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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니시다 마사키 지음 | 행성B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니시다 마사키 지음

행성B / 2020년 2월 / 236쪽 / 15,000원



지나친 피해망상




고향에서 들려온 불안한 소식


쇼코는 고향에 있는 외삼촌에게서 몇 년 만에 전화를 받았다. 결혼해서 상경한 뒤 얼마간의 아이 얼굴도 비출 겸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가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남편이 박봉에 야근이 잦은 자회사로 인사이동을 하면서 친정을 찾는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실은 말이야……. 누나, 아니 너희 엄마 일로 전화했어.”

쇼코 엄마는 올해 56세다. 2년 전 아빠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집에서 살림만 했는데 사교적인 성격이라 지역주민 활동으로 바지런히 참가하곤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동네 친구와 신사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전화로 들은 터라 ‘기운을 조금 되찾았나 보다’ 하고 한시름 놓은 후였다. 외삼촌은 난감해하며 엄마의 현재 상태를 전했다. “이웃에서 항의가 들어왔어. 요전에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거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두 달 전쯤 엄마가 전화로 이상한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웃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드는 게 유행한다’는 것이다. “엄마 상태를 살피러 한번 내려오지 않을래?” “알았어요. 일단 전화라도 한번 해볼게요. 그리고 한동안 못 갔으니까 최대한 빨리 얼굴 보러 내려갈게요.”

변해버린 엄마와 친정집


친정집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안에서 쇼코는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쾌활했던 엄마는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중을 나온 엄마는 반년 만이었는데, 쇼코 눈에는 꽤나 야윈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방과 부엌에 물건이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집 안을 둘러본 쇼코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번에 카레 얘기했었지? 점점 더 심해져서 진짜 미치겠어. 지금도 냄새 나지? 카레로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항상 몇 명이 모여서 소란을 피운다고. 게다가 나한테 ‘괴팍한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빨리 죽어버리라는 거 있지?” 하지만 카레 냄새 같은 전혀 나지 않았다. 쇼코는 더 이상 침착하게 대응할 수가 없어서 “무슨 카레 냄새가 난다고 그래?” 하고 쏘아대듯 말을 뱉는 바람에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냄새가 심한데 무슨 소리야? 너도 다카시 외삼촌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거니?”

“진짜로 카레 냄새가 안 나니까 그렇지. 게다가 집 안 꼴은 또 이게 뭐야? 엄마답지 않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거야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하니까 그렇지. 밤에 잠도 못 자고, 장 보러 가기도 힘들다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니까.” “경찰서에도 갔다며?” “외삼촌이 그 얘기도 했어? 여기 경찰도 옆집 사람들하고 한 패야. 경찰도 믿을 게 못 되더라고.” 쇼코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자 상당한 무기력을 느꼈다. 엄마는 본인이 믿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쇼코를 포함해 타인이 하는 말은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밤이 되었을 때 쇼코는 깜짝 놀랄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가 라디오 스피커를 옆집으로 향하게 하고 음악을 트는 것이 아닌가. 스피커에서는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뭐 하는 거야?” “옆집에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밤에 밖을 향해 음악을 트는 건 정상이 아니다. 다행히 옆집은 불이 꺼져 있어서 시끄럽다고 쫓아올 걱정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소란을 피우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고, 정원에서 우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드디어 정신과를 찾다


쇼코와 어머니가 나를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쇼코 어머니는 그 후로도 자신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부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면증이 점점 심해지는 바람에 견디다 못해 나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쇼코 어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했다. 웃음기 없는 무뚝뚝한 표정에서 의사에 대한 강한 불신이 엿보였다. 문진표를 들여다보니 수많은 항목 가운데 ‘불면’에만 체크 표시가 있을 뿐, ‘망상’이나 ‘환청’ 항목은 비어 있었다. 진찰을 하기 전에 나는 접수처에 쇼코가 미리 건넨, 담당 의사에게 보내는 쪽지를 받았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보인 이상 행동과 이에 대해 어머니에게 물을 때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주었으면 한다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불면증 치료를 가장하다


