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감사함 수업
양경윤 지음 | 메이트북스
초등 감사함 수업
양경윤 지음
메이트북스 / 2020년 3월 / 263쪽 / 15,000원
시크릿 1 ‘감사함’으로 자녀의 사이즈를 키워라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size up 기본 사이즈의 변화: 제가 단골로 가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주문했습니다. 잔의 크기가 예전과 달리 tall size(기본)가 아니라 venti size(대용량)로 주는 것이었습니다. 매장 내에서는 커피 리필을 해줄 수 있지만 테이크아웃하는 분은 리필이 불가능하니 서비스 차원에서 사이즈를 업해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모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처음부터 기본 사이즈의 2배가 되는 용량이 venti size를 기본으로 책정하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사이즈업을 해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은 너무 좋다는 반응이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양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작은 사이즈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큰 사이즈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큰 사이즈에 적응되어 있었다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겠지요.
size up을 위해 필요한 것: 기본 사이즈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분명 판매자에 의해서 적정한 수익에 맞는 사이즈를 정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기본 사이즈가 변하게 된 것일까요? 경쟁업체가 많아지면서 판매전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빅사이즈가 기본 사이즈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인 겁니다. 단지 그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커피 말고 우리자녀를 위한 기본 사이즈는 누가 정할까요? 자녀는 성장하고 싶은데 작은 어항 속에 갇혀 있다면 고민해봐야 합니다. 아이가 노닐 수 있는 작은 어항이 기본 사이즈라고 누가 정했을까요? 작은 어항 속에 있는 아이의 세상을 size up 해서 수족관으로 옮겨줘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진짜 큰 물, 한강, 낙동강을,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기본 사이즈를 바꿔야 할지 모릅니다. 수족관은 안전하지만 강은 너무 위험해서 곤란하다고요? 수족관이 안전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의 생각일까요?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생각의 사이즈이지 자녀의 사이즈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이즈가 자녀의 사이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담임교사와 수석교사로 초등학교에서 27년이라는 세월을 지내다보니, 제자들이 졸업을 하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잘못 만나서 소년원까지 가게 되었다는 어머니의 한 서린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초·중학교 시절까지 학업 성적이 우수해 승승장구했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떨어지면서 낙담과 비관으로 가출한 학생의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취업까지 승승장구하는 소식들도 전해져옵니다. 어린 시절 학업성적이 좋다고, 영재 학생이라고 해서 빅 사이즈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size up은 내적인 성장을 통해서 외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적 성장을 동반한 외적 성장이 될 때만이 진정한 size up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함’은 내·외적 성장을 위한 size up의 가장 핵심적인 도구입니다. ‘감사함’은 자녀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자존감을 올려주며,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자녀의 결정적 시기, ‘감사함’으로 인간의 결정적 시기: 오리의 결정적 시기는 태어나자마자 2~3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아기 오리는 그 시기에 본 것을 엄마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결정적 시기는 언제일까요?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서 10년에서 12년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초등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가 아닐까 합니다.
결정적 시기의 뇌의 시냅스는 태어나서 6세 전후에 가장 많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시냅스가 14세 전후가 되면 양은 줄어들고, 시냅스의 굵기가 굵어집니다. 6세에서 14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뉴런의 시냅스 속에 남겨놓을 정보망이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것이길 원하지만 시냅스는 외부 세계에서 무엇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시냅스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정보망을 남겨두는 겁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중요한 것’, 이런 방식으로 뇌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size up의 도구, ‘감사함’: 자녀 뇌의 결정적 시기에 꼭 필요한 것,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size up을 위해 꼭 필요한 것, 해답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 정답을 찾아가는 길에 꼭 필요한 도구가 바로 ‘감사함’입니다. ‘감사함’이라는 도구는 만능도구입니다. 자녀의 사이즈를 한 단계 올리는 데 필수도구입니다.
