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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쓰기

이고은 지음 | 생각의힘


여성의 글쓰기

이고은 지음

생각의힘 / 2019년 11월 / 236쪽 / 13,800원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



자신과 대화하십니까?

문학, 철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일본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으로 손꼽히는 우치다 다쓰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이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명료한 확신 속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천재 작가라 할지라도 일필휘지로 한번에 글을 써내는 일은 드물 것이다. 유시민이 구치소 바닥에서 단 한 번의 퇴고 없이 <항소이유서>를 써 내려갔다지만, 물리적으로 글을 수정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는 아마 머릿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자신의 글을 고쳐 썼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고를 쓴 기간만큼이나 퇴고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글을 단단하고 굳게 만들기 위해 두드리는 집요한 ‘망치질’을 사랑했다.

어제 썼던 글도 하루 지나 보면 새롭다. 어디 그뿐이랴. 한 달 지나 보면 이번에는 다른 이가 쓴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리 고쳐도 또 새롭게 써야 할 것이 뾰족하니 튀어나와 보인다. 과거에 쓴 글 속에서 예전의 나를 직면했을 때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때도 있고, 서먹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의외의 통찰을 얻을 때도 있다. 왜일까. 우리가 매일같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내면의 자아가 해체되고 분열되며 재구성되는 복잡한 경험을 한다. 때로는 자신조차 몰랐던 내 안의 욕망과 의지가 튀어나오고, 때로는 자기 안의 확고한 논리들이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모순에 빠진다. 대체로 글을 쓸 때는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안에서 만나는 충돌하는 논리 중 우세한 한 가지 방향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때로는 결론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다르게 방향을 틀기도 한다. 타인을 설득하기 이전에 글의 첫 독자인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글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거듭 확인한다.

우치다 다쓰루의 말처럼, 우리는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지지하는지 계속해서 발견한다.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완성하는 순간까지 자신 안에서 수없이 갈팡질팡하며 정체성을 찾아간다. 도입에서 쓴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어가기 위해, 논리의 줄기를 찾고 설득력 있게 전개하기 위해, 마지막에 쓰고자 하는 결론을 벼려내기 위해 수천 번이고 수만 번이고 자신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끄집어내 살펴본다. 성별, 세대, 출신, 지위, 계급, 관계……. 그 사이에 충돌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지,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지향할 것인지. 자기 질문과 응답이 끝없이 이어진다.누구나 언뜻 보면 대립하거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정체성을 한데 품고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가진 면일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비슷한 성향과 환경을 갖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하나의 범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생각과 경험이 세밀하게 다르다. 각각의 다채로운 경험에서 형성된 다양한 층위의 인격들이 어우러져서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으로 거듭난다. 각기 존재하는 내면의 모순, 개별적 취향과 선택, 환경의 변화와 영향력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개인의 유일성, 인간의 다양성이 발현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 1981년생, 대구라는 보수적인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 반대로 진보 성향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 기혼, 유자녀, 육아로 인한 퇴사 등. 어떤 것은 태어나며 부여받았고,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이미 지나온 내 삶의 증거들은 부조화와 모순적인 요소로 엉켜 있다. 누군가에게 나는 출신 지역이나 혼인 여부를 이유로 보수적인 사람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성주의적 면모라든가 출신 언론의 정치 성향을 이유로 진보적인 사람일 수 있다.

나이 서른여덟인 현재의 내게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도 퇴적되어 있다. 사춘기를 맞이하던 열세 살의 소녀, 낯선 연애에 빠졌던 스물둘의 여자, 새 생명의 경이로움에 놀라던 서른셋의 엄마가 내 안에 있다. 은퇴와 노년, 죽음이라는 미래 속에 그려진 가상의 나 역시 현재의 나를 구성한다. 다양한 층위의 자아는 삶의 순간마다 시시때때로 소환된다. 이는 마주한 타인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도 끄집어낸다. 그 경험마저 또 쌓이고 쌓이면서 나만의 세계가 갱신된다.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세계가 된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글쓰기가 어렵다. 스스로 드러낼 수 없어서다. 자기 세계가 갖는 가치를 표현할 수도 없다. 글쓴이의 인격이 담기지 않은 글은 타인에게도 매력을 주지 못한다. 독자들은 글쓴이의 닫힌 마음을 금세 알아차리고 자신도 마음을 곧바로 닫아버린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글은 설득을 할 수도, 울림을 줄 수도 없다. 비록 자신을 끄집어내어 그 안의 모순을 맞닥뜨리는 일이 고통일지라도, 온전히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고행과도 같은 노동을 이어가야만 한다.

