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일까?
게오르크 롤로스 지음 | 나무생각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일까?
게오르크 롤로스 지음
나무생각 / 2020년 02월 / 292쪽 / 14,800원
주의와 믿음
에고의 방들 의식이 평화와 고요로 가득한 광활한 우주라고 상상해보자. 단, 그 안에는 와글와글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나오는 커다란 집이 한 채 서 있다. 이 집에 있는 방들에 당신의 힘든 감정 상태가 ‘기거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당신 자신도 이 집에 체류한다. 때로는 집 앞의 고요한 정원을 거닐기도 한다. 그럴 때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다. 하지만 대지 바깥쪽으로 더 걸어 나와 의식의 고요한 지평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힘든 감정들은 각각의 방에 들어가 있고 그 방을 떠나지 않는다. 당신이 그 방들을 찾아간다. 각각의 방에는 그 방 특유의 분위기와 정서가 지배한다. 어느 방에 들어가면, 당신의 관점은 갑자기 달라진다. 각 방의 공기를 흡입하는 순간 마치 오디오 기기와 연결된 스피커처럼 곧장 내면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감정은 곧장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 방을 지배하는 감정 상태가 자신에게로 옮겨오는 것이다.
가령 ‘열등감’이 사는 방문턱을 넘으면, 우리는 열등감의 상태가 주는 진동과 기운에 휩싸인다. 당신의 관점과 감정은 곧장 그 분위기에 동화된다. 호흡하는 공기가 열등감에 절어 있으므로 당신도 어쩔 수 없이 열등감을 느낀다.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방에 머무르는 동안 이 감정 상태와 동일시가 이루어진다. 어떤 방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즉 어떤 분위기를 호흡하고 어떤 진동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전반적인 정서 상태와 삶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이 집에는 총 열 개의 방이 있다. ‘열등감’도 그중 하나다. 어느 방에 들어가든지 당신은 괴롭다. 이 모든 의식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고 균형이 무너진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집을 ‘에고(자아)’라고도 부를 수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 에고의 집을 벗어나야만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당신은 에고의 집 앞 정원에서 유쾌한 감정을 경험하거나 에고의 집을 완전히 벗어나 평화롭고 넓은 의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본연의 상태다.
자신을 생각이나 에고와 동일시하기 전, 어릴 적 경험했던 바로 그 상태다. 천진하고 고요한 눈빛을 가진 어린아이를 관찰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이것은 깨달은 자들의 상태다. 그래서 예수도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고의 집을 완전히 벗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 집에 있는 방들을 배회하거나, 최소한 열 개의 방 중 한 방의 문턱에 서서 기웃거린다. 그런 다음 특정한 생각에 주의를 집중시키면, 이제 특정한 감정 상태로 발을 들이게 된다. 생각들은 늘 존재한다. 이성이 계속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의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뜀뛰기를 한다. 주의는 당신의 정찰병이다. 주의를 통해 당신은 의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하지만 생각이 많으므로, 당신은 크게 주목하지 않고 대부분의 생각을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어떤 생각들은 정찰병의 관심을 일깨운다. 그러면 주의력이 그 생각에 집중된다.
통제의 방
통제의 방에 어떻게 빠져들까 통제를 한다는 것은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조심한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또한 걱정을 하다 보니 자신과 타인에게 높은 요구를 한다. 성과와 결과가 중시되고, 실패나 약함은 용인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몰아간다.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 정신을 다잡아야 하기에 내면은 무척 곤고해진다. 배경으로 들리는 노래 가사는 “난 해야 해!”라는 후렴구다.
통제의 방에서 우리의 신경은 모든 일이 잘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중된다. 계속해서 책임감이 몰려오고 뭔가를 그르칠까 두렵다. 모든 일이 잘되어야 하고, 더 좋게는 완벽해져야 한다. 당신은 자기가 아니면, 혹은 자신이 잘해내지 못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통제의 방에 있는 사람은 늘 카페인 음료를 달고 산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꼬리를 무는 걱정을 가라앉히고 잠을 청하기 위해 술이나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통제의 방은 보통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깔끔하다. 이런 방에서는 내려놓거나 놓아버리기가 쉽지 않다.
