완전히 잃은 뒤에도 음악을 통해 그러한 기적을 체험했다. 1824년 5월 7일, 빈에서〈합창〉교향곡의 지휘를 마친 베토벤은 마지막 4악장이 끝난 후에도 청중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킨 채 서 있었다. 당시 주변에 있던 동료가 베토벤을 부축해 돌려세웠고 환호하는 청중을 본 뒤에야 그는 비로소 눈물을 쏟으며 감격했다고 한다. 기적의 힘이 청각을 잃은 베토벤에서 청중에게로, 그리고 다시 청중에서 베토벤에게로 전해진 것이다.
음악을 음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함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음악을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각자 내면의 소리, 즉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는 강렬하게 울리는 어떤 파장 같은 것이 생긴다. 연주회는 이런 기적을 실현시키는 장소다. 나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하고자 모든 것을 바친다. 한 사람에겐 2시간이지만 2천 명 청중의 시간을 모으면 4천 시간이 된다. 연주자인 나의 몫은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 순간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에 입장하기 전 나는 관객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이 전개되며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호흡한다. 음악에는 작곡가의 숨결이 담겨 있으며 나 자신과 당신, 우리 모두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운명을 극복하고 음악의 틀을 깨다
운명과의 사투를 작품에 담아내다베토벤은 엄청난 메모광이었다. 훗날 그의 자필 메모를 팔아 큰 돈을 번 사람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어디에든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심지어 자주 가던 식당의 벽지나 문짝 등에도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쓰는 양에 비해 글씨를 잘 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악필로 유명한 베토벤의 메모를 도통 해석하지 못해 수많은 연구가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자필 악보에도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한편 베토벤의 노트와 편지, 음악을 살펴보면, 운명과의 투쟁, 그리고 운명에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하물며 베토벤의 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멜로디 “따다다단-”으로 시작하는 교향곡 역시 〈운명〉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주어진 운명에 끝없이 투쟁한 삶: 〈운명〉교향곡의 “따다다단-”이라는 음률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 느껴지는 운명의 힘이 곡 안에 폭발하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5번 c단조 Op.67’ 〈운명〉을 작곡할 때 베토벤이 느끼고 활용했을 모티프(예술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사상)가 바로 운명과의 투쟁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들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 베토벤은, 그 처절하고 고독한 전투 과정을 피아노 소나타에 분출했다. 스승이자 멘토인 하이든에게 헌정했던 ‘피아노 소나타 제1번 f단조 Op.2’ 1악장에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전사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제1번 f단조 Op.2’를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으로 출판하면서, 즉흥 연주자나 비르투오소(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가 아닌 작곡가로서 자신을 세상에 당당히 내보였다. 초기 작품임에도 명백히 베토벤적인 특징을 지닌 이 작품은 그를 앞섰던 선배들과 필적할 정도로 놀라운 음악적 포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곡은 베토벤이 시골을 벗어나 음악의 중심지인 빈에 도착한 지 3년이 지난 후에 작곡한 작품으로, 젊은 작곡가의 독창성과 운명과의 사투, 그에 대한 집착이 권력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로 표현되었다.
생애 마지막 소나타: 베토벤의 생애 마지막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제32번 c단조 Op.111’은 불가사의한 운명에 관한 해답이자 의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다. 그를 평생 동안 몰아붙였던 비극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지혜로 통하는 길을 보여준다. 비록 2개의 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베토벤의 삶을 응축시켜 승화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운명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협적이고 극적이며, 1악장에서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20대 첫 소나타에서의 도전은 운명을 지배하기 위한 전투로 반항적인 분위기였지만, 생애 마지막 소나타에서 나타나는 이 최후의 도전은 결국 승리보다 더 승화한 평화로 막을 내린다.
이어지는 마지막 2악장에서 베토벤은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던 일종의 신성(神性)과의 결합으로 들어선다. 2악장 악보에는 ‘아리에타(짧은 아리아): 아주 느리게, 단순한 마음으로 노래하듯(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명상적인 분위기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천상적인 분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마침내 적멸(寂滅), 즉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아무튼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비교해 들어보면, 간접적으로 그가 어떤 투쟁을 해왔고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음악가가 나아가야 할 길오늘날의 음악가들은 과연 베토벤처럼 자신의 영혼을 예술로 잘 표현하고 있을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지닌 예술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가들이 많아야 청중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콩쿠르에 입상하거나, 입시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억누른 채 연주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딴, 그들이 살아생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입시 시험 등에서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만의 개성은 뒤로 제쳐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맞는 길일까? 평론가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개성을 마음껏 펼친 베토벤의 음악을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주해야 할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나보다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면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좋겠다.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을 절대적으로 창조했고, 절대적으로 사랑했으며,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자유의 권리를 확실하게 선택했고 누렸다. 과거의 유산을 습득하고 존중하되 고정관념과 관습을 뒤흔드는 데 두려움이 없었으며, 이러한 자세를 바탕으로 혁신하고 창조하며 도약을 이루었다. 버림받고 비판받을지언정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환호가 뒤따른 것이다.
개성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예술인이 개성을 찾고자 시도한다면 ‘위험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사실 일부러 개성을 추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성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나만의 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나 자신이 온전히 표현될 때 다른 이들에게 개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유일한 존재인데, 그것을 벗어나 무언가 다른 개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청중은 알고 느낀다. 고유한 본질은 마음의 진동으로 느껴진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표현할 때 청중도 깊이 감응할 수 있다.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영’과 경험으로 생성된 ‘혼’을 솔직하게 표현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그 숭고한 영은 우리의 원천지인 본질이다. 그렇게 작곡가와 연주자의 영은 하나가 된다.
자신의 본질이 중요하다: 관습의 틀을 깨고, 평론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던 베토벤처럼 자신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라며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을 설득하려 하지 말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심으로 느끼는 바는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기운이 나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된다.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자기 자신부터 먼저 스스로를 제대로 알고 사랑해야 다른 이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다. 자신의 마음부터 우선 존중한 다음에 작곡가의 의도를 공부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예술인을 평가할 때는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가 최선을 다했는지,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탐구하고 파고 들어갔는지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취향을 떠나서 진심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다.
연주자들은 종종 ‘베토벤 스타일’답게 연주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러한 요구가 당황스러운 이유는 ‘과연 베토벤 본인은 베토벤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았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어떻게 베토벤 자신도 모르는 ‘베토벤적인’ 스타일을 운운할 수 있을까? 베토벤은 그저 그였을 따름이고, 그가 음악을 추구한 이유 역시 영혼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음악을 통해 자유로움의 가치를 선사하지 않았는가? 연주자는 연주에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의 작업을 이어간다. 즉, 훌륭한 연주자는 타성에 젖지 말고 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안녕, 베토벤 - 이루지 못한 사랑] 베토벤은 음악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사랑은 이루지 못했다.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사후 서랍에서 발견된 익명의 여인을 향해 쓴 편지, 일명 ‘불멸의 연인’을 향한 편지가 유명해지면서 그 수신인이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베토벤의 친구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그는 대체로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마음속에 항상 누군가를 품고 있었으면서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는 신분의 한계와 귓병, 높은 눈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가난하고 성격도 괴팍한데 눈까지 높아 연애는 가능해도 결혼까지는 어려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