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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최희성 지음 | 아이템비즈


신화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최희성 엮음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 576쪽 / 19,800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를 찾아서



길가메시 신화

우루크는 몸의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인 길가메시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길가메시 왕은 매우 잘생기고 총명한 데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자만에 빠져 싸움 잘한다는 남자들을 찾아가서 두들겨 패고, 초야권을 발동해 결혼하는 처녀들의 첫날밤을 자신이 치르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다. 그의 행패에 백성들은 하늘의 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아누는 신들과 의논을 했는데, 신들은 길가메시가 너무 강해서 반대로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으니 길가메시보다 더 강한 초인을 만들어 벌하자고 했다.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게 초인을 만들 것을 명했다. 이에 아루루는 점토로 초인 엔키두를 만들었다. 엔키두는 강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온몸은 털로 덮여 있었고 여인처럼 긴 머리칼이 소의 몸 같은 그의 신체를 덮고 있었다. 문명화된 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엔키두는 동물들과 같이 풀을 뜯고 물웅덩이 근처에서 살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 희한한 짐승에 대한 이야기가 우루크에 퍼졌다. 길가메시는 그 희한한 동물이 신들이 자신을 벌하려고 보낸 녀석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슈타르 신전의 무녀 샴하트를 엔키두에게 보내 그를 유혹하게 하였다.

엔키두는 샴하트와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동침하였고, 샴하트는 엔키두와 동침하면서 그의 야수성을 벗겨내었다. 샴하트와 일주일간 쉬지도 않고 관계를 맺은 엔키두가 본래 친구들인 짐승들에게 다가가자 짐승들은 엠키두를 피했다. 이제 엔키두는 짐승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며 예전처럼 그들을 쫓아갈 만큼 잘 달릴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짐승의 태를 벗자 엔키두는 인간처럼 지혜로워졌다. 마침내 우루크에 도착한 엔키두는 백성들의 호소를 듣고 분노하여 길가메시와 결투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승부는 판본에 따라 엔키두가 이기기도 하고, 길가메시가 이기기도 하고, 서로 비기기도 하는 등 그 유형이 다양할 정도로 둘의 승부는 치열했다. 하지만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 교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길가메시도 이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백성을 생각하는 좋은 왕이 되었다. 이후 두 영웅은 함께 다니며 많은 영웅담을 남기는데 그중 하나가 훔바바 퇴치이다.

태양신 우투는 엘림 산에 자신의 신전을 짓고 싶었으나 그곳에는 엔릴 신이 삼목을 보호하기 위해 산을 지킬 것을 명한 괴물 훔바바가 있었다. 훔바바는 숲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보호하거나 잠들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눈을 보는 자를 돌로 만드는 마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체구에 야성적이고 거친 소의 뿔이 있으며 꼬리와 성기는 뱀인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태양신 우투는 길가메시라면 훔바바를 퇴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길가메시에게 “우루크의 백성들에게 나무가 필요한데 숲 속에 있는 괴물을 퇴치하고 나무를 베어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길가메시는 엘림 산으로 가려고 했지만, 엔키두가 훔바바는 자신이 야수일 때 함께 뛰어 놀던 친구라며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친구여,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삼나무 숲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오? 엔릴 신이 삼나무 숲을 지키려고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서 훔바바를 임명한 거요. 엔릴 신이 일곱 후광이라는 무서운 운명을 그에게 주었단 말이오. 그곳에 가서는 안 되오.”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말렸지만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같이 간다면 훔바바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함께 산으로 갔다. 엔키두와 길가메시가 산에 가자 일곱 후광을 두른 훔바바가 나타났다. 그 후광의 힘에 길가메시와 엔키두 역시 벌벌 떨면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길가메시는 기지를 발휘하여 훔바바에게 “나의 누이와 여동생을 주어 그대를 가족으로 맞고 싶으니 후광을 잠시 거두어주게”라고 부탁했다. 이에 훔바바가 잠시 일곱 후광을 거두자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협공하여 순식간에 훔바바를 제압하였다. 훔바바는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길가메시는 자비를 베풀까 생각했지만 엔키두가 훔바바를 살려두면 후환이 있을 것이니 훔바바를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옛 친구의 야속한 말에 화가 난 훔바바는 엔키두에게 욕을 퍼부었고 화가 난 엔키두는 훔바바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후 그 산에는 우투의 신전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명성이 하늘에까지 닫자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그대는 나에게 부를 주겠다고 말하면서 그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대가 먹는 음식과 옷은 여신의 것과 걸맞은 것을, 집은 여왕의 궁전과 같은 것을, 그리고 옷감도 최상의 것을 바랄 것이다. 내가 왜 그대에게 그런 것을 바쳐야 하는가? 그대는 낡아빠진 문짝, 허물어져가는 궁전, 머리에 쓸 수 없는 터번, 손에 달라붙은 송진과 깨진 항아리, 거기에다 발에 맞지도 않는 헌신짝 같은 가치도 없는 존재가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매몰차게 여신을 거절했다.

