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위한 인문학
노은주, 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집을 위한 인문학
노은주, 임형남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 284쪽 / 16,000원
제1장 가족을 품은 집
행복의 향기가 있다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다: 건축가인 나에게 건축은 즐거운가? 그렇다. 머릿속에 있는 희미한 구상이 물리적 실체로 서서히 나타날 때, 초음파 사진에서 외계 생명체와 같던 존재가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듯한 탄생의 과정이 숨어 있다. 그런 존재의 발현은 인간에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집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 집이라는 구체적인 실체에 담겨질 때의 감동, 땅이라는 보편적인 환경에 점을 찍듯 자신의 어떤 자취로 만들어지는 경이, 그런 느낌이 집을 짓는 즐거움이며 의미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런 의미와 생각이 시간의 파괴 작용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남을 때의 감동이 더해지면, 집짓기란 인생에 걸쳐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행위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부동산으로서 경제적 가치보다는 가족의 안식처로서 집, 그 본연의 가치를 생각하며 설계를 맡기는 사람이 늘고 있음을 실감한다. 물론 교외에 나가 자연과 가까이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일터가 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절묘한 해법을 찾는 사람도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협곡처럼 두 개의 언덕이 골짜기를 이루며 마주 보고 있다. 서쪽은 북한산을 기대고 있으며 비교적 크고 호화로운 집들이 자리 잡고 있고, 북악산과 의왕산을 기대고 있는 동쪽 언덕은 상대적으로 경사지의 규모가 작고 오래된 집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어느 날 이 동네에 집을 짓겠다며 어떤 부부가 찾아왔다. 신혼살림을 평창동에 있는 주택에서 시작했는데, 살다보니 동네가 마음에 들어 적당한 땅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땅은 평창동 동쪽 언덕에 있었다. 지어진 시기와 공사의 수준이 들쭉날쭉한 집들이 가파른 경사지 위에 앉아 있는 동네의 제일 안쪽에 있었고, 경치가 무척 좋았다. 사방으로 장엄하게 펼쳐진 북한산의 모습은 중간중간 집의 앞과 옆으로 지어진 연립주택들로 인해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언제 부서졌는지 원래 이 땅에 있었던 집의 잔해가 땅을 다 덮고 있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경사가 심해 접근이 어렵고 얼핏 험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그동안 아무도 여기에 선뜻 새로 집을 짓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땅을 보고 나서, 그들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설계를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단순했다. 아내는 돌보고 있는 고양이 세 마리와 개 한 마리가 함께 지내기에 편리한 공간이기를 원했고(모두 유기되었던 동물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남편은 그리 넓지 않더라도 수영을 할 수 있는 풀장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나중에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을 2층으로 올리고, 부부의 침실과 식당과 거실 등의 공용 공간과 적당히 분리하고 싶다고 했다.
밖을 향해 열린 곳과 닫힌 곳이 너무 명확하고 접근 방향도 너무나 뚜렷해서 집을 계획하는 것은 정해진 길을 걷는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있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집의 덩어리를 ‘ㄱ’자로 꺾고, 풀장과 중정(中庭)을 끼워 넣고 그 안에 작은 뜰을 만들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2층의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두고, 삼면이 열려 있는 거실로 가는 동선의 중간에 독립적인 주방을 끼워 넣었다. 안방은 후정(後庭)을 끼고 다양한 풍경을 보며 걸어가는 긴 복도 끝에 자리 잡았다. 그 침실은 문을 열자마자 어긋하게 연결된 풀장과 곧바로 연결되고, 멀리 북한산의 풍경이 물에 비친다. 그 빛은 다시 안방의 천장으로 반사되어 어른거린다.
설계는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공사 과정에서 언덕 끝자락에 매달린 집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과 마음 약한 시공자의 느슨한 마무리와 행정 절차의 이유 없는 지연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러나 늦어지는 건축 일정에도 당차게 해법을 같이 고민하며 흔들리는 기색 없이 버텨낸 건축주의 태도는 놀랍고도 고마웠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과정의 괴로움은 뒤꿈치로 북북 지워버린 땅 위의 낙서처럼 희미하게 사라져버리고, 그들 앞에 이제는 즐길 일만 남았다.