‘감사함’의 의미 그리고 오해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함: 우리는 익숙하거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감사함을 잘 못 느낍니다. ‘나의 집이 사라진다면? 부모님이 사라진다면? 나의 자녀가 아프다면? 직장이 없어진다면? 맑은 공기가 없어진다면? 물이 없어진다면?’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도 있습니다. 내 자녀가 갑작스레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끔찍하지요.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감사. 그것이 감사의 시작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공기가 존재함에, 물이 있음에 그냥 다 감사한 것입니다.
요즘 미세먼지로 인해서 맑은 공기의 소중함이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늘 마시던 맑은 공기가 오염이 되니 상대적으로 감사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 주위에 누군가의 자녀가 아프다거나 큰일을 당하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자녀가 갑자기 감사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감사는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만들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나보다 나은 무언가를 접하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으로 감사함이 사라집니다. 감사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기: 우리의 감정은 항상 즐겁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인간 본연이 가지는 수많은 감정들이 시시각각 올라옵니다. 그 감정들이 진짜 감정이든, 가짜 감정이든지 간에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들은 모두 받아줘야 합니다. 슬프고 화가 났다고 해서 잘못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의 행복의 크기가 변화합니다. 감사일기는 자신의 감정을 다 받아줘 슬픈 것은 산화시키고, 행복한 감정은 증폭시켜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마법의 도구입니다.
감사 에세이_ 가식이고 사치였던 감사함이 나의 마음속으로 내 아이는 7세부터 심리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장거리 상담을 다니면서 초등학교 입학쯤 “조금 괜찮을 것 같다. 지켜보자”는 말씀에 상담을 마무리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동안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누구 하나 도움 주는 사람이 없었고 도움을 청할 줄도 몰랐습니다. 아이의 불안 장애로 병원을 다니던 중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조심스럽게 건넨 휴직에 대한 조언에 용감하게 직장에 1년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 다들 부모교육 안 받고 뭐했느냐, 애를 이렇게 놔두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이리저리 떠밀려 부모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나를 챙기는 것은 뒤로 미루고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에만 가면 함묵증과 함께 대인기피증이 심해졌습니다. 나의 상처도 점점 커져갔고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홧병에 우울증이 심해져갔습니다. 그러다가 아이 교육을 위해 시작했던 하브루타 강좌에서 버츄프로젝트까지 배우게 되었고 3일 동안 진행되는 연수에서 양경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감사일기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양경윤 선생님께서 “욕해도 돼요. 속 시원하게.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는다고 있는 그대로 적으면 돼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감사일기를 적으면서 너무도 구질구질하고 우울해 ‘이걸 적어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들을 매번 했습니다. 너무 에너지가 가라앉아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날들이 계속되니 저를 위해 함께해주고 계시는 감사일기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다들 이해와 격려를 해주셔서 계속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바뀌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아했지만, 분명 내 자신이 바뀌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멀고, 많은 고비가 남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감사일기와 함께하니 예전처럼 불안하고 긴장하지 않습니다. 나의 꿈은 평생 감사일기를 적는 것입니다. 감사일기를 만나 행복합니다. 감사일기가 나에게는 힘든 순간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그리고 내 아이도 언젠가는 감사일기를 적게 되리라 믿습니다.