몇 권의 책을 쓴 경험 때문인지, 종종 나에게 “책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묻는 이들이 있다. 또 누군가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글쓰기를 갓 시작한 사람들에게 내가 권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다.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치르는 글쓰기 과목 중 하나는 ‘작문’으로, 하나의 시제를 주고 자유롭게 쓰게 한다. 일종의 백일장이다. 작문 시험을 판가름하는 것은 도입부인데, 많은 수험생이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열곤 한다. 나 역시 식상한 사례를 끌어와 글을 시작할 바에야 자신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훨씬 낫다고 본다. 글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개성을 선보일 수 있어서다.

물론 일상을 단순하게 적는 일기나 살아온 일생을 방대하게 기록하는 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려면 그만큼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으므로, 개별적인 일화는 사회적ㆍ정치적 혹은 철학적 주제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자신의 이야기가 글감으로서 역할을 하게 하려면 그 경험이 관통하는 일반화된 명제가 있어야 한다. 주제를 꿰뚫는 압축적인 예시로서 현상의 정확한 단면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에피소드는 오히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방해할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자기 이야기를 쓰려면 자신을 잘 알고 객관화하는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먼 곳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글감을 찾되, 개인의 이야기가 보다 큰 거시적 맥락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발견하는 연습은 분명히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된다. 그러려면 자기 삶을 낱낱이 뜯어보고 그 구체성을 맥락화해야 한다. 나를 낱낱이 해체하고 관찰하고 비판하고 거부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 속 내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 속속들이 탐구한 이가 쓴 글은 그만큼 논리적이고 선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는 존재를 증명하고 개인의 고유성을 발견해가는 작업이다. 글 읽기, 책 읽기가 즐거운 이유는 우주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설령 낯설고 괴이한 글이라 하더라도 읽는 이 역시 글쓴이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가 확정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글을 쓰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 그 경험의 힘을 믿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값지다고 믿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글은 힘이 있다. 살아 있는 글이 된다.

진실을 찾는 글쓰기



질문하지 않는 사회

2007년 정치부 국회팀에 처음 발령이 났을 때였다. 당시 집권당이던 한나라당을 취재하는 여당팀의 이른바 ‘말진(국회팀 소속 기자 중 가장 막내 기자)’이었던 내가 맡은 임무는 원내 대표실에서 열린 회의를 취재해 선배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당시 여당 원내대표의 이름과 얼굴도 매치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에 문외한이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일은 무척 버거웠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저 사람이 누구죠” 하고 물어보는 것도 기자로서 남세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발언자의 이름도 발언 내용도 충분히 기록하지 못한 채 패잔병처럼 기자실로 돌아온 나는 온종일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시작한 정치부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여름, 한나라당은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당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양 진영으로 갈라져 팽팽하게 대립했다. 전쟁터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정치권에 몸담은 이들은 각 진영 내 주요 인물별 히스토리와 관계, 정치적 구도 등을 훤히 꿰고 있었다. 누가 핵심 참모이고 실세인지, 어떤 이들이 경쟁하고 대립하는지, 계파별로 서열은 어떻게 정리되는지……. 여의도는 여의도만의 세계와 질서, 언어가 따로 존재했다. 이런 전장에서 누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초짜 기자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루는 국회팀장이던 선배가 나를 데리고 의원회관을 한 바퀴 돌았다. 선배는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핵심 국회의원들에게 새로 온 후배 기자를 소개하며 취재를 했다. 당시 따로 만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던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처음 마주한 것도 선배를 통해서였다. 선배 손에 이끌려 박 전 대통령이 탄 엘리베이터에 비집고 들어가 처음으로 얼굴도장을 찍었는데, 나중에야 이게 얼마나 예외적인 일이었는지 알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가 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는 것으로 유명했던 까닭이다.