일이 마무리될 무렵 건축주로부터 전화가 와서 집의 이름은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는 집, ‘요산요수(樂山樂水)’로 정하고 싶다고 했다. 왜 안 되겠는가. 어렵고 괴롭고 슬플 수도 있는 여건을 불평 없이 참아내며 심지어 즐겨가며 집을 짓고, 이제는 수확을 앞둔 농부처럼 집에서 살아갈 여러 가지 즐거운 미래를 생각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다: 가족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새로운 개념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부모와 큰집, 작은집 등이 모여 살던 대가족이 현대로 들어서며 부모와 아이가 사는 핵가족으로 바뀌더니, 요즘은 아예 부부만 살거나 한부모와 아이, 혹은 혼자 사는 집 등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겠지만, 막대한 사교육비와 불안한 육아 환경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어난 것도 큰 요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관통했던 20세기 후반도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족이 변했고 집이 변했다. 물론 살았던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나처럼 서울 시내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은 훨씬 다이내믹한 주거의 변천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ㄷ’자 형식으로 생긴 도심형 한옥에서 자랐고, 서울 외곽의 신흥 주택 지역의 ‘집장사 집’에서 살아보았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비 온 다음에 죽순 자라듯 서울 전역을 무섭게 뒤덮었던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우리나라 주거 문화의 절정인 아파트까지 모든 형태의 주거 형식을 다 겪어보았다. 그 무렵 주택을 정주의 개념이 아닌 유목민의 텐트처럼 여기고 언제나 옮길 준비가 되어 있는 도시 유목민의 라이프스타일이 생겨났다. 그리고 4~5인 가족을 기준으로 삼은 집의 규모가 지난 40여 년간 실시된 주택정책의 근간이 되어왔는데,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족 구성원의 변화로 인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국민주택의 규모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남 나주혁신도시는 참여정부의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에 의해 여러 공공기관이 새 사옥을 짓고 그에 따른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들어서며 새로 만들어진 도시다. 많은 사람이 서울을 떠나 이사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원래 도시라기보다는 농업이 주된 산업인 이곳이 몇 년 사이에 인천 송도나 행정수도인 세종시 못지않은 큰 스케일의 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나주역에서 내려 현장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는 그런 번화함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다가 회사를 따라 나주로 이사 온 한 가족의 집을 설계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군데 새로 지어진 아파트 대신, 이왕이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었고, 나무도 심고 정원도 가꾸고 싶어 했다.
계획도시 한복판에 조성된 택지는 역사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논과 밭을 갈아엎어 만든 곳이었다. 멀찍이 언덕에 과장된 형태의 전망대가 있고, 주변에 잘 드는 칼로 잘라놓은 두부처럼 택지들이 매끈한 단지 도로를 끼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놀이터가 있고 평평하고 편안한 땅이었지만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땅의 흔적과 땅의 에고를 뭉개놓은 택지 앞에서는 항상 좌절을 느낀다. 땅이 가진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아야 하는데 흘러나오는 박자가 없다. 그런 곳에서 건축을 하는 것은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고 귀를 막고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아주 난처하다. 그러나 우리는 집을 지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이라는 것을 꺼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인간에게 상상력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즐거운 작당을 꾸미다: 이 집 역시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택을 마련하기로 한 전형적인 4인 가족을 위한 집이다. 조용하지만 무척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아빠와 늘 웃는 얼굴을 한 명랑한 성격의 착한 엄마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이가 살 집이었다. 핵가족이라 부르는 두 세대가 사는 집이며, 엄마ㆍ아빠ㆍ딸ㆍ아들 네 식구가 사는 집. 무언가 가장 표준의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화수분처럼 집의 재산을 늘려줄 것이라고 기대해왔던 아파트에서 가족이 구상하고 가족이 정주하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좀 달라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집의 이름을 ‘적당과 작당의 집’이라고 미리 정해서 왔다. ‘적당’하다는 것은 넘치지 않도록 중용을 지킨다는 의미일 것이고, ‘작당’은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즐거운 모의를 하겠노라는 선언으로 들렸다. 평이한 듯하지만 비범한 두 개의 단어를 갖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의 가족 구성에는 다소 넘치는 공간을 두 개 층에 만들었다. 어린 두 남매와 함께 즐겁게 지내기 위한 공간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와 같은 방에서 살다가 성장하면 독립할 수 있는, 가족 간에 적당한 거리를 부여하는 집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은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가족이 모여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희미해져가는 부모와 자녀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마지막 단위의 집을 만들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다소 축소된 의미일지라도 집이란 가족에게는 거친 세상에서 보호해주는 안온한 덮개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전처럼 대를 이어가며 살게 될 집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집을 짓는 과정을 부모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기억하는 집이 될 것이다.