시크릿 2 ‘감사함’이 가져다주는 힘
감사로 바꾸는 언어의 온도 삶의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단어, “고마워”: 교사로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고맙다’라는 감정은 원래 가지고 태어날지 몰라도 ‘연습’이라는 과정이 없으면 말로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대한민국 여러 곳에서 생각보다 참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다보면 실제로 고마워할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수업시간 단 한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고마운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타인의 물건을 빌려 쓰면 “고맙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도움을 받으면 “고마워”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급식소에서 식사를 제공해주시는 분들께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안내장 한 장에도 고마움의 인사를 해야 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고마워” “thank you”라고 입 밖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마워”라는 말이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말인 것은 고마움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안해”라는 단어들도 등장합니다. “미안해”와 함께 나오는 언어가 “괜찮아”입니다. 그 다음으로 “도와줄까” “같이할까” 등 이런 말들로 바뀌어갑니다. “고마워”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온기가 다른 따스한 말들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욕설의 반격: 요즘 학생들은 일상 대화에 욕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행동들을 지배합니다. 욕은 다른 언어보다 4배 정도 잘 기억되고 분노, 공포 등을 느끼는 ‘감정의 뇌’를 자극해 ‘이성의 뇌’ 활동을 막습니다. 그래서 강한 욕설을 듣는 순간 통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욕은 타인과 자신에게 화, 분노를 점화시키게 되고, 분노의 감정은 의식 수준을 떨어뜨려 상대를 향한 원망과 질타를 반복하게 됩니다. 워싱턴대학교의 엘머 게이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욕을 하는 순간 침에서 분비되는 갈색 침전물을 쥐에게 주사하면 쥐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라면 스트레스가 풀렸을까요? 상대를 제대로 공격한 것이 맞을까요?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한 욕은 실제로 자신이 가장 많이 듣게 되고, 결국 자신을 공격하는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행복감과 만족감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입니다.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지요. 삶의 질을 바꾸려면 언어를 바꿔야 합니다. 이미 내 자녀가 욕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면? 내 아이가 어떤 말을 사용하면서 지내는지 모른다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단어로 많은 대화하기, 좋은 책 읽기 등 이미 알려진 대답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런 책을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아서” “대화를 시작하기도 힘들어요”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와 대화를 하든지, 함께 책을 읽든지 간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형성할 시작점이 필요합니다. 그 시작을 할 단어는 “고마워”입니다. 어떤 대화를 하든지, 아이의 상황이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고마워”라는 말을 전해주세요. 한두 마디 대화에서도, 방금 집으로 들어온 자녀에게도 그냥 “고마워”라고 한마디 던져보세요. 그것이 바로 따스한 온기를 넣어주는 시작이 될 겁니다.
감사함으로 만드는 행복한 기억자아 평생의 행복을 만드는 기억자아: 박목월 시인의 아내, 즉 박동규 시인의 어머니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재워주는 곳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어 동규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무겁게 지고 왔던 재봉틀을 쌀로 바꿔 오셨다고 합니다. 소년 동규가 피난길에 쌀자루를 짊어지고 가고, 동규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짐보따리를 지고 뒤따라갑니다. 산길에서 만난 청년이 동규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쌀자루를 대신 짊어져줍니다. 동규가 너무 고마워하면서 따라가는데 청년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집니다. 아저씨를 따라잡으려니 뒤따라오는 것이 늦는 어머니를 놓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 여기에 쌀을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라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청년은 그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멀리 가버립니다. 청년을 따라가자니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여기 있자니 쌀을 잃어버릴 것 같아 어쩌지 못하고 “아저씨!”하고 부르고, 뒤로는 “어머니!”하고 불러보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울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서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쌀은 어디에 있니?” 어머니의 물음에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지셨습니다. 어머니는 뭐라고 하셨을까요? 박동규 시인이 경험한 일은 자신이 잘못해서 귀하고 중요한 쌀자루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았네!”하며 우셨다고 합니다.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던 나를 끝없이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칭찬해주시던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이 한마디에 박동규 시인은 귀하디귀한 쌀자루를 잃어버린 몹쓸 인간이 아니라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지요.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 박동규 시인의 어머니이신 유익순 여사처럼 관점을 달리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픈 경험자아를 마지막의 순간에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자아로 바꾸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시선을 달리해서 행복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돌려놓는 것이 바로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힘이 박동규 시인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어냈는가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결국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감사함으로 바라보면 기억자아를 행복하게 만드는 관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쌀자루가 아니라 아들을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힘입니다.
시간을 복리로 돌려주는 감사일기 감사일기는 시간창조자: 감사일기를 쓰면서 늘 “바쁘다. 바뻐”를 외치던 제 삶에 시간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쉼도 더 잘 쉬고, 어느새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는 시간의 마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니 일에 대한 몰입이 생겼고, 미리 감사를 요청한 일들이기에 순식간에 일들이 완료되어 갔습니다. 쉬고 싶을 때는 쉴 수 있는 여유로움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 뿐인 인생, 시간을 새로 창조하면서 유익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감사일기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