여신의 몸으로 인간에게 차이는 수모를 당한 아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 신에게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지하의 망자들을 내보내 산 자들을 뜯어먹게 해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아누 신은 할 수없이 하늘의 황소 구갈안나를 지상에 풀어놓았다. 구갈안나는 우루크 땅을 황폐화시키고 백성들을 죽였다. 이에 분노한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함께 구갈안나를 처치하러 나섰다. 먼저 엔키두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구갈안나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그 틈에 길가메시가 황소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구갈안나를 두 영웅이 죽이려고 하자 당황한 아슈타르는 어린 신들을 데리고 두 영웅을 말리러 갔다. 하지만 그때 구갈안나는 이미 죽어버렸고 엔키두는 “내 친구에게 손 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황소의 넓적다리를 잘라 이슈타르에게 던져 그녀를 모욕하였다.

이에 분노한 이슈타르는 신들을 모아 훔바바와 구갈안나를 죽인 두 영웅을 벌해야 한다는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신들은 두 영웅을 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신들은 각고의 회의 끝에 자신들의 피조물인 엔키두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엔키두는 병에 걸려 12일에 걸쳐 죽어갔고, 죽어가면서 자신을 인간으로 만든 무녀 샴하트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태양신 우투가 샴하트가 아니었으면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친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영화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그 말에 엔키두는 자신의 저주를 거두고 길가메시의 품에 안겨서 죽었다. 길가메시는 그의 시체가 썩어 벌레가 나올 때까지 그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 문명의 신화를 찾아서



반고 창조 신화

아주 먼 옛날, 이 세상은 검고 흐린 상태의 하나의 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안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반고이다. 깜깜한 알 속이 싫었던 반고는 어느 날 알을 깨어 버렸다. 이때 알 속에 있던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들은 위로 치솟았다. 하지만 다시 무거운 것들과 가벼운 것들이 모여 혼돈의 상태로 가려고 하자, 반고는 자신의 두 다리와 두 팔로 무거운 것들과 가벼운 것들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때부터 반고의 키가 하루에 한 자씩 자랐으며, 이로 인해 하늘과 땅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반고가 울 때 그의 눈물은 강이 되고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목소리는 천둥, 눈빛은 번개가 되었다. 그가 기쁠 때는 하늘도 맑았고, 슬플 때는 하늘빛이 온통 흐려졌다. 이렇게 애를 쓴 것이 무려 18,000년이었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서로 9만 리의 거리로 멀어지자 드디어 반고는 혼돈을 막았다고 안심하며 대지에 누워 휴식을 취했고 그 상태로 죽게 된다. 그가 죽을 때 두 눈동자는 태양과 달이 되었고, 사지는 산, 피는 강, 혈관과 근육은 길, 살은 논밭, 수염은 벼, 피부는 초목이 되었다. 이렇게 반고의 온 정성과 헌신을 다한 희생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 옛날 사람들은 이처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친 반고를 기념하기 위하여 남해에 반고 무덤을 세웠으며 계림에는 사당까지 세웠다고 한다.

인간을 창조한 여와

반고에 의해 하늘과 땅이 생겨났지만 땅에는 아직 인간이 출현하지 않았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여신 여와다. 여와는 사신인수(蛇身人首), 즉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지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황토를 반죽해 사람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최초의 인간은 그렇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광활한 대지에 걸맞은 충분한 수의 인간을 하나하나 정성껏 만드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여와는 보다 수월하게 인간을 만들기 위해 끈을 흙 속에 늘어뜨렸다 끌어올려 그 끈에서 떨어진 흙으로 인간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여 많은 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와가 인간에게 부여한 목숨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모처럼 애써 만든 인간이 태어나서 얼마 안 가 죽는 처지가 돼 땅에서 금방 사라지고 말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는 인간을 오래도록 만들 수 없겠다고 판단한 여와는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자연과 대지 위에 점차 그 수를 불려나가게 되었다.

여와가 인류를 창조하고 난 후 어느 날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부러지고 땅을 잇는 끈이 끊어져 천지가 기울었으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갈라진 땅속에서는 화염이 뿜어져 나왔고 하천이 범람하고 바다에는 해일이 밀려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산림에서 맹수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잡아먹었고 하늘에서는 흉조가 날아와 노약자들을 채갔다.