평온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다 집은 일상복처럼 편안해야 한다: 건축 강연을 하거나 혹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가 아니다. 애석하게도 “집을 짓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드나요?”(사실은 “평당 얼마예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 물론 이 질문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전개되다 보니 집의 의미가 돈과 결부되는 여러 가지 조건과 환금성, 투자 가치 등으로만 환산되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집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고 우리의 삶을 담은 아주 소중한 곳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서 대체 얼마나 드는데?’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참으로 우울해지다가 결국은 슬퍼지는 우리 현실이다.
나는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회가 되면 늘 이야기한다. “건축은 산업이기도 하고 공학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집이란 문화로서의 건축에서도 가장 활짝 피어나는 꽃이며 정화(精華)이기도 하고요.” 문화라는 것, 혹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문학이라는 것 또한 알고 보면 그저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문화란 편안한 것이고 매우 유쾌한 것이다. 어쩌다 간혹 성의 있는 사람이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 하고 물어보면 나는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좋은 집은 가족의 생활이 담기는 집, 일상복처럼 편안한 집”이라고 말한다.
집이란 우리 생활이 담기는 곳이고 그러므로 편안해야 한다. 집은 우리가 앉거나 누워서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곳이다(실은 대개 텔레비전을 본다). 그런 공간에서 빳빳하게 다려낸 듯한, 이를테면 유명 디자이너가 패션쇼 무대 위에서 걸을 때 입는 용도로 디자인한 옷을 입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집이란 우리에게는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처럼 헐렁하고 편안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이 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집도 있고, 모든 사람이 꿈꾸는 집도 있고, 돈으로 쌓아놓은 듯한 집도 있다. 20세기 현대건축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지었다는 ‘빌라 사보아’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어휘를 정립한 걸작이다. 지금도 관광객과 건축가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가는 집이지만, 시공상의 여러 문제로 정작 집주인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크트 설계한 ‘낙수장’ 역시 미국의 보물로 여겨지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명소다. 새로운 건축의 지평을 열어준 집이지만, 집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인 에드거 카우프만이라는 사람은 시끄러운 폭포 소리와 실험적 건축의 대가로 생긴 크고 작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고 건축의 영원한 고전으로 추앙받는 이 집들은 과연 ‘좋은 집’일까, 아니면 나쁜 집일까? 우리는 어떤 곳에 가치의 기준을 맞춰야 할까? 역사적 의미나 건축적 성과를 떠나서 나만의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길옆으로 피어난 들꽃같은 집들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어느 동네에나 흔히 있는 민가들, 어떤 특정 시대의 양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 하며 동네의 노동력으로 지은 집이다. 이러한 집에는 생활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생각이 스며있다. 이 집은 거칠고 순박하지만 마음을 흔들어대는 감동을 준다. 나는 그런 건축, 일상이 만들어내는 그런 집들을 위대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대로 문화이며 그대로 인문학이기도 하다.
제2장 사람을 품은 집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 집은 얼마나 커야 충분한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필생의 집이 있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뛰어넘는다. 현대건축의 기틀을 만들었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만년에 바닷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쉬면서 그림도 그렸다. 그리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사실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만년에 대해서도 사실은 얼마 전 TV에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잠깐 봐서 알게 된 것이다.
바다에 인접한 경치가 아름다운 언덕에 오두막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야외에서 이웃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70대 후반의 르 코르뷔지에의 사진이 흘러갔다. 어떤 꼬마와 그 가족과 둘러앉아 햇살이 가득찬 정원에서 환담하는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과는 무척 달라 어색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처럼 바다로 수영을 나갔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일곱이었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작은 집을 짓고 바다를 보며 종이에 휘갈긴 스케치를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수영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르 코르뷔지에. 무언가 탈속한 신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그렇게 많은 건물을 설계하고, 그가 설계한 건물 하나하나가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00년이 넘게 추앙받고 있는 위대한 건축가가 마지막으로 지은 집이 자신을 위한 허름한 오두막이라니…….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몸짓이었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집은 1951~1952년 사이에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나무가 우거진 절벽에 지어졌다. 최소 크기의 공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조립식 오두막은 4평(13.4제곱미터) 남짓 된다. 공교롭게도 이 크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지었던 월든 호숫가의 집 크기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 면적이라고 규정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이 집은 르 코르뷔지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지은 유일한 집으로, 마침 친구가 근처에서 레스토랑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부엌을 아예 설계하지 않았고, 먹고 자고 기도하기 위해 지어진 수도사의 거주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다른 몇몇 작품과 함께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집의 이름인 ‘카바농’은 오두막이라는 뜻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의 기원, 즉 아주 기본적인 것만을 갖춘 원초적인 오두막이자 그가 건축에 대해 꿈꾸고 생각했던 장소로서 작은 집을 만들었다.