통제의 방은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통제의 방을 에고의 집 중심 공간으로 이용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일종의 안전한 항구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다른 방들과는 달리 통제의 방에는 일부러 의도적으로 들어간다. 통제를 중단하고 다른 방으로 빠져 들어가면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제를 그만두면 죄책감이나 열등감, 무기력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 비하면 통제의 방은 여전히 괜찮은 대안으로 보인다.
통제는 온갖 것들에 집중될 수 있다. 통제의 방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상상한다. 이 방에서 사람들은 흔히 걱정하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 재정적으로 힘들어질까 봐 걱정한다. 이것은 아주 흔한 걱정이다. 재정적으로 힘들어져서 그동안 해왔던 좋은 습관들을 포기해야 할까 봐, 이런저런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할까 봐, 생계가 어려워질까 봐 걱정한다.▶ 질병, 사고, 명예, 실추, 화재, 전쟁, 경제 위기 등 자신이 통제력을 상실하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한다.▶ 외로워질까 봐 걱정한다.
▶ 사랑받지 못할까 봐, 나쁜 평판을 들을까 봐 걱정한다.
당신을 통제의 방에 붙잡아두기 위해 이성은 세 종류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내면의 감독, 내면의 완벽주의자, 내면의 비판자 목소리다. 내면의 감독은 당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닦달한다. “정신 차려! 얼른 하란 말이야! 당장 해야 해!” 완벽주의자는 모든 사항을 꼼꼼히 체크한다. “제대로 한 거야? 잊은 것 없어? 이걸로 충분해?” 내면의 비판자는 당신이 스스로 정한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마다 다그친다. “그렇게 해서 되겠어? 또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잖아. 정말 한심하다.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통제의 방에 오래 머무르면 만성 스트레스와 관련된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번아웃, 심혈관 질환, 공황장애, 위장장애, 편두통, 불면증…. 이 방에서는 통제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정신신체의학 클리닉에 가면 혹사를 당한 신체와 정신이 반란을 일으켜 억지로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늦어도 그쯤 되면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임을,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상황 자체가 내려놓고 내맡기게 만든다.
통제의 방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고, 모든 걸 어둡게 그린다. 생각해보면 잘못된 것투성이다. 온갖 것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다 보니 걱정이 산더미 같고 지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좌절이 찾아온다. 통제해야 할 것들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걱정,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온다. 직장 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모나의 이야기는 통제가 전형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공중에 늘 여러 개의 공을 띄워놓고 돌리다시피 해요. ‘오늘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뭐지?’ 하다가도 ‘가만, 손님 초대를 했는데 식사를 허술하게 준비하면 안 되잖아. 뭘 구입해야 할까?’ 하지요. 그러다 보니 늘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해요. 상체에서 긴장이 느껴지지요. 어깨를 편안하게 늘어뜨리지 못하고 늘 치켜 올리고 있는 편이에요. 호흡도 얕게 하고요. 정말 안 좋을 땐 편두통이 찾아와요.
나는 시종일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다 보면, 잘못될 수 있는 일들이 떠올라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요. 종종 힘에 부치게 일을 해내려 하고,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헉헉댈 수밖에 없지요. 결국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하겠다고 했던 일, 하려고 했던 일을 다 계획대로 해야 해요. 목록에 16개를 써놓고 14개만 한 경우에는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나요.”
모나의 발언 중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통제의 방에 머무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통제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우리의 마음은 미래로 간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고 걱정한다. 걱정은 언제나 상상이다. 최악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은 환상의 나래를 펴고 끔찍한 장면을 그린다. 이런 시나리오가 당신을 걱정하게 만들며,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지금 여기, 즉 현재의 삶을 떠나게 한다. 현실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 여기만이 현실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머릿속 영상이다. 순전히 상상이며 환상이다.
통제의 방에서 빠져나오기 통제의 방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인간 정신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또한 통제의 두 가지 형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형식은 곡예사가 공을 통제하고, 음악가가 음악을 통제하고, 무용수가 신체를 통제하고, 당신이 직업적인 일을 통제하는 식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통제를 행한다. 이것은 정상이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제 행위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설 때, 더 이상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고, 압박을 받으며 억지로 통제를 할 때는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서 통제의 방에 붙들려 더 이상 넓은 의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신체만 주의 깊게 관찰해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인생에서 정말 많은 것이 우리의 통제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몸은 묻지도 않고 늙어간다. 우리는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세포분열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들도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다.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조차 통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생각들이 미처 초대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도착한다. 따라서 통제의 방을 빠져나오기 위한 열쇠는 바로 ‘내려놓음’과 ‘내맡김’이다. 일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지금 여기’로 돌아와 편안할 수 있다.