이 광경을 본 여와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결연히 일어섰다. 먼저 오색의 돌을 불로 벼리어 무너진 하늘을 메웠다. 그러고는 큰 거북의 발을 잘라 세상의 네 귀퉁이에 세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삼았다. 또 홍수를 일으킨 원흉의 하나인 흑룡을 죽이고 갈대를 태운 재를 쌓아 홍수를 제압했다. 그녀가 나선 지 열흘 만에 모든 재해가 멈추고 인간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복희와 여와

금방이라도 큰비가 퍼부을 듯이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먼 하늘에서 우레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그때 마침 집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푸른 이끼를 엮어 만든 이엉을 지붕 위에 덮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큰비가 쏟아져도 집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없었다. 아직 열 살도 안 된 그의 아들과 딸은 집 밖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가 지붕에 이엉을 다 덮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곧 비가 쏟아 붓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들과 아버지는 재빨리 창문을 닫고 온기가 어린 따스한 작은 방 안에서 단란한 한때를 즐겼다.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잠깐,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 바람 또한 거세어져 갔으며 뇌성도 점차 요란해져 갔다. 마치 하늘의 뇌공이 진노하여 인간들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려는 듯싶었다. 이때 그 남자는 커다란 재앙이 눈앞에 닥쳐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미리 만들어 두었던 쇠망태기를 가져와 처마밑에 두었다. 그는 쇠망태기의 입구를 열어 두고 손에는 호랑이를 사냥할 때 쓰는 창을 움켜쥔 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가끔씩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가운데 뇌성이 잇달아 울려 퍼졌다. 이윽고 시퍼런 얼굴을 한 뇌공이 손에 도끼를 들고 비호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지붕으로 내려온 뇌공은 지붕 위에 깔아 놓은 푸른 이끼에 미끄러져 처마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때 처마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뇌공이 떨어질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창으로 힘껏 찔렀다. 창은 정확히 뇌공의 허리에 꽂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창에 찔려 고꾸라지는 뇌공을 아버지는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낚아채 쇠망태기 속에 쳐 넣고 망태기를 등에 짊어진 채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네 놈을 잡고 말았구나! 이제 네 놈은 아무런 수작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뇌공을 잘 지키라고 일렀다. 뇌공의 괴이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했으나 차츰 익숙해져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향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뇌공을 죽여서 절여 반찬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얘들아, 절대로 저 녀석에게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자 쇠망태기 속에 갇혀 있던 뇌공은 거짓으로 몹시 아픈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했다. “목이 말라 죽겠다. 제발 물 한 사발만 다오.” 그러나 사내아이는 냉정히 거절했다. “물 한 사발이 안 된다면 물 한 잔만이라도 다오. 정말로 목이 말라 죽겠다.” 사내아이는 또 다시 뇌공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뚜막의 수세미를 가져와서 물 몇 방울만이라도 떨어뜨려 다오. 정말 목이 타 죽겠다.”

말을 마친 뇌공은 눈을 감고 입을 쩍 벌리고 일부러 훨씬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자 여동생인 여자아이가 뇌공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불쌍하기도 해라. 오빠, 시험 삼아 물 몇 방울만 떨어뜨려 주면 어떨까?” 오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 몇 방울쯤이야 괜찮을 것 같아 동생의 말에 따랐다. 오누이는 부엌으로 가서 수세미에 물을 적신 다음 뇌공의 입에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물을 마시고 난 뇌공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구나! 내가 이 방을 빠져나갈 터이니 자리를 좀 비켜주겠니?” 뇌공이 물을 먹고 기력을 차리자 아이들은 자신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방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벽력 소리와 함께 뇌공이 쇠망태기를 꿰뚫고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뇌공은 집밖으로 나가기 전에 입 속에서 이빨을 하나 빼서 아이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서 이것을 땅에 심거라. 그리고 큰 재난이 닥쳐오거든 이 열매 속에 들어가 숨어라!”

얼마 후 장에 갔던 아버지가 향료를 사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뇌공을 가두어 두었던 쇠망태기가 부서져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아연실색해 아이들에게 연유를 물었다. 오누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이 잘못해서 뇌공이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머지않아 큰 재앙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장차 닥쳐 올 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철선 한 척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누이는 뇌공이 준 이빨을 땅에 심었다. 놀랍게도 뇌공의 이빨은 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파랗게 새싹이 돋아났다. 그리고 하루 만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열매는 커다란 호리병 박으로 변해 있었다. 오누이는 톱을 가져와 호리병 박을 켰다.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뇌공의 이빨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호리병 박 안의 이빨들을 파냈다. 오누이가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보니 호리병 박은 그들 둘의 몸을 숨기기에 딱 맞는 크기였다.

뇌공이 사라진 지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는 마침내 철선을 완성했다. 그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고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또 땅에서는 분수처럼 물이 솟구쳐 올라 구릉을 삼키고 높은 산을 에워싸 버렸다. 근처 마을의 농가와 숲의 나무와 촌락이 모두 물에 잠기어 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얘들아, 어서 피해라, 뇌공이 무서운 홍수로 보복을 해오고 있구나!” 오누이는 재빨리 호리병 박 속으로 들어가 숨었고 아버지는 철선에 올라탔다. 홍수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그 수위가 하늘에 닿았다. 철선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거센 비바람과 넘실대는 무서운 파도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곧 배를 저어 하늘 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버지는 뱃머리에 서서 손으로 하늘 문을 힘껏 두드렸다. “어서 문을 여시오!” 대문을 두드리는 우렁찬 소리에 겁을 먹은 하늘의 천신이 물을 다스리던 수신에게 급히 호통을 쳤다. “빨리 물을 빼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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