쇼코 어머니는 2주에 한 번 간격으로 반년 정도 통원을 하며 나를 만났다. 나이로 봤을 때 치매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심리검사 결과로 봐서는 건망증이나 실행기능(사고나 행동을 제어하는 뇌의 기능) 장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뇌 MRI에서도 알츠하이머형 치매에서 보이는 뇌 축소나 뇌혈관 장애를 의심할 수 있는 변화는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검사와 뇌파검사 결과에는 이상 소견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발병 연령이 늦은 ‘조현병’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현명 중에서도 쇼코 어머니는 망상이 강한 ‘망상형’에 속한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환청이나 망상을 억제하는 약, 항정신병 약이 소량이라도 필요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환자에게 이를 어떻게 전달해서 치료를 받게 할 것인가’다. 쇼코 어머니는 자신의 병적인 부분이나 이상을 모를 뿐 아니라 ‘병식’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주변사람들이 이상한 것이고 본인은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조현병입니다’라고 말하면 도리어 화를 내면서 통원을 거부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만일을 위해서 검사를 해봤는데, 운 좋게도 무라타(쇼코의 어머니) 씨는 치매는 아닙니다. 스트레스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역시 수면제가 필요할까요?” “그 부분이 판단하기 어려워요. 무라타 씨의 경우는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카레 소동으로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져서 괴롭힘이 줄어들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약을 끊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서 나는 소량의 항정신병 약을 처방했다. 내가 처방한 항정신병 약은 환청과 망상에 효과가 있고, 졸립거나 나른하지 않은 대신 불면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 하지만 낮 동안 활동량이 늘면 수면 습관도 틀림없이 개선될 것이다.

보통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으려면 두 번째, 세 번째 진료 때 약을 단계적으로 늘려서 적정량을 복용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쇼코 어머니의 경우, 소량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무리하게 양을 늘렸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대로 치료를 계속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항정신병 약은 초기 투여량 그대로 한 알을 유지하기로 했다.

마지막 진료 때 오랜만에 아주 조심스럽게 카레 소동을 돌아보게 했다. ‘병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카레 냄새가 나나요?” “가끔씩 나요. 하지만 전처럼 신경 쓰이진 않아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카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네요.” “그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화도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해요. 내 코가 잘못되었던 건가 싶을 때도 있는데, 카레가 지긋지긋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녀는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상을 인식하는 병식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이상을 인식하는 병식


정신과에는 ‘나는 정신병 따위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이나 직장 상사, 경찰 등 제3자에게 반강제적으로 끌려오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겉으로는 본인의 의지로 병원에 왔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나는 이상하지 않다’,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의사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이를 판단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정신과와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남들 눈에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나는 정신병이 아니다’, ‘나는 정상이다’라고 생각하면 웬만큼 주위에 피해를 주거나 스스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이상, 정신과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무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식의 환청이나 ‘주위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조현병 환자는 이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옆에서 아무리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그들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괘씸하게 느껴질 뿐이다. 쇼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이웃과 가족이야말로 자신들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골치 아픈 사람들인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인식하는 일. 100퍼센트 맞지 않지만 이에 가까운 뜻의 용어가 정신의학 분야에 존재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병에 대한 인식, 즉 ‘자신의 병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병식’은 정신질환이라는 ‘병’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정상’과 ‘이상’, ‘건강’과 ‘불건강’ 사이에 선을 긋기가 어려워졌다. 본인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 가운데 어떤 병이라고 진단을 내릴 정도는 아니지만, 병적인 부분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상’을 인식하는 ‘병식’에 대해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병식’ 안에도 그 사람이 가지는 병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심리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병식의 계보학