결핍의 방
결핍의 방에 어떻게 빠져들까 에고의 집에 있는 두 방에서 결핍감을 강하게 느끼는데, 바로 열등감의 방과 이곳 결핍의 방이다. 그런데 스스로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내면이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열등감과 달리, 결핍의 방에서의 부족은 항상 외적인 것과 관계있다. 이 방에서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좋은 배우자, 자녀, 더 많은 돈, 성공, 더 좋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승진하고, 인정과 존경을 받고, 더 젊어 보이고, 더 건강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특정한 행동을 해주거나 특정한 태도를 보여주길 바랄 수도 있다.
결핍의 방에 있는 사람은 관용을 보이고 참을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필요를 곧장 충족시키려 한다. 또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그다지 잘하지 못한다. 뭔가가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상처받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좌절하고, 의심한다. 모든 것을 무지막지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복수를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복수를 진짜로 실행에 옮긴다. 이런 방에서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이 매우 제약되고, 주로 자기 자신에게만 연민을 느낀다. 그렇다. 여기서는 극도로 어린애 같은 상태가 된다. “나, 나, 나!”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간다.
집단적인 결핍감: 늘 불평하고 한탄하면 장기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떠나간다. 하지만 종종 이런 불편과 탄식에 함께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이들은 이제 함께 자신들의 시각을 공유하고, 확인하고, 서로 부추겨서 결핍의 상태에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이 방을 떠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결핍의 방에 집단적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자체의 동력이 생겨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다. 에고의 집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은 결핍의 방, 오만의 방, 저항의 방이다. 이 세 가지 상태에서는 항상 외부에 적이 있다. 결핍 상태에 집단적으로 들어가면 ‘우리 vs 다른 사람들’의 구도가 빚어진다.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오만과 결핍 상태의 상호 작용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뒤, 열강은 베르사유조약에서 독일에 높은 배상금을 부과했다. 그 외에 독일은 상당한 영토를 잃었고, 군비를 대폭 제한해야 했다. 국가사회주의자(나치)들은 이런 조건을 상당히 치욕스럽게 여겼다. 그리하여 공격적이고 지속적인 ‘불평 선동(결핍 상태)’을 통해 점점 더 사회 여론을 악화시켰다.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나치의 논리에 따라 결핍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밖에 나치들은 스스로를 다른 민족, 다른 국가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오만의 방).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도 받아들여, 이제 독일 국민의 상당수가 두 방으로 입장했다. 그리하여 오만과 결핍의 상태 속에서 20세기의 최악의 불행으로 치달았다.
결핍의 방에서 빠져나오기 결핍의 방에서 빠져나오려면 마음 챙김의 4단계가 필요하다. 특히, 3단계가 중요하다.
1.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2.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다정하게 지각하기
3.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4.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음챙김 3단계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마자 지각은 자동으로 변화한다. 외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특정 감정 상태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다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실패, 상실, 질병을 경험할지라도 한 사람은 낙담하고, 한 사람은 내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주변 상황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내게 닥친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내 생각이 문제다.
결핍의 방을 떠나기 위한 비결은 바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평을 중단하고 상황에 YES를 하라. 플럼 빌리지에 체류하는 모든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는 것을 훈련한다. 날씨에 대해, 음식에 대해, 공동체 사람들에 대해, 기타 다른 것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것! 이제 나는 분주하거나, 시끄럽거나, 춥거나 더운 환경에 들어갔을 때 그런 상황을 내적으로 거부하거나 탄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과 투쟁하면 에너지만 빼앗길 따름이다.
내면의 아이를 다루기 위한 작업: 내면의 아이를 다루기 위한 작업은 명상이다. 혼자 할 수도 있고, 해당 경험으로 인도해주는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서 할 수도 있다. 힘든 감정 상태와 강하게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고, 거리를 두는 것이 불가능한 경험을 했다면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