선배는 취재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반절 이상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내밀한 여의도 정치판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대화 중에서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선배의 말은 바로 이거였다. “그랬어요? 몰랐어요. 조금만 더 이야기해줘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정치판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나는 모를 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생각으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거나, 반면에 조금이라도 아는 게 생기면 어떻게든 아는 티를 내려고 애썼다. 하수도 그런 하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바닥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판을 훤히 꿰뚫다시피 하던 선배는 말끝마다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질문 끝에 자연스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았다.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질문하는 사람’이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기에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질문한다는 것은 ‘내가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 이상으로 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질문이 있어야 알고 있는 사실들 사이의 구체적인 내용이 채워지고, 더 깊고 넓게 확장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에 알고 있던 것, 그동안 고민해온 것이 많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자세는 자신이 모르는 문제라면 누구도 쉽게 답을 얻지 못할 것이기에, 기꺼이 물어야만 한다는 책임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질문은 이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질문이란 흔히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더 많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질문자의 선한 의지에 주목하기보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더 깊이 알고 있는지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일이 몸에 익다 보니 ‘모른다’는 선언은 무시와 멸시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모르더라도 차라리 의뭉스럽게 입을 닫는 편이 낫다는 생각 속에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은 낯선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튀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질문은 정해진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일로 터부시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질문하는 자, 말하는 자를 소외시키는 이 사회의 경직된 문화를 더욱 공고화한다.

201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폐막 연설 직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질문 기회는 결국 중국 CCTV의 기자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을 질문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들조차 질문과 취재를 위한 공식 석상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질문 없는 사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다. 아무도 묻지 않으면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질문하는 순간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에, 질문하지 않으면 문제는 늘 정체된 상태에 머물고 만다. 질문이 없다면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기조차 어렵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해결도 없고 변화도 없다. 기존의 체제와 질서가 흔들릴 일도 없다. 사회는 정체되고 고인 물처럼 탁하게 병들어 간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수많은 문제들은 어쩌면 누구도 질문하지 않기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곪아버린 일들은 아닐까.

글을 쓰는 일 역시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던 사실에 대해 묻고 답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글쓰기의 의지가 발현된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일, 타인에게 묻고 객관적 답을 구하는 일. 그 결과를 오롯이 기록하는 것이 결국 글쓰기다. 그렇기에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할 용기와 궁금한 것을 질문할 의지를 키워야 한다.

10여 년 전 선배가 질문하는 모습을 본 이후, 나는 지금까지 줄곧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거나 “잘 모르는 내용”이라는 고백을 머뭇거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좀 자세히 알려달라”, “어려우니 더 설명해달라”는 질문도 서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란 잘 모른다는 사실보다, 잘 모르면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몇 년간 수백 명에 달하는 국회 출입기자들과 얽히고설켜 일하다 보니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의 ‘견적’을 대충은 알아차리는 눈이 생겼다. 알아서 안 묻는지, 몰라서 못 묻는지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또 나를 보며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담백하고 솔직한 질문만이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다. 살면서 고수는 못 되더라도 하수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핍과 충족의 글쓰기



태어난 여성, 길러진 여성

생각해보면 없지 않았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여자인데’ 라는 이유로 나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받은 일들 말이다. 아홉 살 어린 남동생이 항상 나보다 먼저 제사상에 절을 올렸던 일, 몸 곳곳에 잔털이 없어야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이유로 고통스러운 레이저 제모 시술을 받았던 일, “안경 쓴 여자는 아침 첫 택시에 안 태운다”는 속설 때문에 안경을 벗어든 채 택시를 잡았던 일… 이 밖에도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겪게 된 부당하고 유쾌하지 않은 일들은 시시때때로 있었다. 돌아보면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일을 현재진행형으로 겪었던 20대에는 현실을 별로 인지하지 못했다. 대학 교양 과목이었던 ‘여성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랬다. 페미니즘이란 그저 흥미로운 학문이자 인류 진보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여성 문제가 현실의 이야기라고 해도 정작 내 일상과 연결 지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심각한 폭력과 위압으로 삶을 제약받는, 일부 여성들의 화두라고만 보았다. 내가 일상 속에서 겪어온 성차별이나 여성으로서 느꼈던 크고 작은 한계는 마치 공기 같은 것이어서, 큰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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