병식에 대해서 처음으로 논한 사람은 체코의 정신과 의사 아놀드 픽이다. 그는 ‘질병 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말 그대로 질병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인데,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병식부터 ‘어쩌면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불안 수준의 병식까지 그가 질병 의식을 여러 가지로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병식이라는 용어를 확립한 사람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 카를 야스퍼스다. 야스퍼스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한데, 그는 아내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박해를 받았다. 즉, 파시즘이라는 집단적 광기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관심이 병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야스퍼스는 픽과는 달리 병(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아래처럼 두 가지로 나눴다. ① 질병 의식(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② 병식(병에 대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인플루엔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의사인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완벽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 또한 ‘병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인지기능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의료 수준은 야스퍼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비해 훨씬 발달했다. 게다가 지금은 고도의 치료를 행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동의(의사가 환자에게 지료의 목적으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치료하는 일)’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환자에게 병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시키지 않으면 검사와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현대 정신의학은 병식을 경시한다


21세기에는 정신병을 진단할 때 ‘조작적 진단 기준’을 이용한다. ‘조작적 진단 기준’이란 나쁘게 말하면 매뉴얼에 따라서 판에 박힌 듯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역 앞에 있는 동네 정신과의원부터 미국의 고차원적 연구시설에 이르기까지 정신병을 진단하는 데 DSM(미국 정신의학과가 제시하는 진단 기준으로 현재는 그 최신판인 DSM-5를 쓴다)을 널리 사용한다.

이에 따르면 다음 다섯 항목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고, 각각의 항목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조현명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① 환청이 들리거나 환미를 느끼는 등 환각에 빠진다. ② 망상에 사로잡힌다. ③ 사고가 해체되고 대화를 해도 소통이 안 된다(엉뚱한 소리를 한다). ④ 두서없는 언동을 보이고 긴장한다(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갑자기 굳어버린다). ⑤ 음성 증상을 보인다(무표정하다, 둔감하고 모든 일에 나태해진다).

그렇다면 DSM에 야스퍼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병식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을까? 애석하게도 병식의 유무는 어떤 병의 진단 기준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병식에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조현병조차 진단을 내릴 때는 병식의 유무를 따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진단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병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흑과 백을 나누듯 정확하게 가리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렴풋이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서 환자마다 개인차가 매우 크다. 진단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피해망상의 중증도와는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만 ‘병식’을 어느 정도로 가지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병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려면 환자를 자극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장기간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병식’이 없으면 ‘나는 정상이다’라고 생각해서 의사를 찾아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의 병적인 심리




잘나가는 국가공무원이 저지른 실수


“오늘 밤에도 답변 서류를 준비해야 되는군…….” 모 관청의 국가공무원인 게이이치로는 올해로 공무원이 된 지 12년째다.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는 ‘이 나라를 변화시킬 만한 일을 하겠다’, ‘몇 년 뒤에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라는 뜨거운 희망으로 불타올랐다. 하지만 의욕이 넘치던 그도 인원 삭감과 국정 혼란 등으로 어수선한 요즘에는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피로가 잦아졌다. 국회가 열리는 시즌에는 질문에 대한 답변서 작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예전만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작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게이이치로가 담당하던 사업의 중간 보고서를 정리해야 해서 표 계산 프로그램을 이용해 경비 정산 작업을 하는 일이 잦은 시기였다. 보고서는 표 계산 프로그램에서 나온 숫자를 워드 프로그램에 복사해서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소한 실수 한 번 한 적이 없는 게이이치로가 이 복사 작업에서 엉뚱한 걸 붙여넣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상사가 “숫자가 안 맞는 것 같은데?”라고 해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자릿수가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다시 정리하면 되지, 뭐.” 상사는 단순한 실수라며 수정을 지시했다. 사실 공적인 자리에서 자료를 배포하기 전, 확인 작업 중에 발견했기 때문에 업무상 치명적인 실수라고 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실수는 고등학교와 입시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도 한 적이 거의 없는 실수였다. 게다가 공무원이 되고 난 뒤로는 학생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긴장하며 일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보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과 자신감이 크게 흔들린 것이 그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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